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의 본명은 소옥이었다. 소옥이는 지네 학교의 문예부 부장으로 기철이와 우리가 몇 날 며칠을 같이 써서 교지에 실은 유재하의 글을 보고 우리 학교로 찾아왔다. 남자고등학교에 당당하게 찾아온 소옥이를 보며 학교 아이들은 창문에서 휘파람을 불었고 추파를 던지는 애들도 있었다.     


 소옥이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앞만 보며 곧장 걸어서 교무실로 들어와서 문예부 선생님을 찾아가 용무를 말하고 문예부에서 기철이를 만났다. 그게 소옥이, 그러니까 개구리가 우리와 어울리게 된 처음의 장면이었다.     


 개구리는 버지니아 울프를 무척 좋아했고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여러 번 읽은 문학소녀였다. 매일 습작을 했고 원고지를 구기고 펴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개구리는 몇 시간이고 꼼짝 안고 책을 읽었는데, 우리와는 조금 스타일이 달랐다.     


 우리도 책을 좋아했지만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대부분 어딘가에 쭈그리고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며 책을 좀 읽었고, 슈바빙에 너무 일찍 가서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책을 읽었고, 또는 슈바빙 주인 누나가 어딘가 외출을 해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계단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당구를 칠 때 큐대를 잡지 않고 친구들이 게임을 하는 동안 책을 읽거나 했다. 보통 이런 식이었다.     


 어떻든 개구리는 책을 좋아했다. 역시 읽는 방법은 달랐지만 우리도 그랬다. 개구리의 입에서 나오는 풍부한 단어와 어휘력과 독특한 음악 취향이 우리를 그녀에게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개구리는 안경을 썼는데 안경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큰 눈동자를 지녔다. 뒷머리를 툭 치기만 해도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큰 눈이 얼굴에 붙어 있으니 꽤 조합이 나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사진에도 관심이 많아서 나에게 사진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했다. 질문은 늘 어려웠고 대답이 시원찮으면 졸업한 선배(사진과에 진학을 한)를 만나게 해달라고 나를 조르기도 했다.     


 그렇게 두들겨 팼던 선배들을 다시 만나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다. 개구리의 학교에는 사진부가 없었기 때문에 개구리는 흘러넘치는 사진에 대한 호기심을 푸는 창구를 나로 하여금 풀려고 했다.     


 개구리는 가제보의 ‘아이 라이크 쇼팽’을 즐겨 들었는데,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부를라 치면 간주 부분만 몇 분이나 나오기에 우리는 이미 지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가제보의 그 노래는 꽤 좋아서 개구리가 올 댓 재즈에 오면 올리브가 가제보의 노래를 틀어 주었다. 꽤나 그 순간은 낭만적이었다.     


 집이 울릉도인 득재의 생일에 우리는 올 댓 재즈에 모였다. 올리브가 특별히 주방에서 닭을 튀겨 왔다. 그냥 페리카나를 배달시켜 먹기를 우리 모두는 바랐지만 우리의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올리브의 요리 솜씨는 좀 뭐랄까, 긴장을 하고 음식을 대하게 만들었다. 과연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늘 팽팽하게 자리를 잡았다.     


 올리브가 끓여주는 라면은 라면일 뿐인데도 치약 맛이 나는 그런 능력을 지녔다.     


 올리브가 야심 차게 닭을 두 마리나 튀겨 왔다. 닭이란 온도를 맞춰서 기름에서 튀기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도 닭튀김을 여러 번 집어먹은 우리들은 돌아가며 화장실을 갔다 왔다. 뭘 집어넣어서 튀겼는지 닭에서는 매실 맛이 나기도 했고, 시큼한 맛이 나기도 했는데 식초를 가득 넣어서 튀겼다고 했다. 맙소사.     


 득재만 기분이 좋아서 술을 계속 마시며 닭을 먹었다.     


 그러던 중 득재가 눈이 풀려 말했다.     


 “세상에 좋게 헤어진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어. 좋게 헤어지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좋지 않게 여러 번 헤어지는 경험을 하는 바보도 없다고 씨발, 헤어질 땐 미친놈 취급을 당하더라도 울부짖고 매달릴 수 있을 때까지 매달리는 거야. 왜냐하면 이 세상 이별의 대부분은 그대로 영원히 이별이 되기 때문이야! 그때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은 영원히 갈 곳을 잃어버리게 된다구!”     


 득재의 머리는 테이블로 푹 떨어졌다.     


 개구리가 그 큰 눈으로 득재를 시부지기 바라보았다. 득재를 바라보는 개구리의 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엿보였다. 올 댓 재즈에는 아이 라이크 쇼팽이 반복되어서 흘렀다.



가제보의 아이 라이크 쇼팽 https://youtu.be/grGjD1rTN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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