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세차게 비가 왔습니다. 애매한 계절에 이렇게 하늘이 뚫린 듯 비가 내리면 세상은 차갑게 몸을 웅크립니다. 저는 새벽까지 그런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고 했을 때, 헤어지기 싫어 소리를 지르는 연인처럼 강하게 내렸습니다. 그리고 기운이 다 했는지 그 비는 지금 가늘어졌습니다. 힘이 없어 축 쳐진 새끼 고양이의 꼬리 같아졌습니다.


비가 내리면 세상은 전부 비에 젖습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비에 젖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다입니다. 바다만 비에 젖지 않고 얼굴을 비에 드러냅니다. 비는 규정적입니다. 비가 내리는 모든 곳이 비에 젖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는 비 규칙적입니다. 강하게 내리는가 싶으면 어느 순간 가늘어졌다가, 또 어느 순간 바람을 대동해서 마구 내립니다. 밤에는 지구의 저편 기침을 심하게 하는 마른 숨결의 존재를 대동하여 거칠고 푸석한 비를 밤새 뿌렸습니다.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치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내서는 안 되는 소리를 일부러 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고양이 소리였습니다. 저에게 이름 모를 고양이는 전부 해시시라는 이름입니다. 그 고양이도 해시시라고 부르겠습니다. 비가 오는 밤에 비 맞은 해시시는 칼날 같은 소리를 냈습니다. 고요한 아파트 단지에 이렇게 찢어지게 큰 소리로 울다니요. 언젠가 책에서 고통을 참지 못해 해시시를 하루 종일 피우는 여자를 읽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해시시의 혈관이 검붉게 변한 여자의 얼굴이 겹칩니다.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천장으로 기어 다녔고, 추악하고 싶은 장면은 흐릿해졌습니다. 천장은 늘 그렇듯 비열하고 추악한 것을 열거해 놓은 고대 상형문자가 무늬로 환생하여 저를 내려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눈을 감아 보지만 이미 한 번 눈을 감은 상태입니다. 그리하여 저의 눈앞에 뚜렷하게 무늬가 나타나고 맙니다. 그건 굉장한 악몽입니다. 무늬가 스스로 움직여 나에게 다가오니 말이죠. 세상에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한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목이 마르지만 일어나기가 싫습니다. 눈을 뜨면 눈앞에 조악한 기억이 푸른빛을 내고 요상한 소리를 지르며 얼굴에 달라붙을 것만 같습니다. 무섭습니다. 목이 마릅니다. 침을 삼켜 보지만 1%의 아밀라아제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목 안이 그야말로 아타카마가 된 것 같습니다. 물이 몽땅 빠져나간 나의 몸을 생각하다가 메마르게 잠이 듭니다.


눈을 떴을 때 더 이상 세차게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곧바로 물을 마셨습니다. 마치 뭔가를 밀어 내려는 듯. 물을 마시고 나니 목에서 물비린내가 났습니다. 비는 칼로 자르듯 사라지기 싫은지 잿빛의 하늘과 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내리고 있습니다. 라디오에서 프리실라 안의 레인이 나옵니다. 레인을 들으며 밖으로 나오니 파도가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파도는 꼭 크게 울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람이 불어 좋은 날이 있습니다. 바람이 그대를 데리고 오는 날이 있습니다. 바람에 실려 그대의 냄새가 날 때면 저는 바람을 맞습니다. 형이상학적인 모습을 하고 어떤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한 채 그대를 맞이합니다. 가까운 바람 속에, 저 먼 해풍 속의 그대, 바로 당신이 있습니다.


그대와 연락이 되지 않을 때 저의 슬픔은 제대로 커지고 맙니다. 얼마나 깊고 큰지 저 자신조차 알지 못합니다. 휴대전화는 많은 일을 하게 해 줍니다. 많은 것을 측정할 수 있고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로 슬픔을 측정할 수 있다면, 그리움을 측정할 수 있다면 참 졸을 텐데요. 휴대전화의 액정으로 간단하게 슬픔의 수치가 나타난다면 나는 그대에게 내 슬픔의 수치를 전송할 수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시간 별로 나는 슬픔을 측정하여 캡처해 두었다가 그대에게 편지와 함께 보낼 텐데요.


닥터 Q를 찾아갑니다. 닥터 Q는 사람들의 기억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한 달에 두서너 번 그를 찾아가서 내 기억을 관리받습니다. 기억에 손상이 갔습니다. 기억이 나약해졌으니 이건 따로 보관해 두겠습니다, 같은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미 제 기억의 9할이 보관이 된 상태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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