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만두를 먹는 가족
이재찬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만두와 가족이 등장하니 따뜻한 생활밀착형 이야기일까 생각해보았는데, 이야기의 도입부가 채 지나지 않아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영양’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소재가 나에겐 너무나 강렬하고 충격적이라 심하게 놀랐다.


여성과 아이에 대한 폭력이 등장하는 미디어물이나 문학작품을 감상하지 못한 지가 꽤나 오래 되었고, 의도적으로도 소비하려하지 않는다. 현실의 가혹함과 범죄 수위가 절망적일 만큼 높기 때문이며 정서 상 그런 장면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심약한 독자로서 자주 만날 수 없는 ‘하드하기 그지없는’ 이 작품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영양만두의 재료로 사용되는 ‘개’의 환경과 물론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개공장, 식육업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이 책의 주요 살인 사건이 제대로 전개되기도 전해 마치 각오하라는 듯이 펼쳐져 있다. 그저 글자들일 뿐인데 이토록 음산하고 야만적일 수도 있다니. 문장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몸서리가 처지게 오싹했다.


“평생 개장사를 하니까 말이야. 개가 때론 사람 같기도 하고 어쩔 땐 사람이 개로 보이기도 해. 요즘 사람들은 개를 개같이 키우지 않고 지 새끼처럼 키우잖아. 개장에서 사는 꼬락서니로 사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고.” 47


그 고비를 넘으면서 책을 덮지 않았다면 드디어 가족 수가 많은 한 남성이 살해된 사건을 추적하게 되는데, 평소엔 아름다운 것만 보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타입이 아닌 나로서도 전혀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세계였다. 어찌나 무시무시한지……. 이런 세상은 절대로 경험하고 싶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평생 모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오죽하면 쓸쓸하고 적막한 주인공의 삶이 무척이나 인간적이게 느껴질 정도이다. 짧디 짧은 문장을 연결해서 속도감 있게 할 말 다 하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고 그 덕분에 몰입이 깨지지 않아서 숨을 거듭 멈추면서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미스터리의 구조가 아니라 분위기로 이렇게까지 독자를 겁먹게 할 수 있다니……. 물론 내가 겁쟁이가 그런 것뿐일 수도 있지만……. 이런 현실이, 유사한 현실이 실재할 것만 같은 분위기와 그것을 태연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그저 소개하는 작가의 태도에 더 겁을 먹었을 지도 모르겠다.


“보통 용의자 중에서 누군가는 범인이 아니어도 알리바이가 애매해야 되잖아. 그런데 알리바이가 완벽한 게 이상하지 않다고 보면 이상하지 않은 거잖아.”

“이상하다는 거야 안 이상하다는 거야? 중략.

“신인범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죽느샤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게 문제지.” 168


이 대사가 복선이기도 한데, 실제 살인 사건은 간단한 구조가 아니었다. 전개하는 도중에 처음으로 짐작할 수 있는 해법도 충분히 끔찍한데, 최종 결말에 이르면 작가는 기어코 바닥을 한 번 더 부수어 보겠다는 식으로 인간에 대한 마지막 신뢰까지 싹 걷어 치워버린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입니까? 그것도 한때 같은 목적을 위해 함께 청춘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저는 최소한 그런 인간은 아닙니다.” 182


원한이 깊은 것도 아니고 그저 확실한 이익을 위해 이토록 흉악해질 수 있는 인간 세계, 발췌 내용이 많아서 미스터리를 망치는 건 아닌가 싶지만. 마음이 콕콕 찔리는 듯 따가웠던 구절들을 홀린 듯 다시 읽어 본다.


“탈은 보통 사람 얼굴하고 다르잖아요. 왜 그런지 아세요?”

“글쎄요.”

“사람들이 평소 탈을 쓰고 살잖아요. 탈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탈 안에 있는 진짜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132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냐고?”

“이유를 말해봐야 이유가 되겠냐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한테.”

“그래도 가족이잖아.”

“가족은 개뿔…….” 232


심기가 굳건하고 소설은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고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에게는 이 강렬하고 팽팽하고 쌩쌩 결말을 향해 달리는 소설이 드물게 큰 즐거움일 거라 짐작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