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어. 하루 만에 날씨가 확 바뀌는, 그런 날. 지난가을이었나, 어제까지는 시월인데 여름처럼 30도에 육박하는 날이었지. 근데 하루 만에 비가 오면서 온도가 초겨울의 날이 되더라고. 날씨는 꼭 곗돈 못 탄 변덕이 심한 시어머니 같아.


잘 지내고 있니. 나는 매일 불안스러운 생을 보내고 있어. 늘 불안하게 지내고 있으니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만약 내가 유명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불안의 아이콘이었을 거야. 지금 닥친 불안을 넘기면 좀 더 단단하고 큰 불안이 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


가끔은 불안하지 않는 날이 있어.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그럴 땐 불안하지 않아서 또 불안하지. 그래서 잠은 바로 들어. 누워서 질질 끌고 있으면 불안 때문에 잠이 들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바로 잠이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까지 그 사이에 절대 낮잠 같은 건 자지 않고 졸지 않으면 밤이 되면 바로 잠들 수 있어. 만약 잠이 오지 않는다면 한 번 이 방법을 해봐. 그러나 잠이 들었다가 한 번 깨곤 해. 아마 불안이 작동을 하는 모양이야. 잠에서 깨어나도 물 한 모금 마시고 바로 잠이 들지만 바로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 그런 날에는 지금처럼 잠들기를 포기하고 너에게 편지를 써.


이렇게 편지를 쓰다가 잠이 오면 바로 잠들 수 있기에 이 편지가 길어질지 짤막하게 끝날지는 알 수 없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다는 거야. 흑막이라는 것이 늘 배후에 껴 있어서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앞으로 앞으로 페달을 밟으며 갈 수밖에 없잖아. 아무리 노력을 하고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


일전에 조깅을 하고 돌아오다가 바닷가에 꼬치구이 트럭이 생겼기에 그 자리에  서서 닭날개, 염통, 닭다리, 내장 꼬치구이를 하나씩 먹었지. 가격도 저렴하더라. 나는 양념보다는 직화한 그대로 구운 꼬치를 좋아해. 그래서 종류별로 하나씩 먹었지. 맛있게는 먹었는데 맛이 다 똑같았어. 그럴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


내가 근래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 편의점 햄버거야. 맥날이나 버거킹이나 롯데리아보다 더 맛있는 거 같아. 단지 맛있어서 먹는데 주위에서는 큰일 나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고. 큰일 날 음식인데 편의점에서 팔 수 있는 걸까. 여러 종류를 먹어봤는데 맛도 다 다르면서 다 맛있었어. 여러 종류의 맛있는 음식의 맛이 다 똑같은 것보다 맛이 다 다르지만 맛있는 편의점 햄버거가 좋더라고. 나를 이상한 놈이라고 해도  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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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 같아. 먹는다,라는 말은 입으로 음식을 넣어서 씹어 삼키는 행위잖아. 먹는다는 건 그런 의미잖아. 하지만 그렇게 먹는 게 의식적으로 쉽지 않다는 거지. 우리는 그걸 기반이라고 하고, 먹는 걸 수월하게 먹는다면 우리는 그걸 기반을 잡는다고 해.


이상은이 부르는 [삶은 여행]은 깊이 있는 노래라고 생각해. 이 정도의 노래를 만들려면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가사를 만들 수 없어. 좌절을 맛보고 절망을 벌리고 들어가서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희망을 보고 나온 것 같은 가사야. [삶은 여행]과 [삶은 계란]의 ‘삶’이라는 글자는 같아.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삶’이라는 명사와 ‘삶다’라는 동사는 비슷한데 달라. 따지고 보면 ‘삶’과 ‘삶다’ 사이에는 시간이 지나 익어가면서 영글어 가는 명확함이 있는 거 같아. 그 사이에는 여러 개의 공백이 존재하고, 그 공백을 어떤 식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명확함이 달라지지. 그 속에 기반이라는 것이 있어.


우리는 [기반을 잡는다]라는 말을 왕왕하지. 기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기반이라는 단어와 의미에 대해서 굳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상은의 노래를 들으며 기반이라는 게 혹시 기. 본. 반. 찬.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매일매일 기본 반찬을 챙겨 먹는 것이 기반이 좀 잡히는 생활일지도 몰라.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기본 반찬을 매일 챙겨 먹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야. 언젠가 끝나는 [삶은 여행]을 계속 듣고 있으면 조금은 불안해.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두려움이 따라붙는 것처럼, 행복 속에 싹트는 껄끄러운 불안 말이야. 늘 행복하다가 한 번 불행해지는 게 나은 삶일까, 썩 행복하지 않다가 한 번 행복한 것이 나은 삶일까.


'삶’이라는 단어를 분절해 놓으면 ‘사람’이 돼. 사람의 ‘ㅁ’과 ‘ㅁ’이 만나면 부딪혀 깎이고 깎여 시간이 흘러야 ‘ㅁ’이 ‘ㅇ’이 되어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는 거 같아. 삶이란 하루를 삶아 가는 행위가 모이는 것일지도 몰라. 삶이란 인간의 긴 여행이고 여행은 언젠가 끝이 나잖아. 소중한 널 잃는 게 두려워서 삶은 언제나 행복하지 만은 않지.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도 없고, 하지만 노래처럼 이젠 알 수 있을 때가 오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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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날들


제목을 조용한 날들로 정했어. 어때 마음에 들어? 너는 내가 아굴라 샐러드를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나는 네가 아루굴라 샐러드를 무엇보다 맛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네가 지난번에 차려 준 사 첩 반상, 간단하지만 어려운 기본상이었지. 단순하지만 무척 맛있는 밥상이었어.


너는 먼저 앙드레 가뇽의 조용한 날들을 틀어놓고 음식을 준비했지. 조용한 날들을 듣고 있으면 마음의 고요한 부분으로부터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어. 네가 음식을 준비하는 뒷모습을 보며 연주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이대로 먼지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지.


퀘벡의 풍경을 들여다보듯,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이 흘러가듯, 조용한 날들이 흐르고 너는 주방에서 마술을 부리기 시작했지. 탐스럽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마늘과 참기름을 달달 볶았고 손질된 모래주머니를 잘라서 같이 넣어서 잘 저어 주었지.


할라피뇨가 있었으면 더 맛있었을 텐데,라며 너는 너의 작은 속상함을 드러냈지. 괜찮아,라고 나는 말했고 너는 미소를 지으며 양파를 썰어서 같이 볶았지. 그야말로 조용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어.


너는 순식간에 밥을 안치고 두부를 잘라서 된장국을 끓였고 쌉싸름한 맛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아루굴라 샐러드를 만들었지.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너만큼 아루굴라 샐러드 맛을 내는 사람은 없었어. 간소하지만 풍족하고 탐스러운 만찬이 앞에 차려졌지.


너는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좋아했어. 그런데 말이야, 앙드레 가뇽의 조용한 날들 이 곡, 김삼순에서 현빈이 연주한 곡인 거 알아? 라며 너는 웃었지.


조용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어. 김성대 시인의 구인에 나오는 시구처럼 나의 이륙과 착륙을 수신해 줄 사람은 너였고, 너의 눈동자에 손을 담가 꿈을 정돈해 줄 사람은 나였어. 그야말로 조용한 날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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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는 글에 제목을 붙이기로 했어. 제목은 이름 같은 거라 생각이 들었거든. 근데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일전에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서 또 생각을 했지. 죽음은 위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 죽고 나면 흩어져있던 사람들을 불러들이니까. 왜, 있잖아 영화 [괴물]에서 그러잖아. 변희봉이 장례식장에서 현서야 너 덕분에 우리가 다 모였다.라고 말이야.


죽음이란 누구나 맞이하는 관념인데 막상 닥치면 너무나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가는 긴 여정을 할 뿐인데 말이야. 나의 불안의 근원도 이 죽음이라는 것에서 오는 것일까. 생각을 하고 또 해봐도 죽음에 기인하는 건 아닌 거 같아. 좀 더 근원적인 태동이 있어.


친구의 이른 죽음 속에서 나의 모습도 볼 수 있었어. 정확히는 나의 불안을 말이야. 그러니까 나의 불안은 죽음으로 인해서 헤어지는 것, 영원히 헤어지는 것. 우리는 영원히 사랑해, 같은 영원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지만 실은 이 세상에 영원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거짓이다,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영원한 헤어짐이 도처에 널려 있더라. 장례식장에 가면 전부 영원한 헤어짐이야.


요즘은 더 불안해서 인지 담배를 피우는 꿈을 꾼다. 우습지. 그게 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몹시 불안한 상태가 되어서 잠이 들면 담배를 피우는 꿈을 꿔. 담배를 한 모금 빨 때마다 연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몸속에 점점 쌓이는 거야. 그러다가 눈까지 연기가 차올라 앞이 흐리게 보이다가 결국 숨이 막혀. 꿈속인데도 숨이 막히는 건 진짜 숨이 막히는 거지.


나는 이걸 피우면 죽겠구나 하면서도 담배 피우는 것을 멈출 수가 없어. 어떤 날은 꿈이지만 진짜 담배를 피우는 착각까지 들어. 이걸 피우면 정말 끝났다는 생각이 들지만 피우지 않을 수 없어.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현실에서 담배는 그저 피운다,라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꿈속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그 고통이 현실의 나에게 전달이 돼. 그래서 꿈속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되지만 불안 때문인지 그 속에서 담배를 열심히 피워. 점점 차오르는 연기에 내 몸이, 내 얼굴이, 내 눈이 잠식되어 가.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말이야. 이런 기분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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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구리의 본명은 소옥이었다. 소옥이는 지네 학교의 문예부 부장으로 기철이와 우리가 몇 날 며칠을 같이 써서 교지에 실은 유재하의 글을 보고 우리 학교로 찾아왔다. 남자고등학교에 당당하게 찾아온 소옥이를 보며 학교 아이들은 창문에서 휘파람을 불었고 추파를 던지는 애들도 있었다.     


 소옥이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앞만 보며 곧장 걸어서 교무실로 들어와서 문예부 선생님을 찾아가 용무를 말하고 문예부에서 기철이를 만났다. 그게 소옥이, 그러니까 개구리가 우리와 어울리게 된 처음의 장면이었다.     


 개구리는 버지니아 울프를 무척 좋아했고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여러 번 읽은 문학소녀였다. 매일 습작을 했고 원고지를 구기고 펴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개구리는 몇 시간이고 꼼짝 안고 책을 읽었는데, 우리와는 조금 스타일이 달랐다.     


 우리도 책을 좋아했지만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대부분 어딘가에 쭈그리고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며 책을 좀 읽었고, 슈바빙에 너무 일찍 가서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책을 읽었고, 또는 슈바빙 주인 누나가 어딘가 외출을 해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계단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당구를 칠 때 큐대를 잡지 않고 친구들이 게임을 하는 동안 책을 읽거나 했다. 보통 이런 식이었다.     


 어떻든 개구리는 책을 좋아했다. 역시 읽는 방법은 달랐지만 우리도 그랬다. 개구리의 입에서 나오는 풍부한 단어와 어휘력과 독특한 음악 취향이 우리를 그녀에게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개구리는 안경을 썼는데 안경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큰 눈동자를 지녔다. 뒷머리를 툭 치기만 해도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큰 눈이 얼굴에 붙어 있으니 꽤 조합이 나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사진에도 관심이 많아서 나에게 사진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했다. 질문은 늘 어려웠고 대답이 시원찮으면 졸업한 선배(사진과에 진학을 한)를 만나게 해달라고 나를 조르기도 했다.     


 그렇게 두들겨 팼던 선배들을 다시 만나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다. 개구리의 학교에는 사진부가 없었기 때문에 개구리는 흘러넘치는 사진에 대한 호기심을 푸는 창구를 나로 하여금 풀려고 했다.     


 개구리는 가제보의 ‘아이 라이크 쇼팽’을 즐겨 들었는데,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부를라 치면 간주 부분만 몇 분이나 나오기에 우리는 이미 지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가제보의 그 노래는 꽤 좋아서 개구리가 올 댓 재즈에 오면 올리브가 가제보의 노래를 틀어 주었다. 꽤나 그 순간은 낭만적이었다.     


 집이 울릉도인 득재의 생일에 우리는 올 댓 재즈에 모였다. 올리브가 특별히 주방에서 닭을 튀겨 왔다. 그냥 페리카나를 배달시켜 먹기를 우리 모두는 바랐지만 우리의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올리브의 요리 솜씨는 좀 뭐랄까, 긴장을 하고 음식을 대하게 만들었다. 과연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늘 팽팽하게 자리를 잡았다.     


 올리브가 끓여주는 라면은 라면일 뿐인데도 치약 맛이 나는 그런 능력을 지녔다.     


 올리브가 야심 차게 닭을 두 마리나 튀겨 왔다. 닭이란 온도를 맞춰서 기름에서 튀기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도 닭튀김을 여러 번 집어먹은 우리들은 돌아가며 화장실을 갔다 왔다. 뭘 집어넣어서 튀겼는지 닭에서는 매실 맛이 나기도 했고, 시큼한 맛이 나기도 했는데 식초를 가득 넣어서 튀겼다고 했다. 맙소사.     


 득재만 기분이 좋아서 술을 계속 마시며 닭을 먹었다.     


 그러던 중 득재가 눈이 풀려 말했다.     


 “세상에 좋게 헤어진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어. 좋게 헤어지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좋지 않게 여러 번 헤어지는 경험을 하는 바보도 없다고 씨발, 헤어질 땐 미친놈 취급을 당하더라도 울부짖고 매달릴 수 있을 때까지 매달리는 거야. 왜냐하면 이 세상 이별의 대부분은 그대로 영원히 이별이 되기 때문이야! 그때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은 영원히 갈 곳을 잃어버리게 된다구!”     


 득재의 머리는 테이블로 푹 떨어졌다.     


 개구리가 그 큰 눈으로 득재를 시부지기 바라보았다. 득재를 바라보는 개구리의 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엿보였다. 올 댓 재즈에는 아이 라이크 쇼팽이 반복되어서 흘렀다.



가제보의 아이 라이크 쇼팽 https://youtu.be/grGjD1rTN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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