우당탕탕 엄마의 캠핑카 - 미대륙 9,000킬로미터 세 남매 성장기
조송이 지음 / 가디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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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자녀에게 제일 좋은 것들을 원하는 만큼 다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기도 하겠지만의외로 아이들이 가장 바라는 것가장 행복한 순간은 부모와 함께 지치도록 노는 일일 수 있다몸으로 놀아 주는 부모와의 시간이 길수록 아이들의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리는 말이다그러나 나이가 어릴수록 무한 체력인 양 지치지 않는 아이들과의 몸놀이는 부모의 체력의 한계를 무자비하게 알려 주는 쉽지 않은 활동이기도 하다.

 

저자는 워킹맘이라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했고 휴직을 한 후에도 대화의 길이나 깊이가 원하는 만큼 나아지지 않는 환경에 처방전을 내리 듯 여행을 계획한다아이디어도 대단하지만 실행력은 더 굉장한 분이다육아와 여행을 결합시키는 일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었을 테지만이 정도 규모의 여행은 한편으로는 속 시원한 일탈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거대한 모험엄청난 불안을 동반하는 시도임에 분명하다.

 

아이들은 아직도 부모 손을 타는 어린 나이다유학을 다녀와 영어에 능숙하거나 미국에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다이 모든 것을 돈으로 커버할 정도의 경제력은 당연히 없다무엇보다 아빠가 함께 갈 수 없다그래도 일단 해 보자하고 나서 후회할지언정 일단 해 보자하다 하다 못하겠으면 울면서 귀국 비행기 타면 되지나를 받아 줄 나라가 있고 가족이 있고 집이 있다애가 셋이어도아이가 어려도경험이 없어도 심지어 아빠가 함께하지 못해도 …… 할 수 있다아니일단 해 보자.”

 

자녀는 떠나보내기 위해 키운다그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순리라 믿는다자녀 양육의 목적은 떠나보냄이지만 이 험한 세상에 그냥 내던져 둘 수는 없기에 잘 떠나보내려고 이토록 죽을 둥 살 둥 최선을 다해 키운다이번 여행도 더 멀리 안전하게 떠나보내기 위해 튼튼한 날개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리라.”

 

아빠도 엄마도 없는 시간결핍이 아이를 성장시킨다그날 첫째의 뒷모습은 두고두고 기억되는 한 장면이다.”



아이 셋을 데리고 캠핑카로 해외여행을 떠나 9,000킬로미터를 보고 온 이야기는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하고 매일이 새로운 경험과 느낌으로 펼쳐진다굳이 비교를 하나하나 해보지 않아도 아이들도 엄마도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우려보다 재미와 즐거움이 가득해서 응원하던 독자인 내 마음도 어느 순간부터 편안하고 즐거워진다적절하게 잘 포착한 모든 순간들의 사진들 또한 여타의 여행기와 겹치면서도 색다른 느낌과 모습들을 볼 수 있어 특히나 생생한 간접 경험의 효과를 더한다.

 

미국은 국립공원이라는 개념을 세계 최초로 생각해 낸 나라이다자연이라는 창조주의 위대한 서물을 마구잡이로 개발하거나 가진 자들이 사유화하여 특권층만이 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모든 사람이 자유로이 이용하고 즐길 수 있게 국립공원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23

 

순간 머릿속의 온갖 잡생각을 한꺼번에 날려 버리는 폭발음이 들렸다자연의 웅장함이란 이런 것일까한번 분출할 때 14,000 - 31,000리터의 물리 높이 40-60미터의 장대한 물줄기로 폭발하는 모습은 나와 같은 인간의 존재를 한없이 작게 느껴지게 한다. 177

 

퀸즈 가든 입구에서 내려 트레일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탄성이 절로 나온다일반적으로 등산은 높이 올라가야 전망이 좋은데캐니언은 위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초입 전망이 가장 좋다눈으로 보고도 믿기 않는 초현실적인 풍경에 감탄만 나올 뿐이다종일 내린 비 때문에 황토색의 후두Hoodoo(암석이나 바위가 풍화작용으로 촛대 모양이나 바위기둥처럼 된 것)가 습기를 머금어 색깔이 더욱더 진해졌다게다가 푸석거리는 먼지도 없어 공기도날씨도풍경도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다. 233

 

태양이야 매일 뜨고 지는 것이지만 대협곡의 지평선 너머로 내려앉는 모습을 보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어슴푸레한 그랜드캐니엄의 붉고 푸른색에 지는 해의 녹진함까지 더해져 찐한 다크초콜릿 같은 맛이 난다. 239

 

여행사들이 세계적으로 파산하고 언제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기대조차 무한 연기된 시절에 읽자니 부러움 또한 차오른다몇 해 전 서울-강릉-포항-통영-담양-부여-강화도 일정으로 가족들과 캠핑카를 타고 여행한 것이 생각보다 가깝고 편해서 아쉬울 정도로 빨리 끝난 떠오르면서이렇게 여행을 꿈도 못 꿀 상황이 될지 모르고 막내 꼬맹이가 조금 더 크면 가자고 가족들과의 해외여행을 미뤘던 것이 마구 후회가 된다그렇더라도 우리 가족이 저자처럼 미대륙을 용감하게 쌩쌩 달리지는 못했을 테지만계획을 미루는 일이 막급한 후회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중이다.

 

한 번 뿐인 인생 속히 가리라녹슬어 없어지지보다는 닳아 없어지자.

 

여행을 마치고 책으로 엮어 내고 저자는 다음 목표를 이미 정해서 페달을 굴리고 있다고 한다서울에서 출발해 할머니 댁이 있는 거제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어느 계절에 떠나실 지는 모르겠지만 가족 모두의 무사건강을 응원한다어쩌면 다음 책으로 또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를 주실 지도 모르겠다.


엄마엄마오늘은 여기가 제일 재미있었어천연 어드벤처 코스야통나무에서 아슬아슬 빠질 것 같으니까 심장이 더 쫄깃쫄깃한 거 같아이건 실제라서 슈퍼마리오 게임보다 훨씬 더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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