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에서 하얀 먼지를 피워올리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언덕이었다. 폭신폭신한 산, 끝내지 못한 여행, 일시적인 천막, 바람에 날려 날마다 새로운 모습이 되는 고장을 어떻게 지도로 표시할 수 있으랴? 이런 질문 때문에 그의 언어는 너무 추상적이었고, 그의 심상은 너무 유동적이었고, 그의 운율은 너무 불규칙했다. 그래서 그는 키메라 같은 형상들을 창조했고, 사자의머리 염소의몸 뱀의꼬리, 존재하지 않는 것들, 그들은 쉴새없이 모습을 바꾸었고, 그래서 고전적 순수성을 간직했던 문장 속에 통속성이 끼어들고 끊임없이 침투하는 우스갯소리가 사랑의 이미지를 훼손시켰다. 아무도 그런 시를 좋아하지 않아, 하고 그는 벌써 천 번이나 했던 생각을 한 번 더 했고, 의식의 끈을 놓치는 순간,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결론을 내렸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없지. 망각은 곧 안전이다. - P121
‘적어도 정신 연령이 십대쯤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깨닫기 마련이다: 인생은 결코 익살극이 아니라는 것을, 하다못해 점잖은 희극도 아니고, 정반대로 오히려 본질적 결핍이라는 깊디깊은 비극적 심연에 뿌리내린 채 꽃피우고 열매 맺는다는 것을. 그러므로 정신생활을 영위할 줄 아는 이들은 늑대가 울부짖고 밤의 음탕한 새가 지저귀는 위험한 숲을 물려받는다’ 명심해라, 이 녀석들아. - P160
그는 자기가 증오심을 오래 품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축했다. 역시 증오보다 사랑이 더 지속적인지도 모른다. 비록 사랑이 변했다 하더라도 사랑의 그림자일까, 아무튼 뭔가가 길이길이 남는다. 예를 들자면 파멜라에 대해서도 이제는 지극히 이타적인 애정을 느낄 뿐이다 증오심이란 어쩌면 민감한 영혼의 매끄러운 유리에 남겨진 지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없어지는 손자국 같은 것, 지브릴? 흥! 잊어버렸다. 더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봐라: 적대감을 벗어던지면 자유로워진다. - P175
내 아들은 그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자리에 모인 이유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아프리카인, 카리브인, 인도인, 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인, 키프로스인, 중국인-만약 우리가 저 바다를 건너오지 않았다면, 만약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일자리와 존엄성과 자식들의 더 나은 삶을 찾아 저 하늘을 건너오지 않았다면, 우리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 사회를 다시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죽은 나무를 잘라내고 새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 차례입니다.’ - P187
미르자 사이드는 잠들지 못했다. 스리니바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스리니바스는 자기도 머릿속에서는 간디주의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실천하기엔 너무 나약해서 탈이오. 부끄럽지만 사실이오. 나는 고통을 견뎌낼 능력이 없소, 선생. 차라리 마누라와 아이들 곁에 남아 있는 편이 좋았을 텐데 쓸데없는 모험병 때문에 이런 꼴이 돼버렸소." 잠 못 이루는 미르자 사이드는 이미 잠든 장난감 상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집안에도 일종의 병이 있어요. 초연함이라는 병, 온갖 만물과 세상사와 감정에 무관심한 병.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이나 연고 따위로 자신을 정의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을 머릿속에서만 살아왔어요. 그러니 현실에 대처하기가 힘겨울 수밖에 없지요. 다시 말해서 그는 지금의 이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 P300
비록 수많은 질문에 뒤덮인 어렴풋한 미래였지만 어쨌든 미래는 과거에 가려질 수 없다. 죽음이 무대 중앙에 등장하는 시기에도 삶은 여전히 동등한 권리를 위한 투쟁을 계속한다. - P342
상여, 꽃을 뿌린, 거대한 아기 요람 같은. 시신, 하얗게 감아놓은, 향기로운 백단향 대팻밥을 여기저기 잔뜩 뿌려놓은. 또 꽃, 쿠란 구절을 금실로 수놓은 초록색 비단 덮개. 구급차, 상여를 실어놓고 미망인들의 출발 허락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 묘지. 상여를 짊어지려고 달려가던 남자 조객들이 살라후딘의 발을밟고, 엄지발톱이 조금 부러지고. 조객 중에는 사이가 멀어졌던 창게즈의 옛친구도 한 명, 양측폐렴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따라왔고, 또 한 명의 노신사가 펑펑 울고, 그역시 바로 이튿날 숨을 거둘 테고,그 밖에도 온갖 사람들, 죽은 자의 일생을 보여주는 걸어다니는 기록들. 무덤. 살라후딘은 그 속으로 들어가 머리맡에 서고 묘지 인부는 발치에 선다. 창게즈 참차왈라가 아래로 내려진다. 아버지의 머리 무게가 내 손에 놓였네. 나는 그것을 내려놓았네. 편히 쉬소서. 누군가 이렇게 썼다: 이 세상은 우리가 죽을 때 비로소 현실이었음을 알 수 있는 곳이라고.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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