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를 읽는다 철학의 정원 18
스티븐 내들러 지음, 이혁주 옮김 / 그린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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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서를 완화하고 억제하는 인간 역량의 결여를 예속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정서에 종속된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아닌 운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인데, 그러한 사람은 그 운의 힘 아래 아주 강하게 놓여 있어서 자신에게 더 좋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흔히 더 나쁜 것을 따르도록 강제된다. (에티카 4부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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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분석 - 공간, 시간, 그리고 도시의 일상생활 카이로스총서 25
앙리 르페브르 지음, 정기헌 옮김 / 갈무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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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들에 대한 분석과 리듬분석 프로젝트는 단 한순간도 몸을 등한시하지 않는다. 해부학적 혹은 기능적 몸이 아니라 (이른바 '정상적인' 상태의) 다리듬적이고 조화리듬적인 몸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몸은 (일반적으로) 항상 현재하는, 항상적인 준거였다. 리듬의 이론은 몸에 대한 지식과 경험 위에 구축된다.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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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빛난다 -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지음, 김동규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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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이슈메일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미 느낀 바 있다. 인간이란 어떤 경우에서건 자기가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기대치를 결국에는 낮추거나, 적어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2.

호메로스 → 아이스킬로스, 예수,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 단테, 칸트, 니체 → 멜빌

호메로스로 대표되는 그리스시대는 다신주의적 관점을, 아이스킬로스부터 칸트에 이르기까지는 유일신적 관점을, 멜빌로부터 다시 다신주의적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루터와 마호메트, 그리고 중세 해석자들을 등장시켜 번뜩이는 통찰력을 드러냈던 사사키 아타루를 떠올리게 한다. 호메로스로부터 멜빌까지. 마치 세계를 하나의 빛으로 꿰뚫은 것 같다.

 

 

3.

가장 강렬한 빛을 내뿜는 내용은 6. ‘광신주의와 다신주의 사이-멜빌의 악마적 예술이다.

 

 

4.

유일신적 세계관과 니체적 세계관 모두에서 발견되는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처방으로 저자들은 포이에시스메타 포이에시스를 말한다.

 

포이에시스적 실천 즉 창작적 활동은 특히 사물을 최선의 상태로 만드는 장인의 기술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중략) 우리 시대의 일반적 경향이 창작적 기술의 발전과는 동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창작 능력이 여전히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영역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야구나 테니스 기술 또는 피아노 연주기술은 지금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전수된다.’

 

메타 포이에시스는 열광하는 군중과 하나가 되어 일어나야 할 때가 언제이고, 발걸음을 돌려 그곳에서 재빨리 빠져 나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아차리는 차원 높은 기술

 

 

포이에시스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하다. ‘생활의 달인프로그램에서 봐 왔던 것이 그거니까. ‘행복의 건축이나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본 알랭 드 보통의 철학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메타 포이에시스 하면 떠오르는 문장. ‘신이시여, 제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여기서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메타 포이에시스라고 말해도 되겠다.

 

 

이렇게 얘기하니 확실히, 벌써부터 진부하다. 하지만 실제 이 책을 처음부터, 즉 그리스적 아레테를 해석하는 지점부터 멜빌의 모비 딕을 해석하는 지점까지 읽으면(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는데) 뭔가가 번쩍 한다. 어두운 마음 한 구석에서 춤추는 빛의 무리가 쿵짝거리는 게 느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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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디지언트(가상세계 속에서 사는 디지털 존재(AI))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의 애나와 데릭의 대화는 기묘한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소설 속 디지언트의 비즈니스모델은 대략 이렇다. 먼저 원본 디지언트를 학습시킨다. 주인의 말에 잘 따르고 사랑스럽게(외양은 동물의 의인화된 모습). 그런 과정을 거친 디지언트 중 학습능력과 상품성 등이 우수한 품종을 가려내어 원본으로 삼는다. 그리고 회사는 그 원본 디지언트의 복사본을 고객에게 판매한다. 디지언트 자체는 복사기나 정수기와 같다. 복사기와 정수기 자체가 수익의 핵심이 아니라, 복사용지나 토너, 채워 넣는 생수로 돈을 벌 듯 소프트웨어 회사의 수익은 디지언트들의 식사 아이템이나 기타 액세서리 등을 팔아 수익을 남기는 구조다. 현재의 인터넷게임과 거의 비슷한 비즈니스모델. 그런데 디지언트들은 물론 복사기나 정수기와는 다르다. 인공지능이므로 주인은 애정과 관심으로 그들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다마고치처럼.

 

애나와 데릭은 디지언트를 만든 회사의 직원으로 초기부터 개발과정에 깊숙이 참여했다. 그리고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디지언트들에 애정을 쏟는다. 디지언트들이 점차 성장해 가는 와중에 애나와 데릭은 처음으로 디지언트들에게 숙제를 내는 문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데릭이 이렇게 말한다. 디지언트들은 다운 증후군을 닮았다고. 디지언트의 다른 주인들은(애나를 포함해서) 디지언트를 천재적인 유인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데릭은 인간 아이로. 그렇지만 다운 증후군으로 태어난 아이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인간 측에서 볼 때 디지언트를 유인원이라고 인식하면 문제는 단순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인이 인공지능 객체를 인간 아이라고 여기게 되면, 그 인공지능은 다음에 무엇을 바랄 것이고 주인은 인공지능을 어떻게 대해줘야 할 것인가.

 

사랑 받는 애완동물이 있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있다. 유기되는 애완견들이 있고, 작동을 멈추게 정지시켜버리는 인공지능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법인화되어 유산을 상속받기도, 자기의 이름으로 돈을 버는 다운 증후군을 닮은 인공지능이 생길 수도 있고, 다운 증후군도 있으니.. 천재 아이를 닮은 디지언트 변이도 생길 것이고, 그러면 인공지능과 사회에서 경쟁해야 할 인간 아이들도 생길 것이다.

 

막상 써놓고 보니 돌고 돌아 같은 말만 한 것 같다. 요컨대 문제와 문제해결의 핵심은 소프트웨어 객체(인공지능)라기 보다는 인공지능이라는 상품을 수용하는 소비자, 즉 인간에게 있다.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은 제품을 수용하는 소비자 집단을 구분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 순서대로 보자며 혁신 수용자, 조기 수용자, 전기 다수 수용자, 후기 다수 수용자, 지각 수용자가 있고 그 바깥에 비수용자가 있다. 인공지능은 감성/지성 복합 객체이기에 애완동물이나 거의 인간과도 같은 법적 보호를 받게 될 개연성이 있다(소설에서는 인공지능의 법인화가 다뤄진다). 그런데 제품은 사람들에 따라 수용하는 정도가 다르다. 기술을 완전히 거부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만일 스마트폰처럼 인공지능 객체가 많이 팔리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곧 시장에는 보다 진화된 신제품 인공지능이 나올 것이고(초기 디폴트가 우수한 종), 그것은 수용자들로 하여금 애정을 갖고 키운 구형 인공지능 객체를 폐기하는 빈도를 증대시킬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애정을 갖고 대해야 할 상대방에 대한 태도도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다. 현재, 이혼이 전보다 빈번해지고 연애의 기간이 짧아지듯이. 순간 순간적인 관계들의 영역이 보다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 그러한 짧은 사이클의 인간관계가 아이에게까지는 미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탄생과 그 인공지능을 애정하는 사람들, 그리고 곧 그 애정이 식어갈 사람들, 새로운 인공지능에 열광할 사람들…. 은 결국엔 인간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까지 변화시키지 않을까. 설사 자기가 낳은 아이일지라도 무책임하게 대하는 사람의 수가 지금보다 훨씬 늘지 않을까. 자기 아이인데 그렇기야 하겠냐고? 과연

 

사랑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짧아진 상품의 라이프사이클처럼 가벼워진 감정적 관계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종()을 폐기하는 속도를 높이는 또 하나의 총알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설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이전 SF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감정이 이성보다 인간에게 먼저이고 인공지능이더라도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현재의 분위기와 실제로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인터넷/모바일 비즈니스모델이 속속 등장하는 요즘을 볼 때, 어두운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욕망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은 점차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반면, 인간의 윤리의식은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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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목소리, 다른 방 트루먼 커포티 선집 1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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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부러진 세계의 속살이 나를 푹 감쌌다. 조엘은 마녀의 사악한 거울에서 떨어진 유리 조각이 눈을 감염시켜 시각이 온통 뒤틀리고 심장은 쓰디쓴 얼음 덩어리가 되어버린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 나오는 소년 카이가 자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뒤틀린 시각, 쓰디쓴 심장은 기이하게 빛을 내뿜는 이 소설의 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른다.

 

 

2.

거대하지만 이제는 퇴색해져 버린 저택. 버려진 마을 같은 눈시티에서도 또 한참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스컬리스 랜딩. 조엘은 태어나 한 번도 본적 없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외로운 여정을 밟는다. 환상과 현실이 뒤틀려 섞여버린 것 같은 이상한 장소로. 눈시티에서 스컬리스 랜딩으로 가는 수레를 끈 이는 늙은 흑인 하인 지저스 피버였고, 붉은 머리 아이다벨과 아이다벨의 언니 플로라벨 톰킨스를 그 여정에서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저기로. 경계를 넘어서는 그 대목을 읽어가며 벌써 나는, 이 소설은 책장 맨 위칸으로 가겠구나. 했다. 반딧불이를 허공에 날리는 밤, 산딸나무 향, 조약돌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우는 소리, 늙은 노새가 끄는 수레, 헤르메스의 분신 아닐까 생각되는 지저스 피버(그이는 정말로 깃털 달린 중산모를 쓰고 있다), 붉은 머리 여자 아이, 어둠 속에서 셋이 함께 부르는 노래. 이 강렬한 이미지는 숨막히는아름다움을 선사한다.

 

 

3.

고딕. 이라는 장르로 분류되어 있었다. 서던 고딕(Southern Gothic). 비슷한 부류의 작가로 윌리엄 포크너, 코맥 매카시, 카슨 매컬러스, 플래너리 오코너, 유도라 웰티, 테네시 윌리엄스, 하퍼 리 등등코맥 매카시, 카슨 매컬러스, 하퍼 리를 읽어본 나로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분류였지만, 윌리엄 포크너라면 과연. 이라고 끄덕거릴 수 있었다. 포크너의 미친 작품 <에밀리를 위한 장미>에서 느꼈던 기이하고, 어떤 면에서는 엽기에 가까운 인물, 사건, 분위기를 이 소설에서도 만나게 된다. 깊고 어두운 밤 질척거리는 강물, 흐물거리며 흘러가는 물가에 외로이 웅크려 있는 소년의 이미지가 내내 따라다녔다. 에드거 앨런 포의 세계에 근접한. 그 무엇. <<배트맨>>의 세계관과도 호응하는 그 무엇.

 

그러나 에드거 앨런 포와는 다르다. 포의 단편들을 읽은 후 내게 남은 것은 지독한 물의 이미지인데 반해, 커포티는 과 싸우는 의 이미지에 가깝다. 지독한 물에 잠긴 재(ash)의 왕국으로의 입성과 출성. 재에서 다시 태어나 날아오르는 불새의 신화가 내내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4.

랜돌프, 랜돌프, 랜돌프. 스컬리스 랜딩의 기이한 주인. 기모노를 입고 있는 언캐니(uncanny)한 인물. 동성애적인 코드는 이 소설의 가장 큰 파국을 만들어내고야 말지만, 그 파국의 기이한 아름다움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설의 인물 하나하나는 모두 극적으로 과대 표현되고 있어, 그래픽노블의 캐릭터처럼 느껴지고야 마는데 아마도 이런 느낌을 적확히 표현해 줄 말이 고딕. 이라는 말 밖엔 없겠구나. 하고는 끄덕.

 

 

5.

모든 기도는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중략)

딱 하나 예외가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불확실하고 의미 없는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주님, 제가 사랑 받게 해 주세요.

 

 

사랑 받을 수 있는 자리. 소년(조엘)의 저 바람이 이 소설의 전부고, 저 기도가 내 중심부에 있음직한 무언가를 결국 흔들리게 만들고야 말았다. 무너지는 소리.

 

 

6.

소설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그로테스크한 성장소설이라는 카피는 과장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작가의 데뷔작 중 가장 아름다운 소설. 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거기에 한 표를 던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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