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장편소설 ‘댄스 댄스 댄스’에서 같이 제설 작업을 기분 좋게 했던 아름다운 매춘부 메이가 살해당하고 그 일로 인해 주인공은 고탄다를 만난다.


두 사람은 메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 지난 시절을 회상한다. 중학생 시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자신이 보기 싫고 혐오스러운 존재라고 여기던 때. 1960년대. 하지만 그때에도 그런 현실을 잊게 해주는 비치 보이스가 있었다.


주인공과 고탄다는 비치 보이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대단하고 엄청난 밴드들 - 크림, 더 후, 레드 제플린, 지미 핸드릭스를 한데 묶어 버리고 주인공과 고탄다는 오로지 비치 보이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하루키는 음악 에세이 격인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에서도 브라이언 윌슨에 대해서 할애할 정도로 그에게 애정이 깊다. 또 여행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서도 브라이언 윌슨의 공연을 보러 가서 신났던 추억을 기록했다. 다 알겠지만 브라이언 윌슨은 비치 보이스의 중추적인 멤버다.


브라이언 윌슨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건 순전히 아버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전기 영화 ‘러브 엔 머시’를 보면 잘 나온다. 대체로 팝 스타들은 아버지 때문에 스타가 되기도 하지만 나락으로 간 경우가 많다. MJ가 그렇고, 비욘세도 아버지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제이지를 만났고, 근래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그렇다.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도 그렇다.


브라이언 윌슨이 누구인가. 비틀스의 존 레넌이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이 만든 노래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브라이언 윌슨의 ‘팻 사운드‘ 앨범은 그야말로 역작, 명반, 최고다. 그 지독한 고통에서 벗어나면서 팻 사운드 앨범을 만들었다. 그 앨범을 들은 비틀스 녀석들도 어어? 우리도 이제 악동 짓이나 하면서 신나는 노래나 부르면 안 되겠는걸. 하게 되었다. 물론 브라이언 윌슨 역시 존 레넌의 음악을 듣고(특히 조지 해리스가 인도로 가서 노라 존스의 아버지, 라비 샹카를 만나서 음악을 하고 돌아와서 만든 음악) 정신을 차렸다.


이제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과 비키니만 부를 수 없군.


하루키는 이해할 수 없으면서 스며들듯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비치 보이스에 대해서, 브라이언 윌슨에 대해서 4반세기 동안 자신의 소설과 에세이에 조밀하게 분리하여 독자들이 하나씩 찾아가게 끔 보물을 숨기듯 해 놨다.


소설 ‘댄스 댄스 댄스’에서 두 사람은 가랑비가 내리는 자동차 안에서 비치 보이스의 음악을 듣는다. 두 사람이 듣는 비치 보이스의 노래 중에 409가 있다. 1962년 곡으로 들으면 아, 비치 보이스 군. 하게 된다.





https://youtu.be/GHRJCcCYAF4 <= 비치 보이스의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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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은 이렇게 생겼다



내가 일하는 건물에는 폭군이 산다. 폭군은 평소에는 감정을 숨기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조금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군의 면모가 가감 없이 드러난다. 여기는 학교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하관계에 놓인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모두가 폭군의 한 마디에 눈치를 보며 그가 떠나고 난 자리의 텅 빈 공간에는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 한다. 폭군의 특징이라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들 앞에서는 작은 눈이 더 작아진다. 등이 펴지는 일이 없다. 하지만 폭군의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한껏 배를 드러낸다. 얼굴에서 이미 선을 그어 놓고 사람들을 대하는 표정이 있다. 폭군은 감정 기복이 심하다. 줬다가 뺐어가기도 하고 소리를 지를 때는 사람들을 향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내뱉기도 한다. 폭군은 상대방의 덩치에 상관없이 맹렬하게 달려든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두 배의 덩치를 가지고 있어도 폭군의 면모가 나타날 때는 돌진한다. 심지어는 경찰들과도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 폭군의 욕심은 이 건물의 왕이 되고픈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그어 놓은 어떤 선에서 벗어나거나 넘어오면 폭군은 그대로 가서 소리를 지르고 욕을 남발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폭군은 영화를 보지 않는 것 같다. 아마 태어나서 한 두 번쯤 봤을, 그런 타입의 인간인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영화 같은 건 절대로 보러 가지 않는 인간. 그래서 영화는 살아가는데 전혀 필요 없다고 느끼는 인간. 그런 인간이다. 감정이 오르지 않을 때에는 전혀 감정이 축소되지 않는다. 어떤 면으로는 부러운 구석이 있는 인간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게 구조를 구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나 이외의 타인의 흥망성쇠에 관여를 하지 않는다. 폭군은 원래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벽을 쳐 버린다. 벽을 쳐 놓고 벽 밖에 있는 사람이 선을 넘는 행동을 하게 되면 폭군의 면모가 나오는 것이다. 봄이 오는 것, 계절이 오고 가고, 봄이 오며 내리쬐는 봄햇살에 대해서도 아무런 표현이 없다. 늘 대는 곳에 주차를 하며 만약 그곳에 다른 차가 먼저 주차를 한 날이면 폭군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이상하게 고생을 한다. 직원들은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한 채 누가 봐도 쓸데없는, 쓸모없는 일을 계속한다. 일하는 직원들이 2년 동안 여러 번이나 바뀌었다. 건물은 밖에서 보면 번지르르 좋아 보인다. 모든 화장실이 공사를 거쳤고 비데를 설치했고 비번을 달았다. 모든 층이 좋아지고 깨끗해졌지만 정작 사람들이 건물에 오지 않는다. 물고기가 오지 않는 개울물이 깨끗해봐야 무슨 소용일까. 영화를 전혀 보지 않는 폭군에게 영화를 한 편 보여주고 싶다. 드라이브 마이카를 보여주고 싶다. 제대로 한 번 보여주고 싶다. 상처를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 번 느끼 보지 않을까. 하지만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겠지. 감정이 없는 사람에게 감정을 가지게 하는 건 택시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을 듣는 것만큼 힘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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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는 다무라 카프카 녀석이 라디오 헤드의 ‘키드 에이’ 앨범을 줄곧 듣는다. 키드 에이 앨범이 어디로 갔는지 찾아도 없어서 할 수 없이 ‘더 밴드즈’ 앨범이다.


하루키는 ‘작가란 무엇인가’의 인터뷰에서 “제 책 ‘해변의 카프카’에서 주인공 소년은 라디오헤드와 프린스를 듣지요. 그런데 정말 놀란 게, 라디오헤드의 한 사람이 제 책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얼마 전에 라디오헤드의 앨범 ‘키드 에이’의 재킷을 보니 제 책을 좋아한다고 쓰여 있더군요. 아주 자랑스럽답니다”라고 했다.


라디오헤드는 20세기의 음악은 흥! 해버리는 하루키도 홀딱 반할 정도로 음악이 좋다. 라디오헤드의 초기작도 좋지만 정말 ‘키드 에이’ 앨범은 엄지를 번쩍 들고 싶을 뿐이다. ‘더 밴드즈’ 앨범도 나는 너무 좋아서 시디, 카세트테이프를 두 번씩 총 4번 구입해서 들었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들었다는 말이다.


특히 ‘더 밴드즈’ 앨범의 ‘더 밴드즈’를 대학시절 한 여름의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방에서 크게 틀어 놓고 한 손에 제임슨을 들고 모두가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듣고 나면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블랙 스타'를 들으면 스산하고 차갑고, 눈물이 나는 바람을 맞은 듯하고, ‘하이 앤 드라이‘는 마치 테킬라 통에 몸을 담갔다 뺀 느낌이다. 그리고 나이스 드림에 다다르게 된다.


나이스 드림-


푸른빛이 거대한 천장에 감돌기 시작했고 곧 푸른빛은 세계에서 모여든 이들에게 골고루 뿌려졌다.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고개를 들고 톰욕을 쳐다보았다. 모호한 눈빛의 톰욕은 노래를 불렀다. 나이스 드림 나이스 드림.


탐욕에 가득 찬 저항도 없었고 노출에 의한 굶주림도 없었다. 톰욕은 오직 노래를 불렀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안개처럼, 톰욕의 목소리는 푸른빛을 받고 모여든 그들의 마음에 울려 퍼졌다. 탐욕에 가득한 대중의 눈도 점점 따뜻한 자신들의 마음에 동화되어 간다. 기타의 리프 소리가 모여든 그들 내부의 잠재된 앙금을 풀어 주었다. 그들은 양손을 뻗어 톰욕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이스 드림 나이스 드림.


톰욕의 목소리와 기타 소리가 현실을 파괴했고 사람들은 톰욕의 노래에 맞춰서 양팔을 좌에서 우로 흔들었다. 노래는 공간을 제어했고 사람들의 가슴속 깊은 부분의 한 곳을 건드렸다. 나이스 드림. 나이스 드림. 우리는 톰욕의 목소리에서 가능성을 읽었다. 거역할 수 없는 감각과 물 같은 부드러움. 나이스 드림 나이스 드림.



작가란 무엇인가를 구입해서 읽을 때가 2014년이었는데 아직 그때 마르케스가 살아 있었는데 책을 읽는 도중에 그만 소식이 들려서 내가 직접 적어 넣었다. 2014. 3. 19. 그때는 아직 움베르토 에코도 살아있었지. 그렇다구요.


#라디오헤드 #더밴드즈 #Radiohead #thebends #murakamiharuki #하루키 #해번의카프카 #키드에이 #작가란무엇인가


라디오 헤드 - 나이스 드림

https://youtu.be/2vHByVGhm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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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3-16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reep은 어느 앨범에 들어있나요?
pumpkinhead도 아니고 radiohead라니 하며 듣던 기억도 나네요.

교관 2022-03-17 10:36   좋아요 0 | URL
크립은 1집에 있지요 ㅎㅎ
 

옛날 햄버거에 치즈를 하나 더 넣어서 먹으면 아주 맛있다. 거기에 버드와이저 한 모금이면 아아 행복하다.  선거가 끝나고 한쪽에서는 모든 것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과 또 다른 한쪽에서는 다 얻은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든 사람들은 오늘내일을 또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 한다.


러시아에서도 푸틴 때문에 국가 부도의 불안함이 극에 달해서 나라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다. 자신의 나라를 등지고, 고국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만 할까 싶다. 어떻든 오늘을 살아낼 것이다.


인간은 보통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모두의 행복을 바란다. 행복한 것이 마땅하겠지만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다. 모두가 행복한 것만큼 잔인한 것은 없다. 누군가 행복하다면 누군가는 지하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건 그 누구도 행복하지 말자고 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와 같은 말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은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기 전에 누구의 책임이라고, 어느 조직, 어느 단체, 어느 부서에서 책임이 있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게 낫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건 이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모호하고 불가능하다.


머릿속에서 행복을 버리면 어떻게 될까. 반드시 행복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꼭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행복이라는 그 찰나의 순간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수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원래 인간의 삶이 그러기 위해서 보내는 거야,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꼭 그래야 할까. 그러니까, 썩 행복하지 않은 많은 시간들, 덜 불행한 시간을 행복이라 여기면 행복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또는 어느 정도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 노력 중에 하나는 내가 매일매일 생활하면서 몸과 정신으로 받는 스트레스하고 내가 겪는 근본적인 불행은 분리해야 한다. 이것을 동일시하면 행복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불행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근본적인 불행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불행은 전부 제각각이고 아주 세세하고 깊고 끈질기다. 어떤 사람에게는 유전자를 타고 들어온 병일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에게는 떠안은 가족의 빚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비대한 몸 때문에 비관적일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받는 스트레스는 이 불행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에 따로 떨어트려 놓아야 한다.


나는 일 때문에 너무 힘들어.라고 생각이 된다면 그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자. 이 일을 좋아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매달릴 수 없고 힘들지 않을 수 없다. 그걸 인간관계로 옮겨오면 비슷하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계가 깊어질수록 관계는 힘들어진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남녀가 만나서 합일되는 것이 힘들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전쟁 같은 사랑이 매일 이루어진다.


그저 칭찬만 듣고 내가 바라는 대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는 곳이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시간을 사는 곳이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그 사람을 사고, 그 사람의 시간을 사려면 역시 힘들게 자본을 긁어모아야 한다. 인간관계가 힘들지 않다면 그건 그저 상하관계 같은 어려운 관계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 그간 인간이 어려운 일들을 당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8에서도 지구에 3차 대전에 일어나 핵폭탄이 터진 후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고, 10년 전부터 월드워 Z 같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인류를 덮치는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보면 암울하고 디스토피아적이며 암담한 현실을 말하고 있다. 비관적인 결말도 있고 낙관적인 결말도 있다. 뭐가 됐든 인간은 그 안에서 하루를 견디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전쟁과 바이러스가 같이 인류를 위협하는 이야기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건 너무나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현실에서 바이러스와 전쟁이 동시에 일어났다. 게다가 한쪽에서는 거대한 산불이 9일이나 꺼지지 않고 숲을 전부 불태웠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견디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주위를 둘러보면 보이는 아이들 때문이다. 나와 상관없는 아이들 또는 나와 관계가 있는 아이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불행과 스트레스를 동일시해서 살아가는 순간 하루는 버티기 힘들어진다.


내 친구 중 한 놈이 아이에게 완벽한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 건물주 때문에 너무나 지질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서 눈물을 보였다. 아이는 완벽한 아빠의 모습을 바라는 게 아니다. 지질하고 잠 많고 배가 나와도, 그래서 건물주에게 굽신거릴지라도 옆에 있을 수 있는 아빠이면 족하다. 돈 걷고 다니느라 바빠서 아이들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아빠는 아이에게 필요치 않다.


전쟁과 바이러스와 자연재해 속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우리가 흔히 바라는 영웅일지 모른다. 잘 견뎌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를 조금이라도 잘 견디려면 불행과 스트레스를 분리해야 한다.


분리를 하고 매일 받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 중에 좋은 것은 매일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인간은 매일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한 끼 먹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 순간을 만끽하자. 그저 한 끼를 때운다 식으로 식사를 하지 말고 한 끼 정도는 제대로 차려서 먹거나, 식당에 가서 바로 나온 뜨겁고 맛있는 음식을 먹자. 그 정도는 매일 할 수 있다. 매일 먹어야 하니까.


나는 옛날 햄버거와 버드와이저를 함께 먹는 걸 좋아한다. 행복하니까 스트레스도 풀린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소설을 읽는다. 그리고 음악을 듣자. 오늘 들을 음악은 바로 토르의 여친, 나탈리 포트만이 광고에서 큰 소리로 부르는, 제니스 조플린의 Piece Of My Heart https://youtu.be/3SL0oRcD7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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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저편은 노래 제목이고 부른 가수는 ‘야마구치 모모에'다. 야마구치 모모에의 이별의 저편에 풍덩 빠지게 된 건 장국영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 일이다. 이제 곧 장국영의 기일이라 장국영을 좋아했던 나는 3월이 되면 그의 영화를 계속 돌려보며 인스타그램에 장국영에 대해서 글을 올린다. 매년 그러고 있다. 장국영의 영화도 물론 좋지만 장국영의 노래가 참 좋다.



여하튼 장국영의 수많은 영화 중에 ‘금옥만당’이라는 영화가 있다. 요리를 해서 식당을 되찾는 내용의 영화로 코믹영화다. 금옥만당이 나오기 일 년 전에 장국영은 원영의와 ‘금지옥엽’으로 대히트를 쳤다. 금지옥엽 초반에 장국영이 피아노를 치며 비틀스의 ‘트위스트 앤 샤우트’를 부르는데 참 좋다. 그리고 ‘추’라는 노래가 금지옥엽을 관통하는 노래로 장국영과 원영의 이 두 사람을 로맨틱 코미디계의 으뜸으로 올려놓는다. 그래서 그런지 그다음 해에 나온 ‘금옥만당’에도 장국영과 원영의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https://youtu.be/BFOYkacK1kE  <= 금옥만당 예고편


14차원의 원영의, 그보다 더 한 차원의 장국영이 요리를 통해서 식당을 되찾으려 한다. 상대방은 악독한 요리사인 황비홍의 귀각칠. 장국영은 원래 사채업자였지만 요리를 배우고 싶어서 원영의 아버지가 있는 식당에 들어가면서 우당탕탕 이야기가 진행된다. 암튼 영화는 내내 코믹 장착으로 웃겨준다. 종진도가 장국영의 스승 같은 사람으로 나오는데 요리의 신기원을 보여준다. 조문탁이 아주 착하게 나오는데 사실 조문탁은 태권도도 중국 무술이라고 하는 개똥 같은 인간이다. 이런 새뀌가 장국영과 한 영화에 나왔으니 너는 이놈아 평생 영광으로 알아라. 쓸데없는 TMI였다. 영화는 온통 밝고 해맑다. 답답하고 불안할 때 보면 보는 동안 내내 기분이 좋다.


여기서 장국영은 야마구치 모모에를 좋아해서 지갑에 그녀의 사진을 늘 넣어서 다닌다. 원영의가 장국영 지갑에서 야마구치 모모에의 사진을 빼고 자신의 사진을 몰래 넣어 놨을 때 장국영은 화를 내며 원영의 사진을 마구마구 찢어 버린다. 마지막 부분에 원영의가 4차원의 화장과 헤어 스타일에서 벗어났을 때 장국영에게 “어때? 나 야마구치 모모에 같지 않아?”라는 대사를 한다.


야마구치 모모에는 70년대 일본을 들썩이게 한 가수다. 후지 케이코(우타다 히카루 엄마. 엔카의 여왕으로 아주 잘 나갔지만 우타다 히카루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무렵 느닷없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추자의 대전발 0시 50분도 후지 게이코의 곡으로 알고 있다) 같은 엔카가 성행할 때에 야마구치 모모에는 허스키하고 낮은 음성으로, 일본적이지 않는 일본적인 노래를 불러 열도를 들썩이게 한다. 그녀는 14살에 데뷔를 해서 최고의 인기를 달리는 스무 살 정도가 되었을 때 은퇴를 한다. 마지막 은퇴 방송에서 ‘이별의 저편’을 부른다. 이 방송에서 야마구치 모모에는 눈물을 보이며 노래를 부르고 다른 가수들 역시 그녀의 은퇴에 많은 눈물을 보인다. 요즘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다.


야마구치 모모에는 화장 때문인지 몰라도 눈과 눈 사이가 멀어 보이는데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긴 목과 시원시원한 팔다리의 움직임이 환상적이다. 특히 ‘이별의 저편’을 부를 때 영어 가사에 돌입하기 전에 한 팔을 들어 옆으로 뻗을 때의 몸짓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동작이다. 그녀가 마지막 공연에서(방송 말고) 이별의 저편을 부르면서 마이크를 무대에 내려놓는데, 이 퍼포먼스를 장국영 역시 마지막 공연인가 거기서 마이크를 내리면서 야마구치 모모에를 오마주 했다.


장국영은 주윤발과 종초홍과 같이 나온 환상의 미술품 털이범의 영화 ‘종횡사해’에서 야마구치 모모에의 이별의 저편을 리메이크해서 ost에 넣었다. 그 노래가 바로 ‘풍계속취’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장국영의 앨범을 구입해서 들었고 장국영의 앨범에 풍계속취가 있다. 이렇게 좋은 노래가, 하며 들었다. 요즘은 유튜브 덕분에 야마구치 모모에의 ‘이별의 저편’도 장국영의 ‘풍계속취’도 영상으로 다 볼 수 있다. 그래서 매년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떠난 장국영의 그날이 돌아오면 이별의 저편과 풍계속취를 들을 수 있다.


이별의 저편은 무엇보다 가사가 너무 좋다.

잠들 수 없을 정도로 갈피를 못 잡는 매일 뜨거운 말로 기운을 준 것은 당신이었다.

때로는 혼자서 좌절할 것 같은 마음에 꿈을 준 것도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의 친절함, 당신의 다정함, 당신의 미소, 당신의 사랑, 당신의 모든 것.

뒷모습은 보이지 않고 갈 테니 제발 안녕이라는 말 대신에.

가사에 삽입된 영어 가사가 이렇게 좋다니.


야마구치 모모에의 남편도 배우고 아들들도 배우다. 작은 아들은 일본 ‘리틀 포레스트’에 이치코의 친구 유우타로 나왔고 작년에는 영화 버전 말고 드라마 버전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에도 나왔다. 지 엄마를 많이 닮았음.


장국영과 야마구치 모모에의 풍계속취와 이별의 저편 https://youtu.be/Kc-aTzbvMms  <= 레슬리와 모모에의 같은 노래 다른 버전


마지막 방송에서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 - 이별의 저편(さよならの向う側) https://youtu.be/nkj7k_7vhkk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마지막 방송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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