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7월호의 앞 부분(뒤는 아직 보지 않아서)에 눈에 띄는 기사가 두 개 있었다. “그리스 사태에 떠는 독일 퇴직자들”. 그리스 사태로 인해 그리스를 떠나 다른 유럽으로 이주하는 이들의 모습은 TV를 통해 여러 번 접했었다. 이 기사는 그와 반대로 EU의 부자나라 독일인들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인들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분위기가 높을 줄은 짐작했지만 그 정도가 상당히 심각한 모양이다. 펠로폰네소스의 사기꾼. 이게 그들의 그리스에 대한 평가다. 독일인들의 62%가 어떤 형태의 그리스 지원 방안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는 의견을 갖고 있다 하니(38%나 찬성했다는 것이 오히려 놀랄만한 일인가..) 알만하다. 그런데 기사를 좀 더 보니 독일인들(그 중에서도 보통 사람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독일인들 1,300만 명이 가입해 있는 적립식연금제의 운명이 유럽의 경제사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어서 그들의 미래 또한 흔들리고 있다고 하니. 참. TV에서 본 그리스 사태의 문제 핵심 중 하나가 구멍 난 징세였다. 부자들의 꼼수와 관료들과의 부패 연결 고리 때문에 부자들에게는 제대로 세금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실업자로 굴러 떨어져 고통을 당하는 것은 중산층 이하 사람들이다. 그리스 사람 전부가 사기꾼 일리야 없으니, 저 일부 사기꾼들 때문에 독일의 중산층 이하 사람들도 피해를 보게 되었다. 그리스, 독일 이라는 경계선을 지워 버리면 결국 그리스 사태로 촉발된 유럽 재정위기는 유럽 전체의 중산층 이하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뺏어 부자들이 싸질러 놓은 자리를 치워줘야 하는 꼬락서니다. IMF 시기의 한국과 똑같다. 실업의 공포, 연금 고갈의 공포.
12면에는 “마약과의 전쟁, 카르텔 앞에서 뒷걸음질치는 멕시코”. 마약조직의 폭력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수도에서조차 수십 명의 목이나 몸의 일부분이 잘린 주검들이 발견되고 장관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불에 탄 채 발견되는 등. 2006년 1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마약조직에 의해 사망한 군인경찰 인력이 2,888명 이라고 하니. 하. 정말 알만하다. 공권력과 결탁해 부정부패도 도를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정부를 조롱하는 수준을 훨씬 초월해서 공권력보다 더 강력한 폭력으로 나라 전체가 공포에 떨고 있는 모습이다. ‘폭력의 일상화’. 그야말로 끔찍하다. 오죽하면 미국의 마약단속국(DEA)이 사후승인제 형식으로 멕시코 영토에서 직접 단속 활동을 벌이게 열어줬을까? 알만하다. 그런데 여기도 웃기는 역설이 있다. 그 마약조직들은 어디서 돈과 무기를 얻었을까? 미국에서 소비된 코카인의 95%가 멕시코를 경유해 들어왔다고 한다. 결국 돈줄은 미국이다. 미국의 코카인 소비가 멕시코의 마약갱들이 저런 미친 짓거리를 계속해 나갈 수 있게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엊그제 시리아의 국방장관을 포함한 고위급 인사들이 인간폭탄에 의해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다. 그 장관과 차관들.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이들의 이름은 뉴스에 상세히 나왔지만, ‘인간폭탄’ 역할을 맡았던 경호원에 대해선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말 그대로 ‘산화’했을 그 사람에 대해 뉴스는 무관심 했다. 그리스, 독일, 멕시코, 시리아. 거기서 피해를 보고 미래를 걱정하고 목숨을 잃고 목숨을 버린 사람들. 역시나 알게 모르게 무시를 당하고 있다. 아직도 그 자리 거기에서 방값 걱정과 끼니 걱정, 목숨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게 이 책 <<도주론>>과 무슨 관계가 있나.
들뢰즈-가타리의 텍스트와 마르크스의 텍스트에서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활기와 (일종의) 경쾌함에 대한 대화를 나눈 글들을 읽으며, 나는 이중의 기분에 휩싸였다.
하나는 들뢰즈-가타리 철학이 품고 있는 모종의 그 유쾌함을 그리스, 멕시코, 시리아 이들 장소의 사람들도 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 가능성을 궁리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해 보았다. 둘은 [마르크스, 화폐, 언어 – 가라타니 고진, 이와이 카츠히토, 아사다 아키라]라는 챕터에서 느꼈는데, 이들 세 남자가 철학개념을 갖고 노는 모습이 사진에 처음 빠졌을 때 사진보다 카메라나 렌즈의 기능과 메이커에 열광했던 내 모습과 오버랩 되어. 결국 자기들만의 상자 속에서만 노닥거리는 철학자들 이라는 이미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일반대중에게까지 동의된 ‘철학개념’을 만들어 세계를 변혁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은 이들의 이미지가 겹치면서, 모든 이미지들에 붙어있는 대립하는 사유들을 떠올렸다. 그리스와 독일이 멕시코와 미국이 시리아의 인간폭탄과 인간폭탄 역할을 했을 뿐인 사람이 떠올랐다. 야성의 사유, 탈주의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궁리해 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