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타는 것을 전혀 꺼려하지 않는 여자와 웬만하면 택시를 안타는 여자. 내가 아는 여성들을 이렇게 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혜윤PD는 전자에 속하는 것 같고 더군다나 직업정신의 발로인지 어떤지 택시기사와 얘기를 나누는 것도 전혀 꺼려하지 않는 것 같다.

 

여기, 잠깐 등장하는 두 명의 택시기사와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택시기사 할아버님이 있다. 첫 번째 기사 분은 LA다저스 구장에 가서 박찬호가 공을 던지는 나이트 게임을 보고 싶어하던 한 승객(일흔이 넘으신 것 같은 할머니)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 할머님은 경기장 펜스 밖으로 날아가는 야구공만큼 아름다운 것은 본 적이 없어라고 하셨다지. 두 번째 기사 분은 한 밤중에 재즈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듣는 분. ‘이것들은 속도 없나하며 찡하니 외로운데 금세 신나서 떠들썩해지는재즈만의 특징을 기차게 잡아챈다. 첫 번째는 손님의 얘기들 저자에게 전한 것이고, 두 번째는 기사 자신의 애환과 취향을 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택시 기사 분은 연세가 아주 많으신 한국 최초의 택시기사 할아버님이다. 희귀 병에 잇몸이 다 녹아내려 제대로 말을 못하시던 분. 명동성당 앞 옛 중앙극장 자리로 가는 도중 옛 기억이 떠올라 지난 시절 연인에 대한 그리움에 울먹이시던. 그 분 성함이 어떻게 되냐고 묻는 저자에게 작게 부를 수 없는 이름이니까. 크게 불러야 하는 이름이니까. 맘속에 담고 있다가 죽을 때 부를래.’ 하시던. 병 때문에 이제는 큰소리로 말할 수 없게 된 할아버지 기사 분. 돌아가고픈, 사랑하고픈 꿈을 보여주신 분. 이 분들 꼭 책 같다. 택시 기사 한 분 한 분이 모두 아주 좋은 책 같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자 왠지 나도 모르게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강의하듯 써 내려간 글들이어서 그런지 이전의 복잡한 감정의 미묘함을 전하던 문장들은 많이 보이지 않고 쉽고 분명하게 와 닿는 문장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괜찮다. 마지막으로, 책 후반부에 또 한 명의 기사님이 등장한다. 이번엔 버스기사. 나중엔 다른 내용은 한 개도 기억 못하고 기사 네 분만 기억날 듯.

 

 

 

<다독술이 답이다>의 저자 마쓰오카 세이고의 천야천권프로젝트가 부러웠고 아주 멋진 기획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더군다나 이 천일 동안 읽은 천 권은 모두 이전에 한 번은 읽었던 책들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혼자 책 읽는 시간>의 저자 니나 상코비치의 기획도 이와 버금가는 멋진 기획이다. 1 365일 동안, 하루 한 권의 책을 읽고 다음 날 블로그에 독서 리뷰 남기기. 거기다 모두 안 읽은 책으로, 그리고 다시 거기다 한 명의 저자에 딱 한 권. 365일 동안 365권의 책을 읽음과 동시에 최소 365(공저자가 있을 지 모르니) 이상의 작가들을 만나는 프로젝트다. 이 기획 자체가 주는 매력이 이 책이 갖는 매력의 거의 80%를 차지한다. 그런 기획을 하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뜨겁게 만든다.

 

 

 

 

백 삼사십 석 정도의 작은 영화관에서 열댓 명의 다른 관객들과 오늘 함께 봤다. 관객이 별로 없어 썰렁한 영화가 있는 반면, 적어서 좋은 영화도 있다. 이 영화는 후자다. 이미지뿐 아니라 음악까지 매력적이다. 올해 <화차>를 봤고, <미드나잇 인 파리>를 봤다. 작년에는 한 번도 극장에 안 갔다. 어쩌면 이 영화가 올해 내 마지막 영화일수도 있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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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7-08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드나잇 인 파리, 조만간 보려구요.
기대되어요. 잠시 동영상만 봐도^^
여기 가까운 예술관에서 상영중이거든요.
드림아웃님, 이제 칠월인데 이게 마지막 영화일 수도 있다구요?
저는 영화 안 보면 병이 날 것 같은 사람이라서요.ㅠㅠ

dreamout 2012-07-09 22:27   좋아요 0 | URL
영화보다는 독서 하는 게 좋아서요.라고 말하곤 싶지만 그건 아니구요.. ^^;
이유는 저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첫눈에 보고 '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영화만 가서 보게 되었는데.. 그런 영화가 거의 없어서요. 그렇다고 제가 무슨 소수의 걸작 영화를 찾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렇게 되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