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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왕 이채연 ㅣ 창비아동문고 306
유우석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치면서 핑크와 공주와 발레에 푹 빠져 있던 우리 집 쪼꼬맹이가 초등 2학년이 되자 초등부여자축구단에 가입했습니다. 가족들 모두 이게 무슨! 일인가 의아했는데, 정말 재미있게 즐겁게 열심히 참여합니다. 방과 후 활동 정도인가 했는데 다른 학교 축구부와 대전 시합도 하고, 자기 방에서 혼자 잠들 때마다 눈물을 꼭 보이는 아이가 1박2일 훈련도 다녀왔습니다. 예쁜(?!) 옷들을 벗고 유니폼과 고글과 축구화 착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어린 사람들의 성장이 그렇긴 하지만 이 모든 갑작스런 변화가 사실 처음에는 엄청 놀라웠습니다. 혹시 적응하기에 실패하고 그만 두게 되면 우울해하거나 실망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었는데 여전히 좋아하는 활동을 씩씩하고 신나게 하는 아이를 보면 무조건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늘 잘 보이고 싶은 무척 좋아하는 할머니께서 자꾸만 “예쁜 손녀 까맣게 다 타네~ 그러게 여자가 무슨 축구를 이렇게 열심히 해!”라고 가끔 말려 보려 노력하시는 게(ㅎㅎ) 단 하나의 걸림돌이긴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ㅎㅎ) 응원하고 있으니 아직은 딱히 스트레스나 상처를 받지 않는 것 같아 안심입니다. 조금만 더 젊고 체력이 남아 있다면, 저도 여자축구팀에 가입해 신나게 활동해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점이 서글프고 아쉽습니다.
[축구왕 이채연]은 아이들을 통해 듣는 내용을 제외하고는 제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학교 내의 여자 축구부 활동과 아이들 간의 인간관계, 심리묘사, 성장하는 순간들을 알려주고 보여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특히나 저자가 실제 초등학교 교사로 교내 여자 축구부 감독을 맡은 경험을 바탕으로 쓰신 거라 섬세하고도 유쾌한 이야기들이 가득입니다.
“여자 축구부원을 모집합니다. 준비물은 공을 사랑하는 마음!”
꼭 ‘여자들’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나 처음 배우는 일에는 서툴게 마련이지요. 재미있는 부분은 아이들이 열심히 훈련하는 대견한 모습들과 축구를 좋아하게 되는 심경변화, 경기를 치를 때마다 한 팀이 되어 노력하는 과정의 가치를 느끼고 성장하는 모습입니다. 역시나 ‘성장물’은 감동입니다. 학대도 체벌도 우승 강박증도 없이, 재밌으니까 하고, 아쉬워도 크게 같이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으니 독자인 저도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여자 축구부의 경기를 보며 열심히 열심히 응원하는 남자 축구부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라 잠시 현실에서의 악의와 대립과 비난이 잊히기도 합니다. ‘왕’이라는 전근대적 제목을 붙이지 말지, 하는 작은 불만도 살짝 생길 정도로 참 바람직하고 행복한 교육일상입니다.
“잘 못하면 어때? 재밌잖아!”
우리 집 꼬맹이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자꾸 개입되어서 더 그렇겠지만 진심으로 마음이 뭉클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읽는 내내 아이들을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속이든 현실이든 아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길, 그러한 매일이 좀 더 즐겁고 행복하길, 어쩌면 원하는 승리를 한번이라도 경험해 보길,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저자처럼 사랑 가득한 눈으로 지켜봐주고 함께 해줄 수 있는 어른들이 많기를 애타게 기원했습니다.
한편 한국 사회에서도 구분과 편견을 넘어 이토록 신나는 활동을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남녀노소들이 더 많아지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책표지를 보자말자 “이거 내 책이예요?”라고 눈을 반갑게 빛내던 꼬맹이와 함께 읽고 얘기 나누기에 참 반가웠던 책의 건승을 응원합니다.
주기적으로 국가별 금메달 개수만 세면서 일희일비하지 말고, 원하는 국민들 모두가 매일 각자의 일상에서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더 넓은 운동장을 마련하는 일에 ‘국력’이 더 진지하게 쓰이길 바랍니다.
“채연아, 어때? 우리 축구 한번 해보자!”
설마 설마 했던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인연은 내 뜻과는 상관없이 엮이는 거였다.
“어? 어......”
난 또 너무 쉽게 끄덕이고 말았다. 이상하게 지영이와는 모든 것을 같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것도 아니고 축구다. 남자아이들이 풀풀 풍기는 땀 냄새를 끔찍하게 여기는 내가 축구를 할 수 있을까? 27-28
한동안 힘들어하던 안곰샘은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유명한 축구 감독을 보게 되었는데, 그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축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재능 있는 선수를 발굴할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34
축구는 움직임의 운동이야.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움직임! 주변의 움직임을 재빨리 포착하고 나도 그에 맞게 움직이는 것! 상대의 움직임과 나의 움직임에 민감한 사람이 축구를 잘 하는 거야. 50
잊지 마. 남의 움직임에 나의 움직임을 맞춘다. 옆줄, 앞줄 흐트러지지 않게 달리는 거야. 이건 축구가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더 중요해. 혼자서 잘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59
움직임과 패스의 상관관계는? 패스는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하는 거야. 움직임은 상대와 나 사이의 공간, 즉 패스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지. 많이 움직이는 만큼 공간도 더 많이 생긴다. 69
운동장을 달리며 온 신경을 공에 집중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내 숨소리와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만 느껴질 뿐이다. 경기가 끝나면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지만 마음만은 축구공처럼 단단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축구를 생각보다 더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88
축구는 매력적이다. 정말이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주하보다 축구가 훨씬 좋다. 골을 넣었을 때 발등에 공이 맞은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분명 그 느낌을 안다. 135
이 책은 기성용 선수만큼이나 발랄한 여자 아이들이 펼치는 축구 이야기다. 세 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스물네 명이 된 우리학교 여자 축구부를 떠올리며 썼다. 169
“선생님이 지금 쓰는 동화에 우리 전국 대회 나가는 걸로 되어 있는데......”
“선생님, 그러면 우리가 부담스럽잖아요!”
“알았어. 그런데 전국 대회 나가면 학교 수업 빠져도 되는데......”
“와아!”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