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날들


제목을 조용한 날들로 정했어. 어때 마음에 들어? 너는 내가 아굴라 샐러드를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나는 네가 아루굴라 샐러드를 무엇보다 맛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네가 지난번에 차려 준 사 첩 반상, 간단하지만 어려운 기본상이었지. 단순하지만 무척 맛있는 밥상이었어.


너는 먼저 앙드레 가뇽의 조용한 날들을 틀어놓고 음식을 준비했지. 조용한 날들을 듣고 있으면 마음의 고요한 부분으로부터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어. 네가 음식을 준비하는 뒷모습을 보며 연주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이대로 먼지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지.


퀘벡의 풍경을 들여다보듯,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이 흘러가듯, 조용한 날들이 흐르고 너는 주방에서 마술을 부리기 시작했지. 탐스럽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마늘과 참기름을 달달 볶았고 손질된 모래주머니를 잘라서 같이 넣어서 잘 저어 주었지.


할라피뇨가 있었으면 더 맛있었을 텐데,라며 너는 너의 작은 속상함을 드러냈지. 괜찮아,라고 나는 말했고 너는 미소를 지으며 양파를 썰어서 같이 볶았지. 그야말로 조용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어.


너는 순식간에 밥을 안치고 두부를 잘라서 된장국을 끓였고 쌉싸름한 맛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아루굴라 샐러드를 만들었지.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너만큼 아루굴라 샐러드 맛을 내는 사람은 없었어. 간소하지만 풍족하고 탐스러운 만찬이 앞에 차려졌지.


너는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좋아했어. 그런데 말이야, 앙드레 가뇽의 조용한 날들 이 곡, 김삼순에서 현빈이 연주한 곡인 거 알아? 라며 너는 웃었지.


조용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어. 김성대 시인의 구인에 나오는 시구처럼 나의 이륙과 착륙을 수신해 줄 사람은 너였고, 너의 눈동자에 손을 담가 꿈을 정돈해 줄 사람은 나였어. 그야말로 조용한 날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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