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열전 - 인생 고수들이 들려주는 지혜의 말들
김영철 엮음,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기획 / 창비교육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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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런 일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 이 세상은 살 만한 것이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 느낌 점은 한 마디로 이것이었다. 처음 느낀 것은 아니지만, 내 속엔 매번 참 염치없단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끔은 망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한국사회가 엉망진창 분탕질로 휘몰아칠 때가 있는데, 그 끈질기고도 깊디깊은 범죄행위들과 행위자들, 개선의 여지없이 꿈쩍 않는 범죄 양산 시스템에 절망에 절망을 더하는 때가 끝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아직 이렇듯 소위 '굴러가는' 것은 그에 못지않게 애틋할 정도로 바르고 성실하고 정직하고 더 나아가 주변을 살피는 분들이 아주아주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 열전], 다른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는 제목을 보고 헉! 많은 인구가 절대적으로 듣고 싶지 않은 단어일 텐데... 하는 신간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가만가만 생각해보면, '시험 날짜'에 맞춰 해치워야 하는 것 말고도, '살아가기' 위해서 늘 공부는 필요하다. 특히 정보가 범람하여 선택을 좌우하는 이런 시대에는, 일상 정보 판별을 위해서도 제대로 된 공부가 필수적인 법이다. 하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거라면, '바르게 잘 살고 싶다'란 소망을 현실화하고 싶다면, 그 공부란 얼마나 공을 들여 얼마나 오래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먼저 부모님께 일독을 권해 드렸다. 이제는 약화된 시력 탓에 큰 글자 책이 아니면 한 번에 잠시 동안만 독서가 가능하시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늘 활자 책과 출판물과 더불어 살아오신, 가족들 아무도 텔레비전을 아쉬워하지 않는 버릇을 들여 주신, 적지 않게 어린이날 선물로도 책을 받았던, 이런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부모님이 반가워하실만한 분들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여럿 있었기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로 정말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말 특별히 좋은 시간이었다. 훌륭하게 살지 못하는 자괴감과 낯 뜨거움은 있지만, 귀중한 이야기들을 베베 꼬거나 비틀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고, 귀중한 삶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안목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조금은 안심이 된다.

 

눈물이 차오르기도 하고,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고, 없던 용기가 잠시 생기기도 하고, 따스한 위로를 받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 뭉클하게 떠오르기도 한 행복한 책 읽기였다.

 

[공부 열전] 제목이 주는 떨떠름함은 더 이상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먼저 이렇듯 공부하며 바르게 살아 주시고 애기를 남겨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동시대인이면서도 먼저 시작한 바른 삶의 이야기를 들려 주신 분들에게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위인은 되지 못했지만, 얼굴 붉어질 일들도 자잘자잘 기억 속에 남았지만, 오늘도 바르게 열심히 사람답게 살아가고자 애쓰는 모든 동시대인들이 함께 읽고 배우고 얘기 나누고 위로 받고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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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그러면 못써."(......) 여기 이 서재에 있는 책들을 다 읽고 한 줄로 줄여라 하면 "사람이 그러면 안 돼." 이거 아닙니까? 공부란 사람이 되어 가는 길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싸워야 큰다."(......) 싸우면 모순이 드러나니까, 그것을 고치고 바꾸고 맞추고 정리해서 새로운 세계로 가자는 거지요.

"남의 일 같지 않다." (......) 마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이 다 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이지요. 관계의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한 겁니다.


(......) 나무는 바라보는 쪽이 정면이거든요.(......) 답이 하나인 세상은 없습니다.(......) 경계가 없고, 정면이 없고, 다 받아들이는데도 느티나무는 평생 느티나무로 살거든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도 안 변해요. 자신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며 자기를 귀하게 가꾸어 갑니다. 24-25


저는 살아오면서 뭘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산겁니다.(......) 지금도 뭐가 되고 싶은 게 없어요. 희망이 없어 편해요.(......)

바라는 게 없으니까 편하지. 살다 보면 별일들이 있지만 그런 별일들도 다 지나가지요. 늘 지금이 좋다, 생각하며 삽니다. 29


'여행이 학습'이라는 말은 그게 주입식 교육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사람은 그냥 놔두면, 풀만 보고 바다만 봐도 깨달을 수 있지요. 오픈해 놓고 가만 놔두면 깨닫게 된다는 걸 그때 알게 된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단어가 '성찰'인데, 깊이 있는 성찰은 반성으로 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조선이 마련되어 있어야 가능해요. 자유로운 공간, 다른 걸 볼 수 있는 시간이 제공되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여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9


남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건 하질의 인간이 하는 짓이에요. 지금 매우 어렵겠지만 당장의 어려움이 인생을 결정하는 건 아니잖아요?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세요. 절망이 절망을 낳지 않도록. 인생은 희망이니까요. 87


우리가 그냥 '시장'이라고 부르는 것과 제가 '시장 전체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같지 않아요. 시장은 경제 체제이고, 이 체제의 논리, 가치관, 사고방식이 사회 모든 영역을 장악해서 지배하는 것이 시장 전체주의요.(......) 시장 근본주의적 사고가 한국에 들어와서 경제만이 아니고 문화, 교육, 언론 등 광범한 사회 영역들을 접수하고 지배하기 시작한 지 벌써 오래됐습니다. 인문학자들은 대체로 동의하겠지만, 시장 제일주의, 시장 근본주의로는 교육도 안 되고, 사회도 지탱할 수 없어요. 95


중요한 것은 인간이 결코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는 안 되는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사회가 망각하지 않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진실', '인간성'(humanity)이 그런 가치입니다. 이런 가치들이 함몰되면 사회는 신뢰의 파탄이라는 커다란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변화에 휘둘리는 시대일수록 사회는 인간이 지키고 유지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98


지금 우리 시대의 교육에서 크게 빠져 있는 것이 타자에 대한 나의 책임 부분입니다. 내가 왜 저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함께 공존의 삶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타자와의 공존을 도모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100


인간의 욕망은 자연 현상인데 이 욕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자극되고, 무한히 확대될 때에는 탐욕이 되어 버립니다. 무한 탐욕이 가져올 것은 인간의 종말이고 문명의 끝이죠. (......) 지금 인간 문명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구 환경 전체에, 그리고 우주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이 잘 먹고 잘 사는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인간의 지구적 운명에 궁극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들(......)을 인간의 미래와 연결 지어 생각하는 데 소홀했습니다. 사정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지구 문명의 운명과 분리되지 않지요. 103-104


우리 사회는 지금 지독한 편협성, 불용, 협소성, 혐오와 증오의 문화 속으로 빠져들고 있고 정치가 이 경향을 더 심화시키고 있어요. 협소하고 편협하고 옹졸한 인간을 부추기는 데 정치가 기여하고 있습니다. 입만 벌렸다 하면 막말 내뱉고 욕설로 쌈박질하는 거, 그게 지금 정치권의 모습 아닌가요? 정치권의 막말 문화가 젊은 세대의 언어 습관을 크게 타락시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소통 수단이 최고로 발달한 시대에 되레 지독한 불소통의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역설 같아요. 105


그런 주장에 동의 못합니다. 그렇다면 피해자 인권은 누가 지켜줍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은 피해자 인권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않더라고요. 형사 사법 제도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범죄자다 보니 범죄자의 인권 침해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희생양으로 삼은 피해자는 증인에 불과합니다. (......) 저는 인권을 절대 가치로 취급하는 의견에 단호히 반대합니다. 그전에 공동체의 안전과 피해자의 인권이 있는 겁니다. 132


소년원 교육 프로그램 중에서 재범률을 가장 떨어뜨리는 과목이 제과 제빵이에요.(......) 아직까지 재범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의 '욕구(need)'를 충족시켜 줬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이들을 교실에 모아 놓고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인지 교육해 봐야 말짱 헛일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갱생이 불가능하지요. 현실적인 장애를 넘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소도 나오면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하고 가정은 다 해체돼 비행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그 경로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느냐가 중요합니다. (......) 그런데 이런 정책이나 대책을 집행하려면 예산과 인력이 있어야 되잖아요? 근데 그게 확보가 잘 안 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 정치하는 사람들이 우리같이 현장을 잘 하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소년원에 예산을 더 배정해 주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청소년들은 투표권이 없잖아요? 그러니 예산 배정이 안 되는 거예요. 어쨌든 투입한 만큼 갱생은 가능합니다. 133-134


역사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공과를 따져 보면, 산업화는 가난을 벗고 밥을 먹어 보자는 것이었고, 민주화는 사람이 밥만 먹고 사냐, 말을 제대로 하고 살자는 것이었지요. 이 둘은 대립되는 게 아니라 크게 보면 서로 승수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어느 단면에서는 대결했는지 몰라도, 크고 길게 보면 밥과 말이 같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지요. (......) 밥도 먹고 말도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 안전하고 행복한가요? 그렇지 않거든요. 먼지 걱정, 물 걱정, 더위 걱정 따위를 한단 말이에요. 이런 큰 문제를 정직하게 다루는 게 중요하지, 과거에 연연해 박정희와 김대중을 말하는 건, 작은 이야기입니다. 175-176


교육은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입니다. 엄밀히 말해 종교도 교육이지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45년간 각지를 돌아다니며 설법했고, 예수도 3년간 여기저기 다니며 설교했습니다. 저는 이들이 유목형 교육자라고 봐요. 그러니까 교육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지만, 가장 유력한 수단인 건 맞다는 생각입니다. 186


지혜가 많은 사람이 지식이 많으면 좋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 정보가 많으면 좋은데, 요즘 사람들은 거꾸로 돼서 지식은 없고 정보만 넘치게 알지요. 187


과거에 TV가 일반화될 때, '바보 상자'라고 하면서 문명 비판적인 용어로 조롱을 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휴대폰을 '스마트폰'이라고 칭송한단 말이예요. 결코 스마트하지 않은데. 현재 지성 사회가 문명 비판적인 시각이 너무 약화되고 디지털에 압도되어 있다는 방증이지요. 188


남북 간에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이 됐다고 칩시다. 그런데 25년 후에 지구 온난화로 이 땅에 사람이 살기 극히 어려워지면 평화가 오고 통일된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한반도 생명 공동체의 바탕 위에서 평화를 이뤄야지, 정치적인 통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189


내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이씨 왕조가 너무 오래갔다. 임진왜란이 끝났을 때 사실은 왕조가 바뀌었어야 했다." 그랬으면 실학자들이 새 왕조의 이데올로그가 됐을 겁니다. 새 왕조가 만들어지고 그때부터 근대를 향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을 거예요. 그렇게 됐으면 일제 강점기 전의 애국 계몽 운동이 공화정 운동이 됐을 거고, 자력적인 근대화가 시작됐을 겁니다. 그럼 식민지 통치를 안 받았을 거고요. 조선 왕조가 너무 오래갔습니다. 229


학문이라는 게 근본적으로는 진실에 가까워지는 일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게 있을 수 없어요. 특히 역사학은 진실을 밝히는 학문입니다. (......) 왜냐하면 역사라는 건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속에서 얼마만큼 진실된 역사적 사실을 찾아낼 것인가, 그걸 모아 놓은 게 가장 중요한 역사책이 된단 말이에요.(......) 현실에 따라붙어야 되지만, 너무 시류에 따라 가면 현실에 아부하는 학문이 될 가능성이 높단 말이에요. 그러면 진실되지 못한 학문이 됩니다. (......) 학문은 무조건 진실을 추구해야 합니다. 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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