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는 코너에 몰렸다.

지독한 악몽에 시달리고, 사랑하는 엄마는 몹시 아프다. 싫어하는 외할머니의 집에 가야하고, 아빠는 머나먼 미국에 다른 여자와 이복동생과 함께 살고 있어 만나기 어렵다. 친구들은 자기를 피하고 못된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그런 어느 날 몬스터가 찾아왔다. 몬스터가 코너에게 들려주는 세 가지 이야기. 처음엔 수수께끼 같았고 그래서 짐작해 보려 했다. 몇 가지가 떠올랐지만 어쩌면 가장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진실은 끝내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나 또한 코너에 몰렸다.

코너의 진실은 또한 나의 진실이기도 했다. 참지 못할 정도로 목이 메었고 온몸의 물이란 물이 모두 눈으로 몰려 눈두덩이 뜨거워졌다. 쏟아낼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 많은 카페 안이었고, 나는 억지로 참았다. 이튿날인 일요일 오전, 그때까지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한 후유증으로 가슴팍이 아렸다. 오랫동안 병환을 앓다 떠나버린 부모를 둔 사람들 마음 속, 그 아마겟돈의 전장 한 복판. 죄책감과 이기심에 쩔쩔매는 한 아이를 본다.

 

 

 

내가 생각했던 게 너무나 나쁜 생각이었으니까.

- 나쁜 것이 아니다. 생각일 뿐이다. 무수한 생각 중 하나. 행동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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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0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림아웃님, 이건 또 ..뭡니까! 책을 클릭해보지 않을수가 없는 표지에요. 저도 이 책 볼래요, 보겠어요!

dreamout 2012-07-04 00:47   좋아요 0 | URL
^^

... 2012-07-03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또 ..뭡니까! 2222
인간적으로, 청소년 도서 같은건 추천해선 안 되는 겁니다. 구매범위를 더 이상 넓힐 순 없어요.

dreamout 2012-07-04 00:48   좋아요 0 | URL
소설 관련 해외 블로그에서 이 책을 처음 봤어요. 왠만한 유명 소설가들의 작품들보다 평점이 더 좋아서 찾아보니 국내 번역본이 나와 있더군요.. ^^
 
사각형의 신비 - 네모난 틀 속의 그림이 전하는 무한한 속삭임
시리 허스트베트 지음, 신성림 옮김 / 뮤진트리 / 201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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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과 고야의 <1808 5 3일의 처형>에서 기존의 미술평론가들이 보지 못하던 것을 저자가 발견했다는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을 보고 읽었다. 그림 하나를 두고 10분이면 오래 보았다고 생각하는 내 앞에, 두어 시간을 보통으로 바치는 사람이 여기 나타났다. “테두리는 그림의 경계와 규모를 결정하기 때문에 그 안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라는 말부터 마음에 들기 시작했지만, 정말 인터넷 소개 글처럼 베르메르와 고야의 그 유명한 작품들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낸 저자의 관찰력과 통찰력에 내내 감탄했다. 하지만 탄복하는 마음에 의례 따라다니는 거리감은 거의 안 생겼다. 현학적인 용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자신의 느낌과 생각들을 추적해 나가는 저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듯 했다. 배우는 자세고 그림을 보는 그 행위 자체를 즐기는 자세다. 하나의 그림 앞에서 느낀 것들을 언어로 풀어나간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도전인 법. 차근차근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독자의 손을 놓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끌 듯 나아간다.

 

 

2.

머리를 시원시원하게 해 주는 통찰의 연속이다.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에서 수태고지를 떠올리고, 고야의 <1808 5 3일의 처형>에서 고야의 자화상을 발견하고, 조르조 모란디의 정물화에서 병과 병, 병과 노란 천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고, 폴 세잔이 지나가듯 쓴 말 윤곽에서 세잔 회화 철학의 어느 한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 등등.

 

더불어 이 책의 한 챕터인 <식탁에 앉은 유령들>은 이제껏 읽은 정물화(또는 회화 전체) 관련 해석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같은 시기에 함께 읽었던 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을 읽는데 이 챕터가 큰 도움이 되었다. 비록 내가 그 통찰을 제대로 짚어내 풀어내진 못했지만.

 

 

3.

고야와 조르조 모란디의 재발견이다. 베르메르야 워낙 예전부터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고야와 모란디는 알고만 있었지 좋아할만한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고야의 <로스 카프리초스> <1808 5 3일의 처형>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란디가 정물화 속에서 해낸 게 무엇인지. 내게는 재발견이라는 말도 모자란다.

 

 

4.

원작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복제하면 아주 형편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조르조네의 <폭풍우>를 보기 위해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몇 번이고 방문한다. 사사키 아타루의 자세와 동일한 것을 이 책의 저자에게서도 똑같이 느꼈다.

 

 

5.

가십성 정보지만, 은근 흥미로운 사실.

추상표현주의의 대가로 알려진 조안 미첼과 폴 오스터가 아주 친한 사이였다는 점. 조안 미첼을 통해 폴 오스터가 사뮈엘 베케트를 만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폴 오스터가 저자 시리 허스트베트의 남편이라는 사실.

 

고야의 <1808 5 3일의 처형>에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고야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 사실을 알렸을 때 폴 오스터 또한 단박에 알아차렸다는 점. 뉴욕에 돌아와서 그 사실을 전했던 저자의 친한 친구 두 명중 하나가 니콜 크라우스였다는 점.

 

 

6.

같은 출판사에서 저자의 소설(남자 없는 여름)도 나왔다. 논픽션과 픽션, 둘 다 잘 쓰는 작가는 매우 드물다. 소설도 이 작품 수준이라면, 나는 좋아하는 소설가 한 명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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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0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보고 작가 이름 타고 가서 말씀하신 소설을 검색해보았어요. 책 소개를 읽고 장바구니에 넣어버렸어요. 하핫.
이 책은 제가 읽을 수 없을것처럼 생겼어요. orz

dreamout 2012-07-02 01:29   좋아요 0 | URL
아주 드물게 보는 제대로 된 회화 에세이였어요.
서평도 이렇게 써야 하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소설은 읽지 못했으므로 장담하긴 어려워요~ ^^;

... 2012-07-02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오 모란디의 그림은 제가 좋아하는 웨인 티보(Wayne Thiebaud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케이크를 많이 그려요)의 그림들과 많이 닮아서 묶어서(?) 좋아하는 화가예요. 미술관에서 만나면 처음엔 뜨악해요. 그러다가 점점 대상 전체가 눈에 들어오고, 대상들의 형태와 배치가 눈에 들어오고, 그 다음엔 그림자가 눈에 밟히게 되죠. 그리곤 영원히 못 잊을 그림이 되요.

이 책, 역시 폴 오스터의 와이프라는 태그가 떨어질 순 없는 거겠죠? ^^

... 2012-07-02 01:11   좋아요 0 | URL
5월달에 한길아트 시리즈가 50% 할인해서 <고야>를 샀거든요. 알려드리려고 보니, 가격이 그새 다시 원상복구 됬네요 -.-

영화 <고야의 유령> 혹시 못 보셨으면 강추요!

dreamout 2012-07-02 01:45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웨인 티보. 그림을 보니 알겠어요. 국내의 어느 전시회에서 직접 본 것 같아요. 모란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정말 있는거 같아요. @@

번역가 김석희가 훗타 요시에를 엄청 상찬한 글을 본적이 있는데, 훗타 요시에는 몽테뉴와 고야에 관한 아주 긴 글을 썼죠. 몽테뉴는 그렇겠구나 했는데, 고야는 이해하지 못했었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충분히 이해가 가더군요.

책날개에 소개된 저자의 약력에서 폴 오스터가 남편이라는 것을 보았어요. 사실 그런 정보는 관심 없어서(작가의 전기적 내용에는 거의.. 관심이 없거든요.)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데, 고야와 조안 미첼의 회화에 대한 글에서 소개되더군요. 출판사가 쓴 약력이 아니라 책 내용에 언급되었으므로 얘기해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

탄하 2012-09-0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리뷰 기억나요.
제가 <사각형의 신비>를 살까말까 고민할 때 참고했던 리뷰네요.
다만 헌책방의 책을 산거라 땡스투를 드리지 못함이 아쉬웠습니다.ㅜ.ㅜ

dreamout 2012-09-04 23:09   좋아요 0 | URL
앗.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땡스투 받는 것보다 더 좋네요. ^^

뮤진트리 2017-04-1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 허스트베트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의 출간 기념 북토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유니크한 여성작가 시리 허스트베트를 만나다.˝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095663&memberNo=6336660&navigationType=push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는 도중부터 읽은 후에도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소수의 작가, 소수의 작품을 반복해서 읽기의 문제였다. 저자는 아주 당연하게도 아주 자연스럽게도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이 말은 그 전에도 숱하게 들었던 말이고 학창시절에는 늘 반복했던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옛일을 생각해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결국 나는 반복적으로 읽기에 일종의 불안이랄까 방어기제랄까. 그런 것을 늘 지니고 있었음을 느꼈다. 그건 어른들이 다양한 분야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고 해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만능박사 식 지식을 지니고 있으면 친구들이 감탄하며 보았기 때문도 아니었던 것 같다. 모종의 불안감을 느끼고 방어적으로 경고음이 켜졌던 것이다.

 

한 권의 책이나 한 명의 저자를 반복해서 읽는 일은통제의 권한을 남에게 넘기는 일이지 않을까? 내가 왕인데 나도 모르게 꼭두각시가 되어 수렴청정 당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 이런 생각이 어느 순간 내 안 깊숙이 박히게 되었던 듯 하다.

 

10대나 20대초였다면 당연하고도 건강한 방어기제였던 것 같다. 그건 아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20대 후반이었다면 달리 생각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좀 더 적극적으로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내가 읽고 싶은 소수의 작품과 소수의 작가를 반복해서 읽는 일에 보다 열정과 시간을 쏟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올해 들어 가장 바빴던 5월말부터 6 18일까지, 잠깐의 여유가 생길 때마다 이 생각이 불쑥불쑥 계속 튀어 나왔다.

 

이제라도 그렇게 의식적으로 노력해보자. 전에 읽었던 책 중 계속해서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읽어보자. 좀더 정기적으로 그렇게 하자. 그렇게 결심했다. 그러고 나니 블로그를 하며 알게 모르게 읽었던 대부분의 책들이 기록에 남아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두 번 이상 읽었던 책들이 뭐가 있나 하고 살펴봤더니, 아 정말 몇 권 안 되는구나.. … 10여 년간의 기록을 쭉 훑어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세 번 이상을 읽은 책은 아예 한 권도 없었고 두 번 읽은 책도 딱 여덟 권뿐 임을 알게 됐다. 부분적으로 발췌해서 읽기는 그것대로, 통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기는 또 그것대로 좋은 책은 반복해서 다시 읽어 나가야겠다. 어쩌면 이들 여덟 권부터 시작하는 게 가장 좋겠다.

 

죽음의 한 연구(박상륭)

: 처음 읽었을 때, 두 번째 읽었을 때 모두, 책의 내용과 상관없는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함께한다. 사진처럼 선명하게 처음 구입했던 날을, 두 번째 선물 받았던 날을 기억한다. 이 책은 다섯 번 이상이라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좀 경이로운 소설이니까.

 

다다를 수 없는 나라(크리스토프 바타이유)

: 다시 읽게 된 것은 매우 단순한 이유였다. 얇았으니까.. 두꺼운 책을 읽을 만큼 그때 그렇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어서. 다시 읽었을 때도 처음 읽었던 때와 똑같은 경험을 했는데, 그건 고요함. 마음이 차분해지고 세상에 대한 흥분이 가셔졌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도스토옙스키)

: 처음 읽었을 때부터 이 지하생활자의 마음을 전부 알 것 같았다. 공감을 넘어 거의 대부분은 아마도 그냥 내 얘기 같았다. 내가 지하생활자는 아니더라도 그의 심리의 논리라고 해야 할 그것은 그렇게도 나랑 비슷했다. 그러나 그렇게나 좋아했기 때문이라기 보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나 죄와 벌에 비해 얇았기 때문에 두 번 읽었던 것이겠지.

 

키친(바나나)

 : 지옥 한가운데 있었을 때 내게는 기댈 바위 하나와 줄곧 비추는 별빛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지나가듯 흘러가는 혜성 하나가 있었다. 키친은 내게 혜성이었고, 그건 읽기 자체가 주는 위안을 내게 명확히 느끼게 해 주었다. 문학성을 논하는 많은 말들이 있지만, 그건 알 바 아니다. 키친은 책은 계속 읽어나가야 한다는, 삶은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상징 같은 것이다. 내게는.

 

상실의 시대(하루키)

: 다시 읽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특별히 좋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결말 부분이 도통 기억이 안 나서, 내가 읽었던 게 맞나 싶어서.

 

그리스인 조르바(카잔차키스)

: 사사키 아타루는 왜 사람은 책을 성실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왜 책에 쓰여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요? 왜 읽고서 옳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정보라는 필터를 꽂아 무해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일까요? 아시겠지요. 미쳐버리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성실히 받아들인다면 사회에서 아마도 광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르는 일. Anyway, 그것이 진짜배기임을 나는 안다. 정말 반복하고 반복해서 읽어야 할 책.

 

월든(소로)

: 좌우서 라고 한다. 늘 곁에 두고 종이가 닳도록 읽어도 좋을 책. 현재의 내게 좌우서를 말하라고 한다면 월든과 그리스인 조르바를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통으로 읽은 게 두 번뿐. 털썩. <<주석으로 읽는 월든>> 편으로 다시 읽어야지.

 

세상 끝으로의 항해(세풀베다)

: 온도 기억. 이라고 불러야 할까? 책을 읽고서 한참이 흘러 내용조차 희미해졌을 때, 책의 제목만 들어도 감각온도를 환기시키는 책들이 있다. 직감적으로 그런 책들은 정말 좋은 책이라고 느끼게 되는데, 내 경우엔 따뜻함 보다는 새벽녘 풀숲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시원함, 일상의 온도보다 약간 차가운 정도의 감각온도를 환기시키는 책들이 또 읽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와 월든, 그리고 세풀베다의 세상 끝으로의 항해(열린책들 판본으로는 지구끝의 사람들)가 그런 경우다. 엔딩에서의 감동은 언제나 서늘함과 함께 상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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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26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림아웃님. 이 리스트를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새삼 드림아웃님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사실 소로의 경우 저는 그간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작가인데 말이죠, 이 페이퍼를 보고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언급하신 책이 반값이란걸 확인한순간 거침없이 장바구니에 넣어버리고 말았어요.

'세풀베다'라면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그 세풀베다일텐데, 저는 그 책이 어찌나 재미 없었는지 읽자마자 내보냈답니다. 어디로 어떻게 보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키친]에 대해서라면 얼마전에 민음사에서 모던클래식으로 나온걸 보고 이 소설이 모던클래식으로 나올만한 소설인가, 하고 놀랐는데, 브론테님도 이 소설을 꽤 좋아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드림아웃님도 그러시군요. 혜성같은 책이라니!!


dreamout 2012-06-26 21:19   좋아요 0 | URL
저는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도 아주 재미있게 읽어서 선물도 하고 그랬어요. ㅎㅎ

키친은, 아주 특별한 시기에 각별하게 만났거든요. 벗 같다고 해야 할까요..

소로는, 네. 그도 역시 제게는 특별합니다. ^^;
 
깡패단의 방문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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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뒤표지에 커다랗게 인쇄되어 있어 두말 할 필요가 없겠지만, 내 방식대로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소설은, 시간이 깡패라는 통찰을 전한다기 보다는 깡패인 시간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어떤 마음을 담고 있다. 라고. 또는 시간이라는 형식은 인간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시킨다. 라고.

 

읽는 동안 머리가 바빴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를 너무 굴리느라 핑핑 돌 지경인데, 머리를 더 굴리게 하는 그런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됐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난해하다는 뜻은 아니다. 주제는 명확하고 13개의 단편으로 이뤄진(차례를 보면 느끼겠지만 이 소설은 하나의 앨범(LP)으로, 각각의 단편(혹은 연작소설의 한 챕터)의 제목은 하나의 곡명처럼 사용되고 있다) 것을 그냥 쭉 읽어 나가면 된다. 정보량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읽기에 부담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뭔가가 나를 자극했고 그것은 나로 하여금 책 읽기를 자꾸만 멈추게 만들었다. 스탭퍼를 밟는 것처럼. 하나를 누르면 다른 하나가 반동되어 올라오듯. 두 가지 때문에 뇌가 가동됐다.

 

첫 번째는 물건들. 첫 단편인 <유실물>에서 사샤가 훔친 물건들은 당연하게도 시간과 연관된다. 사샤의 물건뿐 아니라 13개 단편 구석구석 놓여진 물건이 모두 그렇다. 한 사람이 지니고 다니는 물건들은 그 사람의 삶과 결부되기 때문에 그 물건들에는 삶의 일부가 결정화되어 간직된다. 첫 번째 모호함이 여기서 감지된다. 물건들에는 윤곽선이 존재할 터이다. 즉 소설의 주제와 연관된 중요 사물에는 질감이라든지 아니면 회화적 의미에서의 윤곽선이 선명하게 느껴져야 하는데, (내 느낌이 어긋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의 물건들은 문장들 사이의 다른 어휘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놓여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말해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게 느껴졌다(그래야 함에도 말이다).

 

두 번째는 메시지. 13개의 단편들엔 아주 노골적으로 (심지어 폰트가 굵게 표기된 것들조차 있는데) 메시지가 나타난다. 단발마의 단어나 짧은 문장들로 이뤄진 그 강력한 메시지들은 시간은 깡패라는 것을 계속해서 환기시킨다. 이 메시지들은 무엇인가? 왜 이렇게 노골적으로 각 단편마다 이렇게 유치한 방식으로 계속 나타나는가? 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다가, ‘해골을 떠올렸다. 서양의 정물화. 그 중 바니타스(Vanitas).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 소설은 헛되고 헛되도다를 표명하는 소설이 아니라는데 있다. 해골을 그려 넣었는데도 어떻게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느껴지지 않은 것일까?

 

그게 첫 번째로 언급한 윤곽선이 모호한 물건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 물건들에 윤곽선은 모호하지만 (사샤의 말로 잠깐 언급되듯) 어떤 메아리가 느껴진다. 이것이 두 번째로 언급한 강력한 메시지와 묘한 균형을 이뤄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 소설은 다르다.

다른 뛰어난 소설이라면 첫 번째로 언급한 시간의 사물성, ‘응축된(단면의) 시간을 선명하게 또는 만질 수 있게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췄을 테다(뛰어난 소설이라고 벌써부터 설레발 친 이유는 이것을 제대로 해내는 작가 또한 극소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허나 제니퍼 이건은 메시지 그 자체, 단발마의 느낌이나 짧은 잠언 같은 메시지. 바로 그 자체의 사물화를 이뤄내고 있다. 즉 메시지(소설을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눈에 확 띄는 그 문장들)가 해골로서 정물화의 정물로 기능하고, 해골 주위에 사물들(응축된 시간으로서의)의 이름을 정물로 배열해 놓은 느낌. 소설의 12번째 단편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로 작성되어 있는데 파워포인트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작성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 테지만, 거기서는 읽혀지는 문장보다 그리기 도형(사각형, 화살표, 삼각형 등) 자체가 그 메시지의 메시지성(메시지의 우선순위)을 나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로 그런 것처럼 이 소설의 각 단편에서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그 메시지들이 마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의 그리기 도형, 바로 그것처럼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

 

첫 번째 것. ‘시간이 결정화한 사물을 그려내는 능력(그 중 특히 질감)이 탁월한 작가에 오르한 파묵이 있다. 제니퍼 이건은 사물은 오히려 문장처럼, 문장(중심 메시지)은 사물처럼 표현해 낸다.  이런 형식은 지금껏 읽은 소설에선 처음 보는 것이다(있었는데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록음악이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처럼 깔려 음악이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소설은 회화적이다. 매우 뛰어난 현대 작가의 정물화(포스트모던 한?)를 감상한 느낌. 그러니 이렇게 말해야겠다. 제니퍼 이건은 매우 뻔한 주제를 절대 뻔하지 않은 형식으로 표현해 냈다고.

 

하지만 새롭다는 것과 좋아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좋아하려다 결국 거리감을 두게 되었다. 이유는 작가가 생각지도 못한 것 때문이다. 시간만큼이나 문화도 깡패라는 것. 만일 이 소설이 동남아시아나 남미의 어느 나라 소설이었다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잘 모르는 문화관련 단어들을 외우려고 하고,,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입맛이 좀 썼다. 미국 문화. 20세기와 21세기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아직도 알게 모르게 시간만큼이나 깡패인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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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22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다 읽으셨네요. 그리고 책장이 잘 안넘어간다고 하시더니 책을 잘(!) 읽으셨네요. 제가 제대로 읽지 못한것 같아 다시 읽어볼까 싶게 만드는 리뷰이지만, 그렇지만, 음, 팔아버렸...orz

dreamout 2012-06-22 20:02   좋아요 0 | URL
잘 안넘어간거 맞아요. ^^
저도 제대로 읽었다고 말씀드리긴 좀 그렇네요. ㅋ
제대로 소화했다면 이렇게 어설픈 글이 안나왔겠죠.. ^^;

Shining 2012-06-22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걸까요? 아니면 다른 종류의 기대를 했을까요? 챕터 5인가 읽고 있는데 재미도 없고 집중도 안 되고.. 더 읽어야 하나 고민 중이에요ㅠ 일단, 읽어내보려고 합니다-_ㅠ 그러고보니 드림아웃님 서재에 댓글 남기는 건 처음인것 같아요^^; 앞으로 종종 남기겠습니다+_+

dreamout 2012-06-22 20:03   좋아요 0 | URL
^^
 

 

레인보우 아일랜드 페스티벌 (남이섬)

 

스탠딩이라 힘들긴 했지만, 충분히 보상 받았다. 

음악이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라이브 실력 정말 굿. 매너까지 좋다.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폭포수 같은 음악에 온 몸을 훔뻑 적시니 내 안의 배배 꼬인 DNA가 재정렬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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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11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여기 다녀오셨군요! 제이슨 므라즈를 보시다니. 부러워요! 흑흑.

dreamout 2012-06-11 23:30   좋아요 0 | URL
공연 시작하기 전만 해도.. 여까지 잘 온 건가.. 쉬는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노래 듣자마자... 잘 왔다. 는 생각 들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