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에 묻다
이주숙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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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잔잔한 일상과 심리에 대해 귀 기울여 듣는 기분이다가, 이제 겨우 30여 쪽이 지났는데 같은 방식으로 두 건의 사망이 발생했다는 생각이 들어 화들짝 놀랐다제목의 묻다가 장소가 앞에 나오니 땅에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겠지만어쩌면 질문을 묻다란 중의적 표현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이런 전개라면 땅에 묻는’ 사건이 더 발생할 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내가 그런 존재라는 막연한 의식만 있었지 구체화되지 않아 

그것을 소리 내어 누구에겐가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신에 타인에 대한 방어의 몸짓으로서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소아정신과 선생님이 의심할 만큼 지극히 내성적인 데다 더해서 의도적으로 소리 자체를 내지 않았더랬다.

 

주인공 민주의 시간을 따라가면서 읽는 것이 쉽지가 않다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식의 상처를 이미 받았고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이어지지만아이는 마치 트라우마에 걸린 당사자처럼 조심스럽게 성장한다지극한 사랑을 주는 대상도 있지만 그 결합은 탄탄하지만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어린아이가 화자로 묵직한 사건의 한 가운데에 있을 것 같아 자주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평범한 타인뿐이 아니라 전문가인 의사를 완벽하게 속일 만큼 영악한 괴물이 되어 버린 이유를 

스스로 합리화하자면 고모와 고모부고종사촌 언니 둘, 4명의 식구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정확하게 두 개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표현하면 환희와 환멸이었다

어린 나의 정서는 어디로 향해야 했을까?


민주와 민주의 친부모이들의 사연을 알고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향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설명되어야 한다하지만 저자는 현상만을 반복해서 묘사하고 감정의 색깔조차 조심스럽게 혹은 흐릿하게 두고 있어서 원인을 짐작하거나 추리해내기가 막막하다.

 

내가 알아서 안 되는 일이 뭘까?’

 

그녀는 무엇을 의심하는 건가?

 

나의 부모는 누구고 왜 고모네 집에서 살게 되었고 고모부는 왜 나를 그다지도 미워했나?

 

아이는 자라고 변하게 마련이라 어느 덧 민주는 말도 하고 감정 표현도 하고 학교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무탈하고 평범하게 한다단짝 친구도 생기고 미래와 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실패하는 법 없이 진학하여 대학에 간다심지어 동아리활동도 즐겁게 하고 사랑에도 빠진다이렇게 지내는 동안 더 이상 어디에도 묻을’ 일은 일어나지 않고어린 민주에게 드리웠던 심적 고통과 어둠이 흩어진 것만 같아 한참을 마음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고모 집에서 사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는 항상 암울함과 더 알아서는 안 되는

그래서 스스로 알려는 노력 자체를 안 하고 싶고 어둠으로 숨기려는 기운이 늘 존재했다.

 

교감이라는 건 영혼이 서로 교통한다는 말인데 

피차에 자신이 가지고 이는 비밀을 상대방에게 들키기 전에 말머리부터 돌려야 하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입을 열지 않는 것이 현명하리라는 걸 서로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평화의 시간들은 민주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해서는 절대 이야기 하지 않는 고모의 닫힌 입과세상에서 유일하게 애정과 신뢰를 느끼는 대상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아이의 타협과 유예로 유지되는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의 진실을 똑바로 알아야 하잖아?”

 

질문은 민주의 마음에서 떠난 적이 없고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놀랍게도 이런 영향력은 살아 있는 것으로 결국 밝혀진 민주의 생부와 그가 신출귀몰하게 오랜 세월 제공한 물리적 뒷바라지를 포함하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사연에서 으레 동반될 감동적이거나 희생적인 이야기는 전혀 없는 점이 특이하게 느껴졌다문학에서 어떤 신파나 감동을 최우선으로 삼거나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비극적 역사나 환경과 맞물리는 사연들이 등장하는 소설 속에서 이토록 건조하고 사무적인 관계 역시 놀랄 만큼 생경하다저자의 스타일일 수도 있지만저자가 주목하는 것이 다른 부분일 거란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의 등이 깜깜한 산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고 나도 모르게 그에 대해 연민이 생겼다

동질감이었다

다음에는 분노했다

나는 산으로 그를 따라가 묻고 싶었다

산속에 어느 길이 당신이 가는 또 다른 세계로의 길인가?

 

끝까지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이 완전하게 부재하는 생모아이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헷갈리는 생부그리고 그 생부의 놀라운 행적그리고 가장 놀라운 점은 마지막 장까지 다른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되는 고모의 행동이다그리고 밝혀진 또 다른 살인 사건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시장기가 몰려왔다

죽고자 하는 것과 먹고 싶다는 생각이 공존하는 것이 얼마나 역설적인 것인가를 깨닫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뭐라고 하면 좋을까역사탐사기획보도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적은 종종 있었지만 감정이 흔들리거나 강렬한 인상을 받거나 하는 느낌이 없었다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타입의 신기한 글이다마지막까지 하나쯤은 다들 이상한 등장인물들을 추리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했다그런 인간 유형들이 지극히 더 현실적인 것인가일상에서는 실제로 드라마같이 모두 다 설명되고 이해되는 그런 일들은 드문 것인가.

 

그래저 찬란한 산 중턱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내가 산다니까.’

 

유일하게 적을 두고 살아 온 집마저 타인들의 손과 발에 의해 파헤쳐지고유일하게 친밀감을 형성한 고모와도 이별하고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사람을 밀어 낼 것만 같은 곳에서 주인공 민주가 남아 있다냉장고와 창고의 식재료들만으로 그저 숨 쉬며 버티고 있다막바지에 몰려 확인해본 통장엔 따스한 체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돈이 입금되어 있고마지막 순간까지 민주는 한 번도 큰 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이야기의 끝과는 상관없이 모든 것은 그대로 무등산에 묻혀 있는 것만 같다.

서늘하다 못해 손발이 시린 기분이다.

뜨거운 차라도 마셔야 속이 풀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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