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6

1. 비평가들에 관하여

로베르토 볼라뇨, 송병선,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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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비평가들. 프랑스 남자 펠티에, 스페인 남자 에스피노사, 이탈리아 남자 모리니, 영국 여자 노턴. 눈에 띈 것은 이들 네 명이 모두 아르킴볼디의 작품에 꽂혀 그들의 커리어를 쌓아왔다는 점, 그리고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모두 모였던 그 모임 이후 이들의 애정경로였다. 정형성. 할리우드적 클리셰라고 할 만한 것들이 <비평가들에 관하여>의 구조를 단순하게 지지하고 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사람이 독일 작가에 흠뻑 빠져 그들 각자의 젊은 시절을 올인해서 각자의 커리어를 쌓다가 학회에서 만난 뒤 세 명의 남자가 모두 영국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는 스토리라인은 아주 뻔하다. 실은 정말로 눈에 띄는 것들은 스토리 사이사이의 에피소드들이지만, 바로 이 뻔한 구조, 이 밑그림이 5권이나 되는 장편소설의 초반을 탱탱하게 만드는 데 더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뻔한 구조는 에드윈 존스라는 화가의 존재로 인해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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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에드윈 존스‘20세기 말의 가장 불온한 화가 중 하나로 그림을 그리던 오른손을 잘랐고, 그걸 방부 처리한 뒤 일종의 다중 자화상처럼 보이는 그림에 붙인사람이다. 노턴이 모리니(그는 휠체어를 타는 남자다)에게 알려준 화가. 모리니는 펠티에와 에스피노사와 함께 스위스 정신병원에 요양중인 에드윈 존스를 찾아간다. 그리고 조용히 묻는다. 왜 그랬냐고. 나중에 모리니는 그때 들었던 답변을 노턴에게만 전한다. ‘돈 때문이라고

 

또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 펠티에와 에스피노사가 노턴이 자기들 말고 또 다른 남자(프리처드)와 잠자리를 함께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참석한 학회에서 예전의 자신만만한 그들의 모습과는 달리 완전히 쓸모 없는 참여를 했을 때. 작중 화자의 이런 멘트. ‘그들은 따분함에서 광기로 옮겨가는 자신들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 표정이 더듬거리는 핵심적인 말은 오로지 세 단어, 그러니까 <날 사랑해 줘>였다. 아니면 세 단어와 한 문장으로 구성된 <날 사랑해 줘. 내가 널 사랑하게 해줘>였지만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날 사랑해 줘’. 자본주의 속에서 분리될 수 없는 샴쌍둥이적 욕망. 이 욕망은 그림자가 없는 지식인이라는 말로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욕망의 중심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었나. 욕망은 아무것도 아닌 중심이라고 했었나.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텅 빈 중심을 뻔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게 먹히는 이야기구조로 포장한 것이다. 당연히 작가가 의도한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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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이라든가 『부적』에서부터 느낀 것이지만, 볼라뇨는 문학 작가의 이름을 수없이 열거한다. 그나마 『2666』은 좀 덜한 편이긴 하지만. 그 열거된 작가들은 대부분 낯설다. 그렇다면 그 작가들의 이름이 라틴 아메리카와 스페인어 권 나라들, 혹은 북미, 유럽의 다수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지 않을까. 아마 매우 희미하게.. 문학 애호가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에게만 조금 먹힐 정도의 명성들인 것은 아닐까. 거의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아는 체해야 할 때 아는 체 할 수 있는 정도의 이름들, 명성들이 아닐까. 그러니까 저자가 이들 문학작가들의 이름들을 나열할 때, 나는 그가 소설이라는 매체를 이용해서 작가들을 홍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볼라뇨 소설은 어느 면에서 긴 팸플릿이나 마찬가지다. 팸플릿이라는 단어가 이 작품의 핵심 주제들과 조우할 때, 문학이라는 카테고리와 엮일 때. 생기는 아이러니. 난 그게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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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2-14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림아웃님, 이 책 제가 읽는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요? 이 페이퍼 읽고 검색했는데 그 어마어마한 분량에 선뜻 도전하기가 망설여지더라고요. 좀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dreamout 2014-02-14 18:15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제 1권만 읽은 상태예요. 언제 전부 읽을지는 모르겠어요. ^^
볼라뇨는 어렵다기보다는 좀 낯선 느낌예요. 항상.
하룻밤 주인의 집에 머물게 된 방랑객이.. 주인의 청에 못이겨.. 주섬주섬 토해내는, 실상 하나도 무서울 것 없는 이야기지만, 듣고 있으면 왠지 으스스해 지고 마는 그런 이야기. 조금 그런 느낌예요.
지금 낯선 것을 읽고 싶다면 시도, 그렇지 않다면 나중에 보셔도... ^^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수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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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중에 `텍스트에 따라 나 자신이 조율되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텍스트에 따라 나 자신이 조율되고 있다`는, 일종의 사랑의 경험에 대해.. 이전에 내가 채 말로 할 수 없었던 어떤 말들을 발견한 지점은 있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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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수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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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에는 통상 ‘받는 사람’이 있다. 내가 텍스트를 읽었을 때, 그 ‘받는 사람’은 우선 나 자신이다. 내가 읽을 필요가 있는 텍스트는 그 ‘받는 사람’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말하며, ‘받는 사람’에 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그런 책은 아마도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어떤 책이 자신에게 보내는 것인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방법이 있다. 학술논문의 경우, 어딘가 ‘잘 알려진 대로’라는 말이 있고, 그 뒤에 ‘내가 모르는 것’이 쓰여 있는 경우는, 그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 잘 알려진 그런 세계의 주민’에게 보내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다른 사람에게 온 편지를 읽는 일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자기에게 보내는 것이 아닌 책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은 그냥 그렇게 하셔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말해, 레비나스뿐만 아니라 무릇 텍스트를 읽을 때, 읽는 사람은 어딘가에서 ‘나’임을 그만두고 그 텍스트에 고유한 ‘지(知)의 주파수’에 동조하고 마는 때가 있다. 그럴 때의 상태는 ‘내가 텍스트를 읽고 있다’기보다 ‘텍스트에 따라 나 자신이 조율되고 있다’는 것에 가깝다.

아름다운 대답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도대체 언제가 되면 알겠는가. 모르겠는가. 속임수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 인간의 알맹이가 정해지는 것은 그를 불안케 하는 것에 의해서지, 그를 안심시키는 것에 의해서는 아닌 게야. (……) 신은 움직임을 의미하는 것이지, 설명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수께끼를 심화시키기 위한 에크리튀르(글)’

주해란 비인칭적인 지적 눈길 아래서, ‘영원의 상 아래서’, 조용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의 ‘아전인수’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구체적이고, 고유하고, 생생한 해석자의 현실에 바탕해 진행되는 것이다.

‘지향한다’는 동사로부터 우리는 ‘목표를 향하고 있으나 도달해 있지 않다’고 하는 부달성, 피아의 현격이라는 함의를 길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시선은 죽이고, 노래는 살린다.’ 이것은 모리스 블랑쇼가 사랑한 오르페우스 이야기의 주제이다. 관조적 지향작용의 근본적 난점은 그것이 무언가를 ‘죽인다’고 하는 점에 존재한다.

에로스의 근본에는 향유나 권능의 어법으로는 다 말해질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근본적인 수동성이다. (중략) 자기 자신에 의해서는 자기를 기초 지울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 자신의 기원이 자신 안에는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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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 밥 위에 문화를 얹은 일본음식 이야기
박상현 지음 / 따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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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돈카쓰, 카레, 돈코쓰라멘의 역사를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또한 요식업을 부흥시키는 마케팅 기법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진 않았다. 그러나 규슈라는 지역의 지리와 역사를 충분히 활용한 요리 아이디어들은 나를 좀 들뜨게 한 부분이 틀림없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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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리스트 -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해결하는 인재
장성규 지음 / 리더스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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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에 집중하는 것이 `유연성`을 낳는다는 말은 내게 필요한 것이었다. 내 경직성의 원인은 바로 핵심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 결과치라는 걸 바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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