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78매)

1.

“ 아유! 넌 왜 핸드폰이 없냐 ? ”

“ 미안하다 . ”

“ 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 ......”

세영이가 순순하게 미안하다고 하니까 박치자는 당황스러워했다 .

“다른 게 아니고 ...조구연 선생님하고 이정목 선생님이 우리들 좀 보자고 하셔서 날짜 잡으려고 하는데 넌 어떠니 ? ”

“ 뭐가 ? ”

“ 언제가 좋으냐고 . ”

“ 다 좋아 . ”

“ 스케줄 괜찮아 ? ”

“ 스케줄이랄 것도 없으니까.”

대답하면서 세영은 출렁,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 이정목 선생님은 졸업한 뒤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 이정목 선생님이 너 꼭 나오라고 하셨어 . 그 선생님이 네가 자기 좋아했던 거 다 아시더라 . ”

“ 그러니 ? ”

아셨을까? 아셨겠지. 도서관 앞 그 숲 속에서 , 저, 선생님, 좋아해요 ...라고 고백했으니까. 그때 이정목선생님은 그러냐... 간결하게 대답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이 그래도 양심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 세영은 삼십 년 전 기억이 새삼스러워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지나간 일들은 사진처럼 기억으로만 남았다 .

“어쨌든 나올 거지 ? ”

“글쎄...옷도 없는데......”

“하나마나한 소리 하지 말고 나와 . ”




치자는 간단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 나가야 하나 ? 박치자 남편은 치과의사였다 . 그 남편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 이진규치과는 아말감을 하러 간 사람은 무조건 금으로 하고 나오게 만든다는 거였다 . 그리고 솜씨가 좋아서 그런지 예약을 하지 않고는 절대로 그 병원에 갈 수 없었다 . 한 번은 세영 딸 진형이 이에 문제가 생겼다 . 그래서 예약을 하고  치자남편네 치과에 갔다 . 그런데 금으로 하려니 23만원씩이나 하는데 여덟 개를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 도저히 그 돈을 낼 형편이 아니었다 . 그래서 좀 싼 걸로 하자고 하니까 이진규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 결국 8만 원짜리로 여덟 개를 치료하기로 하고 두 개만 한 다음 날은 가지 않았다 . 그리고 동네 치과에서 8 만원에 하고 말았다 . 예전에 집에서 만난 일이 있어서 이진규는 세영을 아는 처지였다 .




잠시 후에 또 전화가 왔다 .

“ 세영아! 치자 전화 받았니 ? ”

“ 응. ”

“ 나갈 거니 ? ”

“ 나오라는데......”

“ 나도 나갈 거야. 너 꼭 나와 . ”

뭐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늘 수상한 일을 하는 윤정우였다 . 만나면 언제나 볼펜을 들이밀었다 .. “ 학교 급식 지원재정조례안” 에 서명하라고 했다 .그럴 때는 “ 학교 급식 개선과 조례제정을 위한 운동본부 ”라고 했으며 “한미 FTA결사제지 서명안” 에 서명하라고도 했다. 그럴 때는 또 당연히 “결사제지 운동본부 ”에서 일하는 것 같았다 . 아니, 사실 정우는“ 한국 사교육 자영업자 위원회 ”에서 근무하는 처지였다 . 자기가 지어낸 단체 이름이지만 .

“ 또 서명 받을 거 있니 ? ”

“ 에이~ 왜 그래 ? 부담 안 줄 거니까 걱정 마 . ”

비꼬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정우는 예민한 구석이 있었다 . 그 서명 뒤에는 늘 뭔가 후원금을 요구하는 용지가 뒤따랐다 . 청소년 무료공부방 후원금 용지이거나 혹은 평택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본부 후원금일 때도 있었다 . 그런 건 사소한 거지만 강요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때는 늘 목에 가시가 걸린 기분이었다 .




2.

친구들이 잡아놓은 음식점 ‘웰빙버섯샤브샤브집’은 전에도 와본 곳이었다 .미리 예약해 논 특실은 공기청정기 덕분에 쾌적했다 .

“ 아유~ 이번 여름에는 외국에 너무 많이 갔다 와서 시차 적응 때문에 힘들었어 . ”

치자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윤택했다 . 외국. 세영은 익숙치 못한 외국어를 듣는 것처럼  껄끄러웠다 .

“ 어디 갔다 왔는데 ? 나는 이 여름에 쪄죽는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다녀왔다, 얘. ”

“ 웬 모르코에 ? 모나코는 아니고 ?”

“ 아니, 모로코야 . 카사블랑카 있잖아 .한 여름에 51 도 까지 오르잖니 . ”

“ 정말 ? ”

모로코에 다녀왔다는 이성숙은 중학교 교사다 . 여름, 겨울방학마다 어딘가 다녀오는 게 정해 논  일정이다 .

“ 나는 산삼 엄마라서 꼼짝도 못하는데......”

오명순은 체중 때문에 다리가 아프다면서도 여전히 체중을 유지한 채 거북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

“산삼이 뭐야 ? ”

이성숙이 의아하다는 어조로 물었다 .

“ 고 삼이 산삼이잖니 ? ”

오명순은 그것도 모르냐는 어조로 대답하며 가볍게 웃었다 . 체중은 나가지만 잘 생기고 잘 나가는 남자랑 사는 뚱땡이.......세영은 한 껏 폄하한다 .




(아휴~ 내가 여기 잘 나온 건가 ?)

세영은 조금씩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 그나마 정우가 입 다물고 있어서 자신도 참고 있지만 이 친구들 대화가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어서 내가 어디 갔을 때는 어떻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 이른바 “재테크” 일환으로 동백지구에 아파트를 사 논 것도 없으니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 동백지구에 사 논 아파트 값이 올랐다고 한두 채 더 사놀 걸 그랬다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치자를 보고 이성숙이 한 마디 했다 .

“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아파트 값이 안정이 안 되는 거야 . 작작 사라 . 좀 . ”

“ 얘는! 너야말로 페르세폴리스 당첨돼서 대박 났다며 ? ”

“ 뭐 ? 그건 네가 어떻게 알았니 ? ”

“ 한국 좁은 거 모르니 ? ”

“그건 투기가 아니고 노후 대책이야 . 교사 연금이 뭐 얼마나 되니 ?나야 남편도 없는데 늙으면 누구한테 의지 하겠니 ? ”

처녀로 나이 먹어서 그런지 성숙은 아직도 이십대 아가씨 같다 . 눈꼬리에 엷은 잔주름 흔적이 있지만 긴 머리에 자연스런 웨이브가 잘 어울린다 . 그렇지만 나이 들어서 숱이 줄어든 정수리를 감추느라 과도하게 부풀린 흔적이 역력하다 . 머리카락을 세우고 헤어스프레이로 깁스를 했겠지 . 나도 혼자 살 걸 그랬나 ? 세영은 하나마나한 상상을 해 본다 . 그냥 강릉에서 13 평 아파트에 살다가 저축이 늘어나면 20 평으로 옮길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바다에 가서 수영을 하고 남대천 방죽길이나 초당 숲 속을 산책하며 주문진에 가서 생선회도 먹고 가을에는 설악산 등반도 하면서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아주 부자는 아니지만 일정한 급여만 있으면 엄마한테도 용돈 넉넉히 드리고 가끔 외국여행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모든 건 끝나고 당장 추석 지나고 또 아이들 등록금과 급식비 같은 사소한 생활비로 시달려야 할 걸 생각하니 한숨이 그냥 나온다 . 외국여행, 아파트..그런 서걱거리는 용어들.




“야, 야! 일행 중에 골프 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골프 얘기를 하는 건 실례야 . ”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윤정우가 한 마디 했다 .

“ 누가 골프 얘길 했는데 ? ”

“ 비유야 . ”

“ 음...그런가 ? ”

한때는 아주 친한 친구들이었는데 30 년 동안 각자 다른 길을 걸으며 “돈” 때문에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그래서 같은 중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웃집 아주머니들이나 마찬가지였다 . 아니, 차라리 이웃집 아주머니들은 사는 처지가 비슷하니까 공감대가 일정하다 . 그러나 고교 동창은 삼십 년 전에서 머무르지 않고 진화한 결과 왠지 떫다 .

“ 어쨌든 간에 선생님들은 왜 안 오시니 ? ”

“ 오시겠지. 조구연 선생님이 우리 치과에 와서 치료를 받으셨잖니 ? 얼마 전에..그리고는 너희들 모으라 시는 거야 . 한 번 보고 싶다고 . ”

조구연 선생님은 고3 때 담임이었다 . 그리고 치자가 반장이어서 조구연선생님 모시고 가끔 식사를 하곤 했다 . 세영은 언제부턴가 그 자리에 나가기가 싫어졌다 . 아니, 사실은 생활비 때문에 시달리는 일이 많아지면서부터 부쩍 그랬던 것 같다 . 친구들 가운데 돈이 없어서 걱정스럽게 사는 애는 우/연/히/ 도 단 한 명도 없었다 . 심지어는 이혼녀 정우까지도 어느 순간부터는 돈 걱정에서 놓여난 듯 했다 . 정우는 어릴 적 꿈처럼 소설가로 출세하지는 못했지만 논술강사로 그런대로 돈을 벌었다 . 이성숙은 결혼은 안했지만 차분히 저축도 하고 아파트도 샀다 팔았다 했는지 방학마다 외국여행을 다닐 정도는 됐다 . 오명순은 친정도 부자이지만 남편도 공인회계사다 . 충분히 재산을 모았는지 강남구 역삼동으로 이사간지 3 년이다 . 아이가 대원외고를 다니니까 그런대로 자식농사도 성공한 셈이다 . 자식농사 ? 과외를 한 번도 받지 못한 세영의 두 아이는 자신들의 말로 “ 반에서 깔아주고 ” 있다 . 고2 가 된 진형이가 한 말에 따르면 자기 성적으로는 수도권에서는 전문대학도 힘들다는 힘들다고 한다 .

“ 학교 공부 열심히 했는데 왜 전문대가 힘들어 ? ”

“ 엄마가 학교 다니던 쌍 칠년도랑은 달라 . 그때는 누구나 다 과외를 안 하니까 노력한 애가 성공하지만 7 차 교육과정은 안 그렇다구 . 강남에 사는 애는 마포에 사는 애보다 열 배는 더 서울대에 갈 확률이 높아 . 그렇다면 수원에 사는 애는 어떻겠어 ? ”

“ 서울대는 무슨...수원대 가면 되잖아 .”

“ 수원대도 마찬가지야 . 수학 나형 볼 건데 수능 모의고사 50 점 받아가지고 무슨 4 년제가 가능 ? ”

“ 내신을 올리면 되잖아 . ”

“ 내신도 이미 글렀어 . 중학교 2 학년 때 이후로 내신도 70 점 넘는 게 하늘에 별 따기야. 수학 과외 1 년 만 받았음......”

그런데 수원에서 수학 과외비 알아보니 일주일에 100분 씩 2회 배우려면 40 만원 밑으로는 거의 힘든 상황이었다 . 40 만 원 .




“ 아이구! 여사님들 오셨네.”

모외국어고등학교 교장에서 정년퇴임한 조구연은 머리를 새까맣게 염색했다 . 아무리 동안이라고는 하지만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검은 머리는 억지스러웠다 . 원래 통통한 얼굴이었는데 살이 빠지니까 어쩐지 서글퍼보였다 . 아니, 요즘 세영의 눈에 서글퍼 보이지 않는 게 없었다 . 지나가는 할머니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투를 보아도 서글프고 종이상자 가득 실은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낡은 옷 입은 오십 대 남자 어깨도 서글퍼보였다 . 이상하게도 어린 아가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인 좁다란 등을 보아도 크림색 에쿠우스를 타고 선글라스를 쓰고 잔뜩 기름진 표정을 짓고 신호 기다리며 창틀에 팔 괴고 선 중년여성을 보아도 다 서글펐다 . 세영은 다른 이는 좀처럼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 삶 저편에서 느릿느릿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검은 실체가 왜 그렇게 또렷이 느껴지는지 . 그리고 그 실체가 조만간 인간을 숨도 못 쉬게 덮쳐누르는 단말마 [斷末摩]를 실감할 정도였다 . 아니, 내게는 삶 자체가 단말마의 순간이니까...중얼거리곤 했다 .










“오늘도 버섯샤브샤브 어때 ? ”

조구연은 번번이 이 집으로 부르는 게 미안해서 그런지 먼저 의중을 떠보는 거였다 .사실은 이 집이 조구연 처제가 하는 집이란 걸 누구나 다 알았다 . 뭐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

“ 좋아요 . 선생님! 버섯이 몸에 좋잖아요 . ”

“ 그래 . 이게 그렇게 좋대 . 항암작용을 한다잖아 . ”

세영은 재빨리 금기 식품 목록에 버섯을 적어 넣는다 . 버섯, 잊지 말자 .

“여! 정세영 여사! 잘 있었나 ? 다이어트를 해서 아주 여고생처럼 보이네. ”

세영은 느닷없는 찬사에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서 무르춤하고 있는데 오명순이 비명을 지른다 .

“ 몰라요, 체중 얘기 하지 마세요. 호호호!”

처녀 때는 그런대로 날렵했던 오명순이 아이 하나 낳을 때마다 10 킬로씩 늘었다고 한탄인지 자랑인지 하던 게 생각났다 . 오명순은 아이가 네 명이었다 . 네 명. 두 명 키우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워 헐떡거리는데 오명순은 네 아이에게 다 사교육 혜택을 입게 하는 걸로 유명했다 . 일명 족집게 과외라나 . 언젠가 그래도 오지랖 넓은 박치자가 오명순에게 세영을 소개시키며 막내 영어를 가르치라고 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 그러나 오명순이 , 가정 전공한 애가 어떻게 영어를 가르치냐고 퇴박을 놓았다는 소식도 따라왔다 . 조용히 .

“그래. 정세영 여사는 돈 번 거야 . 요즘 살 1 킬로 빼는데 214 만원 씩 든다잖아 . ”

무엇을 근거로 하는 얘기인지는 몰라도 나는 돈 벌었군. 가만히 앉아서 . 세영은 그냥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 그나마 이정목 선생이 나온대서 한 번 보고 싶은 심정도 있어서 나온 건데 그냥 일어서고 싶기도 했다 . 봐서 뭐하나 ? 어린 시절, 왜 그 선생님이 그렇게 좋았던가 자신의 마음을 더듬어 보았다 . 늘 조용하고 박정희 독재를 에둘러서 비꼬는 ,조금은 시니컬한 말투가 좋았던가 . 아니면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던 세영을 불러다 놓고 이건 왜 틀렸냐 ? 이거 잘 봐라, 이렇게 푸는 거야 하면서 세심하게 마음 써주는 그 다정함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일까 ? 세영은 수학 시간이 되면 당번이 아니라도 교무실에서 1 학년 8 반 교실로 이어지는 복도를 대걸레로 닦았다 . 그리고 앞문에서 교탁까지 더 성실하게 닦았으며 칠판과 교탁 정리를 하고 깨끗하게 닦은 물 컵에 물 한 잔을 따라놓고 종이 뚜껑까지 덮었다 . 이정목 선생님이 들어왔을 때 기분 좋게 강의하시도록 최대한 배려를 했다 . 아이들이 너 이정목 선생님 좋아하지 ? 물으면 응, 나, 이정목 선생님 좋아해, 하고 당연하다는 듯 답변했다 . 아이들은 아, 그렇구나, 좋아하는구나. 하고 인정했다 . 총각선생도 아니었고 뛰어난 미남자도 아니어서 아이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 그런데 이정목은 고 2가 되자 먼데 학교로 전근을 가버리고 그걸로 그만이었다 .




3 .

그런데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한 노년 남성이 방으로 들어왔다 .

“ 여! 안녕들 하신가 ? ”

목소리도 늙는다 .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세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자신이 예견했던 불행이 눈앞에 파노라마사진처럼 연달아 펼쳐질 때 느끼던 당혹스러움 같은 것 . 그 사진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강도가 더해져서 나중에는 고도의 충격을 완화시켜줄 장치조차 없을 때. 친구들이 더러는 앉아서 더러는 벌떡 일어나서 이정목을 반갑게 맞는다 . 세영은 어정쩡하게 두 무릎을 바닥에 붙인 채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 아, 괜히 나왔다 . 이대로 조용히 방바닥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 나는 아직도 삶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는가. 어리석은 희망은 언제나 자신을 배반하고 삶의 냉혹한 실체를 보여주곤 했는데 .

“이게 다 누구야 ? ”

이정목은 이 모임에 처음인 모양이었다 . 치자는 경우에 따라서 부르는 사람들이 달랐다 . 함께 해외여행을 갈 때는 세영을 젖혀놓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 아파트 재건축 딱지를 살 때도 세영을 젖혀 놓는 건 당연했다 . 부부동반 모임을 할 때는 세영과 정우가 빠져야 했다 . 고가의 오페라 관람을 할 때도 세영은 빠졌다 . 그러고 보니 세영이 이 모임에 나온 건 꽤 오래 전이었다 . 뭐, 오라고 해도 잘 안나왔지만 .

아마도 고교 때 선생님들을 부를 때도 기준이 있는 모양이었다 . 아마도 그 기준은 얘네들이 정하는 거겠지 .어쨌든 세영은 가능하다면 이 두어 시간이 무난하게 흘러가주기만을 바랐다 .




“ 흠! 여사님들은 다 경기가 좋은가 그대로구먼. ”

조구연이 다시 한 번 듣기 좋은 말을 했다 . 인사 삼아 . 아무리 제자라도 나이가 드니까 말을 놓기가 힘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잘 나가는 사모님들이라 말 놓기가 껄끄러웠던 것일까 ?

“아유~ 선생님은 자꾸 여사님이 뭐예요 ? 이름 부르세요 . ”

치자가 호칭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

“ 뭐, 아무려면 어떤가 ? 다같이 나이 먹어가는 처지에 . ”

이정목이 점잖게 정리를 했다 .

“ 정말이요 . 저희들이 벌써 낼 모레 쉰이잖아요 . 77 년도에 졸업했는데. ”

“ 벌써 그러냐 ? 참 오래 전 일인데 내 마음은 아직도 삼십 대 그 시절과 달라진 게 없다 . ”

그 말만은 진심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스쳤다 . 사실 세영도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이 마흔 아홉이란 사실을 잊곤 했다 . 그러나 뭐 마흔 아홉이면 어떻고 쉰이면 어떻단 말인가 ? 달라질 게 아무 것도 없다 . 나이 먹어가고 늙으면 죽는 거다 .

“세영이는 왜 조용히 있니 ? 넌 어디에 사니 ? ”

기억 속 그 소녀가 아니어서 그럴까 ?이정목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세영을 바라보았다 .

“ 아, 예. 수원 살아요 . ”

“ 수원에 왜 ? ”

“ 시댁이 수원이어 서요 . ”

정말 대답하기 싫은 신원 조회 같은 게 시작된 셈이다 .

“그렇구나 . 부군은 뭐하시고 ?”

“예. 전에는 사업했는데 지금은 다른 거 준비 중이에요 . ”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친구들 눈길이 신경 쓰여서 세영은 몹시 불편했다 . 사업은 웬 ?하는 악의를 읽을까봐 그랬다 . 그런데 세영 자신이 눈길을 안 마주쳤기 때문에 누가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 그러나 이정목은 눈치챘는지도 모른다 . 세영의 말이 빈말이란 것을 . 오래된 낡은 옷, 돈 들이지 않은 머리 모양. 그나마 생머리라서 좀 감춰지는가 . 번쩍거리지 않는 귓바퀴와 손가락과 목덜미. 이것을 장식 없는 정결성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세영은 화장실 가고 싶은 걸 꾹 참는다 . 불안해졌다 . 예전에 조구연도 그런 걸 물었다 . 그때 세영이가 화장실 간 사이에 , 아유~ 그런 것 묻지 마세요 . 요새 세영이 처지가 안 좋아요 하는 , 사려 깊게 한답시고 한 치자 말을 그만 듣고 말았다 . 그래서 상처 입었던 오래된 기억 때문이었다 . 역시 사려 깊지 못한 조구연은 “ 가난은 죄가 아니야. 세영아! ” 하는 격려사를 해서 세영은 더욱 가슴이 졸아드는 경험을 했다 . 누가 죄라고 했길래 사람들은 그런 말을 쉽게 하는 건지 .




버섯샤브샤브가 끓었다 . 조구연은 고기가 특별히 더 좋은 거라고 강조했다 . 미국산 쇠고기 절대로 먹지 말라고 충고도 했다 . 그러면 나는 미국산 쇠고기만 먹어야겠다, 세영은 다시 다짐한다 .

“ 그런데 미국 가보면 미국 사람들도 상류 계층은 고기 보다는 야채 위주로 먹으려고 하는 풍조가 있어요 . 쇠고기를 먹어도 스테이크용 안심살로만 먹으려 하고요 . 가난한 사람들이 햄버거 싸니까 손쉽게 실컷 먹고 운동할 시간 없어서 살찌는 거죠 . ”

“ 아! 그렇겠지 . 참! 너희 애들은 다 미국에 있지 ? ”

“ 예. 얼마 전에 다녀왔어요 . 아무래도 집을 하나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 장차 미국에서 자리 잡을 지도 모르고요 . ”

세영은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치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 집 사는 게 마치 동네 가게에서 사이다 한 병 사는 것처럼 손쉽게 말하는 치자. 치자 얼굴은 세상이 만만해서 친화력을 가진 사람들 특유의 황금빛이 은은했다 . 특히 이마가 그랬다 .

“ 아무래도 그렇겠구나 . 미국도 집값 비싸지 ? ”

“ 그럼요 . 웬만하면 백만 달러에요 . 걔네는 아파트 아니고 주택이니까 좋기는 하죠 .”

“ 거기도 부동산 버블이 우려된다고 하던데 ? ”

절대로 지기 싫은 오명순이 거들었다 .햄버거 먹고 살찐 가난한 미국 사람들 멘트에 상처 받은 기색이었다 . 하지만 티내지 않는 게 교양 .

“그렇다고 못 살 거야 없지 . 어디든지 부동산이야 오르막내리막이 있지만 뭐 큰 손해 본 사람은 없더라구 . ”

“ 좋은 건 혼자만 알지 말고 같이 나누지 . ”

이정목이 늙은 목소리로 껴들었다 .

“ 예. 알았어요 . 선생님! ”

치자는 명쾌하고 사교적으로 대답했다 .

“ 너희 아버님은 잘 지내시지 ?”

“ 그럼요 . ”

“ 참 유능한 장학사이셨지. 박철 장학사 하면 사람들이 다 벌벌 떨었지 . ”

장학사가 그렇게 권위 넘치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었던가 ? 치자 어머니도 약사를 거쳐 전두환 시절 국회의원을 지내서 그런가 . 무남독녀 치자가 시집갈 때 뭐를 얼마만큼 해갔다더라 하는 것은 동창들 사이에서 다 아는 얘기였다 . 그래서 치과의사랑 결혼했다더라는 소문은 좀 악의가 섞여있었다 . 걔는 지방대 나왔잖니......소곤소곤......




“ 백세주라도 한 잔 하지 . ”

“ 차를 가져 와서요 . ”

“ 낮인데 어때 ? 아니면 대리 부르면 되지 . ”

친구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술을 한 잔씩 받았다 . 정우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 정우야말로 이혼녀 소리 듣고 아이도 조용히 키우며 아파트 투기에도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이 자리에 왜 나오는지 몰랐다 . 그런데 그런 정우를 가만 놔두지 않는 사려 깊은 은사님들 .

“ 정우는 어떻게 지내 ? 좋은 일은 없고 ? ”

이정목도 아마 정우가 이혼했단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치자가 미리 전화해서 코멘트를 했는지도 모른다 .

“ 좋은 일 별로 없어요 . 그냥 살아있는 게 좋은 일이에요 . ”

정우에겐 살아있는 게 좋은 일인가 ? 나랑은 정 반대구나 .

“그래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좋은 일 좀 만들어봐 . ”

“ 그거야 제가 아니고 성숙이가 할 일 아닌가요 ? 저는 이미 오래 전에 결혼 생활의 단맛 쓴 맛 다 본 처지이지만 성숙이야 처녀니까 정말 경험이 필요하죠 . ”

“ 그거야 그렇지 . 하지만 이성숙 선생은 눈이 높아서 . ”

이미 조구연은 성숙에게 몇 번 중매를 했지만 좀처럼 성사가 되지 않았던 터라 다 아는 눈치였다 .

“ 어머머! 선생님! 저 눈 안 높아요 . 하지만 사람들이 여교사는 돈이 많을 거라고 오해하고 평생 벌 수 있는 직장이라 좋다고 하면 그만 정이 싹 떨어져요 . ”

“ 사실이잖아 . ”

평생 벌 수 있는 직장 . 그게 좋은 건가 . 사실 세영도 결혼할 때 시댁 식구들이 그 조건을 맘에 들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 그런데 남편은 당장 학교 그만둬라, 자기가 다 호강시켜주겠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 그런데도 세영이가 학교에 더 다녔던 건 돈을 벌어서 친정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주고 싶어서였다 . 평생 목돈이란 걸 만져본 적이 없는 도박꾼의 아내였던 어머니, 그리고 그 자식들......하지만 돈을 벌어서 친정에 갖다 주기 전에 시어머니는 통장 자체를 맡기기를 원했다 . 세영은 뭐가 잘못되어간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 챘지만 사업하는 남자는 으레 다 그런건지 알았다 . 그리고 그렇게 푼돈을 갖다주면 목돈이 들어오는 걸로 알았다 . 하지만 좀처럼 목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 세영이 받는 월급은 거의 시댁 생활비로 들어갔다 . 어쩌자고 시집갔다가 돌아온 시누이와 그 자식들 생활비도 세영의 노동으로 충당해야 하는 건지 그것도 잘 몰랐다 . 사랑한다고, 너만을 사랑한다고 너무나 간절하게 호소하는 남편의 진심을 믿고 싶었다 . 그런데 사랑도 돈 때문에 쪼들리기 시작하니까 진의를 의심하게 되었다 . 그리고 어느 날 그 사랑에 실체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 그 깨달음과 함께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서 우울증을 앓고 나니까 세영은 직장도 집도 없이 두 아이와 변두리 전세방에 내동댕이쳐진 채로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었다 . 그게 벌써 십 년이 넘었다 . 남편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가 . 알고 싶지 않아서 찾지도 않았다 . 더 이상한 건 남편이 이혼을 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 왜 그럴까 ? 정말 사랑하는가 ? 아니면 나 몰래 보험이라도 들어놓은 건가 ?

“이성숙이와 윤정우가 원하는 신랑감이 어떤 사람들인데 ?”

조구연이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우선 제가 사랑할만한 사람이요 . ”

성숙은 까르륵 웃었다 .철저히 숨기는 건지 예쁜 얼굴인데 염문을 부린 일이 별로 없었다 . 아니, 들어본 일도 없었다 . 정말 사랑을 원하는가 .

“ 저는 다 필요없어요 . 제 딸이 다 커서 자립할 때까지 애나 잘 키우는 게 인생의 목표에요 . ”

“ 정말 ? ”

오명순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그러나 못 믿겠다는 듯 물었다.

“ 그렇잖음 ? 남자를 어디 가서 만나며 나 같은 자발적 비정규직을 좋아할 아둔한 남자가 있겠냐 ? ”

“ 그래도 연애도 못하고 청춘을 보내는 건 너무 안타깝잖아 . ”

“ 청춘은 무슨...쉰이 낼 모렌데. 더구나 나같은 사교육 자영업자는 남자 만날 건수도 없어 . 첫째 학부모는 다 어머니들 뿐이고 너네 남편같이 잘 생긴 남자 꼬셔볼래도 만날 창구가 있어야 말이지 . 그래서 그냥 감우성이나 좋아하면서 참고 있어 . ”

오명순은 자기 남편이 도마에 오르자 웃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몰라서 긴장하는 표정이 되었다 .

“오명순 여사 남편이 그렇게 잘 생겼나 ? ”

이정목이 웃으며 물었다 .

“ 잘 생기면 뭐해요? 명순이 남편은 명순이 밖에 모른다는데요 .”

치자가 잘 아는 모양이었다 .

“ 그건 박치자 여사가 잘 모르고 하는 소리야 . 남자는 그런 동물이 아니에요 . 남자는 너나 할 것 없이 꽃을 보면 꺾고 싶어 해요 .세상에 자기 아내만 좋아하는 남자는 아무도 없어 . 내가 단언하건대 그건 교묘하게 안 들키거나 아니면 기회가 없거나 그런 거지 . ”

이정목이 자르듯 말했다 .

“ 어머! 선생님도 그러세요 ? ”

“그럼, 나도 어디서 귀여운 과부나 하나 꼬셔가지고 밤낚시나 다니면 좋겠다, 그런 생각 하는데......”

“ 근데 왜 못하세요 ? ”

“ 못 하는 건지 아닌지 누가 아나 ?”

이정목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 그 순간은 삼십 년 된 은사와 제자 사이가 아니라 함께 나이 먹어가는 중년 노년의 남녀처럼 보였다 . 완전한 공감대. 그런데 세영은 자꾸 오줌이 마려웠다 . 불안감이 더 심해졌다 .

“ 참! 박치자 여사! ”

다시 진지하게 이정목이 불렀다 .

“ 예 ? ”

“ 내 딸이 지금 국립교향악단 바이올리니스트야 . 이탈리아도 갔다 왔지. 애들 레슨도 좀 하고 ....그러니까 부군에게 말해서 후배 좀 있으면 소개시켜줘 . 얼굴은 뭐 그저 그렇지만 성형수술을 해서 봐줄만 해. ”

“그래요 ? 선생님! 하지만 요새 젊은 치과의사들 너무 돈만 밝혀요 . 열쇠 세 개 , 그런 거 옛말이 아니에요 . ”

“ 세 개까지는 모르지만......”

“ 아니, 선생님! ”

갑자기 정우가 끼어들었다 .목소리에 기묘한 긴장이 서려있었다.

“잘 키워서 예술가로 대성했는데 왜 열쇠를 끼어서 시집을 보내요 ? 어디 모자란 것도 아니고 . ”

너무 당돌한 발언이어서 모두들 갑자기 당황스러워했다 .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자 오명순이 차분하게 말했다 .

“ 그래도 정우야! 그런 게 아니야 . 결혼은 개인끼리 하는 게 아니고 집안과 집안이 결합하는 거니까 조화로우면 좋지 않니 ? 사실 개인끼리 하는 것도 요새는 서로 직업 따지고 연봉 따지고 그래서 삼성맨하고 여교사가 귀족 커플이라고 하잖아 . 걔네들이 뭐 서로 다 좋아해서 결혼하는 거겠니 ? ”

“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니 ? 아무리 세상이 그렇다고 하지만 몸에 좋은 버섯샤브샤브 먹으면서 돈 얹어서 남녀 결혼시킨다는 얘기 들으니까 정신에는 안 좋구나 . 너희들 가만히 얘기하는 거 듣고 있으니 나처럼 남편 없고 돈 없는 여자는 이 자리에 오면 안 될 것 같구나 . ”

“ 넌 뭐가 그렇게 당당하니 ? 너도 우리나라 잘못된 교육제도 덕에 돈 버는 괴외강사잖아.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 너는 돈많은 집 애들 가르쳐서 벌어먹으면서 왜 돈 가진 사람들을 그렇게 비꼬는 건데 ? 그렇게 잘났으면 너도 당당하게 돈 벌지 그러냐 ?”

“ 내가 당당하지 못할 게 뭔데 ?나는 그래도 애들 가르쳐서 보수 받는 지식 노동자야 . 너희들 얼굴을 백설공주 계모 거울에 비춰보라 . 남편 번 돈으로 부동산 투기하고 그 지대 차액만큼 이윤 얻어서 다시 임대업하고 그 돈으로 새끼 외국유학 보내고 그 새끼들 다시 이 사회 10 % 차지해서 다시 그렇게 호의호식하면서 살고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 ?그동안 돈 만원이라도 후원금 내줘서 참고 나왔지만 정말 점입가경이다 . 선생님! 죄송합니다 . 잘난 척하는 저는 먼저 가겠습니다 . ”




4 .

정우가 먼저 일어섰다 .그리고 소리지르던 기세와는 달리 차분하게 문을 열고 나갔다 . 세영은 점점 더 오줌이 마려웠지만 꾹 참고 있었다 . 그러다 정우가 나가버리자 더 참을 수 없어서 , “ 얘! 정우야! ” 하면서 잡는 척하다가 함께 일어나서 그 방을 나왔다 .

정우는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고 있었다 .

“ 정우야! 어디 가니 ? 좀 참지 그랬니 ? 은사님들도 오셨는데 .”

“ 은사는 개뿔...다 역겨운 속물 보수 반동들 . 타라 . 우리 니콜 홀로프세너 감독이 만든 ‘돈많은 친구들 ’ 보러 갈래 ? 시네큐브에서 하던데. ”

“ 그래. 근데 쟤네들이 언제 영화에 출연도 했니 ? ”

“ 모르지. 모르니까 가서 한 번 보고 얘기하자. 안전벨트 매라. 아이 씨팔! 후원금도 못 받고 성질만 냈네. ”

정우가 클러치를 살짝 밟자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

“ 근데 차 새로 뽑았네 ? 이게 뭐야 ? ”

“ 응. 소렌토야 . 남자나 한 번 꼬셔서 카섹스 해볼라고 할부로 뽑았다 . 하하 ”

참! 오줌을 안 누고 나왔네. 그렇지만 세영은 아까처럼 불안하지 않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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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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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편집이다. 매우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대부분 다 재밌다.

그런데 이 책을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사람은 정말 특이하다.

정말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해볼 특이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데 ' 어린 신들의 학교'라는 이야기는 어린 신들이 학교에서

인간들을 조종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백성들을 살기 좋고

선진국으로 만드는 게 목표이다. 나도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인형이나 물고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고 나도 누군가가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 그리고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이라는 이야기는 미래의 시간적 배경을 보여준다 .

다. 뤽이라는 사람은 주인의 기분에 맞춰서 말을 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가구들을 귀찮아했다. 생명도 없는 물건 주제에 입력된 정보만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자신의 생각을 읽고, 이해하는 게 너무 싫었다.

하지만 어떤 여강도 덕분에 자신 또한 생명이 없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뤽이 자신이 휴머노이드 라는 걸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황당하고

어이없었을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을 만든 사람을 원망했을 것 같기도 하다.

다른 기계들과는 달리 감정까지 갖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로봇이 지구를 독차지하게 된다면 지금과는 생활이 많이 다를 것 같다.

힘들게 공부할 필요도 없이 그냥 머리에 칩을 넣으면 되고, 기술도 많이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 같은 휴머노이드라도 사람은 아니니까

휴머노이드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이 괴로울 것 같다. 그리고

'말 없는 친구'라는 이야기는 세 여자가 같이 강도질을 해서 돈을 모았는데

그걸 그 중 한 명이 빼앗어 가려고 하다가 한 명 빼고 모두 죽는 이야기다. 그

리고 죽인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살인 현장에 있던 나무에 거짓말 탐지기를 써서

범인을 찾아내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나무가 나뭇잎을 떨어뜨려서 죽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보여준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근거가 있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고 '완전한 은둔자'는 어떤 사람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불필요한 몸을 모두

제거한 후 뇌만 남겨서 영양액 속에 보관한다는 이야기다. 그

의 손자의 손자까지 뇌를 보관했지만 허무하게도 아이들이 뇌를 던지고

놀다가 뇌는 죽어버린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미래에 관한

이야기 같다. 자식들이 노인들을 모시기 귀찮아서 노인들을 처리해주는 회사,

시간여행 같은 이야기들도 있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말 없는 친구는

나무와 사람의 우정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친구끼리의 배신을 말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재밌었다. 이 작가가 쓴 이야기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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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훔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외국편 1
염명순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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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빌렘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빈트 지방의 그루트 준데르트 라는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1년 전 빈센트의

어머니가 죽은 아이를 한 명 더 낳았는데 빈센트는

그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빈센트는 어려서부터 말이 없는 고독한 아이었다.

그는 친구와 노는 대신 산속에서 곤충을 채집하고

관찰했다. 열두 살이 되어 기숙학교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책을 읽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 기숙학교도 돈이

부족해 열다섯에 그만 두어야 해서 빈센트는 그림을 파는

'화상'으로 일했다.




그 때 빈센트는 첫사랑에 빠졌는데 빈센트가 좋아한 여자는

약혼한 사람이었고 그는 그 첫사랑 이후 성격이 더욱 격해지고

말수도 훨씬 더 줄어들었다. 그러던 중 그는 종교에

빠지게 되고 결국 화랑에서 해고를 당하고 만다.

빈센트는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가난한 탄광마을인

보리나주에서 전도를 시작하는데 브뤼셀 복음전도협회는

그의 희생정신과 열정이 도를 넘는다고 생각해 여섯 달이 지나자

그의 전도 자격을 박탈해버린다.




그 일로 충격을 받은 빈센트는 종교에서 멀어지고 다시 그

림을 그리기로 결심하는데 가족들은 그의 이런 늦은 선택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직 그보다 네 살 어린 테오 만이

그를 격려하고 도와 줄 뿐이었다. 그는 형을 잘 이해해서

편지도 내내 주고받는다. 그는 또 케이라는 여자를 사랑했지만

케이는 그의 청혼을 딱 잘라 거절하고 부모님이 서로 반대하여

이루지 못한다. 다음은 시엔이라는 창녀를 좋아하게 되는데

그녀를 그림모델로 만들어 동거를 하게 된다. 그러나

시엔의 엄마는 이런 가난한 화가와 살 바에는 그냥 다시

창녀를 하라고 하고 빈센트의 마을에는 빈센트가 방탕한

생활을 한다고 소문이나 그들은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1888년 2월 20일, 결국 그는 2년 동안의 파리생활도 접은 채

아를르라는 이국적인 마을에 오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밝은 색채의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목숨을 끊을 때까지 불과 3년 동안에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그림들 대부분이 그려진다. 아를르에서

두 달 정도 머무른 빈센트는 그가 그토록 원하던 ‘노란집’에서

살게된다. 이집의 바깥벽은 그가 가장 좋아했던 색인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햇빛이 잘 드는 집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그의 생애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보낸다. 그러나 이 시기는

고작 여섯 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점점 정신적으로

쇠약해 졌고 그는 어느 날 귀를 잘라서 창녀 라셸에게 주고

쓰러졌다고 한다. 나도 빈센트가 왜 창녀한테 귓불을 잘라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라셸이 평소 빈센트가 좋아하던 여자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빈센트는 아를르의 병원에 입원했고 다시

생레미 요양원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 스물 한번 모사

했다고 한다. 건강이 조금 회복되자 그는 파리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미술 애호가인 가셰 의사를 만난다. 그들은

서로 마음이 통해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빈센트는 6월말에

테오에게서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편지를 받는다. 매달 받던

생활비도 세 번 이나 받지 못한 빈센트는 같이 휴가를 가자고

했으나 테오는 가족들과 함께 네덜란드로 떠난다. 가셰

의사와도 말다툼을 벌인 그는 절망감에 빠져 결국 총으로

자신을 쏴 자살을 하고 만다. 동생인 테오도 1년 후 자신의

형과 같은 무덤에 묻히게 된다.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빈센트도 감정 기복이 큰 화가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자살직전에 그린 '까마귀가 나는 밀밭' 과

행복 했던 시절에 그린 '종달새가 나는 밀밭' 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특히 대조된다.

자살 직전에 그린 그림은 색깔이 암울한데 행복했던 시절에

그린 그림은 밝다. 그리고 내 생각엔 빈센트는 이중섭과 닮은 것

같다. 병상에 있을 때에도 그 둘은 그림만은 꾸준히 그렸고

가난하고 외로워서 마음의 병을 얻은 것도 그렇다.

내가 예술가에 대한 전기문을 별로 안 읽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아는 예술가들은 다 조울증 환자에 끊임없이 작품을 쓰고

이른 나이에 죽었다. 하여튼 빈센트는 내가 아는 그림과

내가 모르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빈센트가 좋은 환경에서

그림을 그렸더라면 훨씬 많고 우수한 그림을 많이 그렸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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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플러의 가을 - 쉼표와 느낌표 2 마음이 자라는 나무 37
유모토 가즈미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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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키가 여섯 살 때  아빠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지만 사실은 자살이었다. 치아키의 엄마는 슬픔에

잠겨서 포플러 장으로 이사를 갔다.

어떤 할머니의 집 이층에 세를 들어 사는데 사사키,

니시오키 라는 사람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치아키가 병에 걸렸다.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 살다 보니

그런 것이다.

엄마는 일을 나가야 해서 주인 할머니가 돌봐 주기로 했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차츰 정이 들고 할머니가 편지를 모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래된 서랍 안에 죽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모아놓고 있었다. 그 서랍이 가득 차면 세상을 떠날 것이라며

서랍을 보는 사람은 할머니 대신 편지를 하늘나라로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치아키는 무서워서 그 서랍 안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사무라는 아이와도 친해졌다.

그런데 오사무와 함께 성당에 갔을 때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위해 대신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 우리 아빠는 누구를 위해서

죽었을 지 생각해보았다.하지만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런데 좋은 일이 생겼다. 엄마가 아빠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치아키는 당연히 그것을 할머니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치아키가

아홉 살이 되던 해, 엄마의 재혼으로 포플러 장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치아키는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에게 할머니가

죽었다는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편지를 남겼다고 해서 비행기를

타고 갔다. 그런데 할머니의 관 속에는 치아키와 엄마의 편지 외에

많은 편지가 들어있었다.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일이

말을 걸어 편지를 보내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곳에서 엄마의 편지를

읽게 되었다. 그 때 처음으로 아빠의 자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엄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치아키도 아빠를 잃었고, 할머니도 남편을 잃었다. 그래서 그런지

둘은 뭔가 잘 통하는 것 같다. 치아키는 처음에 아빠 생각을 하면

무서웠다. 아마도 아빠에 대한 말을 피하는 엄마의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편지를 쓰면서부터 괜찮아졌다.

할머니도 떠난 남편에게 편지를 썼을 것 같다. 그리고 친한 사람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런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치아키도 아빠에 대한 말을 하지 않는 엄마가 답답했을 테지만

엄마도 많이 불안했을 것 같다. 할머니의 편지로 인해 둘 사이의

오해가 풀리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할머니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것 같다.그처럼  살아서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다 .그런데 우리는 늘 누구에겐가 폐만

끼치고 사는 것 같다 . 나만 그런 건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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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사이더 하우스'라는 라세 할스트롬 영화를  다시 보았다 .

호머웰즈는 언덕위의 자그마한 고아원에서 자라고

리치 박사가 아들처럼 생각해서 

의술까지 전수받을 만큼 믿음직한 청년으로 자란다 .

그런데 여성은 낙태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믿어

낙태수술을 해주는  리치 박사와 달리 호머는 낙태는 기피하고

출산만 시술한다 . 말하자면 무면허의사이지만

리치박사는 자신의 경력이 호머의 것이라고 공언한다 .


이곳의 고아들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영화를 '킹콩'이라고 믿고 살만큼

순수하다 .  그렇게 호머는 열 여덟이 된다 .

어느 날 도시로부터 부터 찾아와 낙태수술을 한 캔디와 윌리로 부터

도시생활에 대해 얼핏 전해들은 호머는 한평생 고아원에서 보낼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들과 함께 고아원을 떠나 윌리네 사과농장에서 일한다 .

 

사과주스 만드는 공장의 규칙(사이더 하우스 룰)을 지키지 않는

흑인 노동자들과 함께 살면서 호머는 세상의 규칙이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를 깨달아간다 .

 

이 영화는 12 세 관람가인데 12세~19 세가 보면  안되는 장면이 나온다 .

19 금 심사위원이 판단할 문제이지만 미성년자는 안 보는게 좋다 .

이 영화는 호머가 통과의례로 사랑을 하고 낯선 세계를 경험하는

성장영화같지만 아마도 원제에 있듯이 'The Cider House Rules'

세상의 규칙에 관해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

 

그러나 어쨌든 사이더 하우스에 룰이 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룰이 있다 . 이건 대개  국회의원이 만들거나 국가가  만들어서

그걸 안지키면  구속해서 처벌을 한다 .

그 처벌에 승복할 때도 있지만 승복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

 

오늘 조간에  보니 아고라  논객'권태로운 창' 이 구속영장을 받아서 구속되었다는

뉴스가 실렸다 .처음에 그 '권태로운 창' 이라는 아이디를 봤을 때,

'인간하고는~엄청 모냥부리고 있네!' 싶었다 .

권태로운 윈도우인지 권태로운 스피어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거든지 자기 인생을 환유하고 있구먼, 싶었다 .

(이 친구는 저랑 4 년 동안 같이 학습하고 라면 먹은 동창입니다 ^^)

 

어쩌면 시를 쓴다고 했던 거 같으니 아마도' 윈도우'일 것 같다 . -.-;;

이 친구가  한 행위가 구속까지 될 사안인가 생각해보면

명박정권은 좀 오버하면서 변죽만 울리는 어설픈 액션을 하는 게

어설픈 어릿광대같다 .

 

이제 세상은 어떻게 굴러갈까 ?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세상은 어이없게 굴러간다 .

 

부자들 세금을 깎아주고

난데없이 간첩이 출몰하고

초등생도 입시 전선에 서고

서울 고교생은 굉장히 먼거리 통학을 하며 고교에 등급이 생기는데다

비정규직은 평생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암울한 처지가 되었다 .

그뿐 아니다 .

나라를 '하나님'께 봉헌하고

스님들은 지리산에서 오체투지로 전국을 숙연하게 만들거고 (9/4 부터)

광우병 걸렸을지 아닌지 모를 쇠고기 나도 모르게 먹게되고

(5년 후부터는 나도 뇌에 구멍이 뚫릴지도 ....)

운하판다고 (뭐 다른 용어로 미화를 할지라도 결국 그게 그거) 질척거릴 거고

공기업 매각해서 모자라는 세수 메울 거고 ......

힘없고 능력없는 사람들은 벼랑끝에 몰린 다음,

그리고 명박 패밀리는 한 밑천 잡고 물러난 다음에

그 다음에 오는 정권은  설거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공황장애 비슷한 것이 생겨서

밥만 먹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가

그 밥마저도 보장이 안될지도 모른다는 암담함이 몰려오는 아침이다.

 

어쨌든  아침은 먹었다 . -.-;;

 
200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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