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왜 한꺼번에 오는 걸까. 시련이라는 발음도 마음에 들지 않아. 실연처럼 들리기도 해. 우리의 삶이라는 게 새벽의 수영장의 물처럼 고요하지만 한 번 흔들리면 다시 고요해지기가 힘든 것 같아.


한 번은 키보드와 마우스가 동시에 고장이 났어. 고작 키보드와 마우스 일 뿐인데 하루가 망가지는 거야. 그 ‘고작’이라는 게 인간의 삶을 망가트리는 것 같아. 지난번에 카카오 톡이 몇 시간 안 됐을 뿐인데 우리 삶이 어땠어?


시련이 한꺼번에 온 것 중에 타격이 가장 컸던 때는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생활을 할 때였지.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몽둥이로 여기저기 두드려 맞은 것 같았어.


그저 빨리 이 생활에서 벗어나기만 바랄 뿐이었는데 2년이나 지속되었지. 그때 실연도 같이 왔어. 시련과 실연은 그렇게 나에게 매질을 하더라.


시련이 가고 나면 평화가 찾아오는 거 같아.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은 무척이나 짧지. 평화라는 허울 주위에는 시련의 시간이 에워싸고 있어. 김소연 시인도 평화는 태풍의 눈과 같다고 했지.


평화 주위는 온갖 시련들이 우글거리고 있어. 평화의 그 짧은 달콤함은 금방 녹아 없어지고 말아. 시련을 많이 겪어야 한다지만 나는 시련이 싫어. 그렇다고 평화만을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평화가 길어지면 나태가 되니까. 영속될 수 없지. 그냥 그렇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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