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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평점 :
누구나 살다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럴 땐 세상이 그 어느 것도 궁금하지 않고 알고 싶지 않다는 듯 계속해서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만 같다는 억한 심정이 든다. 좁아진 시야 속에서 방황하는 이의 사정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괜한 원망을 해 보기도 한다. 이 책은 외부로부터 주어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찾으려 유독 시리고 아픈 날을 버텨야 했던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특별한 공감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삶의 어떤 부분이 지나가고 있음을 진지하게 느끼는 동안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지금의 나를 응원하며.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저자인 파스칼 메르시어의 작품이다. 필명이다. 똑같이 두툼한 책 두 권이 희한하게 손이 잘 가지 않아 책꽂이에 방치되어 있었다. 작년에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 생일을 핑계 삼아 딱 한 권만 구매한 것이 바로 이 <언어의 무게>인데,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의미에 이끌렸는지 손이 가는 대로 생각 없이 집어 들어 펼쳐봤다. 대단히 긴 시간이 흐른 것만은 아님에도 이 책을 받아봤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그때는 조금은 의미심장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책을 집어삼키면서 괴로움의 시간을 죽이고 또 죽이는 용도로 희생시켰다. 이 책을 집어 든 순간 느꼈다. 늘 비장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만든 마음의 무게가 소리도 없이 증발해 버리기라도 했는지, 안개가 걷힌 것처럼 서서히 사람과 사물이 보인다는 것을. 실은 변한 건 없지만 마음이 단단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헛된 수고로만 그친 게 아니라 무언가를 했다는 것, 나의 노력이 드러나는 이 순간에 괜한 뿌듯함마저 들었다. 그래서 익숙하기만 한 소리와 그 울림을 다른 마음가짐으로 듣는 순간, 그동안 이 울림과 소리를 얼마나 그리워했는가를 깨닫는 ‘레이랜드’의 심정을 다르지만, 같은 마음으로 헤아려본다.
계단에 들어서서 여권을 넘기다가 자기 사진을 들여다봤다. 마지막으로 이 사진을 본 것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개인 서재에 있을 때였다. 그때는 미래가 없는 사람의 사진이었지만, 이제는 가능성이 다시 열린 어떤 남자의 모습이었다. (p. 7)
마치 모든 게 처음 듣는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그 마음을 다 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나 또한 삶의 새로운 시작이라 여길 만한 순간들을 떠올렸다. 이제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들까지도…. 마음에 끌리는 문장이 많아 방지턱을 넘기 전 속도를 줄이는 자동차처럼 빠져들어 읽다가 잠시 멈추고 생각하기를 반복해야만 했고, 그 덕분에 문학적 매력을 느끼면서 느긋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주인공 레이랜드의 삶의 여정은 내가 지금 어디까지 읽었는지 남은 부분의 두께를 종종 체크해 볼 만큼 지루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는 갤러리를 천천히 산책하듯 걸으며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사람의 마음처럼, 매혹적인 문장을 즐기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 만큼 인내심이 필요한 순간도 있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래도 한 줄 한 줄 정성을 다하여 읽었다. 암흑 속에서 빛을 찾은 그 순간의 안도감과 펑펑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얀 곳에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길을 걷는 고요함 속에서 찾은 생의 경이로움과도 같은 감정을 오롯이 담기 위하여 단어 하나에도 공을 들이고 고심하는 이의 마음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리고 가끔 섬세함으로 가득한 책이 불어넣어 주는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감각기관을 활짝 열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모든 게 다 씻겨 내려간 것만 같은 이 깨끗함에 정신이 맑아져 그동안 움켜잡고 한 발짝 내딛지 못해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니 말이다. 최소한의 어휘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은 짧은 글에서 얻는 감동과는 또 다른 형태로 마음을 붙잡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레이랜드는 언제나 단어들에만 묻혀 산다. 문학적 요소로 설명하기 어려운 자기만의 것을 이어받은 단어가 금방이라도 그 순간의 풍경을 눈앞에 그려지게 만들기 위한 멈추지 않는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번역가이자 출판사 사장인 그는 어릴 적 삼촌에게서 들은 아라비아어를 듣고 마법에 걸린 듯 새롭고 아름다운 것에 감동한 눈빛을 보였던 꼬맹이였다. 언어의 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자 특별하고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고 싶은 사람으로 자란 그가 61세에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다. 이 세상에서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음과 동시에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기억과 그때의 감정을 글로 담았고, 그들은 다시 레이랜드의 공간을 채우게 된다. 지나고 나서야 알고 겪고 나서야 아는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새로 시작한다기보다는 정리의 시간에 가까웠을 그에게 또 한 번의 놀라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암 진단을 받은 그의 검사 결과가 오진이라는 것. 다시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아진 것이다. 놀라우면서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행복한 감정으로 마치 인생의 전환점이자 새로운 삶을 사는 듯한 기분이지 않았을까? 이제껏 살아온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자연을 더 경험하고 무더기로 사들인 책은 바닥에 쌓였으며 필사적으로 사라지는 시간에 대한 저항을 이어 나갔다. 예전에는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볼 수 없는 것을 스쳐 지나가게 내버려두지 않는 노력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타인의 삶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지금 사는 삶이 바라던 삶인지, 상상하던 삶인지를.
이 소설은 뭐라도 적어 보고 싶은 욕심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규정 검토를 하는 것이 업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업을 가진 건조한 단어와 더 가까운 사람이기에 과거의 기억을 순식간에 떠올릴 수 있게 해줄 단어를 생각해 보거나, 아니면 떠올리더라도 뭔가 새로운 단어를 고민하는 경험은 드문 일이다. 그런 나마저도 무엇이든 적어 보고 싶게 만들었다. 언어를 향한 그의 열정은 자극이 되었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생각을 나만의 글로 적는다는 것이 어려운 행위로 여겨지는 이들에게는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묘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저 편하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 레이랜드가 움켜쥔 펜 끝에서 떨어져 나오는 글자들 속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삶의 회한을 통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마음에서 한 걸음 나아가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며 심적 여유를 느껴보는 것이다.
이 소설 안에는 바흐의 곡이 많이 등장하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계속해서 떠올리는 레이랜드의 모습에서 내가 배경음악을 선택해 볼 수 있다면, 루이스 미겔(Luis Miguel)의 Hasta Que Me Olvides(당신이 날 잊을 때까지)를 고르고 싶다. 침착하면서도 공감 능력이 뛰어난 아내였던 리비아. 그녀가 살아있었을 때, 두 사람만의 보금자리인 트리에스테 집에서 제일 높은 층계에 나란히 앉아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언어를 고민하는 두 사람의 열정은 그 자체만으로 낭만적이었고 로맨틱했다. 세월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조금은 빛이 바랜 보석함에서 꺼내보는 그 순간들을 좀 더 깊게,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그에 맞는 단어를 고심하는 레이랜드의 심정을 헤아려보며 옛 시절의 감성이 느껴지는 루이스 미겔의 감미로운 발라드곡을 배경으로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애틋함을 담아. 리비아가 고른 화려한 샹들리에보다도 젊음으로 반짝이던 그 시간을 떠올려보는 동안 자유에 제한받지 않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던 레이랜드가 이제는 번잡하고 혼돈의 세상 속에서 점점 더 많은 현재를 잃어가며 무엇을 느껴야 했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실감했을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찌 보면 용기가 필요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괴롭고 나아질 방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라면, 더욱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것들을 철저히 단속하며 모든 것을 잊게 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알맹이 없이 바깥세상에서 필사적으로 하루하루를 죽여야만 할 테니까. 그러다 보면 나로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지치고 절망도 하게 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결국엔 방향을 틀어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게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있음을 느껴보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은데, 잠시라도 개인의 일상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다시금 살아있음을 경험하도록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생성과 소멸의 관계를 순리대로 연결해 보며 그간의 여정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한 조용하지만, 단단한 레이랜드의 침잠하지 않은 감성과 특정한 발음과 말의 울림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 마음에 드는 문장을 생각하는 세심함과 집요함은 그의 내면뿐만 아니라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마저 끄집어 올렸다. 특별한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들과 다른 새로운 것을 찾고 싶은 욕심이라기보다는 그 언어를 나눴던 대상이 특별하였기에 다른 그 무엇과 구별된 언어를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레이랜드의 삶의 순간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라는 중압감에서 한 발짝 물러나 오롯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면에 이어 바깥으로 방향을 틀게 할 것이며 주변을 둘러보도록 할 것이다. 친밀함을 느낄 수 있는 언어를 주고받으며 자신을 더 열어 보이고픈 욕심을 품게 할지도 모른다. 드러내 보이는 것에 서툴다면, 서로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아무런 말이 없는 침묵으로 평온함을 나눠보는 건 어떨까? 굳이 언어를 통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적당한 말을 떠올리지 못한 안타까움의 표정을 읽는 것으로도 침묵의 공간을 애틋함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으니까! 나와 당신 모두가 발견의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레이랜드의 삶 위주로 적어보았지만, 각자의 언어로 삶을 이야기하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레이랜드는 자기 삶에서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사람들과의 추억에 푹 빠져본다. 이 모든 게 다 지나갔다는 걸 잊은 듯이. 시간으로 엮인 끈을 더 가까이 잡아당겨본다. 언어와 기억이 서로 얽히면서 증발하지 않고 소소한 행복과 아름다움이 남았다. 혼란스러움 속에서 찾은 이 아름다움은 레이랜드에게 현재 주어진 삶을 지탱하게 해주지 않았을까? 아니, 삶을 견디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새 삶을 만들어가는 그의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삶!
자기 인생의 시간에 대한 질문을 새로 던져야 했다. 새로운 방식으로 시간을 마주하려고 이곳에 왔으니까. (p.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