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자리
고민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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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에서 1로 변모하는 과정은 설레면서 우울하다. 곧 1이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므로 0에 가까운 자신을 체감하게 된다. 첫 출근 날에는 0.0000001쯤 되는 기분이다.p34

죽지 않기 위해서는 나쁜 기억이 중요할지 몰라도 살기 위해서는 좋은 기억이 필요해.p56

경계선만큼 불안정한 것도 없다. 단순한 세상을 복잡하게 보지 않으면 경계선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을 간과하게 된다.p198

한 번에 전부 이해하려고 욕심내지 마세요. 모르는게 당연합니다. 일단 끝까지 가보는 거예요. 나중에 다시 보면 느낌이 다를 겁니다.p240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관계를 맺는다.
관계와 관계 속에 사람이 있다.

영에 어떤 숫자를 더하면 영은 사라지고 그 숫자만 남습니다. 영에 어떨 숫자를 곱하면 그 숫자를 영으로 바꿉니다. 아무리 많이 늘어놓아도 영은 영 외에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숫자에 기댈 때 영은 우주의 단위가 될 수 있습니다.p246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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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정리해고를 당하고 이직한 회사는 폐업해, 당장 무엇인가 해야한다는 생각에 약국 보조원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약국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과 가까워지는 듯 보이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어느 선을 넘지 못하는 딱 그정도만의 관계를 갖고, 혜와의 관계는 조금씩 멀어진다.

책 속에서 표현되는 유령은 실체없는 존재를 뜻하는 누군가를 지칭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확고한 위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존재하지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주변에서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최선을 다해 일했으나 인정받지 못하고,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자신의 삶을 지키기에 급급한 유령처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눈에 띄는 삶을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아닌 존재로 살고 싶었던 것도 아닌, 1이 되지 못한 0에 가까운 이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조용하고 따뜻한, 차분하고 소박한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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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세계
고요한 외 지음 / &(앤드)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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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모노레일 찾기 #고요한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어느 횟집에서 만난 전 여자 친구 주변을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는 마음을 모노레일로 표현하며 '두 개'의 선로가 있어 영원히 하나되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2)시험의 미래 #권여름
-파이널 점독관으로 채택된 구은열이 시험을 점독하는 상황을 그리며, 보이는 세계를 통제하는 또 다른 방에 대한 이야기와 그 방을 통제하는 ‘제2의 방’에 대한 이야기

3)코너스툴 #김혜나
-‘코너스툴’처럼 자신이 그 사람의 쉼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정작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이반’ 작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4)2차 세계의 최애 #류시은
-아이돌 쇼케이스에서 서로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로 현실과 달리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있는 ‘2차 세계’ 그리고 ‘덕질’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말하면서도, 인생의 진짜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

5)2의 감옥 #박생강
-퍼펙트 도플갱어를 만나 ‘2의 감옥’에 떨어진 2% 부족한 남자, 그 남자를 찾기 위해 천공의 세계에 사는 존재를 만난 여자 친구의 이야기

6)다음이 있다면 #서유미
-구조조정으로 퇴사하게 된 미진이 자신과 닮은 두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느끼는 감정들을 담아내며, 미래가 불투명하고 나만 정지된 상태인 것 같을 때 ‘다음’이 있다는 위로의 이야기

7)이야기 둘 #조수경
-만남을 통해 긴밀히 연결된 ‘두 개의 시공간’을 그린 이야기로 두 가지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 찾아온 죽음과 또 다른 형태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

2의 관한 이야기를 담은 앤솔러지 단편집으로 7편이 담겨 있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상황, 우리가 몰랐던 저마다의 사연,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인 제 2의 세계로 표현했다.

당장 1시간 뒤도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은 자주 흔들리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행복과 기쁨이 곳곳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기에 또 하루를 살아내고 견디는것이 아닐까.
매일매일이 행복할 수는 없지만, 매일매일 작은 것에 감사한 삶을 살고 싶다.
어제를, 그리고 오늘을, 또 내일을 살아갈 우리 모두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좋아하는 서유미 작가의 단편이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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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
이경희 지음 / 강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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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삽교'라는 노견의 시선으로 모란시장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삽교'라는 노견은 종종 아빠(보호자) 몰래 집에서 나와 모란시장을 산책한다. 사실 삽교는 보신탕이 될 운명의 강아지였는데, 그런 삽교를 도축업을 하는 경숙이 명진에게 맡긴다.
도축을 하면서도 늘 죄책감을 느끼는 경숙, 경숙을 보는 삽교의 보호자 명진, 경숙과 애증의 관계 박사장, 훔친 개를 공급하는 영달 장미꽃만 파는 꽃집 여자, 대구 머리를 구워파는 고씨 할머니, '고기로 먹히느니 배고픈 떠돌이 생활이 낫다'며 삽교 곁을 떠난 친구 고양이 송이의 이야기들이 함께 어우러져 다양한 차별과 배제, 물리적 폭력과 심리적 폭력들, 보이지 않는 권력과 위계의 이야기들을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 폭력성이 담겨있어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서 존재하는 소소한 위안과 따스함, 연대들이 곳곳에 담겨 있어 공동체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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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워줘 도넛문고 1
이담 지음 / 다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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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좀비였다. 좀비 하나를 죽여도 새로운 좀비는 그보다 빨리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원본 사진은 물론 딥페이크로 조작한 사진과 영상도 처음에는 몇 명만 내려받는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곳에 그것들을 게시하면 몇 배로 늘어난 사람들이 내려받게 되는 것이다. 재이는 인터넷에서 자신의 얼굴을 완전히 지워 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아득함에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p157

디지털장의사로 포털에 불법촬영물을 삭제해주는 일을 하던 고등학생 모리는 되려 불법촬영물을 재유포한다는 누명을 쓰고 일을 그만두게 된다. 그때 같은 반 친구이자, 오디션프로그램에서 top10에 올라 유명해진 리온이 자신에 대해 떠도는 소문들과 딥페이크 영상을 지워달라고 부탁한다. 고민 끝에 그녀를 돕기로 했는데, 남학생들의 단톡방에 리온의 불법촬영물들이 유포되고, 리온은 자살을 시도한다. 모리는 그녀를 적극적으로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충격에 빠져 가해자를 찾기 위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대량의 가짜뉴스들을 생산해 유포하고, 누군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무분별하고 불법적으로 사용되는 디지털 속 세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피해자의 이야기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의 잔인한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무엇보다 디지털 성범죄들에 노출된 수 많은 사람들, 특히 10대 아이들의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씁쓸하기도 하다.
죄책감 없이 불법영상물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사회문제들에 노출된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청소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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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악마 반올림 54
박용기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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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 시대는 뭔가 비정상적이며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세상에 살고 있을까, 자문한다. 사실 바로 그것을 알고 싶다. 내가 진정으로 간절히 알고 싶은 것은 이 세상은 왜 이렇게 생겨 먹었을까 하는 것이다.가끔씩은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 내가 문제아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기도 하다.p29-30

과학이 발전하는 것은 인간 진화의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계를 내가 다룰 수 있는 어떤 대상으로 보는 한 환경은 파괴될 수밖에 없고 인간 본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는 그냥 존재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의 본질을 알아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것을 몰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아름다운 지구에서 잘 살 수 있습니다. 더는 사람들이 자신과 세계를 분리하는 잘못된 관념으로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세계와 우리 자신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지금처럼 단기적인 생각으로 당장의 이익에 빠져서 과학기술을 이용하려고만 하지 말고 먼 미래 우리의 후손이 하나뿐인 이 지구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인간은 왜 세계를 지배하려고 하며 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궁극의 원리를 모르면 어떻습니까? 꼭 궁극의 원리를 알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무엇이든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삶이 불안하기 때문에 생기는 집착이 아닐까요?p228

도대체 아직 세상을 제대로 살아 보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왜 그런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것일까. 왜 지레 나의 삶을 예단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사회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는 사회. 그냥 아무것도 되지 않고 살 수는 없는가.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궁극의 원리가 없다는 것이 그걸 분명히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나의 미래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되어 가는 존재다. 그렇게 살자.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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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린'이라는 가상의 도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로봇들이 인간들을 대신해 생산과 재화를 담당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로봇들 덕에 높은 생산성으로 더 큰 이익이 생겨났으나, 인간들은 노동에서 소외되어 외곽으로 내몰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뉴턴, 아인슈타인, 괴델에 이르는 과학자들의 에피소드를 곳곳에 담아 과학적 발견과 이론보다 그들의 개인적 삶과 인간적 약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과학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청소년의 시선으로 심도 있게 담아냈다.
인간의 행복한 삶에 대한 고민들과 다양한 사고,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할지에 대한 과제를 던진다.

일자리를 잃고, 삶의 터전을 잃고, 그렇게 소외되는 인간들이 발생하는것이 자명한 사실이기에 인간의 편의를 위해 발전되는 과학이 무조건적으로 옳고 좋다고만할 수 없는 사회가 도래했다는것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리고 어려서 뭘 모른다는 말, 매사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편견, 그래서 어른의 통제와 보호를 받아야한다는 일방적인 생각들이 청소년들을 숨막히게 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매 순간 진지하고, 매 순간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때론 타인들을 위해 포기하기도 하고,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좌절하기도 하지만, 어른들은 공부만 하면 되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느냐고 십대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미 그 순간순간이얼마나 힘들었는지 겪어봤으면서도...

청소년들의 흥미와 지적탐구심, 진지함과 모험심, 그리고 순수함이 결합되어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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