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 1이 쿠사나기 소령의 이야기라면 2는 소령의 파트너였던 버트의 이야기다. 이 장면은 공각기동대 2편에 속하는 이노센스 편이다. 사진은 영화 속에서 펼친 책의 모습이다. 한글이라 나는 캡처를 해서 또 다 읽어봤다. 얽어보니 여긴 누구? 나는 어디? 같은 내용이다. 1편의 주인공 쿠사나기가 실종이 되었는데 그 기억만 가지고 있는 파트너였던 버트 버전의 이야기다.


1편에서 쿠사나기는 아마도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버렸을 것이다. 영화 ‘루시’를 보면 그렇게 된다. 오시미 마모루는 인간은 컴퓨터로 모든 걸 전부 할 수 있다. 가상공간으로 만남도 가지고 심지어 육체적 쾌락도 느낄 수 있다. 더 먼 미래로 가면 마우스로 조작만 하면 인간이 활동하면서 하는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음식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사람의 형태가 점점 진화하여 굳이 육체라는 건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인간의 정신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의 점처럼 변하여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서 1초 만에 미국으로 갈 수 있고 여자나 남자를 만날 수 있고 그 안에서 섹스를 즐길 수 있다. 그 중간 과정에 있는 단계가 인형사, 즉 휴머노이드의 육체를 가지거나 나 아닌 인간의 몸에 올라탈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친 쿠사나기 소령은 마지막에 실종이 되었다고 하지만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시스템 속 정보의 바닷속을 마음껏 다니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쿠사나기의 기억만 가지고 있는 파트너였던 버트가 이번 편에서 주인공이다. 이 영화 이노센스 편에서는 화려한 문구가 대거 등장한다. 전부 철학가 내지는 문학가들이 할 법한 대사들을 내뱉는데 그걸 읽는 재미도 있다. 2004년에 나온 영화로 1편이 나오고 거의 10년 만에 나왔다.


공각기동대에는 미래에 대한 많은 모습이 나온다. 컴퓨터에 관련된 미래의 형태가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공각기동대는 이후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관한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매트릭스부터 여러 영화에 까지.


그런데 공각기동대 속 미래의 모습에서 휴대전화는 지금의 스마트폰의 형태가 아니다. 그러니까 아이폰이 나오기 이전 많은 영화들 속에서 미래의 휴대전화 형태가 나왔지만 지금의 스마트폰의 형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보통 현실의 상상력이 영화 속 상상력을 못 따라가는데 이 스마트폰 하나만큼은 현실의 상상력이 영화적 상상력을 이겨버린 것이다. 그러니 스티브 잡스의 앞을 내다보는 생각, 시각은 크고 넓고 깊다. 하지만 잡스의 인간적인 면은 좁고 얕고 불안하기만 했다.


이 공각기동대는 요즘의 웨스트 월드를 보면 다시 생각이 난다. 인간은 왜 인간을 닮은 인조인간, 휴머노이드, 안드로이드를 만드려고만 할까. 왜 인간과 더 똑같은 인조인간을 무서워하면서도 인간과 똑 닮은 그런 휴머노이드를 만들려고 지금도 노력을 할까.


애완용 로봇이나 가이노이드는 공리주의나 실용주의와는 관계없는 존재지. 왜 그들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며 인체 이상형을 모방해서 만들어지게 됐을까. 인간은 왜 닮은꼴을 만들고 싶어 하는 걸까.


애들은 늘 인간이란 규범을 벗어나 살아가지. 확립된 자아와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게 인간의 정의라면 말이지. 인간의 전단계로서 카오스 속에 살아가는 애들은 대체 뭘까? 내면은 인간과 다른데 모습은 인간이야. 여자애가 소꿉놀이 할 때 쓰는 인형은 실제 아기의 대체물이 아니야. 여자애는 육아 연습을 하는 게 아니라고. 어쩌면 인형놀이가 실제 육아와 비슷할지도 몰라. 즉 육아는, 인조인간을 만들려는 오랜 꿈을 가장 쉽고도 빠르게 실현시켜 주는 방법인거지.


인간과 기계,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구별하지 않았던 데카르트는 다섯 살 때 죽은 딸과 꼭 닮은 인형을 프란신느라 이름 짓고 엄청 사랑했지. 이런 얘기도 있단 거야.


공각기동대 2는 2004년도 작으로 굉장한 영상미에 전투씬 역시 멋진 영화였다. 암울한 미래를 이만큼 잘 나타내는 영화도 없을 터. 결은 좀 다르지만 근래에 읽었던 김영하의 소설 ‘작별인사’에서의 대사들도 떠오른다.


공각기동대에는 미래의 전자기기들이 엄청나게 나온다. 이미 공각기동대 1에서 홀로그램부터 기계적 설정이 들어있는 전화기까지, 그 당시에 미래를 이렇게 세세하고 조밀하게 표현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살아있는 인간이 뇌의 지적능력만 가지고 배설을 하지 않는, 인간과 닮은 안드로이드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면.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지만 공각기동대부터 수많은 미래 영화 속에 나오는 휴대전화기가 아이폰 형태를 띠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영화적 상상이 보통 현실을 훌쩍 뛰어넘는데 우리가 들고 다니는 이 스마트폰은 영화적 상상을 넘어 버렸다.


현실은 영화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영화도 현실을 예견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이제 GhatGPT가 핫 한 요즘, 그리고 앞으로 빠르게 증식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요즘, 한 사람의 짧은 문장의 목소리만 듣고 길게 똑같이 에이아이가 말을 하는 요즘 - 그리하여 정치가나 유명인들이 실제로 하지 않은 말들을 가짜가 진짜처럼 말을 해버리는 가까운 미래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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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감동을 주는 기묘한 관념? 은유? 여하튼 그렇다. 우리는 다 알고 있는 관념이지만 막상 그게 뭔데?라고 물으면 딱히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시간이 그렇다. 시간이 뭔지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시간이 뭐야?라고 물으면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빛도 그렇다. 빛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빛이 없으면 인간은 살지 못한다. 그러나 빛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바로 대답을 하지는 못한다. 과학자들은 과학적으로 바로 대답을 할지도 모르지만.


노래 역시 그렇다.

노래가 뭐지?

노래는 말이야 시에 음을 붙인 거야. 그래서 가장 빨리 감격하게 되고 감동을 줘.


노래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안 좋은 노래도 있다. 또 순전히 개개인의 내면에 작용하기 때문에 순전히 개인적이어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다른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다. 노래는 참 이상하게도 오래전에 나온 노래라고 해서 싫증이 나거나 요즘과 맞지 않아서 듣기 싫어! 하지도 않는다.


요즘도 맨하탄스를 계속 듣는데 질리지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 학창 시절에 구입한 카세트테이프를 아직도 듣고 있는데 늘어지거나 음이 이탈하거나 하는 부분도 없다. 맨하탄스의 앨범을 듣고 있으면 중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그때 분명 세상을 갈아먹어 버릴 것 같은 시끄러운 해비메틀을 줄곧 들었는데 그 사이에 맨하탄스가 들어왔다.


샤이닝 스타는 무려 66년의 곡이다. 담배 연기 가득한 실내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녹색빛깔의 술을 마시며 들으면 좋을 노래다. 이토록 화음이 좋을 수가 있을까. 중학생 때 자주 들락거렸던 음악감상실의 디제이는 지방 라디오에서 음악 방송을 하고 있어서 음악에 대한 정보가 많았다. 그에게서 듣는 팝스타들의 가십은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국사나 물리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팝스타들의 이야기는 한 번만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나 재미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76년에 그 유명하고 유명한 ‘키스 앤 세이 굿바이’를 냈다. 첫 시작을 알리는 묵직한 랩은 맨하탄스의 확고한 스타일을 말해준다. 나는 고등학교 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카페의 주인이 늘 가요만 틀었는데 주인이 없을 때 나는 맨하탄스의 키스 앤 세이 굿바이를 틀곤 했다. 그래서 요즘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이 노래는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첫 시작이, 오늘이 내 인생에 가장 슬픈 날이 될 것 같아요. 오늘은 당신에게 조금 안 좋은 소식을 들려주려고 해요. 라며 죽 이어지는데 묵직한 랩으로 시작을 한다.


맨하탄스의 화음은 기가 막힌다. 맨하탄스의 성장과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죽겠지만 요즘은 복고맨 같은 음악 전문 유튜브 채널에서 어지간한 팝 스타들에 대해서는 다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나처럼 뇌피셜로 떠드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주로 음악 감상실의 디제이나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를 나의 방식대로 확장시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다 보면 펙트 와는 조금 멀어지는 감이 있다.


그 덕분인지 학창 시절에는 주위에 몇몇이 꼭 붙어 있었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교실 뒤에서 유행가요에서 벗어난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공유하는 아이들은 꼭 있었다.


온통 헤비메탈이 가득한데 맨하탄스가 그 사이에 끼어들더니 라이쳐스 브라더스, 맨하탄 트렌스퍼, 보브 딜런, 제니스 이안 같은 가수들의 노래들을 들었다. 뭔가 하루종일 음악만 듣고 있었던 적도 있었고, 음악만 들어도 좋아,라고 생각했던 시기였다.


지나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학창 시절에 공부는 뒷전이고 당구장이나 오락실보다 레코드 가게나 음악 감상실을 들락거리며 음악이나 매일 들으며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으면 지금은 음악 평론가가 되어 있거나 음악을 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나는 그동안 뭘 했나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니 좀 우울하네.


어쨌거나 맨하탄스의 노래는 명곡에 속하니까 한 번 들어보자. 좋아 죽는다.


키스 앤 세이 굿바이 https://youtu.be/wtjro7_R3-4 TheManhattansVEVO


샤이닝 스타 https://youtu.be/I_sxBUOR0Kk TheManhattansVE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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좃니? 그게 뭐야? 좋니라고. 좋니야? 아니, 존 리,라고. 나의 이름이야. 외국 이름. 좃니가 아니고, 좋니도 아니고. 존 리.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큭큭 거렸다.


반나절을 라디오를 켜 놓고 있는데, 라디오가 아날로그 라디오라 프로그램 중에 몇 개의 프로그램은 지방 방송이 나온다. 지방 방송은 특색이 있다. 그런데 특색은 둘째치고 언젠가부터 어? 뭐야? 하게 되는 건 사연이 오면 디제이가 전부 괜찮다, 노력해 보자, 성공, 책임, 포기하지 마라, 비전, 같은 말을 많이 한다.


일본 영화 중에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 2’가 있다. 1편은 키타카와 케이코의 주연으로 현재 한국에서 리메이크되어서 천우희 주연으로 나왔다. 그 2편이 있는데 보면 속이 터진다. 괜찮다, 사과하자, 엄마에게 학대받고 자란 주인공에게 여자 친구가 이제 엄마를 용서하자, 그러면 안 된다, 같은 대사로 계속 답답하기만 하다. 1편에는 키타카와 케이코가 주인공이기라도 했지 이건 뭐.


더 글로리에서 동은이 복수를 한다고 했을 때 간호선생님처럼 꼭 복수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지금은 필요하다. 2시의 데이트에서 안영미는 사연을 보낸 사람과 밀고 당기기를 한다. 뭐 좋은 말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방 라디오 디제이는 계속 희망고문만 하는 맨트를 한다. 안 그래도 지방특색이 짙어서 그게 장단점이지만 왜 요즘에 90년대 방송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몇 년째 유튜브 실시간 라디오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은 15명이 넘지 않는다.


라디오 전체를 통틀어 불만은 자본주의에 너무 물이 들었다는 것이다. 사연을 무료로 받는 어플이나 유튜브 댓글보다는 짧은 문자 50원, 긴 문자 100원 하는 유료 문자로 유도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어떤 코너에서는 유료 문자만 받는다. 사람들에게 50원, 100원씩 받는 돈이 어마어마할 텐데 도대체 이렇게 매일, 매시간 엄청나게 받은 문자비용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이런 부분에 가장 부정적이었던 배캠의 배철수 형님도 아마 자본주의에 진 모양이다. 그래도 짧은 문자만 보내라, 100원짜리는 보낼 필요가 없다고 하는 아마도 유일한 디제이가 아닐까 싶다.


옛날에 절대적으로 좋은 것들이 근래에 들어서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바뀌기도 한다. 라디오는 조건 없이 좋아했는데 내가 느끼기에 편파적으로 가수의 노래를 자주 틀어준다던가, 특히 그 가수의 노래가 앞의 라디오에서도 나오고, 뒤에서도 나온다면 라디오도 호러블 하게 느껴진다. 가요만 틀어준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가요가 있는데 밀어주는 가수의 노래가 일주일 동안 여러 번 나온다는 건 아무래도 라디오가 미워 보인다.



그래, ‘팬아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20대 커플. 라디오에 ‘팬아저’가 나왔다. 남자 친구가 그게 뭐지? 그러자 여자 친구가 그것도 몰라? 차은우는 팬아저.라고 여자 친구가 말했다. 남자 친구가 뭐야? 그게? 응, 차은우는 팬은 아니지만 저장. 너 차은우 팬은 아니야? 응, 차은우는 뭔가 사람 같지 않아. 너무 잘 생겨서 별로야. 그렇지만 사진은 저장하고 싶어. 헐.



어제 곽상도 아들의 50억 원이 무죄라고 나왔는데 역시 법은 서민들, 가난한 자, 국민들보다는 지위가 높은 사람, 돈이 많은 사람, 그래서 실력 있는 변호사를 둔 자들을 위한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50억 무죄, 이걸 받아들일 사람이 몇 이나 있을까. 월급이 280만 원 정도라는데 퇴직금으로 50억을 받으려면 뭐야? 계산도 되지 않는다. 몇 년을 일을 해야 할까. 아픈 것 때문에 그렇다는데 이석증이다. 이석증 걸리면 생활이 불편하지. 하지만 보통 2주 정도 치료를 받으면 낫는다. 이게 나라다. 권나라 보고 싶네. 나의 아저씨에서 그 맹하던 권나라가 행복했으면.


퇴직금 50억 받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고작 라면에 위로를 받는다. 어째서 나는 라면 같은 것에서 위로를 받는 것일까. 왜 이렇게 하찮은 것에서 위로를 받을까. 나의 사랑 안성탕면 한 묶음 가격이 올랐다. 천삼백얼마에서 천오백 원이 넘었다. 나는 고작 몇 백 원에 짜증이 나고 열받는다. 특히 50억 무죄 뉴스를 보고 난 후라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초라하지 않으려고 오늘은 라면에 김치도 넣어서 같이 끓였다. 계란도 바로 깨트려 넣지 않고 스크램블을 만들어서 넣었다. 초라해지지 말자. 라면을 한 젓가락 먹었다. 아 정말 맛있다. 하지만 초라하다는 생각은 머물러서 떠나지 않는다.


나 예전에 2011년에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십만 원을 기부했다. 이번에 튀르키예 사태에 기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15년 동안 해외아동 기부를 하던 것도 끊어야 했다. 15년 동안 초반에 기부했던 아이는 훌쩍 커버려서 자신이 알아서 생활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다음 아이에게 넘어갔는데 중단해야 했다. 전화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중단을 하는데 나의 전화번호를 말하는데 전화번호가 맞지 않았는데 예전 011로 되어 있었다.


아무튼 초라한 인생이 되었다. 나를 위로해 주는 건 초라하게 보이는 라면이다. 얼른 한 그릇 후딱 먹고 글을 쓰자. 글을 쓰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중독의 세계로 얼른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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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2-10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글 재밌네요. 많이 웃었습니다. ㅎㅎ
요즘 2시의 데이트 안영미가 하나요?
전 김기덕 아저씨 밖에 몰라서요. 김기덕 아저씨 요즘 뭐하나 모르겠네요.
몇년 전만에도 방송 활동했던 것 같은데...
팬아저가 그런 뜻이었군요.
그러게요. 오십 원 백 원 별거 아닌 거 같은데도 이상하게 신경 쓰이더라구요.

교관 2023-02-11 12:15   좋아요 0 | URL
네 요즘 두데는 안영미랑 뮤지가 같이 하고 있어요 ㅎㅎ

음악보다는 청취자들과 소통 위주? 그런 방송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확실하게 겨울의 밤이 아니었다. 조깅을 하는데 봄의 기운을 느낀 날이었다. 겨울의 그 혹독함이 밤인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달리다 보면 등에서 땀이 나는 그런 날이었다. 땀이 식어도 축축하지 않은, 그래서 춥지 않은 밤이었다.


날이 풀리면 가족 단위로 강변에 운동을 하러 나오는 경우가 있다. 방학이라 그런지 퇴근한 아빠를 따라 나온 초등생 아들도 보였다. 집에서 밥 먹고 난 후 폰으로 게임이나 하는 것이 좋을 나인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 통통한 몸매 때문에 아빠를 따라나섰다. 아빠 역시 배가 많이 나와서 두 사람은 운동을 하러 나온 모양이었다.


강변을 따라 조깅을 하다가 몸을 푸는 곳에서 다리를 풀고 있었다. 턱걸이를 하는 곳에 아주머니가 섰다. 아주머니였다. 50대? 초반? 40대 후반? 그렇게 보였는데 겉옷을 벗어서 걸어두더니 턱걸이를 정확한 자세로 10개를 완벽하게 하더니 다리를 올려 거꾸로 매달렸다. 그리고 그 자세로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대단했다.


그 모습을 입을 벌리고 보던 초등학생이, 초 3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 녀석이 아빠에게 큰 소리로 아빠는 저거 할 수 있어?라고 물었다. 옆에서 알 수 없는 운동을 하던 아빠는 조용하게 아니 못 해.라고 했다. 아들이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아주머니를 한참 보더니 느닷없이 아버지! 아버지는 스무 살에는 저렇게 할 수 있었죠?라고 높임말을 했다.


갑자기 아빠가 아닌 아버지라며 높임말을 하는 아들 녀석 때문에 나는 웃음이 나왔지만 웃을 수 없었다. 뭔가 아들 녀석은 진지했다. 근본 없는 높임말에 아빠가 당황을 해서 인지 스무 살에도 아빠는 턱걸이는 못했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들이 헐 진짜요? 아 왜요?


날이 풀려 하필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을 때 아들 녀석은 눈치라고는 1도 없이 큰 소리로 실망을 해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이후 아들내미의 아버지 문책은 계속되었을까. 그 모습을 보니 한창 대중목욕탕에 다닐 때가 생각났다. 그때에도 한 초등학생이 아버지와 목욕탕에 들어왔다.


초등학생 때에는 아빠와 목욕탕에 가는 게 무엇보다 재미있고 좋다. 마음껏 떠들어도 아버지라는 든든한 방패막이 있어서 안심을 하며 떠들 수 있다. 아버지는 그런 존재니까. 좀 벗어난 얘긴데 라디오에서 맛있는 거 하면 일단 아이들을 먼저 먹이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가 유통기한 지난 건 다 아빠 거라고 했다. 아빠는 맛없고 유통기한이 지난 거 먹어도 괜찮아. 아빤 그런 존재야. 아버지는 그렇게 든든하다. 비록 몰래 화장실에서 설사를 하더라도.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데 초등생이 아버지와 목욕을 하다가 옆에 등에 용문신이 어마어마하게 있는 깍두기 형님으로 보이는 남자가 목욕을 하는데 눈치 없던 아이가 아빠에게 목욕탕이 울리도록 아빠 저 아저씨는 왜 등에 용 그림으로 황칠했어? 머리 감던 아빠는 도대체 무슨 죄야. 방황하던 그 초등학생 아버지의 눈빛을 나는 기억한다.


눈치가 없는 건 어른이 되어서 바뀐다거나 하지 않는 것 같다.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이라면 허당이라고 해서 웃음으로 승화가 되지만 현실에서 허당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눈치가 없는 사람에게 아무리 주의를 줘도 그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어떤 시인은 허당인 자신을 알기에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글을 써서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주위를 힘들게 할 바에는 혼자서 일을 하는 게 낫다 싶은 것이다.


눈치가 없는 사람은 오너가 되어도 힘이 든 것 같다. 대리는 눈치가 없지만 회사에서 사무실 직원들과 단톡방에서 활동도 많이 하며 직원들과 친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모른다. 다른 직원들이 따로 단톡방을 만들어서 대리만 빼고 대화를 하는 것을. 그런 거 일일이 따지면서 어떻게 생활을 하나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깻잎을 젓가락으로 떼주면 되니 안 되니 하는 세상이다. 어제는 남자친구가 팬아저가 뭔지 모른다고 여자 친구에게 한 소리는 듣는 장면도 목격했다. 그런 세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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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네즈를 매일 밥을 먹으며 먹었더니 매일 하는 조깅이 마요네즈를 이기지 못했다. 조깅을 하는 시간과 거리는 일정한데 먹는 양과 질이 많아지고 달라지니 살이 붙는다. 마요네즈를 매일 먹기 전으로 돌아가려면 조깅을 평소보다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체력이 달린다. 마요네즈는 어떤 음식에 달라붙어도 그 음식의 맛을 맛있게 만들어 준다. 세상에 정말 이런 식품이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 몇 달을 매일매일 마요네즈의 세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빠져나와야 할 때가 되었다. 아직 라면에 넣어서 먹어보지는 않았는데 라면에 한 번 넣어 먹고서는 그만둘까.



식빵에 계란 프라이를 올렸다. 그리고 마요를 뿌렸다. 아 정말 맛있다. 몸에 미안해서인지 옆에 마늘장아찌를 두었다. 기묘한 것은 고소한 계란 프라이에 마요가 뿌려지면 느끼할 것만 같은데 고소함이 두 배가 된다. 그래서 정말 맛있다.


동네 빵집에서 옛날 햄버거를 사 왔는데 거기에도 마요를 뿌려 먹으면 음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고추무침에도 마요가 합쳐지면 고추의 맛이 더 맛있다. 그냥 맛있다. 넋을 놓고 먹게 된다. 그러니 너무 배고플 때 먹으면 안 된다.


닭 가슴살을 먹으면 뭐 해. 나는 닭 가슴살도 퍽퍽한 채 먹는 걸 좋아했는데 이 죽일 놈의 마요 때문에. 퍽퍽한 닭 가슴살에도 마요가 들어가는 순간 닭 가슴살이 아닌 닭다리의 맛이 난다고. 할 정도다.


말해 뭐 해. 냉장고 털어 있는 반찬 넣어서 밥을 비빈 다음 마요를 뿌려서 먹는다. 팍팍 비벼서 먹어도 좋지만 마요 부분을 밥과 함께 숟가락으로 떠서 한 입 가득 먹는 그 맛이 좋다.


그 유명한 명란마요다. 명란젓에 마요를 뿌리면 마법의 반찬이 된다. 맛이 없을 수 없다. 입맛 없다는 사람들? 마요를 옆에 두어라. 하지만 명심해야 할 건 옆구리 살도 같이 불어난다는 걸.


닭 가슴살이 많아서 하루는 이렇게 먹고 하루는 저렇게 먹지만 중요 포인트는 역시 마요다. 닭 가슴살에 계란지단을 같이 올려 먹는 용감함과 하루는 치즈를 넣어서 먹는 무모함도 마요와 먹게 되면 잡고 있던 생활의 정신 줄을 놓게 된다.


몇 달을 매일 마요를 밥과 함께 먹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 하게 된다. 마요를 검색하면 다양한 맛의 마요가 있고 사람들 역시 마요의 맛에 빠져서 야호를 부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 마요를 마지막으로 이제 마요를 끊거나 올해는 먹지 않으려 한다. 뭐 잘 안 되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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