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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대, 라 벨르 에뽀끄 3 - 만화로 떠나는 벨에포크 시대 세계 근대사 여행 ㅣ 아름다운 시대, 라 벨르 에뽀끄 3
신일용 지음 / 밥북 / 2019년 12월
평점 :
챕터 12. 1900 무력 올림픽-의화단 사건
챕터 13. 언덕 위의 구름-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챕터 14. 아듀, 몽마르트르-피카소의 몽마르트르 시대
챕터 15. 그해 8월-1차 세계대전의 발발
챕터 16. 마지막 짜르-러시아 혁명과 라 벨르 에뽀끄의 종말
이 시기에 유럽은 일단 총성이 멈추었지만 동양에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일어났고, 이후 유럽은 1차 대전을 목전에 두고 긴장이 첨예화되고 있었다. 파리의 몽마르트는 예술가들이 사라지고 관광지로 변모해 갔으며, 러시아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인해 로마노프 왕가 마지막 짜르의 가족은 죽음에 이른다. 이전의 시리즈들과는 달리 3권에서는 예술분야의 내용보다 정치적 내용이 주를 이룬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상당 부분이 조선과 일본, 중국의 역사에 관련된 내용이 많이 소개된 점이다. 이는 유럽의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인해 그 갈등의 최전선이 조선과 중국으로 옮겨진 결과이다.
첫 번째로 소개되는 의화단사건을 자세히 알게 되어 반가웠고, 황제가 거주하는 북경에 의화단이 진입함으로써, 영국, 프랑스 등 8개국 연합군과 전투가 일어나 결국 의화단이 패배한다. 이는 외세로부터 자국민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대신해 외세에 맞서 싸운 청나라 최후의 민중 봉기라고 평가되며, 이후 급속히 쇠락한 청나라는 <마지막 황제>를 통해 익숙해진 내용대로 푸이를 끝으로 멸망한다. 오래전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껴서 무작정 홀려서 수십 번을 봤던 영화인데, 어느 순간 세면대에 피를 닦아 내는 장면이 역하게 느껴져서 오랫동안 다시 감상하지 못했던 작품이다. 이젠 어떨지, 다시 한 번 그 찬란한 영상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가능한 넓은 지역들로 소위 ‘세계 여행’을 떠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여행에 대해 기대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다 다르기 마련이지만, 그다지 아쉽지 않게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머물러본 내 경험에 의하면, 횟수나 기간에 상관없이 <딱! 내가 아는 만큼만> 보이고 들리고 이해하고 느끼고 배우게 된다. 그래서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의 경험은 기간에 관계없이 피상적이기만 해서 아쉬운 마음이 든 적도 꽤 많다. 물론 비언어적인 경험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 수단만이 아니라 그 언어에서 출발한 사회, 문화, 역사, 그리고 화자인 사람들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 출발이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그런 점에서 멀리 깊이 나아갈 수가 없다.
단지 내게만 해당되는 변명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세대의 한국 교육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세계사에 대한 공부는 단지 과거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세계로 떠나보는 여행이기도 하다. 시간차를 두고 세계사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질수록 과거에 단편적인 경험들이 이제야 이해가 되기도 하고 조각들이 들어맞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세계사 완전정복’과 같은 단 한 권의 책이 정답처럼 존재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냐만,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세계사든 세계 여행이든 풍부하고 깊이 있게 실행해보려면 적절히 선별된 좋은 이야기들을 가능한 많이 접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경우 건조한 사건이나 제도에 대한 나열과 서슬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생명력이 담뿍 담겨 생생하게 대화하고 체험하는 듯한 그런 구성이 제일 즐겁고 재미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흑백으로 그려진 만화책들임에도 불구하고 3권에 이르는 여정 동안 형형색색 다채롭게 느껴지는 전개를 쉽게 따라갈 수 있었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아쉬운 마음이 들게 하는 대단한 매력을 가진 책이다. 새삼 흥미롭고 부럽기 그지없는 저자의 이력과 실력에 감탄이 든다.
아쉽게도 연속성을 가지고 기록 보관된 역사는 얼마 없고 그래서 역사는 구멍투성이이다. 따라서 그 사이사이를 얼마나 그럴 듯하게, 누가 더 말이 되게, 한 점의 증거물이라도 더 발견하여 채우는가가 마치 거대한 퍼즐처럼 이어지는 관련 학문 연구들이다. 역사관련 저술이라면 어떤 것이든 지루한 줄 모르고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작은 퍼즐 하나씩을 발견해서 나의 역사적 상식에 빈 칸을 채워 넣는 일이 정말 즐겁다.
<라 벨르 에뽀끄> 시리즈는 그 중 재밌고 유쾌하고 즐겁기 그지없는 방식으로 퍼즐 조각을 건네주었고, 그래서 3권을 모두 만나 읽는 내내 행복했다. 2019년과 2020년의 송구영신의 나른하고 행복한 시간들의 일부를 이 책에 빚졌다. 감사한 일이다.
처음부터 목표한 바는 아니었지만,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에 매료되는 이유들 중 하나는 언제나 어떤 역사의 단편이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여기, 이 사회를 읽어내고 멀지 않은 미래를 짚어보는데 도움이 되는 점이다. 나 자신의 삶을 그려보는 고민과 학습의 틀거리는 내 경우엔 어쩔 수 없이 고금의 다른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토대로 한다. 다시 구성된 그 틀거리가 다시 세상에 대한 나의 관심의 방향을 정해주기도 하고 어떤 공부를 더 해야할 것인지의 고민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돕기도 한다.
당연히 나는 우리집 꼬맹이들도 이런 경험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적극적으로 책을 골라주는 일은 없고, 그저 내가 재밌게 읽은 책들을 잘 보이는 높이의 서가에 전시하듯 정리해 두는 것이 전부이다. 다행이 이 시리즈는 방학 동안에 만났고 비록 흑백이지만 만화로 구성되었고 한 챕터의 구성이 차례로 반드시 기억해야 진도가 나갈 수 있는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 흥미로운 인물과 사건들이 다수라, 기대 이상으로 아이들 역시 재밌게 읽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독립된 ‘국사’란 과목은 편협한 이해와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으니, 나는 가능한 아이들이 세계사를 통해 한국사를 볼 수 있기를, 역사를 바라보고 과거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사회 현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고 비판할 수 있는 사고력이 자라나길 바란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이 책은 자주 역사의 한 장면을 실제 보거나, 그 시대를 사는 것 같은 아주 특별한 역사 체험을 선물해 주었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몰락으로 시작해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멸망으로 마무리되는 <라 벨르 에뽀끄> 시리즈.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우리들의 <라 벨르 에뽀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적어도 인류는 이제 이데올로기보다 인간이 먼저인 세상에 주차한 듯하고, 앞으로도 이론 때문에 수만 명이 죽어나가지는 않는 세상이 될 것이라 본다. 물론 어쩌면 브레이크를 걸거나 해답을 찾기 더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지도 모른다. 나는 잔 다르크 신드롬을 앓아본 적도 없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희망에 들떠본 적도 없지만. 극히 작은 가능성이라고 있다면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다른 길은 없다.
아이들의 독서카드에 ‘그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세계의 역사가 꼭 이렇게 흘러와야만 했을까? 혹시 다른 길은 없었을까?’이런 질문들을 포함한 다른 질문들이 빼곡하다. 어떤 역사적 상상을 하고 있을까, 함께 이야기 나눌 시간을 행복하게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