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그 작가 - 우리가 사랑했던
조성일 지음 / 지식여행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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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작고하신 분들이다. 경사보다 조사가 더 많은 나이에 이르고 나니 영원히 나와 함께 동시대에 계셔줄 것만 같던, 먼저 떠나신 그리운 분들 생각이 예전과는 또 다르게 각별하다. 모두가 자신의 작품으로 존경받는 분들이지만, 이 책에서는 삶에 대한 그분들의 열정과 태도, 고민과 괴로움 등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어 마음이 아릿하다.

 

순서 없이 뒤적이며 더 빨리 알고 싶은 분, 더 특별한 애정이 있는 작가들부터 읽었다. <입 속의 검은 잎>은 제목만 들어도 다소 격한 감정이 차오른다. 이 시집을 갖는 것이 읽는 것이 외우는 것이 당연한 시기에 대학을 다니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기형도의 시 구절들이 마음에 새겨졌다. 별 다른 서러운 사연 없이도 매번 문을 탁! 닫고 나오는 순간엔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란 구절이 늘 입술에 맴돌았다. 당시 우리는 정서의 대부분과 손편지 내용의 대부분을 기형도 시인과 그의 시들에 빚지고 살았다.

 

보살계를 받고 신도증이 있는 부모님은 자식들을 데리고 어린 시절 주말마다 전국의 사찰을 다니셨다. 어릴 적이라 자연이나 종교에 대한 이해도 감상도 전무한 터라 재미도 없고 지치고 번거로운 기억이 많았다.

​현재까지 나는 어느 종교에도 귀의하지 못했지만 20대 시절 부모님이 특별히 존경하시던 법정 스님 강연을 함께 다니며 실천적 의미로서의 종교의 가치라든가 한국에서 기복신앙화 되기 전의 가르침들과 몰라서 충분히 존경하지 못했던 여러 종교인들에 대해 알게 되고 인식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그 후 살아계신 동안 여러 말씀 듣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동안엔 시대의 어른이 계시구나, 정신의 의지처가 있구나, 여기며 존경하였다. 특히나 그토록 소탈하게 ‘비구 법정’이란 천쪼가리 한 장 덮고 소천하시는 모습을 보고 강렬한 만큼 허전한 감정에 휘말렸고, <무소유> 책의 절판을 유지로 남기신 점을 내내 원망하기도 했다.

 

박완서 작가는 어머니 책장의 <나목>을 처음 꺼내 읽으면서 만나게 되었다. 나와는 경험에서 접점이 없는 내용이지만, 마치 조부모께서 가끔 들려주시던 사적대하소설과도 같은 광풍노도의 이야기와 그 느낌이 비슷한지라, 어느 책이든 술술 잘 읽히는 재밌는 이야기들이었다.

​이후에 그토록 참혹한 고통을 겪으신 얘기에 독자로서 마음이 아프고 늘 건강하시길 바랐다. 작고하신 소식을 들었을 때 조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처럼 그런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이 일었다.

​마지막으로 알고 있던 책 <세상에 예쁜 것>을 조카가 태어난 선물로 동생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노란 집>이라는 책이 한 권 더 있다니, 그 환한 미소를 다시 본 듯 반가운 일이다.

 

누구나 다 알지만 누구나 다 읽지는 않았다는 박경리 작가의 작품들 중 <김약국의 딸들>과 <토지> 밖에 읽은 것이 없다. <토지>는 시도만 하고 끝내 완독을 하지 못한 시기를 지나 대학입학 선물로 <토지>를 받고 나서야 좀 더 진지한 기분으로 읽자는 결심이 생겼고,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겨우 한 차례 읽을 수 있었다. 방대한 구성과 탄탄한 전개, 26년간 집필을 했다는 노고를 어렴풋이 짐작하면서 비로소 대작과 대문호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이 생겼다.

​이 책에서 소개된 개인사를 읽고 그토록이나 강렬하고 힘든 감정에 괴로워하신 세월이 안타깝고, 그럼에도 매몰되지 않고 그 모든 감정을 글을 쓰는 동력으로 삼으신 점이 존경스럽다.

​세월이 더 흐르면서 대한민국의 진정한 고전명작으로 자리 잡기를, 수백 년이 지나도 경애 받는 그런 작가와 작품으로 살아계시길 바란다.

 

“일필휘지란 걸 믿지 않”는 작가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원고지 칸마다 나 자신을 조금씩 덜어 넣듯이 글을 써내려 갔다.”

 

다른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마지막으로 <혼불>의 최명희 작가이다. 마치 ‘천명’과의 조우가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게 작품을 쓴 작가의 일화.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혼불’이야기에 매료되어 이를 작품으로 쓰기로 결심하고 17년 동안 모든 기력을 끌어 모아 삶의 마지막까지 원고를 마쳤다고 한다. 5부가 10권으로 완간된 기쁨이 크셨는지, 말기암으로 2년 가까이 투병하셨는데도,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살았다”는 말씀을 남긴 채 떠나셨다고 한다.

 

“나라와 백성의 관계는 콩 꼬투리와 콩알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콩 껍질이 말라서 비틀어 시든다 해도 그 속에 든 콩은 잠시 어둠 속에 떨어져 새 숨을 기르다가 다시 싹터 무수한 열매를 조롱조롱 콩밭 가득 맺게 하나니.” - <<혼불>> 중에서

 

작가와 작품 설명을 읽고 나니 감정이 동화되고, 특히나 일상이 무한반복궤도의 루프에 걸린 것처럼 느껴지니 대하소설들을 모두 다 옆에 쟁여두고 독파하고 싶은 욕구가 불쑥 든다. 한편으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망하고 싶은 마음이 많은 것이리라.

 

이런 나의 사적 심리상태와는 별개로 홍명희의 <임꺽정>,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홍명희의 <혼불>은 다시 읽어 해될 것이 없는 대작대하소설들이자 문학유산이다.

 

휴가 시기마다 대하소설을 한 두질 사서 세상사 딱 끊고 뒹굴거리며 읽던 때가 떠오른다. 완벽하게 행복했던 단절과 몰입이라는 휴식.

​독서가 여행이라면 나는 곧 이들이 만든 세상으로 다시금 여행을 떠나서 거기 한동안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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