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왜 한꺼번에 오는 걸까. 시련이라는 발음도 마음에 들지 않아. 실연처럼 들리기도 해. 우리의 삶이라는 게 새벽의 수영장의 물처럼 고요하지만 한 번 흔들리면 다시 고요해지기가 힘든 것 같아.


한 번은 키보드와 마우스가 동시에 고장이 났어. 고작 키보드와 마우스 일 뿐인데 하루가 망가지는 거야. 그 ‘고작’이라는 게 인간의 삶을 망가트리는 것 같아. 지난번에 카카오 톡이 몇 시간 안 됐을 뿐인데 우리 삶이 어땠어?


시련이 한꺼번에 온 것 중에 타격이 가장 컸던 때는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생활을 할 때였지.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몽둥이로 여기저기 두드려 맞은 것 같았어.


그저 빨리 이 생활에서 벗어나기만 바랄 뿐이었는데 2년이나 지속되었지. 그때 실연도 같이 왔어. 시련과 실연은 그렇게 나에게 매질을 하더라.


시련이 가고 나면 평화가 찾아오는 거 같아.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은 무척이나 짧지. 평화라는 허울 주위에는 시련의 시간이 에워싸고 있어. 김소연 시인도 평화는 태풍의 눈과 같다고 했지.


평화 주위는 온갖 시련들이 우글거리고 있어. 평화의 그 짧은 달콤함은 금방 녹아 없어지고 말아. 시련을 많이 겪어야 한다지만 나는 시련이 싫어. 그렇다고 평화만을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평화가 길어지면 나태가 되니까. 영속될 수 없지. 그냥 그렇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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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 연모도에 스쿠버 다이빙을 하려 들어가는 은지. 휴대폰 안테나도 잘 뜨지 않고 약국도 보이지 않는 마을에서 은지는 어촌계 청년들에게 이상함을 감지한다. 연모도 마을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어촌계 용태가 있고 용태 밑으로 어촌 청년들, 여자들 그리고 경찰까지 전부 용태와 연결이 되었다.

용태는 마을 사람들을 손아귀에 꽉 쥐고 빚을 진 마을 사람의 딸을 유린하고 젊은 여자들은 전부 자신의 노리개감이다. 용태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기까지 한다. 이 모든 일들을 알게 된 은지. 마을의 파출소로 가서 이 사실을 전하지만 용태를 잡기는커녕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돌려보낸다.

용태는 서울에서 온 은지를 유린하기 위해 청년들을 시켜 잡아오라고 하지만 청년들이 한두 명씩 자꾸 사라진다. 결국 용태가 직접 나서게 되는데.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섬마을에 들어온 학교의 여선생님을 모두가 돌아가면서 성폭행하고 그 사실을 묵인한 학교 아이들의 엄마아버지들인 마을 사람들과 경찰들까지. 온 마을이 사실을 숨기고 쉬쉬하며 주동자는 점점 괴물이 되어 계속 성폭행을 한다. 그러다가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기까지 한다.

요 며칠 밀양 여고생 성폭행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백종원이 작년에 청도의 한 식당에 가서 맛있게 먹었는데 그 식당이 밀양 여고생 성폭행 주범을 직원으로 뒀고 친척집이었던 것. 그리하여 네티즌 수사대들이 하나씩 증거를 수면 위로 올리니 처음에는 부정하던 가해자는 현재 인스타그램도 탈퇴하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가해자인 그는 자신의 딸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아빠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영화 속 용태도 자신의 딸은 그렇게 아끼면서도 학교 선생님, 빚쟁이의 딸, 15년 전에도 은지의 엄마를 성폭행하고 어린 은지까지 성폭행했던 것.

은지는 복수를 위해 섬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영화는 잘 만든 티브이 단막극 같은 느낌이다. 독립영화로 15년 동안 복수의 칼을 갈고 섬으로 들어온 은지가 용태와 한 몸인 마을의 범죄 청년들을 하나씩 처리를 한다. 용태까지 붙잡아서 묶어 놓지만 좀 엉성하니 15년 복수만을 위해 준비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허술한 모습도 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가해자의 처벌이 국민적 눈높이와는 형편없이 다르게 이루어져 영화처럼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를 찾아서 복수를 하는 일들이 진짜로 일어나지 않을까.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같은 경우도 피해자는 신상이 다 노출을 시켜 놓고 가해자는 늘 모자이크처리를 한다. 가해자는 교도소를 나가면 피해자를 가만 두지 않겠다 하고 결국 생활이 망가진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얼굴을 공개하고 용기를 냈다.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가는데 피해자는 삶이 무너져서 살아가는 현실도 영화에서처럼 시원하게 복수할 수 있었으면. 이번 김희애와 설경구 나오는 돌풍에서 대통령이 어느 날 지 쫄다구들에게 죽는다면서.

아무튼 가해자를 박살 내는 복수극 ‘은지: 돌이킬 수 없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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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어. 하루 만에 날씨가 확 바뀌는, 그런 날. 지난가을이었나, 어제까지는 시월인데 여름처럼 30도에 육박하는 날이었지. 근데 하루 만에 비가 오면서 온도가 초겨울의 날이 되더라고. 날씨는 꼭 곗돈 못 탄 변덕이 심한 시어머니 같아.


잘 지내고 있니. 나는 매일 불안스러운 생을 보내고 있어. 늘 불안하게 지내고 있으니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만약 내가 유명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불안의 아이콘이었을 거야. 지금 닥친 불안을 넘기면 좀 더 단단하고 큰 불안이 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


가끔은 불안하지 않는 날이 있어.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그럴 땐 불안하지 않아서 또 불안하지. 그래서 잠은 바로 들어. 누워서 질질 끌고 있으면 불안 때문에 잠이 들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바로 잠이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까지 그 사이에 절대 낮잠 같은 건 자지 않고 졸지 않으면 밤이 되면 바로 잠들 수 있어. 만약 잠이 오지 않는다면 한 번 이 방법을 해봐. 그러나 잠이 들었다가 한 번 깨곤 해. 아마 불안이 작동을 하는 모양이야. 잠에서 깨어나도 물 한 모금 마시고 바로 잠이 들지만 바로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 그런 날에는 지금처럼 잠들기를 포기하고 너에게 편지를 써.


이렇게 편지를 쓰다가 잠이 오면 바로 잠들 수 있기에 이 편지가 길어질지 짤막하게 끝날지는 알 수 없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다는 거야. 흑막이라는 것이 늘 배후에 껴 있어서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앞으로 앞으로 페달을 밟으며 갈 수밖에 없잖아. 아무리 노력을 하고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


일전에 조깅을 하고 돌아오다가 바닷가에 꼬치구이 트럭이 생겼기에 그 자리에  서서 닭날개, 염통, 닭다리, 내장 꼬치구이를 하나씩 먹었지. 가격도 저렴하더라. 나는 양념보다는 직화한 그대로 구운 꼬치를 좋아해. 그래서 종류별로 하나씩 먹었지. 맛있게는 먹었는데 맛이 다 똑같았어. 그럴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


내가 근래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 편의점 햄버거야. 맥날이나 버거킹이나 롯데리아보다 더 맛있는 거 같아. 단지 맛있어서 먹는데 주위에서는 큰일 나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고. 큰일 날 음식인데 편의점에서 팔 수 있는 걸까. 여러 종류를 먹어봤는데 맛도 다 다르면서 다 맛있었어. 여러 종류의 맛있는 음식의 맛이 다 똑같은 것보다 맛이 다 다르지만 맛있는 편의점 햄버거가 좋더라고. 나를 이상한 놈이라고 해도  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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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 같아. 먹는다,라는 말은 입으로 음식을 넣어서 씹어 삼키는 행위잖아. 먹는다는 건 그런 의미잖아. 하지만 그렇게 먹는 게 의식적으로 쉽지 않다는 거지. 우리는 그걸 기반이라고 하고, 먹는 걸 수월하게 먹는다면 우리는 그걸 기반을 잡는다고 해.


이상은이 부르는 [삶은 여행]은 깊이 있는 노래라고 생각해. 이 정도의 노래를 만들려면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가사를 만들 수 없어. 좌절을 맛보고 절망을 벌리고 들어가서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희망을 보고 나온 것 같은 가사야. [삶은 여행]과 [삶은 계란]의 ‘삶’이라는 글자는 같아.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삶’이라는 명사와 ‘삶다’라는 동사는 비슷한데 달라. 따지고 보면 ‘삶’과 ‘삶다’ 사이에는 시간이 지나 익어가면서 영글어 가는 명확함이 있는 거 같아. 그 사이에는 여러 개의 공백이 존재하고, 그 공백을 어떤 식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명확함이 달라지지. 그 속에 기반이라는 것이 있어.


우리는 [기반을 잡는다]라는 말을 왕왕하지. 기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기반이라는 단어와 의미에 대해서 굳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상은의 노래를 들으며 기반이라는 게 혹시 기. 본. 반. 찬.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매일매일 기본 반찬을 챙겨 먹는 것이 기반이 좀 잡히는 생활일지도 몰라.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기본 반찬을 매일 챙겨 먹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야. 언젠가 끝나는 [삶은 여행]을 계속 듣고 있으면 조금은 불안해.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두려움이 따라붙는 것처럼, 행복 속에 싹트는 껄끄러운 불안 말이야. 늘 행복하다가 한 번 불행해지는 게 나은 삶일까, 썩 행복하지 않다가 한 번 행복한 것이 나은 삶일까.


'삶’이라는 단어를 분절해 놓으면 ‘사람’이 돼. 사람의 ‘ㅁ’과 ‘ㅁ’이 만나면 부딪혀 깎이고 깎여 시간이 흘러야 ‘ㅁ’이 ‘ㅇ’이 되어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는 거 같아. 삶이란 하루를 삶아 가는 행위가 모이는 것일지도 몰라. 삶이란 인간의 긴 여행이고 여행은 언젠가 끝이 나잖아. 소중한 널 잃는 게 두려워서 삶은 언제나 행복하지 만은 않지.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도 없고, 하지만 노래처럼 이젠 알 수 있을 때가 오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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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날들


제목을 조용한 날들로 정했어. 어때 마음에 들어? 너는 내가 아굴라 샐러드를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나는 네가 아루굴라 샐러드를 무엇보다 맛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네가 지난번에 차려 준 사 첩 반상, 간단하지만 어려운 기본상이었지. 단순하지만 무척 맛있는 밥상이었어.


너는 먼저 앙드레 가뇽의 조용한 날들을 틀어놓고 음식을 준비했지. 조용한 날들을 듣고 있으면 마음의 고요한 부분으로부터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어. 네가 음식을 준비하는 뒷모습을 보며 연주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이대로 먼지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지.


퀘벡의 풍경을 들여다보듯,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이 흘러가듯, 조용한 날들이 흐르고 너는 주방에서 마술을 부리기 시작했지. 탐스럽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마늘과 참기름을 달달 볶았고 손질된 모래주머니를 잘라서 같이 넣어서 잘 저어 주었지.


할라피뇨가 있었으면 더 맛있었을 텐데,라며 너는 너의 작은 속상함을 드러냈지. 괜찮아,라고 나는 말했고 너는 미소를 지으며 양파를 썰어서 같이 볶았지. 그야말로 조용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어.


너는 순식간에 밥을 안치고 두부를 잘라서 된장국을 끓였고 쌉싸름한 맛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아루굴라 샐러드를 만들었지.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너만큼 아루굴라 샐러드 맛을 내는 사람은 없었어. 간소하지만 풍족하고 탐스러운 만찬이 앞에 차려졌지.


너는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좋아했어. 그런데 말이야, 앙드레 가뇽의 조용한 날들 이 곡, 김삼순에서 현빈이 연주한 곡인 거 알아? 라며 너는 웃었지.


조용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어. 김성대 시인의 구인에 나오는 시구처럼 나의 이륙과 착륙을 수신해 줄 사람은 너였고, 너의 눈동자에 손을 담가 꿈을 정돈해 줄 사람은 나였어. 그야말로 조용한 날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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