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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내려와 들꽃이 된 곳
박일문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생을 모든 종류의 시집을 탐내며 살았고, 완독했다 하더라도 절대 남을 주거나 하는 법이 없이 서가에 몽땅 두었다가, 필요한 날 몇 번이고 꺼내 읽는다. 소설과 달리 모든 시는 매번 다르게 읽히고 다른 이야기를 전해 주는 신비한 마법서이다. 그래서 시집 발간 소식이라면 일단 탐욕이 발동하는 마음을 갖지 않기가 힘든데, 시인이자 다른 많은 호칭들인 저자의 이력을 읽으며 무척 놀랐다. 경영학과 졸업, 시인, 수필가, 서평가, 아나키스트, 귀촌 펜션지기, 개인 사진전 3회...... 무수한 경험을 말해 주듯, 목차에는 별에서 작은 들꽃까지, 하늘, 달, 길, 개천, 강, 산, 몽골, 히말라야, 메콩까지, 다시 별이 내려와 들꽃이 된 곳에까지 글 길이 이른다.
부정하고자 애써도 불가능하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내가 만난 것들 중 하나가 이 책에 담긴 사진들이다. 하늘을 먼저 보고 그 하늘 저 멀리 있을 수도 있고 이미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별들이 있다. 그리고 그 별들이 내려와 들꽃이 되었다고 한다. 저 많은 별들 중 어느 별은 생명이 다해 떠돌다 아주 작은 씨앗이 되어 지구에서 꽃으로 피어났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문학에서도 시인들이 현대의 천문학자들이 밝힌 것들을 시적 언어로 정확하게 예언하고 묘사한 작품들이 있다. 나는 언제나 그런 것들이 사랑스럽다. 결국 우리는 같은 고향 출신들이다. 별꽃들. 지구 반 바퀴를 돌아다니며 살았다고 자주 말한 시절이 있지만, 저자가 가본 곳엔 가 보지 못했다. 다시 나설 체력이 남아 있을까 싶어 서럽다.
생각해보면 포토 산문집이라는 형식이 그리 익숙하진 않다. 이 책은 내 기준에서 구성이 참 독특한데, 예술이 결국 예술가의 시선이자 고백이라면 사진과 시와 에세이와 수필과 서평까지 빼곡한 이 책 또한 저자에게 가장 맞춤한 표현방식일 것이다. 나는 별과 하늘이 좋아 그 부분을 오래 기쁘게 보았다. 다른 독자라면 꽃과 나무와 강과 땅과 산과 계절...... 다른 것을 또한 기쁘게 볼 것이다.
별을 본다는 것은 꿈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별을 보는 사람들은 결코 악할 수가 없다.
별을 보면 우리네 인간사가 얼마나 찰나적이며
작은 먼지 같은 것인지 깨닫기 때문이다.
머언 과거의 빛이 현재의 나를 위로합니다.
세상사 아무리 복잡하고 심란해도 별빛은 변함없이 우리를 반겨 줍니다.
별들이 스러져 꽃이 피는지, 꽃잎들이 스러져 별이 되는지......
별도 꽃도 총총 피어나는 하늘내들꽃마을의 봄밤!
어찌 잠을 이룰 수 있으랴.
아직 잠이 덜 깬 겨울 숲에 들어 스러져 가는 것들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제 임무를 마치고 사라져 가는 것들......(중략)
문득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했던
윤동주 시인이 떠오릅니다.
낯선 것들도 있지만 익숙한 것들도 있는데, 시인과 작가는 역시 숨겨진 것들을 보는 능력이 있다. 그런 시선이 나에겐 부재하더라도 역시 새로운 감정을 일렁이게 하니, 글이란 참 소중한 소통방식이다. 무더운 여름이 서늘한 가을로 바뀌는 계절의 문턱에 올라선 기분이다. 환절기를 제외하고는 계절,을 자주, 오래 잊고 사는 기분이다. 도시란 변화보다 무변화가 더 많으니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좋은 친구들과 아나키스트 주인장이 운영하는 생태 쉼터 하늘내들꽃마을 펜션에서 묵으며 쉬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