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수
이현 지음, 김소희 그림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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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꼬맹이들과 나는 이형 작가님의 열렬한 팬이라서 고대하던 [푸른 사자 와니니 2]편을 행복하게 읽고 언제 다시 신간 소식을 들으려나 풀이 죽어 있다가, 뜻밖에! 빠른 출간 소식과 그 내용이 초능력 남매에 대한 것이란 소개 글을 보고 전체 내용을 모르면서도 다 같이 신나게 환호성을 질렀다.

 

형은이는 왼손으로 물풍선의 멱살을,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기다란 막대를 잡고 있었다. 막대, 그것도 묵직한 쇠막대였다. 검은색과 노란색 줄무늬가 칠해진 쇠막대에 수박 두통은 됨직한 돌덩이가 달려있었다. 상가 뒤편 주차장 입구에 있는 주차 금지 표지판이었다. 남자 어른도 두 손으로 붙잡고 질질 끌어서 옮겨야 할 만큼 무거운 거였다. 그런데 형은이는 그걸 빗자루라도 되는 듯 가볍게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33-34

 

표지 그림을 보고 궁금했던 점이 설명이 된다. 토르 망치도 아닌 것이 사나워 보이는 저건 무얼까 궁금했는데 주차 금지 표지판!ㅎㅎ

 

처음엔 흔하고 익숙한 학교 폭력 일화가 계기인가 했는데, 유튜버인 물풍선이란 패거리 중 한 명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협박하는 내용이 나와서 갑자기 마음이 너무 무겁고 섬뜩했다. 불과 며칠 전 폭력적인 사적 관계로 인한 고통에 더해 온갖 인터넷상의 악플과 위협과 가해로 우울증을 겪고 끝내 세상을 버린 이가 떠올랐다. 이야기 전개와 결말과는 상관없이 이런 내용을 이야기 내용으로 웃어넘기지 말고 심각하고 무겁게 받아들이며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체적으로 엄청 재밌는 장편 소설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전혀 유치한 내용이 없어 즐겁게 몰입하여 읽어 나갔다. 생생할 만큼 충분히 현실적이면서도 신날만큼 충분히 환상적이다. 권선징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면서 영웅적인 인물이나 초능력자인 주인공이 능력을 발휘해서 악을 처단하는 내용 전개는 결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소재로서는 뻔하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모든 약점들을 모은 이야기들을 이토록 재미있게 감칠맛 나게 버무려서 재밌고 통쾌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이 탁월한 작가의 탁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색다른 점은 마블과 DC의 배경이 아닌 사랑스럽고 귀여운 대한민국의 생활 밀착형 동네 어린이 영웅 캐릭터라는 것이다. 그에 더해 설화나 전래동화의 모티브를 활용한 점도 독특하고 반가운 일이다. 솔직하게 나는 전래동화를 정말 싫어했지만 말이다. 목욕하는 걸 훔쳐보고 옷을 감추고 거짓말을 하고, 어린 자매가 죽임을 당하고, 아버지가 재혼만 하면 아이가 학대당하고, 호랑이한테 엄마는 잡아먹히고 아이들은 도망가고 어린 시절 읽을 때마다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무시무시했다. 어쨌든 내 경험과는 별개로 전래동화들 중 엄청나게 힘이 센 오누이 이야기가 [전설의 고수]의 남매 스토리에 동기부여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옛이야기 속 오누이 이야기는 대개 슬프게 끝납니다. 이들은 엄청난 초능력을 가졌지만 악당을 물리치지도, 영웅이 되지도 못합니다. 어른들로 인해 오누이는 무리한 내기를 하던 끝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곤 했지요. 292

 

그렇다면 [전설의 고수]의 남매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요? 다 읽기까지 나도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더구나 깔깔거리며 즐기기 좋은 전생과 환생이야기! 뭐랄까, 새삼스럽게 히어로물은 이런저런 중층적 문화 구조를 가진 한국형이 이야기꺼리가 젤 수다스럽고 재밌다는 새로운 발견이랄까, 싶은 감상이 들었다. 이현 작가님의 비범한 능력으로 이 모든 수다스러운 문화적 배경들이 자연스럽게!(놀랍게도ㅎㅎ) 이어지고 어우러져서 빈틈없이 탄탄한 구성을 만든다. 초반에 이 이야기 어디로 가나~ 싶은 우려가 살짝 들기도 했는데 기우였다. 초반에 충실히 깔아 주신 복선들이 깔끔하게 모두 잘 설명되면서 마무리되는 통쾌함! 어른들 마리 숙이게 하는 아이들의 엄청 귀엽고도 치밀한 추리 능력!

 

한편으로는 그러한 캐릭터 설정이 누구보다도 심각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씁쓸할 만큼 잘 반영하게 되는 장치가 된다. 학교 폭력, 미세먼지, 유튜브 및 SNS 남용 혹은 부작용, 몰래카메라, 아동 유괴. 끊임없이 매스컴에 등장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근절되지 않는 문제. 그래서인지 동화 속에서라도 불의를 응징하는 모습에서 현실에선 쉽지 않은 후련한 기분이 잠시 들기도 한다. 물론 현실에서 제대로 된 예방과 처벌과 지원이 이루어지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끝까지 함께 응원하고 개선해야할 것이다. 더 이상 히어로나 영웅이 필요 없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현실 사회를 지향하도록!


마지막으로 분량이 넉넉한 장편이라 하마터면 우리 집 작은 꼬맹이는 즐겁게 완독하기 힘들 뻔도 했는데, 감사하게도 표정이 풍부하고 색채가 정감 있고 장면 묘사를 잘 보충해주는 일러스트레이션이 포함되어 감사하고 더 재미있었다. 동화책을 읽었는데 만화책을 읽은 것도 같은 신나는 기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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