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용서받지 못한 밤’을 보면 유키히로는 스무 살 딸을 혼자서 키웠다. 그에게는 하나의 비밀이 있다. 딸 유미가 네 살 때 아내를 죽였다는 것이다. 당시에 누구도 모르게 그 사실을 숨기고 잘 처리했다고 믿었는데 15년 뒤에 누군가가 비밀을 안다며 돈을 요구한다. 덱스터의 기나긴 여정이 끝나고 10년 후에 덱스터는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마이애미에서 멀리 떨어진 뉴욕의 북부 작은 마을 아이언 레이크에서 살아가는데 덱스터 모건, 자신만큼 아니 자신보다 더 큰 어둠의 충동을 지닌 아들 해리슨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덱스터는 뉴 블러드 시즌이 시작된다.


덱스터가 10년 동안 시리즈 8까지 방영이 되었다. 대단했다. 엄청났다. 실로 조마조마하며 아슬아슬했고 통쾌했으며 사이코패스 살인마 덱스터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리즈 8 이후 10년 지난 21년에 시리즈 9, 덱스터의 뉴 블러드가 다시 방영했다. 이 시즌으로 이제 다시는 덱스터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건 영화를 보면 된다.


2006년에 했던 덱스터 시즌 1이 케이블 티브이를 통해서 다시 방영을 시작했다. 그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흥분되고 멋지고 짜릿하며 친근한가. 덱스터는 법적으로는 사이코 범죄자이나 사회규범적으로는 히어로인 셈이다. 현실에서 이런 히어로를 우리는 얼마나 바라고 있는가. 그건 부인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사형을 바란다는 악질 범죄자도 1심, 2심, 항소, 대법까지 가서 집행유예나 5년! 같은 선고를 받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우리는 그동안 많이 접했다. 심지어는 사회가 매장시키고픈 죄를 지은 가해자가 형을 살고 나오면 정부에서 보조금으로 지원을 해주며 사람들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공적인 인력을 배치하기도 한다.

 

법으로 해결이 안 되는,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가며 성폭행을 일삼으며 심지어 죽여서 토막을 내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들, 경찰이 잡지 못하는 악질범을 덱스터 모건이 심판을 한다. 덱스터 내부의 극심한 어둠과 살인 충동으로 사회악을 찾아서 처단을 한다. 물론 법적으로는 덱스터는 한낱 범죄자일 뿐이지만 법망을 피해 지속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 범죄자는 덱스터에 의해 처단이 되고 나면 다시는 그런 짓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덱스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그런 모습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고 부처님도 아니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법망을 피해 다니며 죄를 짓는 인간들 - 소년범, 성범죄자들, 그루밍 범죄자, 악질 스토커들은 사라졌음 하는 것이다.


덱스터는 경찰이다. 덱스터는 혈흔 분석가로 아주 뛰어난 천재다. 살인 현장에 있는 혈액을 분석하여 범죄자를 잡는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덱스터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렇게 잡힌 범죄자는 보석금이나 변호사를 잘 두거나 재판정에서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면 형을 살지 않을 수 있다. 또 덱스터는 모두에게 친근하며 문제가 있는 애인에게도 자상하며 애인의 아이들에게도 멋진 아저씨다. 하나뿐인 경찰 여동생 데브라에게는 믿음직한 오빠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한 도움을 주는 자상한 오빠다. 데브라의 아버지 헤리는 덱스터가 2살 무렵 입양을 했다. 데브라와 덱스터는 친남매는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데브라는 덱스터에게 모든 문제를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덱스터는 사이코 범죄자를 찾아서 그 누구도 모르게 토막 내어 처리를 하고 범죄자의 피 한 방울을 전리품처럼 가지고 있는다. 덱스터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려고 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 덱스터가 그게 가능한 것이, 그런 완벽에 가까운 생활을 가능케 하는 건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관계에 나타나는 감정은 덱스터의 연극일 뿐이다. 덱스터는 피가 난자한 살인 현장에서는 재빠르게 뇌가 회전을 하지만 애인이 지금 이 순간 덱스터와의 조금 불안한 관계에 대해서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래서 시즌이 넘어갈수록 덱스터는 인간의 감정을 하나씩 알아가고 덱스터가 어째서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덱스터에게는 살인하고픈 강렬한 충동, 이 억누를 수 없고 고통과도 같은 엄청난 충동을, 법망을 피해 교묘히 살인을 하는 사이코패스를 잡아서 토막 내는 데 사용을 한다. 다른 사이코패스의 무차별적 살인과 다른 점은 덱스터는 양 아버지, 경찰이었던 헤리에게서 어린 시절부터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살인충동을 억누를 수 없어 어차피 살인을 해야 한다면 살인자들, 경찰이 잡지 못하는 – 그래서 법망을 피해 가는 아주 나쁜 악질 범죄자들을 죽이도록 훈련을 받았다. 사이코패스는 사이코패스가 잡아야 한다는 덱스터. 그것이 우리가, 전 세계가 10년 동안 덱스터의 시리즈에 매료되었던 이유였다. 시즌 1에서 혈흔 분석가 사이크 패스를 알아본 살인자는 매춘여성들을 죽이면서 토막을 내고 피를 다 뽑아서 덱스터에게 자신을 찾아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렇게 시작된다.


덱스터가 티브이에서 방영한 시점이 묘하게도 계곡 사건의 주인공 이은해가 구속이 되는 시기다. 이은해는 현재 그 어떤 한국사람에게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는 인간이다. 태어나기를 죄를 짓기 위해 태어난 인간처럼 보인다. 이은해와 요만큼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은 대부분 불이익을 다하거나 이은해에게 받아야 할 무엇인가를 받지 못했다는 기사가 올라오고 있다. 오죽하면 현재의 연인 조현수를 살린 것이 이번에 이은해의 구속이라는 말까지 있다. 노예인 조현수 역시 시간이 지나 주인인 이은해의 관심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당했을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대국민 뒷골을 아프게 하며 도망 다니다 잡혔는데 – 자수했다고 하면서도 질문에 묵묵부답인 이런 범죄자가 사회적 잣대로는 무기징역 내지는 사형감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법정에서는 확실한 물증이니, 초범이니, 정신적인 감정 결과 문제가, 같은 선고로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흐지부지하여 실형이 어떻게 떨어질지는 의문스럽기만 하다.


저런 살인자들, 사람을 죽이고 토막을 내거나 죽인 사람을 가지고 노는 그런 사람을 우리는 살면서 몇이나 볼까? 이런 거 한 번 생각해본 사람이 있을까. 왜냐하면 내가 팔을 뻗는 울타리 안에는 평화, 정의, 행복만이 가득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호러블 한 것이 없다. 그리고 살면서 검사를 단 한 번도 만나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할 정도로 살인자를 만나는 일도 드물다. 하지만 2년 동안 근무한 구치소에서 나는 범죄자들을 아주 많이 만났다. 그들 모두 밖에서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착한 아빠, 다정한 남편, 능력 있는 사장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우리는 늘 잊어버리고 산다. 우리의 문제라면 금방 까먹는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고유정의 일은 다 잊어버렸다. 치밀한 계획하에 남편을 죽이고 토막을 내서 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 중인 고유정. 하지만 지금과 같은 사이코패스 정신으로 가면을 쓰고 조신하게 20년 복역 뒤에는 가석방을 신청할 수도 있다고 한다.


현실에도 덱스터 모건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이 살인자들에 대한 사건과 문제 해결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지나간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새로운 사건은 매일 터지며 새로운 소식을 우리는 원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아마 그렇게 이번 사건의 이은해도 곧 잊히게 될 것이다.


덱스터를 보면 경찰을 죽인 범인이 석방이 되어서 허망한 표정의 아버지 헤리에게 어렸던 덱스터가 그랬다.

“그건 불공평하잖아요.”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단다. 덱스터.”

시즌 9까지 사람들이 빠져 들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보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중에 덱스터는 인간의 감정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점점 인간화가 되어서 실수도 하게 되고, 들키기도 하는 등 아주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순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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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4-22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고의 미드중 하나죠.
10년이면 덱스터도 많이 늙었겠네요. 욕이 찰지던 동생도, 썰렁한 유머의 대머리도, 의리파 뚱뚱이 경사도, 덱스터를 거의 잡을뻔한 빼빼 형사도 모든 늙어서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네요.

교관 2022-04-23 11:37   좋아요 0 | URL
시즌9에서는 데브라가 헤리의 역할을 해요. 하얀 설원 속에서 펼쳐지는 피의 향연 ㅎㅎ. 시즌9를 마지막으로 이제 덱스터는 영영 볼 수 없어요 엉엉
 



고독하고 외롭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다. 철저하게 외로워야 구석진 곳에서 웅크리고 몇 시간이라도 글을 쓸 수 있다. 고독하고 또 외로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고독해야만 하고 외로워야만 한다. 그래야 그 속에 웅크리고 있던 불순물 같은 미미한 그리움이 활자로 그려진다. 외로움을 밀어내기 위해 외로움을 견디기보다는 외로워야만 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동반한다. 이런 내가 타인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들과의 관계 역시 조금은 일그러져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떤 면으로 말하자면 외로움에서 벗어나기보다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외로움이란 암 같아서 벗어났다 싶으면 거기에서 또 다른 외로움이 증식하여 삶을 갉아먹는다. 야금야금, 아주 천천히 배추벌레가 잎을 천천히 먹어 치우듯이. 판에 박힌 이야기지만 근원적으로 외롭게 태어나서 외롭게 죽는 것이 인간이다. 외롭지 않다면 사랑하는 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가끔 주위에서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 경우가 있다. 같이 있어도 외롭다고. 같이 있으면, 당연하지만 외로움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 말은 나이 먹기 싫어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피할 수 없다. 그것처럼 외로움 역시 벗어나려고 해 봐야 벗어나는 순간 또 다른 질의 외로움이 피부를 덮을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온몸으로 드러낸 나오코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미도리가 어쩌면 더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가서야 와타나베는 전화 수화기를 들고 그런 미도리의 마음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이건 비단 노르웨이 숲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복잡하고 거미줄 같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고독 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연령층은 더 어려졌다.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것이다. 인파 속에서 고독함이 추위처럼 달려든다. 너무 추워서 몸이 떨리는데 따뜻하게 해 줄 사람 한 명도 없어서 얼어 죽는다. 나오코처럼 이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것이다. 이 깜깜한 도시에서 어둠이 내미는 손을 잡는 것이 생생하고 또렷한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쓸쓸하게 죽고 나면 그 방에는 시취가 물처럼 찰랑찰랑 차오른다. 외롭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있다. 그건 사랑이다. 잠이 드는 것도 외롭다. 한 침대에 부부가 같이 들어도 잠은 혼자서 들어야 한다. 시간을 맞춰서 같이 잠이 들 수는 없다. 잠은 외로워야 한다. 외롭게 잠들어 길이보다 깊이 있게 들었다가 일어나야 잠들어 있는 동안 못 보던 가족을 보며 인사를 할 수 있다. 사랑이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잠마저도 우리는 외롭게 들지 못한다. 의식 그 너머에 외로움이 싫어서 시끄럽고 불안한 의식의 방해가 많아서 리추얼이 되지 않아 괴로워하는 이들이 늘었다. 가장 외로워야 하는 건 아픔이다. 아픈 건 누군가 대신 아파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혼자서 외롭게 아픔을 견뎌야 한다. 아이가 아프다고 해서 부모가 대신해 줄 수 없다. 하지만 외로워도 아픔을 견딜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서 간호를 해주기 때문이다. 사랑이다. 내가 외로워서, 외로워야만 해서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은 사랑을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완벽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외로움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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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에세이 중에 하루키가 미국의 작가들이 대거 몰려 있는 지역 - 소위 영향력이 있는 작가들이 별장처럼 집을 구비해두고 집필을 할 때에는 이곳으로 와서 열심히 집필을 하고 일상을 보낼 때는 도시로 나가서 생활하는 –에서 지낼 때 일화를 소개하는 에세이가 있다.


그곳에서 조깅을 하다가 누구도 마주쳤고 어떤 집에서는 블라블라. 그러면서 한 여관에서 묵을 때인데, 여관이라고 해서 우리의 기준과는 많이 다른 여관에서 만난 주인들에게서 미국이라는 사회가 지니고 있는 속 깊은 건전함 같은 것도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주인이 이 여관에서 얼마 전에 스필버그의 결혼식 하객들이 이곳에 함께 투숙했었다는 말을 듣는다. 하루키의 에세이 속에는 허허실실 웃으며 지나갈 것 같은데 지금 지구 상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마치 동네 빵집의 아저씨처럼 튀어나온다.


그리고 꽤 즐거웠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하객으로 온 로빈 윌리암스, 마틴 쇼트, 로브 로우 같은 쟁쟁한 스타들이 이 거실에 앉아서 다 같이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고 노래도 불렀다고 했다. 모두들 정말 즐거웠다며. 마틴 숏은 최근에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에 나왔고, 로브 로우는 잘 모르겠고, 로빈 윌리암스는 일전에 본 영화 ‘로빈의 소원’에서 루이소체 치매가 그동안 그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알게 되었다. 이 다큐 영화에서 로빈은 알라딘에서 지니를 연기하면서 얼마나 행복에 젖어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죽었을 때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라고 세상에 알려졌고 말하기 좋아하는 언론은 쓰레기 기사를 쏟아냈다. 로빈이 죽고 나서 7년 동안 그의 아내는 우울증으로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 루이소체 치매가 그의 뇌를 얼마나 공격하고 있는지 밝혀냈다. 아무튼 로빈 윌리암스의 연기를 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내가 케이트 캡쇼다. 케이트 캡쇼의 굉장한 미모를 볼 수 있는 영화는 마이클 더글라스의 ‘블랙 레인’이다. 89년도 영화지만 아주 재미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에 한스 짐머가 음악을 맡았다. 막사는 뉴욕 형사 닉(마이클 더글라스)이 찰리(앤디 가르시아)와 함께 일본으로 가서 야쿠자를 추적하는 내용인데 찰리가 야쿠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일본 현지 형사 사토(마츠다 유사쿠)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인데 리들리 스콧의 연출력 때문에 지금 봐도 몹시 재미있다. 그 사이에 일본에서 오랫동안 지낸 조이스 역으로 아름다운 케이트 캡쇼가 나온다. 블랙 레인에서는 마이클 더글라스만큼 강한 매력을 소유한 마츠다 유사쿠의 연기도 좋다. 마츠다 유사쿠는 블랙 레인이 마지막 작품으로 그해에 죽었다. 그의 아들이 우리가 잘 아는 마츠다 류헤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케이트 캡쇼 하면 인디아나 존스다. 인디아나 존스, 정글 속에서 헤리슨 포드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역시 재미있다. 그때 감독을 했던 스티븐 스필버그와 서서히 피터 찌리릿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이 당시 이미 케이트 캡쇼는 결혼을 하여 딸인 제시카 캡쇼가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명실상부 할리우드의 대표 감독이다. 이번에 오징어 게임에 대해서 묘하게 언급을 하는 바람에 안 좋은 소리를 듣긴 하지만.


이제 앤디 가르시아 얘기를 해야 하는데. 하루키 에세이 속 짧은 문장 속을 파헤치면 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마구 쏟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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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세차게 비가 왔습니다. 애매한 계절에 이렇게 하늘이 뚫린 듯 비가 내리면 세상은 차갑게 몸을 웅크립니다. 저는 새벽까지 그런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고 했을 때, 헤어지기 싫어 소리를 지르는 연인처럼 강하게 내렸습니다. 그리고 기운이 다 했는지 그 비는 지금 가늘어졌습니다. 힘이 없어 축 쳐진 새끼 고양이의 꼬리 같아졌습니다.


비가 내리면 세상은 전부 비에 젖습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비에 젖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다입니다. 바다만 비에 젖지 않고 얼굴을 비에 드러냅니다. 비는 규정적입니다. 비가 내리는 모든 곳이 비에 젖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는 비 규칙적입니다. 강하게 내리는가 싶으면 어느 순간 가늘어졌다가, 또 어느 순간 바람을 대동해서 마구 내립니다. 밤에는 지구의 저편 기침을 심하게 하는 마른 숨결의 존재를 대동하여 거칠고 푸석한 비를 밤새 뿌렸습니다.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치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내서는 안 되는 소리를 일부러 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고양이 소리였습니다. 저에게 이름 모를 고양이는 전부 해시시라는 이름입니다. 그 고양이도 해시시라고 부르겠습니다. 비가 오는 밤에 비 맞은 해시시는 칼날 같은 소리를 냈습니다. 고요한 아파트 단지에 이렇게 찢어지게 큰 소리로 울다니요. 언젠가 책에서 고통을 참지 못해 해시시를 하루 종일 피우는 여자를 읽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해시시의 혈관이 검붉게 변한 여자의 얼굴이 겹칩니다.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천장으로 기어 다녔고, 추악하고 싶은 장면은 흐릿해졌습니다. 천장은 늘 그렇듯 비열하고 추악한 것을 열거해 놓은 고대 상형문자가 무늬로 환생하여 저를 내려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눈을 감아 보지만 이미 한 번 눈을 감은 상태입니다. 그리하여 저의 눈앞에 뚜렷하게 무늬가 나타나고 맙니다. 그건 굉장한 악몽입니다. 무늬가 스스로 움직여 나에게 다가오니 말이죠. 세상에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한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목이 마르지만 일어나기가 싫습니다. 눈을 뜨면 눈앞에 조악한 기억이 푸른빛을 내고 요상한 소리를 지르며 얼굴에 달라붙을 것만 같습니다. 무섭습니다. 목이 마릅니다. 침을 삼켜 보지만 1%의 아밀라아제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목 안이 그야말로 아타카마가 된 것 같습니다. 물이 몽땅 빠져나간 나의 몸을 생각하다가 메마르게 잠이 듭니다.


눈을 떴을 때 더 이상 세차게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곧바로 물을 마셨습니다. 마치 뭔가를 밀어 내려는 듯. 물을 마시고 나니 목에서 물비린내가 났습니다. 비는 칼로 자르듯 사라지기 싫은지 잿빛의 하늘과 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내리고 있습니다. 라디오에서 프리실라 안의 레인이 나옵니다. 레인을 들으며 밖으로 나오니 파도가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파도는 꼭 크게 울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람이 불어 좋은 날이 있습니다. 바람이 그대를 데리고 오는 날이 있습니다. 바람에 실려 그대의 냄새가 날 때면 저는 바람을 맞습니다. 형이상학적인 모습을 하고 어떤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한 채 그대를 맞이합니다. 가까운 바람 속에, 저 먼 해풍 속의 그대, 바로 당신이 있습니다.


그대와 연락이 되지 않을 때 저의 슬픔은 제대로 커지고 맙니다. 얼마나 깊고 큰지 저 자신조차 알지 못합니다. 휴대전화는 많은 일을 하게 해 줍니다. 많은 것을 측정할 수 있고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로 슬픔을 측정할 수 있다면, 그리움을 측정할 수 있다면 참 졸을 텐데요. 휴대전화의 액정으로 간단하게 슬픔의 수치가 나타난다면 나는 그대에게 내 슬픔의 수치를 전송할 수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시간 별로 나는 슬픔을 측정하여 캡처해 두었다가 그대에게 편지와 함께 보낼 텐데요.


닥터 Q를 찾아갑니다. 닥터 Q는 사람들의 기억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한 달에 두서너 번 그를 찾아가서 내 기억을 관리받습니다. 기억에 손상이 갔습니다. 기억이 나약해졌으니 이건 따로 보관해 두겠습니다, 같은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미 제 기억의 9할이 보관이 된 상태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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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라디오


2021. 11. 28일 저녁 7시부터 50분간 이어진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소개한 하루키 씨의 일화이다. 하루키 씨는 청취자를 상대로 방송을 하기에 높임말로 했지만 여기서는 책자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다.로 끝내고, 의역을 왕창 했다는 것.

제목: 세 번째


내가 도쿄에 있을 때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다녔다. 지극히 평범하게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길을 걷고 있는데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일단 없었다. 음, 한 달에 한 번인가 두 번 정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지방의 도시에 가거나 하면 꽤 빈번하게 [무라카미 씨 아닙니까]라며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째서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는 나에게 말을 스스럼없이 걸어오는데 도쿄에서는 그렇지 않다. 결국 생각해보면 [도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바빠서 다른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 사람들은 대부분 거리에서 마주치더라도 사람의 얼굴을 일일이 보지 않는다. 단지 [지나치는 다른 지방에서 온 정착민] 정도로 밖에 보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은 꽤나 편하고 좋지만 그런 분위기를 [차갑다] 라거나 [인정이 없다]라고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명인들도 이미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졌다고 할까, 비록 [아, 저 사람이다]라고 생각해도, 굳이 말을 걸지 않고 그대로 가버리는 일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시부야 [레코 팬]이라는 중고 레코드 가게에 갔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젊은 남성이 [무라카미 씨군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네, 그렇습니다]라고 하면, [저, 제가 여기서 무라카미 씨를 만나는 것이 세 번째예요]라고 하는 것이다. [지난번 두 번은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을 걸지 못했는데 세 번째는 괜찮지 않을까 해서요].


나는 뭐 괜찮다. 나의 독자 중에는 그렇게 너그러운 성격의 사람이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감사한 일이다. 그래도 같은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세 번이나 만나다니, 나도 꽤나 한가한 인간이지만, 그 사람도 상당히 한가한 사람이다. 그나저나 [레코 팬]이 문을 닫아서 쓸쓸하다.



잠시 하던 일을 놓고 술렁술렁 에세이를 읽는 느낌으로 보면 좋을 듯합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벚꽃이 떨어지기 전에 빨리 가서 벚꽃을 보고 사진을 찍어서 어딘가에 올려야 하는 강박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늘 쫓기듯 빠르게 달려가니까 가볍게 한 타임 쉬어 가는 거죠. 제멋대로 의역이 왕창 되었습니다.


NHK

결혼 후에도 꽤 오랫동안 집에 텔레비전은 없었다. 당시에는 너무나 가난해서 티브이를 살 돈도 없었고, 게다가 일이 바빠서 제대로 앉아서 티브이 같은 건 볼 시간조차 없었다. 그때는 뭐, 티브이 같은 건 없어도 우리의 생활에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어느 날은 아내가 집에 혼자 있는데, 어느 준국영방송의 수금원이 와서 시청료를 걷어 가려고 했다. 아내는 [우리 집에는 티브이가 없어요]라고 말했지만 그 수금원은 도통 믿지 않았다. [사모님, 사모님께서 거짓말을 하시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티브이를 보면서 시청료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도둑과 다를 바 없습니다. 도둑과 같아요, 사모님]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그 방송국에 대한 호의 같은 건 요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범죄자처럼 몰아세우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우리는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꽤나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시민이다. [1Q84]라는 소설 속에 주인공의 아버지를 모 방송국의 수금인으로 설정했는데, 그때의 앙갚음 같은 것이다. 아주 작은 답례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하루키의 단편 소설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라는 소설에 잘 나온다. 사실 그건 소설이라기보다 하루키와 그의 아내 요코의 신혼 시절의 이야기다. 소설 속에는 이부자리와 옷가지 식기 전기스탠드, 몇 권의 책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전 재산의 전부라고 나온다. 그만큼 가난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인생은 지극히 간단해진다.

겨울에 해가 지면 하루키는 아내 요코와 고양이를 안고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갔고 아침에 나오면 부엌의 싱크대가 얼어붙어 있었다. 그렇지만 가난이라는 불행 속에서도 봄이 오면 근사해져서 세 명(고양이 포함)이 나른한 봄볕에 작정하며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하루키는 그 당시를, 우리는 젊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고, 햇볕은 공짜였다고 했다. 불운은 사람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도 왕왕 그러지만 현실에서 나를 괴롭히는 인간들은 소설 속에 등장시켜 파리로 변하게 하여 파리채로 탁 내리친다. 그러면 파리채의 구멍 사이로 파리의. 비록 소설 속이지만 속이 시원하다.


하루키 씨가 들려준 음악은 재즈 오르간 연주자 찰스 앨런드의 ‘스톰프’다. 펑키하고 기분이 좋다고 하루키 씨가 음악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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