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은 이렇게 생겼다
내가 일하는 건물에는 폭군이 산다. 폭군은 평소에는 감정을 숨기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조금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군의 면모가 가감 없이 드러난다. 여기는 학교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하관계에 놓인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모두가 폭군의 한 마디에 눈치를 보며 그가 떠나고 난 자리의 텅 빈 공간에는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 한다. 폭군의 특징이라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들 앞에서는 작은 눈이 더 작아진다. 등이 펴지는 일이 없다. 하지만 폭군의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한껏 배를 드러낸다. 얼굴에서 이미 선을 그어 놓고 사람들을 대하는 표정이 있다. 폭군은 감정 기복이 심하다. 줬다가 뺐어가기도 하고 소리를 지를 때는 사람들을 향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내뱉기도 한다. 폭군은 상대방의 덩치에 상관없이 맹렬하게 달려든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두 배의 덩치를 가지고 있어도 폭군의 면모가 나타날 때는 돌진한다. 심지어는 경찰들과도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 폭군의 욕심은 이 건물의 왕이 되고픈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그어 놓은 어떤 선에서 벗어나거나 넘어오면 폭군은 그대로 가서 소리를 지르고 욕을 남발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폭군은 영화를 보지 않는 것 같다. 아마 태어나서 한 두 번쯤 봤을, 그런 타입의 인간인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영화 같은 건 절대로 보러 가지 않는 인간. 그래서 영화는 살아가는데 전혀 필요 없다고 느끼는 인간. 그런 인간이다. 감정이 오르지 않을 때에는 전혀 감정이 축소되지 않는다. 어떤 면으로는 부러운 구석이 있는 인간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게 구조를 구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나 이외의 타인의 흥망성쇠에 관여를 하지 않는다. 폭군은 원래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벽을 쳐 버린다. 벽을 쳐 놓고 벽 밖에 있는 사람이 선을 넘는 행동을 하게 되면 폭군의 면모가 나오는 것이다. 봄이 오는 것, 계절이 오고 가고, 봄이 오며 내리쬐는 봄햇살에 대해서도 아무런 표현이 없다. 늘 대는 곳에 주차를 하며 만약 그곳에 다른 차가 먼저 주차를 한 날이면 폭군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이상하게 고생을 한다. 직원들은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한 채 누가 봐도 쓸데없는, 쓸모없는 일을 계속한다. 일하는 직원들이 2년 동안 여러 번이나 바뀌었다. 건물은 밖에서 보면 번지르르 좋아 보인다. 모든 화장실이 공사를 거쳤고 비데를 설치했고 비번을 달았다. 모든 층이 좋아지고 깨끗해졌지만 정작 사람들이 건물에 오지 않는다. 물고기가 오지 않는 개울물이 깨끗해봐야 무슨 소용일까. 영화를 전혀 보지 않는 폭군에게 영화를 한 편 보여주고 싶다. 드라이브 마이카를 보여주고 싶다. 제대로 한 번 보여주고 싶다. 상처를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 번 느끼 보지 않을까. 하지만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겠지. 감정이 없는 사람에게 감정을 가지게 하는 건 택시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을 듣는 것만큼 힘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