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노부부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아내는 찹쌀떡이 목에 걸려 목숨을 잃고, 남편은 서서히 죽어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모의 기대와 부흥해 교사가 된 장녀 김인경과 대학병원 의사가 된 장남 김현창, 이혼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차녀 김은희와 몇년째 공무원시험에 떨어지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차남이자 막내인 김현기, 그리고 이들의 부모인 김영춘과 이정숙의 이야기가 각자의 시선과 감정으로 담겨있다.
제목만큼이나 노골적으로 가족에 대한 애증이 담겨 있어 단란함과 화목함이랑 찾아볼 수 없다.
4년전 뇌경색으로 몸의 우측이 마비되어 온전치 않은 몸으로 살아가는 엄마 이정숙과 자신의 기대만큼 노부모를 공양하지 않아 자식들에게 폭언을 퍼붓는 아빠 김영춘.
그리고 아프고 병든 노부모가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운 4남매.

아니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저마다의 사정이나 시선, 감정들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인 고민들, 각자의 어깨에 짊어진 무게와 부담, 서로에 대한 애정과 증오가 뒤섞여 결국 비극으로 치닫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가족이라는 이름에뒤에 숨겨놓은 서로가 서로에게 쥐여주는 책임감과 부담, 그리고 의무들이 곪아 터져 결국은 밖으로 새어나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여주는 몰랐던 진실들까지...
가속되는 고령화 사회 속의 가족의 부담감, 충동과 분노 범죄, 이기심과 개인주의, 희생을 담아 먹먹하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인연이라는 게 참 이상하기도 하지.인연이 아니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를 붙잡을 수 없어.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도 인연이 다하면 한순간에 낯선 이들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가끔은 그 어떤 변수에도 상관없이 영원히 너에게 이어져 있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지.p92

"아무도 믿지 말고, 불필요하게 고통받지도 마. 사람들이 하는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을 깨닫고, 언제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p514

인생은 곧 바퀴였다. 영민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그 바퀴를 잘 굴려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반면 어리석거나 운이 나쁜 사람은 그 바퀴에 잘못 깔려 무참히 짓밟힐 수도 있었다. 그 두 극단 사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직 그 바퀴를 앞쪽으로 굴러가게 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p546

삶은 견딜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p605
.
.
-2022년 데이턴문학평화상 최종 후보작
-아마존 선정 2021년 이달의 책
-리얼 심플, 하퍼스 바자, 미즈 매거진, 포틀랜드 먼슬리 선정 2021년 올해의 책
-전미 40여 개 주요 매체 추천 도서
-전 세계 12개국 번역 출간

이력이 화려한 책들은 실망할 때가 종종 있다.
내겐 파친코가 그런 책중에 하나였고....
이 책 또한 파친코처럼 우리나라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파친코보다 더 깊이 있고, 파친코처럼 장황하지 않다.
번역도 매끄럽고 섬세하다.

일제강점기 1917년대부터 해방 이후 1965년대까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개인의 서사들을 담았다.
긴긴 시간동안 일제의 탄압과 차별,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던 시대를 잘 표현했고, 주인공들을 이어주던 작은 인연들과 어긋난 사랑과 뒤틀린 운명들 역시 섬세하게 그려냈다.

독립을 위해, 또는 자신의 삶을 위해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 치열하게 살고, 노력했던 수 많은 역사 속 인물들과 그 시절의 이야기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역경과 고난이 가득한 어둡고 어두웠던 시절 속 등장인물들의 욕망과 삶을, 매 순간 선택지에 서야했던 이들의 고민을, 절망과 역경 속에서도 시대적 아픔을 고스란히 겪으며 살아가야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600페이지의 대서사에 담아 지루할틈없이 흘러가는 작품으로 생동감 있고 역동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우는 건 인간들이 최고다. 지구가 그 증거다. 나무와 풀과 온갖 생명체가 끊임없이 생겨나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지워진다. 지우는 걸 최고로 잘하는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잘 지우는 사람들이 바로 딜리터들이다. -딜리터 묵시록 中-

누구에게나 흑역사가 있고, 혹은 큰 실수나 상처때문에 지우고 싶은 순간, 지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 컴퓨터의 Delete 버튼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지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 쯤 해보았을 것이다.
이 책에는 지우고 싶은 시간, 지우고 싶은사람을 암암리에 지워주는 '딜리터'가 등장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딜리터지만, 딜리터인것을 숨기고, 상황과 의뢰에 따라 일을 하는 강치우와 돈을 받고 정보를 제공하거나 지우는 일을 하는 딜리터 이기동!

지우길 바라는 사람들, 지우는 딜리터 그리고 지워진 것들이나 지워진 사람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맞물려 재미를 더한다.
'레이어'로 표현되는 세상도 독특하고, 사라진 물건이나 사람들이 여분의 레이어에 있다는 설정도 신박하다.

읽는동안 내내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했고, 과연 현실에 딜리터가 존재한다면, 나도 어떤 것을 지워달라고 의뢰했을까?

지우고 싶은 순간들이나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삶이란게 싫은 사람, 무서운 사람, 짜증나는 사람 모두와 부대끼며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자친구가 당장 만나러 오라는 협박같은 메시지에 쇼타는 엄청나게 쏟아져 내리는 비를 뚫고 차를 운전하던 중 무언가를 친다. 무서운 나머지 뺑소니 범죄를 저지르고, 다음 날 뉴스를 보고 자신이 친 대상이 노부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쇼타는 큰 문제 없이 흘러갈 탄탄대로일 자신의 인생에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거란 불안에 가득찬다. 그리고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피해자의 가족들의 삶 역시 뿌리까지 흔들리고, 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후미히사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어떤 결심을 하고 흥신소에 쇼타에 대해 의뢰한다.
그리고 쇼타가 출소한 후 사는 집 근처에 집을 구해 살기 시작한다.

범인을 찾고, 복수를 하는 소설이 아니라 유족에 대한 속죄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참회, 법으로 심판할 수 없는 죄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묵직하다.
법적 책임을 다하고, 범죄에 대한 형벌을 받았다고 해서 속죄하고 반성했는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너무도 부당하고, 불합리한 솜방망이 처벌이 비일비재한 요즘은 더더욱 법적 책임이 합당한가, 공평한가도 의문이고...
결국 가해자가 진심으로 참회하고, 속죄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직시할 수 없고, 온전히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여담이지만, 영화 밀양의 전도연 대사가 생각났다.
용서 받아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을 한 가해자에 분노하며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데...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데...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인간을 먼저 용서 할 수 있어요?" 라는....

어느 누구도 피해자의 유족대신 용서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남은 자들만큼 슬퍼할 수 없다.
그래서 용서는 힘든게 아닐까.
죄에 대한 형벌일뿐, 속죄와 참회는 다른 문제이니까...

고의가 아닌 사고로 범죄를 저질렀을때의 참회와 속죄를 나는 과연 용서할수 있을까?
하지만 고의가 아닌 사고로 발생한 죄에 대해서 가해자는 언제까지 죄인이어야 할까?
참 어려운 문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퍼민트 창비청소년문학 112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 아빠가 썩든 내가 썩든 누구 한 명이 썩기 시작하면 금방 두 사람 다 썩을 것이다. 오염된 물질들은 멀쩡한 것들까지 금세 전염시키니까.p121-122

“너무 슬퍼하지 마. 모두 결국에는 누군가를 간병하게 돼. 한평생 혼자 살지 않는 이상, 결국 누구 한 명은 우리 손으로 돌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도 누군가의 간병을 받게 될 거야. 사람은 다 늙고, 늙으면 아프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까. 너는 조금 일찍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해 봐."p191-192

우리는 재난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사실 그 누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병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그게 마지막 대화라는 걸 알았다면 엄마는 내게 무슨 말을 건넸을까? 엄마는, 우리는,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다.p220
.
.
프록시모라는 감염병이 사회를 휩쓸고, 그 병의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아빠와 간병인과 함께 교대로 돌보며 꿈도 희망도 없이 지내는 열아홉살 시안.

프록시모 감염병의 슈퍼 전파자로 낙인 찍혀 사회에서 비난받고 그 이후 잠적해 개명까지 하고 남자친구 문제로 고민하고, 입시준비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한때 시안과 절친이었던 해원(지원).

그러던 어느 날 시안이 해원의 오빠 해일과 마주치게 되고, 해원과 다시 만난다.
시안은 자신과는 다르게 평범하게 사는 해원을 보며 반가운 마음과 자신의 처지와 엄마 생각에 복잡한 마음을 갖고, 해원을 통해 일상의 평범함을 다시 느끼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지난 추억을 생각하며 행복해하기도 하지만 이내 현재 자신의 상황에 비참한 마음과 암담함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이야기는 시안과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고, 위태위태한 그들의 관계와 십대 아이들의 복잡한 감정들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엄마라는 가장 든든하고 자신을 지켜줄 대상의 부재로 갑작스레 시작된, 준비되지 않은 돌봄을 감내하는 시안의 이야기와 자신의 과거가 밝혀질까 노심초사하며 늘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해원의 이야기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전작인 '유원'에서 역시 백온유 작가는 살아가는 삶이 아닌, 견디고 버티는 삶을 담아냈고, 살아남은 생존자의 죄책감과 부채감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마지막은 언제나 가만가만 위로를 건네는 작은 희망을 선사한다.

그늘을 벗어나 한걸음, 햇볕이 있는 곳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