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이면을 보다 - 신용권의 역사기행
신용권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이들을 늘 부러워 하다가, 그저 나는 전체적인 맥락을 놓치지 않는 통사 위주로 독서를 하자, 란 나름의 자포자기를 한 지가 오래다. 그런데, 문제는 이 통사 파악을 통한 전반적 이해라는 목표가 좀처럼 다가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젊은 날, 얼굴이 붉어지는 행태들 중 아직 희미해지지 않는 것들이 꽤 남아 있는데, 그 중 아직도 지켜보리라, 하며 가능할 때마다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이 [조선왕조실록] 읽기이다. 물론, 2,000권이 넘는 기록이니, 아마 이번 생에서는 못 이룰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도 포기를 못하고 그 언저리를 맴돌고는 있는 중인데, 그래서인지 비슷한 주제나 소재를 다루는 여타의 역사서들이 보이면 자연히 관심이 가게 된다. [역사의 이면을 보다]란 이 책 또한 제목부터 몹시 흥미로웠다. 더구나 역사의 이면을 대신 보아 주셨다니 통찰력이 없는 독자로서 고마울 뿐이다.

 

우선, 참 담백한 화법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담담하고 깔끔하고 균형을 잡으려는,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잘 느껴지는 부담 없는 서술이다. 조선과 일본의 비교 연구, 예시, 해석, 비판 분야는 흥미롭고 쉬우면서도 신뢰감 가는 팩트와 간단한 주장이 잘 어우러진 내용들이다. 예를 들면, 일본은 왜 호전적인지를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주고,

 

조선이 선비의 도를 실천하고 있을 때, 일본은 무사도에 따라 사회를 경영했다. (...) 선비의 도가 성리의 철학적 삶을 중시한다면, 무사도는 힘과 물질의 원리에 따르는 현실을 중시한다. (...) 흔히 일본인의 정신을 표현하는 잇쇼겐메이니라는 어휘는(...) 자구 그대로 풀면 한 곳에 목숨을 걸고이다. 무슨 일을 하건 끝장을 볼 때까지 달려드는 모노즈쿠리와 헤소마가리(외골수) 정신은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국력이 신장되는 시점에는 곧잘 이웃나라침략이라는 폭력으로 표출되곤 한다. 22-23

<em> </em>

(...)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인의 씨를 말리려는 구상을 하게 된다. “해마다 군사를 보내어 그 나라 사람을 다 죽여 빈 땅을 만든 연후에 서도의 사람을 이주시킬 것이니, 10년을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 정유재란은 조선인의 몰살 자체가 목표였던 만큼, 임진왜란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였다. 왜군 한 명당 한 되씩 조선 사람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바치라고 명한 것도 바로 이 전쟁이다. 104-105

 

조선은 왜 위기에서 그토록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는지를 사회를 얽어맨 신분제도를 받아들이던 백성들의 입장에서 풀이해 준다.

 

평안도 안주성에서 감사 윤훤이 병사들에게 나가서 싸우자고 말하자, 병사들은 거꾸로 서얼, 상민, 노비라고 써놓은 호패를 성 위에 쌓아 놓고, ‘너희들이나 나가서 싸우라고 거부했다는 것이다. 안주성이 무너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노비 등 각종 신분제로 백성을 옭아맸던 나라가, 위기에 무너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 77


도자기 수출로 번 돈은 이후 일본 근대화의 종잣돈이 됐다.(...) 임진왜란 당시 끌려온 기술자 대부분이, 일본에서 삶과 대우가 훨씬 좋았기 때문에 조선 귀환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도 조선 조정은 이들을 괘씸하다고 생각했을 뿐, 기술이나 기술자를 우대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116

 

그리고 양란보다 더 아픈 식민지 시대에 이르는 과정을, 다른 비판도 가능하겠으나, 내가 느끼기에는 식민지 논리에 따르는 자기 비하가 아니라, 스스로를 파악하고 비판하는 반성의 형태로 전개한다.

 

12세기 남송의 주희가 완성한 성리학을 독점적 지배이념으로 채택한 조선은, 양란 이후 오히려 포용력이 더 약화되었다. 양반 사대부의 지배층은 국가기강을 회복한다며,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주자학의 근본주의에 더욱 매몰된다. (...) 논쟁에서 이긴 학파는 도덕적 권위와 함게 권력과 부를 독점했다. 패한 쪽은 권력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목숨마저 잃었다. (...) 구한말의 세계사적 격변기에도 조선은 위정척사의 깃발 아래, 사상의 자유는 허용되지 않았고, 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상공업을 천시하며, 성리학적 질서를 더욱 강화했다. 148-150

 

흔히 우리나라의 위인들로 지정되고 숭배 받는 이들에 대한 일침도 빠지지 않고 지적되고 있다. 가끔 너무 뭔 과거의 인물들을 우상화하는 일은 너무 게으르고 쉬운 일이 아닌가, 하는 입장에서 반가웠던 것이 사실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충무공으로 상징되는 호국정신을, 북한의 주체사상을 압도하는 지렛대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에게 덧씌워진 우상의 더께를 벗겨낼 때가 됐다. 2017년 이순신 종가는 현충사 본전에 걸려있는 박정희 친필 현판을 철거하고, 숙종의 사액 현판으로 원상 복구해줄 것을 문화재청에 요구했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160


우리는 1965년부터 세종대왕 탄신일인 5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다. 그는 겨레의 진정한 스승인가? 성군으로 존경받는 세종은 리더로서의 처신이나, 인간에 대한 연민에서도 과연 흠결이 없었던가? 훈민정음의 서문에 나오는 그 어린 백성은 누구인가? 178

 

조선 사회의 가치 기준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실제 사대부들의 인식이 어떻게 괴리가 있는 지도 지적하는데, 자신들이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시대적 한계가 어쩔 수 없었으리라 납득하면서도, 시대를 꿰뚫는 통찰도 불가능하기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 하나가 있으면 그것으로 존경한다. 교토의 히예산 비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조우일우 차즉국보’. ‘오직 한 자리만 비추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나라의 보배로 삼는다는 말이다. 181


조선의 가치 기준인 유학은 기본적으로 소인과 군자로 그 인격의 차이를 규정했다. 소인은 물질적 이해를 기준 삼아 공동선에 관심을 두지 않으나, 군자는 이러한 소인을 극복한 인물로 끊임없이 인격을 개발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유학은 성인이 되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성학이라고 불렀다.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조선 사대부들은, 이재를 쌓는 것을 죄악시했다. 182


10만 평의 논밭과 150여 명의 노비를 가지고서도, ‘10년을 경영해 초려삼간을 지어 낸다고 자신을 가진 것 없는 사람이라 표현했다. (...) 중산층 이상의 재산을 소유했던 그들이 가진 결핍의식(?)’에서 도학정치를 주창했던 그들 조선 사대부들의 부의식과 민낯을 엿보게 한다. 187

 

2019년에도 믿어지지 않게 노론, 소론 타령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실제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의식과 일상 속에서 다른 시대에 사는 것이 사실이다. 동시대에 산다고 모두 동시대인인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유독 반상 구분과 뿌리 깊은 차별의식의 뿌리가 어딜까 안타깝지 그지없던 중에 조선사회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가장 발달된 노예제 사회였다는 대목은 또 한 번의 충격과 놀라움이었다.

 

미국의 문화 사회 학자 올란도 패터슨(Orlando Patterson)은 전 세계적으로 발견된 노예제를 비교 분석하면서, 노예가 출생에 의해 그 신분이 세습되는 방식을 7가지 형태로 나누었다. 그중 부모의 어느 한 쪽이 노예면 그 자식이 모두 노예가 되는 방식이 적용된 코리아에서, 전근대 세계 어디에서보다 가장 가혹하고 발달된 노예제의 하나를 발견했다고 했다. 189-190


이렇게 양반 숫자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반상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이것이 현재 모든 한국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마치 양반의 후예라는 허위의식을 갖게 만든 큰 요인이 되었다. 그 많던 평민과 노비, 그들의 후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191

 

객관적 서술과 비판만이 역사서술가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도 역시 저자는 담백한 목소리로 자신의 바람을 곳곳에 담아 두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선고(1910214)를 받고도 뤼순감옥 안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정녕 반일은 쉽다. 남 탓에 그치기 때문이다. 친일 또한 나를 버리고 남에 굴종하는 노예의 길이다. 이제는 거시적 안목으로 동북아 평화를 생각해야 한다. 오늘의 눈으로 역사를 되돌아보고, 역사에서 깨달은 교훈으로 현실의 벽을 헤쳐 나가는 지혜를 찾아야만 한다. 232-233

 

마침, 25세 젊고 아름다운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다룬 드라마 [이몽]을 부모님과 본 다음 날이라 여러 생각이 떠돌았다. 전쟁과 폭력의 수많은 희생자들과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의 잃어버린 세월들에 마음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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