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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베이비 -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평점 :
나는 안다. 나처럼 비밀 많은 아이를 세상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바로 그림자 아이다.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존재하진 않는단 뜻이다. 정말 나에겐 어릴 적 사진이 한 장도 없다. 나만 혼자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도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진 않는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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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른들이 이상하다고 하지 않는 건 어른들도 날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으면 해서다.p27
어른들은 땅에 불을 지른다. 땅을 깎고 파낸다. 땅을 사거나 팔고 빼앗거나 빼앗긴다. 땅 위에 뭔가를 지었다가 허물어뜨리고, 다시 또 짓고 허물어뜨린다. 왜? 무엇 때문에? 질문과 답은 언제나 제각각이고 제멋대로다. (…) 나에게, 엄마에게, 삼촌에게, 그리고 할머니에게 주어진 질문과 답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그냥 물을 수 있는 사람은 그냥 묻고,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답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은 온 마음으로 묻고 답해야 한다. 끈질기게 살아가면서, 두 발을 딛고 선 그곳이 넓은 땅이든 좁은 땅이든, 평평한 땅이든 가파른 땅이든, 멀쩡한 땅이든 부서진 땅이든 상관없이.p29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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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라는 다소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과거 탄광촌이었던 지역에 카지노와 리조트가 들어와 전당포에 맡겨진 열살 정도 된 화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로, 전당포 주인을 할머니, 할머니의 딸을 엄마, 아들을 삼촌으로 부르며 자란다.
3부로 구성된 책으로 1부에는 화자인 나와 가족, 그리고 그들이 사는 지음이라는 지역의 이야기를 담았다.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아이'로 자라는 나, 불안과 강박을 갖고 사는 엄마, 랜드가 무너진다며 외치는 정신장애를 가진 삼촌, 그리고 그들의 균형을 잘 잡아주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았다.
2부에서는 화자인 아이가 엄마의 전화를 우연히 엿들으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3부에서는 할머니를 통해 알게된 가족과 지음 지역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엄마와 삼촌과 함께 할머니가 남긴 유산을 찾아 함께 떠난다.
돈 때문에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음이라는 지역의 흥망성쇠를 담았다. 인간의 무한 욕심으로 번성하고 발전하지만, 이 또한 인간의 무한 욕심으로 인해 무너지고, 붕괴되는 과정이 지금의 시대상을 잘 표현했다.
탄광지역에 생긴 카지노로 인해 투기와 유흥산업이 발달하고,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환경에서도 삶을 버텨내고 지속하고 지켜내려는 사람을 조명하고 주인공의 아이의 시선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는 모습들에서는 로맹가리의 ' 자기 앞의 생'이라는 작품이 생각나기도 했다.
척박한 곳에서 뭉근한 희망이 피어오로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