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역 -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김혜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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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간은 어디엔가 단단히 묶여 있다. 누군가 내 시간을 단단히 매어둔 게 틀림없다. 도저히 풀 수 없는 매듭이다.
한꺼번에 모두 잘라내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 어떻게 해야 이 지겨운 하루를 빨리 소진해버릴 수 있을까.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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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한 방울씩 아주 느리게 떨어지는 물방울 같다. 바닥에 깔린 타일의 수를 세고 타일과 타일 새 낀 먼지를 살피고 벽에 걸린 안내문을 읽는다.
할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 내 시간의 일부를 떼어 팔고 싶다. 그런 생각도 한다. 하루라는 시간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길다.
더 길어지고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그런 끔찍한 가정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지 않는다.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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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종일 제멋대로 날뛴다. 하나의 감정을 잠재우면 또 다른 감정이 고개를 쳐든다.
나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모홓한 기분에 휩싸여 이리저리 걸어 다닌다. 덜그럭거리며 감정들이 서로 부딪히고 그것들의 날선 모서리가 내 마음 속에 상처를 내는 것을 또력하게 느낄 수 있다.p.1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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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없는 걸 만들고 생산하는 것보다 이미 있는 걸 없애는 쪽이 더 힘들다는 걸 알게 된다.
아무 노력 없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면 그걸 부수고 망가뜨리는 데는 훨씬 더 큰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힘과 노력으로도 그것들을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 하다.
어떻게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처음의 상태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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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억이나 기억 따위를 믿지 않는다. 그건 희망이나 기대처럼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실체가 없고 다만 거기 있을 거라고 짐작하게 되는 것들.
그런 것들은 사람을 들뜨게 하고 결국엔 망쳐버리고 만다.p.297-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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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를 쓴 김혜진 작가의 작품으로 제 5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이다.
삶의 의미와 살아갈 이유, 의욕을 상실한 이들의 묵직한 이야기.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들은 노숙자라 불리며 중앙역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그곳을 집 삼아 살아간다.
어느 날, 젊은 남자가 캐리어 하나를 끌고 중앙역으로 들어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차라리 캐리어를 잃어버린다면 삶을 포기할 수 있을 것만 같다던 그였으나, 막상 같은 처지의 한 여자에게 도둑 맞고 나니 그여자를 찾아 헤매고, 마침내 찾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여자는 사죄의 의미로 몸을 허락하고,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관계는 사랑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어떠한 희망도 없는 사랑과 삶은 그들을 지치게 한다.
이 책은 사회에서 설 곳을 잃고 밑바닥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삶의 의지를 잃은 두 남녀의 허락받지 않은, 이루어질 수 없는 지독한 사랑이야기이기도 하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름도 없고, 과거에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현재를 살아가는, 마지못해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이만 존재할 뿐이다.
소설은 시종일관 무겁고, 끝까지 어둡고 막막한 현실을 담고 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어떤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과 그들을 도우려는 이들(실은 실적때문일), 그리고 그들을 이용하려는 이들,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들, 지킬 수 없는 것들 이야기가 내내 지속된다.
노숙자를 통해 사회의 어두운 면과 사랑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책이다.

절망과 포기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삶이나 묘한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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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film 2019-11-1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11월 22일 삼청동 과수원에서 열리는 김혜진 작가님 북토크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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