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행복과 인간관계 - 행동에 변화를 주는 강력한 힘
강영석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인간에 대한 공부는 했어도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운 바가 없다.

흔히 무슨 무슨 ‘비법’이라는 책들에서 들려주는 설득력이 강한 이론들이 아니라 수많은 스토리텔링 예화들이 있어서 일단 처세술이나 계발서의 이론을 새로 습득하는 느낌이 전혀 없고 술술 잘 읽히는 재미있는 이야기책처럼 느껴졌다. 가독성이 좋은 것에 더해 적어도 나에게는 이런 방식이 더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밑줄 긋고 애써 외어야하는 수고가 없이 이야기 자체로 기억되는 방식이 어쩌면 더 오래 기억될 거란 기대도 장점으로 생각된다.

만남에 대한 책임은 하늘에 있고 관계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는 말이 있다. 만남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관계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 중략. 따라서 이 책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론을 기술하려는 서적이 아니라 보다 나은 인간관계를 이루기 위한 실천적인 노력을 다루는 실제에 중점을 두었다. 9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마음속 어딘가가 아니다. 지도 위의 어딘가도 아니다. 그곳은 너와 나 사이의 공간이고 우리가 그 공간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 공간을 더 편히 여길수록 행복도 더 커진다.” 중략. “사람이 없다면 천국도 갈 곳이 못된다”는 레바논 속담도 우리의 행복에 사람이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26

레바논의 문화에 무지해서 이런 속담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그런 한편 사람이나 인간관계처럼 양면성이 강한 것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행복의 필수 조건이기도 하지만, 그 행복을 망치거나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때로는 선택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냥 별 생각없이 가끔 이런 표현을 하며 살았던 것도 같은데, 흔히 하는 이야기로 “거리감이 느껴진다”거나 “멀게 느껴진다”란 말이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감을 표현하는 말이구나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이의 경계, 바운더리는 피부가 끝이 아니다. 내게 딱 붙어 있는 경우가 아니라도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적당한 거리, 공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아마 서로 그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관계의 필수적인 기술일 것이다.

 


우리가 전달한 말과 문자 메시지는 자기중심적 사고 속에서는 자명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극히 애매하게 여겨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의사불통으로 인해 생겨나는 오해와 갈등에 대해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의 무감각과, 배려가 없음을 탓한다. 39-40

나는 늘 의사소통에 있어 가장 정확하고 쉬운 방법이 구두든 문이든 언어를 통한 것이라고 얘기해왔고, 비언어적 소통방식을 어려워했으며 그런 감각이 확연히 떨어지는 편이다. 소위 말하는 눈치는 절망적일 정도로 없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말과 문자가 자기중심적 사고 속에서만 자명한 것이라고 지적하는 구절을 읽고 갈등이 생긴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나는 충분히 설명한 것 같은데 왜 이해를 못하는지 아니면 이미 전에 대화를 나눈 것인데 왜 기억을 못하고 엉뚱한 얘기를 하냐고 반발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어쨌든 지금 와 생각해보면 역시 다소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으며 이해심이 부족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중략. 세속적인 안목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사물이 오히려 진정한 도움을 준다는 뜻의 무용지용이라는 말도 있다. 중략. 윤구병은 잡초로 보이는 풀들을 잔뜩 뽑아버렸는데 알고 보니 그 잡초가 제각기 이름을 지닌 약초이고 반찬거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 이유가 없는 풀은 없다는 결론을 얻고서 [잡초는 없다]는 책을 출판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아무 데도 쓸모없어 버림받거나 업신여김을 받아도 마땅하거나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70

나무와 잡초의 세상에서는 다른 판단 기준이 없어서 표현 그대로의 역할을 하는 것인 사실이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노동력과 가치에 대한 효용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확실하고도 냉정해서 마음이 무겁다. 실은 측정 가능한 모든 요소가 대상 인간의 가치 판단 기준이 된다. 연령, 외모, 성별, 국적, 인종, 결혼 유무, 가족관계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또한 원칙적으로는 차별받지 않아야할 차별금지조항들이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경우에 있어 정량적으로 계산되고 환산되는 판단기준들이다. 씁쓸하고 쓸쓸하다. 그래서 인간 세상의 모든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SNS에서 널리 퍼진 ‘명절 잔소리 메뉴판’에는 ‘대학 어디 지원할 거니?’ 5만원, ‘살 좀 빼야 인물이 살겠다’ 10만 원, ‘취업은 언제 할 거니?’ 20만 원, ‘이제 결혼해야지’ 30만 원, ‘아이는 언제 가질 거냐?’ 50만 원이라고 적혀 있다. 또 명절 잔소리 메뉴판의 맨 아래에는 “걱정하는 마음은 유료로 판매하고 있으니, 구입 후에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75-76

내용은 대략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본 적은 없는데, 마치 끝나지 않는 영원한 스트레스 극강 질문들인 것 같다. 이러한 배려 없는 질문 공세들이 ‘덕담과 애정과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다니 그 고착이 더 무시무시하다. 어렸을 적 생각한대로 훌륭한 어른이 되지 못한 것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떤 모습이 될지 스스로도 장담을 할 수 없는 처지이긴 하나, 새삼 어른 노릇 부모 노릇이 어렵다는 생각이다. 의도가 선하든 아니든 상대방이 받아들이길 불편해하면 적어도 그만 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가능한 오래 잊지 말아야겠다.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이 거지 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 81

전혀 몰랐던 내용이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남루한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다 전차에 치였는데, 운전수가 노숙인이라 판단해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뺑소니를 쳤고, 역시 노숙인으로 생각한 택시들의 잇단 승차 거부로 가까스로 병원에 갔으나 병원 2곳에서 진료 거부를 당했고 결국 빈민구제를 위한 무상병원에 방치된 이야기이다. 신분이 증명되어 친구들과 친적들이 달려 와 병원을 옮기려 했으나 위와 같은 말을 남기고 사망했다고 한다. 1926년의 일이지만 참으로 야만스럽고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일무이하게 아름답고 독특한 건축을 설계했고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아니라면 인류의 보고로서 영원히 보전될 작품들의 건축가가 인간 자체보다 옷차림이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바람에 이렇게 세상을 떠나다니. 지금은 신분증이나 지문조회를 할 수 있으니  혹은 그런 천박한 판단은 하지 않을 정도로 인류의 정신도덕윤리문화가 진화해서 덜 비극적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단지 지금뿐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 외에, 다른 사람과는 그 어떤 일도 도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그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유일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85

이 책의 목차를 보고 무척이나 궁금했던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의 내용이다. 당연한 말인 듯도 싶지만 무언인가 머릿속이 복잡하기도 하다. ‘지금’에만 집중하고자 하는 이들이 집중할 줄 말라서 혹은 하기 싫어서라기보다 할 수 없게 만드는 구체적인 사안들이 분명히 있지 않나 싶은 생각 때문이다. 그래도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좀 더 충실한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비록 모두 다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런 선택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유일한 방법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들의 고유한 인성과 자아는 존중과 인정이라는 밥을 먹어야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88

존중과 인정은 관계가 미리 성립해야 가능한 행위 작용이므로 존중과 인정에 관한 의지와 욕망이 구체화되고 확립되기까지의 인간관계에서의 태도와 경험이 전적으로 중요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래 전 자주 논의에서 등장한 ‘인정투쟁’이 가물가물 기억이 나려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누군가의 미소가 촉발시키는 강력한 감정적 경험은 뇌의 생화학 작용을 변화시킨다.” 웃으면 혈압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줄어들며, 뇌에서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세로토닌, 엔도르핀 등의 호르몬 분비가 촉진되는 것을 의미한다. 93

진화의 과정이 참 대단하고 효율적이고 신비로운 것이, 바로 이렇게 인간의 뇌에 직접적인 화학반응명령을 내리는 가장 강력한 장면이 갓난쟁이, 아기들의 미소와 웃음이다. 다른 종과는 달리 출생 후 아무런 생존 능력이 없어서 그야말로 전적으로 타인에게 생존을 의탁해야하는 인간의 아이들은 그래서 아마 이토록 강력한 생화학 기술을 진화시켰을 것이다. 무장해제와 동시에 죽도록 사랑해주고 필요한 것은 다해 주리라는 마음이 윗 세대들의 뇌에서 무럭무럭 피어나게 만드는 명령!

...... 미소는 받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지만 주는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미소가 없어도 될 정도로 부유한 사람은 없고, 미소가 주는 혜택을 누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 역시 없습니다...... 그러나 미소는 돈으로 살 수 없고, 구걸할 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으며 훔칠 수도 없습니다. 미소는 누군가에게 주기 전까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펜하임 콜린스 회사의 광고문> 94

일부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과연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점은, 사실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갖가지 감정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혹은 대가도 없이 위계적 관계 속에서 소위 ‘어른들’에게 책잡히지 않기 위해 필요한 미소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여전히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행복과 인간관계>에 대한 내 생각은 복잡하고 어렵고 어수선하다. 미소 혹은 웃음은 인간의 중요한 능력이자 판별 지표임에는 분명한데, 어쨌든 현실 사회에서는 이 또한 여러 권력 관계 속에서 복잡한 역할과 표정을 지니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전체적으로 읽어나가며 생각 속에서 이어나가고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나 보다. 단락단락 생각이 멈추고 만다. 언제나 손쉬운 날씨와 컨디션 탓을 해본다. 그래도 책을 잘못 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 처음에 장점으로 밝혔듯이 에피소드들의 패치워크처럼 한 권의 책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미난 이야기들을 여러 말솜씨 좋은 사람들에게 느긋하고 편안히 들은 기분이 든다.

잘 아는 것도 같은데 어느새 진지하게 생각해본 지 오래인 인간관계, ‘무엇이다’라고 제대로 한번 명쾌하게 알아낸 적도 없지만 그렇게 되길 원했었고, 그렇게 되리라 근거 없이 기대했었고, 역시 어느새 인가 인생의 옵션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빠져버린 ‘행복’.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이전에는 구체적으로 엮어 본 적이 없는 인간관계와 행복을 아주 구체적으로 짝지을 수 있는 상황들을 한번 정리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조금 생긴다. 내가 아는, 내게 중요한, 내게 유의미한 인간관계들과 구체적 행위를 통해 가능한 행복감! 어쩐지 작은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설레고 꽤나 수확이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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