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감정 날려버리기
마이클 베넷.사라 베넷 지음, 박지혜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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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제목을 보고 화들짝 놀라고, 목차를 보고는 더 놀랐다. 정식 출판된 책임을 확인하고서도 ‘주변에 개자식에게 더 이상 당하지 않는 법’이런 표현은 잘못 읽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문화와 언어가 다르다는 실감이 이토록 드는 일도 최근엔 드물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감정을 고찰하고 허황된 꿈을 꾸게 만드는 수많은 뻔한 자기계발서에 일일이 한방 먹이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밝히는 저자와, 코미디작가인 딸, 사라 베넷의 공동 저서이며, 심지어 ‘감정 따위에 흔들이지 않는 자유롭고 맑은 영혼의 우주 왕먼지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번역가도 범상치 않다.

 

 

만약 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독자들이라도 목차는 꼭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목차만 두 번 읽고 두 번 웃고 기분이 반절은 가벼워졌다. 특히 제 1장은 내가 '빌어먹을 개자식들'에 대해 알고 싶고 말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그 내용에 포함하고 있어, 나의 희망사항이 지나쳐 헛것이 보이나 싶은 심정이 간혹 들기도 했다.

 


개자식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일상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더 빨리 터득할 수 있다.

당신의 평판을 이 개자식들이 어떻게 더럽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스스로를 격려해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잠자코 입 다물고 있기로 하자.

 


이 책의 저자는 또한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업싱 오래전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내밀한 이야기를 설명해야 하는 처지가 서러워 시간 내내 울다가 ‘계산하고’ 끝난 처음이자 마지막 상담치료가 떠올랐다.

 

‘행복추구와 자아실현’이 현실 목표에서 멀리 사라져가는 동안 나는 한번이라도 깨어지면 그 대가가 무시무시한 평온한 일상을 가능한 오래 유지하는 일에 온 힘을 쏟으며 살고 있는 기분이고, 스스로의 계획대로 안간힘을 다해 노력하는 일상에, 초대 없이 문의 없이 예고 없이 버릇없이 뛰어드는 돌발들을 증오하는 일이 점점 힘겨워진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려는 많은 노력 후에 증오를 멈출 수 없다는 결론과 마주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자. 증오를 멈추는 일이 정말 당신의 능력 밖이라면, 자신을 탓하거나 미워해봐야 소용없지 않은가. 증오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운명이라는 것과 그 사실에 화를 내면 증오가 더 심화될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면, 이제 당신은 불멸의 증오를 관리하기 위한 방법들을 배워볼 준비가 된 것이다.

 

그래봤자 직장은 직장일 뿐이고, 돈을 벌러 다니는 곳이지 더 공평한 세상을 만들려고 다니는 게 아님을 기억하자. 당신의 목표는 스스로의 기준에 맞춰 하루 업무를 잘 수행하고 고용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회사에 남아야 할 자신만의 이유들을 적어 목록으로 만들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짜증의 주범들은 만족스러운 급여를 위해 감수해야 할 산업공해라고 생각하자.

 

에라 다 포기하자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것도 아니지만, 아직은 뭔가 너무나 억울한 생각에 자꾸만 체력과 기력이 약해지는 자신을 위해 조언과 계기와 도움을 찾아 두리번거리곤 한다. 어쨌든 제목과 목차에서 이미 상담치료보다는 훨씬 도움이 된 이 책을 호기심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읽어 보았다.

 


“지금까지 왜 아무도 개자식 같은 상사의 만행에 반기를 들지 않았는지 생각해보라.”

 

“미친 사람에게 위협받을 때는 자신이 통제력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상책.”

 

나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이들에게 다 같이 사이좋게 그렇게 살면 온 세상이 똥밭이 된다고, 그러니 더럽다고 피하지 말고 가끔은 치우자라고 말하며 사는 쪽이었고, 이건 아버지에게 들은 잊지 못할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살면서 ‘똥치우는 일’에 너무 힘을 많이 들였나, 그래서 이토록 성마르고 인내심이 얕은 인간으로 살아가나 싶은 생각도 든다. 뭐 앞으론 똥치울 의지가 충분하고 행동에 기운 넘치는 이들을 더 격려하고 응원하는 방법으로 바꿀까 하는 마음도 든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노력은 집어치우고, 조각조각이나마 생존해 작동하고 있는 마음의 파편들에 주목하자.

 

스스로 통제 가능한 것들에만 책임감과 희망을 국한시키는 방법을 배운다면 당신의 열렬한 노력들은 항상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공평한 현실을 부정하고 세상이 원래 순리대로 돌아가기를 강하게 바랄수록 고통, 좌절감, 부당함은 더 심화된다.

 

그러니 불의와 불평등을 그대로 인정하되 공정하고 정의로운 인간이 되는 일을 포기하지 말자.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감정은 어리석은 것이며, 인생은 고달프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지만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충분히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상당히 통통해 보이는 분량의 책이었는데 언제 다 읽었는지 의아할 만큼 빨리 읽었다. 군더더기 없고 파격적일만큼 솔직하고 심지어 처방 조차 '빠른 처방'이란 명명이 붙어 있다. 빠른 위안은 되었지만 스스로를 맘에 드는 만큼 변화시키는 데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악의적이든 멍청해서든 헛소리들이 판치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뒷못잡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처음으로 정신의학에 대한 불신과 의심없이 즐겁게 읽었고 자주 웃었다. 저자의 당부처럼 수용력이 좋은 누군가에게는 즉각적인 변화의 계기가 되고 더 큰 도움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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