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지방자치를 비추다
정영오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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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일정 정도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존재할 것이나 한국 사회는 특히나 어지러울 정도로 급속한 변화를 겪어 온 지라, 조선왕조, 일제 식민지, 한국 전쟁, 공화국 - 독재, 대량학살, 혁명, 국가위기, 탄핵 등등 - 에 이르는 여러 번의 환골탈태시기를 한 생에 모두 살아 낸 분들이 있을 정도로 국가/사회 정체성의 변화가 무쌍했다. 그러니 한 개인 안에서도 사고의 전이나 일상생활 양식의 변화가 더딘 경우도 있고, 자의건 타의건 빠른 경우도 있으며, 이는 사회구성원집단간의 격차를 한 세대에서도 복합적으로 상이하게 만들고, 세대 차에 이르면 소통이 불가능한 극단적 경우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런 배경의 연장선에서 한국 사회는 민주공화국의 공무원들에게 공직자로서의 직업윤리 대신 왕조 시대의 덕목을 요구하기도 하고 이는 국민/시민들의 의식에 학습된 문화로 자연스럽게 고착화되어 있어서, 법 감정이나 관행을 단순히 시대에 불일치하는 일이라 외면할 수도 없다. 특히나 인기투표의 형식을 크게 빌려 온 선출직들의 경우에는 능력이나 활동으로 평가받기보다는, 호감형 인간이 되는 것이 정책 투표를 하지 않는 많은 유권자의 표심을 모으기에 필수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는 또 다른 극심한 감정노동과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가족, 친지, 지인들을 포함한 인권침해적인 평가와 절박한 상황에 몰린 후보자의 거짓말이나 부정행위를 야기하거나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기도 한다.

 

4대 성인도 하지 못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현대의 공무원에게 기대하는 것은 희망 사항이라기에도 불합리하고 과하다. 어째서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해야만 바람직한 것인가. 사람 사는 일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거기서 거기, 비슷하게 마련이라고 하지만 조선 시대 치국 철학과 관직에 대한 청사진을 민주공화국의 공무원과 순치 나열하는 것도 어쩌면 크게 유의미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런 걱정과 선입견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영암군수 이종영李鍾英이 다산을 찾아와 ‘정치 잘하는 법’을 물었다. 여섯 자의 염廉자를 군수의 허리띠에 써 주고...... 설명해 주었다.

​첫 째의 청렴함廉은 밝음을 낳는다. 그러니 사물의 실상이 훤히 드러날 것이다.

​두 번째의 청렴함廉은 위엄을 낳는다. 그러니 백성들이 모두 그대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세 번째의 청렴함廉은 강직함을 낳는다. 그러니 상관이 그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이 일화를 소개하는 것은 지도자는 자신의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해질 것이요, 자신의 몸가짐이 바르지 아니하면 비록 명령을 하더라도 행해지지 않을 것이므로 자신의 몸가짐에 대한 스스로의 규율이 먼저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흉년에 백성을 위한 조세 감면을 요구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관직을 떠나라. 상관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관직을 떠나라. 상관이 내게 무례한 행동을 하면 관직을 떠나라.”

 

“상관이 항상 나를 언제 날아가 버릴 지도 모르는 새처럼 여긴다면 내 말을 다르지 않을 수 없으며, 내게 무례한 행동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정치하는 것이 거침없이 순조로울 것이다.”

 

“상사의 지시가 이치에 맞지 않아 받들어 행할 수 없는 일이라면, 사리를 자세히 살펴 행할 수 없음을 보고하되, 그래도 들어주지 않으면, 이 일로 말미암아 비록 파직이나 귀양을 당하더라도 굴복해서는 안 된다.”

 

첫째는 덕행이 고상하고 지조가 청백함이요.

​둘째는 학문이 통하고 행실이 닦여 경서에 정통한 박사요.

​셋째는 법령에 밝고 익숙하여 족히 의옥(범죄의 흔적이 뚜렷하지 않아

죄가 있고 없음을 결정하기 어려운 사건)을 결단함이요.

​넷째는 강직하고 씩씩하고 지략이 많아서 재능이 현령을 맡을 만함이다.

- 벼슬아치의 자질 네 가지

 

어렵고 - 한자가 꽤 있다 - 방대한 양이고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유명할수록 잘 모를 수도 있다는 공식에 맞게 나는 스토리는 익숙하나 정약용의 삶과 철학을 생생히 느껴본 적은 없었다. 비록 목민심서 원본은 아니지만, 인용된 내용들로만 판단해봐도, 목민심서는 사료적 가치가 클 것이라 짐작된다. 만약 정약용이 중앙에 머무르고 승승장구하는 관료로 평탄한 삶을 살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던 조선 후기 생활상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아버지가 목민관으로 임지 부임을 하여서 보고 들은 내용, 자신이 ‘어사’가 되어 파악해 본 현실, 유배지에서 목격한 또 다른 지방 백성들의 참담한 상황에 대해 근거 - 팩트 -를 가지고 증언하는 책이기도 하다. 물론 이 책의 가치는 그러한 자료를 가지고 탁월하게 분석한 정약용의 능력이며, 이는 조선 후기 경제사, 문화사 연구자들에게는 무척 귀중한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 인문학적 사상서로서도 탁월하게 기술된 자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다신이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 대해 세태에 대해서만 비판을 한 것은 아니다. 아래 내용은 다산 선생이 34세 때 충청도 금정역 찰방으로 좌천되어 근무할 때 ‘퇴계집’을 읽으며 매일 새벽 자신의 생각과 언행을 반성하며 쓴 글이다.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남을 깔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재주와 능력을 뽐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영예를 탐내고 이익을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남에게 베푼 것을 잊지 못하고 원한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생각이 같은 사람과는 한 패거리가 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은 공격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잡스러운 책 보기를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함부로 남다른 견해만 내놓으려고 애쓰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니,

​가지가지 온갖 병통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여기에 딱 맞는 처방이 있으니 ‘고칠 개’가 그것이다.”

 

뭐 이렇게 하나도 완전히 비켜나는 게 없나 싶을 정도로 다산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허물투성이 인간이다. 다행히 공직자가 될 계획이 없었으니 망정이다. 한 때 공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돌이켜보니 그때도 공공복리증진을 위한 직업윤리를 고심하며 전업한 것은 아니고, 초과근무를 거절할 수 없는 회사에서 자정에 퇴근하고 출장을 몇 달씩 가며 초과근무수당이 연봉에 육박하는, 자살이나 과로사 외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생활을 더 이상 못하겠다 싶어, 통근 버스가 데리러오고 데려다주는 9-6제 공무원 생활을 하겠다는 지극히 사적이고 영혼 없는 이유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뜻밖에 이사, 부장들, 과장들, 팀장들 포함 200명의 직원들이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거대한 설계팀에 발령받은 것도 의아하고 - 나는 누구, 여긴 어디 - ‘우리가 남이가’라고 야유회마다 술잔을 들고 외치며 다 같이 으쌰으쌰하자는 공직 사회에 적응 못해서 그만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저쨌든 다산의 반성 기준에 비추어 이토록 허물투성이 인간이 나라면 공무에 오래 머물지 않은 것이 여러 모로 천만 다행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다면 이 모든 덕목을 이루는 ‘배움’ 어떠해야 하는지 책장을 넘기다 이 구절을 발견했다.

 

“배움이란 스승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스승이 있어야 배울 수 있는 것이니,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을 초빙하여 스승으로 삼은 다음에야 학규를 논할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는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점차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현실에서, 학생들이 본받을 만한 스승이나 제대로 된 본보기가 될 만한 사회의 어른들이나 서로에게서 배우는 기회는 얼마나 될까. ‘사람’이 실종된 듯한 사람 교육 현장에서 입시 대비 ‘교과서 위주의 학습’이란 흔하게 통용되는 구절이 절로 대비되어 떠오르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로 인한 판데믹이 선언되고 세계가 거의 멈춰버린 시간, 대한민국 4.15총선 선거공보물을 옆에 두고 다음 두 구절을 더 인용해본다.

 

“백성들이 수령을 사모하고, 수령의 명성과 치적이 뛰어나, 유임하거나 같은 고을에 다시 부임하게 된다면 이 역시 역사책에 이름이 빛날 것이다.”

 

재난이 생길 것을 생각하고 걱정하여 미리 예방하는 것이, 이미 재난을 당한 후에 은혜를 베푸는 것보다 낫다.

 


선거 기간이 되면 매번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할 것같아 내키지 않는 마음을 다잡고 찾아보는 자료가 있다. 범죄/전과 기록인데, 선거란 꼭 뽑아야될 사람을 뽑는 일만큼 꼭 떨어뜨려야하는 이들을 떨어뜨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판결과 형량을 마친 경우 소급해서 단죄하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할 지 모르나, 이번 후보자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었던 기소판결 확정 사유들 - 성범죄, 추행, 폭행, 방화, 살인미수/살인, 그리고 동일범죄 10범 이상 등등 - 정말 이들이 처벌과 반성을 통해 새 인생을 각자 찾는 영역만이 아니라 공직 사회에 진출해도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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