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감이여 - 충청도 할매들의 한평생 손맛 이야기
51명의 충청도 할매들 지음 / 창비교육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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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란 확실히 세월 따라 변하기 마련이라 어릴 때는 식감이나 색상 때문에 먹을 시도를 하지 않았던 식재료들이 갑자기 맛있게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지, 부추, 꽈리고추 등등...


그 중 특별한 찬거리 하나를 꼽자면 어머니가 아니면 세상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었을 듯한 요리가 있는데, 다수의 한정식집에서도 알고 계시거나 반찬으로 내주신 적이 없고, 어머니 친구분들도 할 줄 모른다 하시니, 이건 아마 외할머니, 어머니에게로 이어져 내려온 찬거리가 아닌가 한다.

가을 장마가 시작되어 눅진하긴 하지만,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딱 그 철에 일년에 단 한 번 먹을 수 있는 귀찬 찬이고 추억이라 9월이 되자마자 기대가 된다.


물론 이제는 어머니가 호기롭게 예전처럼 요리를 하시진 못해서, 내가 열심히 배우고 있다. 널리 알려진 요리 미스테리 중 하나인, 같은 재료 같은 순서로 해도, 심지어 감독관 어머니가 옆에서 일일이 다 지시하고 허락을 받아도 같은 맛은 아니다. 좌절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 제대로 맛이 나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상상의 힘을 빌어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한 가지 찬도 이럴진대, 51명의 할매들의 각각의 손맛은 얼마나 풍부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까, 읽기 전에 기대다 높았다. 오랫만에 어머니와 함께 읽고 이야기하고 싶은 책이었다.


이것만은 내가 젤 잘하지!

글보다 어려운 걸 척척해내던 인생

 
이 책은 내용과 별개로 탄생 과정에서도 감동적인 부분이 많다. 특히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워 요리법을 쓰고, 여기에 중고등학생과 자원 봉사자가 재능 기부로 그림과 채록에 참여해 완성된 그아먈로 3세대가 힘을 모은 저작이다. 특히 질문할 거리를 만들어 여쭙고 녹음하는 과정을 거치며 할머니들이 쓰시는 충청도 사투리까지 꼼꼼히 받아 적은 덕분에 할머니들의 인생과 요리가 기록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요리책으로는 낯설게도 이 책은 부록조차 흥미롭다. 충청도 사쿠리에 익숙한 분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나, 내게는 생소하면서도 재밌는 말이 잔뜩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치를 한층 높여 주는 요소이다. '할머니가 알려 주는 사계절 제철 재료들'에는 할머니들이 직접 그림을 그린 재료들이 수록되어 있고, '할머니 요리어 사전'에는 사투리 단어들이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도 도무지 그 느낌을 알 수 없는 단어들도 있는데, 그래도 심각해 지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만의 매력이다. 참! '별미 요리 꿀팁'도 있는데, 못 먹어보고 못 들어 본것이 대부분이라 꿀팁을 살려 요리할 수 있을지는 요원하다.


읽어갈수록 이 책이 요리책인가 싶은 마음이 커져 간다. 51명 할매들의 요리법이 분명히 정성스럽게 담겨 있지만, 할매들의 인생이야기가 훨씬 더 선명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사말부터 인생역전 에피소드들, 해당 음식에 얽히고설킨 사연들. 요리법을 자필로 적으셨는데, 그 정갈함과 정성에 더 많은 생각이 머루른다.

“9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동생들 키우느라 공부를 못했다.

얼마나 공부하고 싶었는지 말도 못한다.”

“면사무소 가서 혼자 해결할 수 있으니 너무 감사하다.

아들이 캐나다에 있는데 편지도 쓸 수 있게 됐다”


기회 보상이 더욱 더 잘 이루어지면 좋겠다. 자립적으로 간단한 공무를 해결하는 일, 자식에게 편지 쓰는 일이 더 없이 행복한 보상이라니 교육 보상 효과를 들은 것 중 최고로 감동이다. 돈이 부족한 것이 생계에 직결되는 위협이라면 글을 읽고 쓸 수 없다는 것은 개인의 자립과 독립 그리고 자존감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일 것이다. 글을 깨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내시다 돌아가신 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상상해 보니 마음이 뻐근하다.

 
손글씨와 사투리의 효과인지, 요리법이 구술로 듣는 듯 너무나 생생하여 요리를 만들어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게는 분명히 난이도가 너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일단 계량 따윈 하지 않으신다. 부연설명이 상세하진 않다. 그냥 자르고 불리고 찌고 볶고 지지라! 는데, 간혹 양념이나 부재료 주재료의 분량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ㅠㅠ 계란 물을 만들어 밥 위에 올려놓고 찌라고 하시면...... 아궁이와 가마솥을 먼저 마련해야할 것 같으다. 맷돌로 이래저래 갈아라! 하시는데 맷돌도 없...... 뉴슈가(사카린)과 미원...... 구매해 둬야하나 잠시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할매들이 공동 식당 창업 해주심 이사 가서 단골이 되고 싶을 정도로 기회가 된다면 얻어먹고 싶은 것들은 지천이나 따라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래도 이 책은 이대로 완벽하다. 알게 되어 반갑고, 감사하고, 맛있는 거 많이 드시며 오래 사시면 좋겠다. [요리는 감이여] 식당이 생기면 참 좋겠다. 꼭 가서 먹어 보고 싶다.


이 책이 승승장구해서 할머니 저자들이 공부하니 재미난 일들이 많더라, 응원해주는 이들도 많더라, 이렇게 자랑을 오래하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 살면서 계획대로 수치 딱 떨어지게 정확하게 진행되고 마무리되는 일이 얼마나 있었던가 싶다. 그나저나 ‘감’은 어떻게 능력치를 키우는 것인지 ‘눈치’도 없기로 유명한 나로서는 참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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