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빛난다 -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지음, 김동규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이슈메일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미 느낀 바 있다. 인간이란 어떤 경우에서건 자기가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기대치를 결국에는 낮추거나, 적어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2.

호메로스 → 아이스킬로스, 예수,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 단테, 칸트, 니체 → 멜빌

호메로스로 대표되는 그리스시대는 다신주의적 관점을, 아이스킬로스부터 칸트에 이르기까지는 유일신적 관점을, 멜빌로부터 다시 다신주의적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루터와 마호메트, 그리고 중세 해석자들을 등장시켜 번뜩이는 통찰력을 드러냈던 사사키 아타루를 떠올리게 한다. 호메로스로부터 멜빌까지. 마치 세계를 하나의 빛으로 꿰뚫은 것 같다.

 

 

3.

가장 강렬한 빛을 내뿜는 내용은 6. ‘광신주의와 다신주의 사이-멜빌의 악마적 예술이다.

 

 

4.

유일신적 세계관과 니체적 세계관 모두에서 발견되는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처방으로 저자들은 포이에시스메타 포이에시스를 말한다.

 

포이에시스적 실천 즉 창작적 활동은 특히 사물을 최선의 상태로 만드는 장인의 기술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중략) 우리 시대의 일반적 경향이 창작적 기술의 발전과는 동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창작 능력이 여전히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영역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야구나 테니스 기술 또는 피아노 연주기술은 지금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전수된다.’

 

메타 포이에시스는 열광하는 군중과 하나가 되어 일어나야 할 때가 언제이고, 발걸음을 돌려 그곳에서 재빨리 빠져 나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아차리는 차원 높은 기술

 

 

포이에시스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하다. ‘생활의 달인프로그램에서 봐 왔던 것이 그거니까. ‘행복의 건축이나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본 알랭 드 보통의 철학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메타 포이에시스 하면 떠오르는 문장. ‘신이시여, 제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여기서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메타 포이에시스라고 말해도 되겠다.

 

 

이렇게 얘기하니 확실히, 벌써부터 진부하다. 하지만 실제 이 책을 처음부터, 즉 그리스적 아레테를 해석하는 지점부터 멜빌의 모비 딕을 해석하는 지점까지 읽으면(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는데) 뭔가가 번쩍 한다. 어두운 마음 한 구석에서 춤추는 빛의 무리가 쿵짝거리는 게 느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