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따돌림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친구 하나를 매장시키는 틴에이저의 모습은 어느 나라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방식도 비슷하다. 얼마나 지독 하냐의 차이일 뿐, 어느 쪽이 더 악랄한 지 우열을 가리기도 어렵다. 한 번 표적이 되면 온갖 조롱과 험담이 따라붙고, 그걸 구경하는 애들은 또 자기들끼리 낄낄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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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가 염력으로 물건을 들어 올리는 장면에서는 마녀 2가 떠올랐다. 지난번에도 썼지만 한국 초능력 영화는 마녀의 촬영 스타일을 답습하는 것 같다. 능력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장면의 분위기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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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작 중 6화까지 봤는데, 캐리가 친구들에게 당하는 장면이 워낙 많이 나와서 슬슬 답답해진다. 언제까지 저렇게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 싶다. 한편으로는 캐리 말고도 초능력이나 영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원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넓혀가는 모양인데, 시즌 2를 염두에 둔 설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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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캐리 같은 이야기는 이미 여러 영화에서 반복해서 다뤄졌고, 캐리 자체도 여러 차례 리메이크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재미있다. 크리스틴은 정말 지독한 빌런이다. 남을 괴롭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 하나를 망가뜨려 놓고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른다는 듯 굴기 때문이다. 남의 약점을 잡아 인터넷에 퍼뜨리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조롱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죄책감은커녕 거리낌조차 없다. 자기 행동 때문에 누군가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모습이 더 얄밉다. 정말 이런 애가 현실에 있으면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캐리 역을 비롯해 크리스틴과 주변 친구들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하나같이 찰떡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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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서 크리스틴에게 당하는 건 캐리만이 아니다. 인터넷에 신상이 털리고, 별것 아닌 단점까지 부풀려져 조롱거리가 되는 애들이 여럿 나온다. 한 번 나쁜 소문이 인터넷에 올라가면 암처럼 번진다. 순식간에 퍼지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손가락질하고, 당사자는 자기 생활이 통째로 무너지는 걸 지켜봐야 한다. 선생님조차 신상털이의 표적이 된다.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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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었던 세스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누군가에게는 재미 삼아 올린 글이고 남의 이야기를 씹는 일이었겠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거기서 도망칠 곳조차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비밀계정의 폭로가 양비론으로 번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모두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면 정작 누가 먼저 남을 괴롭히고 짓밟았는지는 흐려지기 마련이다. 더 기가 막힌 건 크리스틴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괴롭혀 놓고도 자기 잘못을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다. 미안해하기는커녕 자기가 왜 비난받아야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남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데는 거리낌이 없으면서, 그 일로 자신이 곤란해지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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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애들은 일이 커져도 반성하기보다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부터 한다. 피해자가 받은 상처보다 자기 평판이 나빠지는 게 더 억울한 것이다. 크리스틴이 끝까지 이런 태도를 고수한다면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갈까. 캐리의 초능력이 무섭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더 자주 마주치는 건 어쩌면 크리스틴 같은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남을 망가뜨리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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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적고 마지막 화까지 다 봤다. 캐리 시즌 1은 시즌 2를 위한 초석 같은 느낌이었다. 시즌 2는 샤이닝의 닥터 슬립 같은 분위기로 이어자는 것이 아닐까. 캐리를 쫓는 또 다른 초능력자들과 캐리의 대결구도로 가지 싶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감독이 아마존 프라임에서 제의를 받았을 때 뜬금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완벽한 원작 영화가 77년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 영화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런이런 이야기로 각색을 해서 이렇게 진행되는 걸로 해보자고. 그래서 원작과는 다르지만 캐리 시리즈가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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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괴물 오징어가 나오는 괴생물체 시리즈라고 해서 봤는데, 막상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다. 6부작이라 짧기도 하고, 나는 솔직히 거대한 오징어가 배를 찌그러뜨리고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장면을 기대했다. 그런데 끝날 때까지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오징어가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다. 거대한 다리 몇 개가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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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해양 괴생물체 공포영화라면 1980년에 나온 [심해의 공포]가 딱이다. 크리처 해양 공포물로, 초반 전개는 [빌로우]와 비슷하다. 연어잡이로 먹고사는 어촌에서 어부들이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그물로 건져 올리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괴물의 생김새가 어색하고 특수효과도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도 폭발 장면이 꽤 많고, 바다에서 정체불명의 괴물이 사람들을 위협하는 맛이 있다. 이런 걸 기대하고 보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괜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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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로우]도 중반까지는 제법 흥미진진하다. 사람들이 괴물이라고 여기는 대왕오징어, 머더는 사실 새끼를 낳고 부화시키기 위해 빙산이 필요한 존재다. 그 빙산을 지키려다 보니 인간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인간의 눈에는 괴물이지만, 머더에게는 그저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뿐이다. 이 설정이 꽤 흥미롭다. 빙하를 깬 얼음에 술을 타 마신 사람들이 얼음에 섞인 점액까지 삼키면서 갈증에 시달리고, 결국 참지 못해 바다로 뛰어들어 머더의 먹이가 된다. 중반까지는 스릴러 분위기도 좋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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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알고 보니 크로커 가문이 진짜 문제였다. 이 마을에 묻혀 있는 코발트와 구리를 차지하려고 주민들을 쫓아내려는 속셈이었다. 머더를 이용해 공포를 조성하고,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면 헐값에 땅을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조쉬 하트넷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머더를 잡으려고 애쓰는 동안 이야기는 괴물의 위협에서 인간의 탐욕 쪽으로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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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조금씩 힘이 빠진다. 가족 이야기며 가문의 탐욕이며 기후 변화까지 이것저것 끌어들이면서 처음의 해양 괴생물체 공포물이라는 색깔이 흐려진다. 머더를 죽이려고 달려들던 가족이 어느 순간 마더를 구하겠다며 뭉치는 전개도 묘하다.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지만, 그 과정이 썩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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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는 군대까지 동원되는데, 이것도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 싶을 만큼 쉽게 철수한다. 그리고 진짜 거대한 빙하를 보여주면서 시즌 2를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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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오징어가 끝까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의외로 꽤 잘 만든 시리즈다. 적어도 중반까지는 그랬다. 처음부터 괴물보다 인간의 욕심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그래도 나는 배가 박살 나고 사람들이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그런 장면을 보고 싶었던 건데. 시즌 2를 봐야 하나. 이번에는 오징어 다리 말고 몸통이라도 좀 화끈하게 보여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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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파일 시즌 2를 보고 있는데, 내가 좋아할 만한 소재는 죄다 나온다. 초현실과 초자연 현상, 우리가 사는 세계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들. 과학과 수사로 사건을 파헤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남겨둔다. 눈앞의 증거를 믿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엑스파일은 그 사이를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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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사건이 벌어지는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잘못과 마주치는 경우도 많다. 1940년대에는 사람들에게 좋은 거라며 정부가 마을 곳곳에 뿌려댔던 방역 약품이 수십 년 뒤 엉뚱한 결과를 불러온다. 그 연기를 들이마신 사람의 뇌에서 서번트 물질이 분비되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 누군가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당시에는 인류를 위한 일이었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른 뒤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몰랐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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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더 개인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어린 시절 여동생 사만다가 외계인에게 납치됐다는 기억. 사람들은 그 기억을 망상이라고 여기지만 멀더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자기 기억이 정말 사실인지, 아니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인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계속 사건을 쫓는다. 이미 죽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슈퍼스타들, 엘비스가 사실은 죽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소문까지 등장한다. 사람들이 한 번쯤 품어봤을 법한 의심과 도시전설을 죄다 끌어와 사건으로 만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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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부터는 멀더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닌다. 정장 안주머니에서 초기형 휴대전화를 꺼내 스컬리와 통화하는 모습이 어쩐지 눈에 들어온다. 지금이야 휴대전화 없이는 수사도, 일상도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물건이 아니었다. 시즌 2는 미국 폭스 채널에서 1994년 9월부터 1995년 5월까지 방영됐다. 휴대전화가 전 세계에 보급되기 전의 풍경이 드라마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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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컬리도 달라졌다. 시즌 1에서는 멀더의 주장을 의심하고 맞서는 장면이 많았는데, 시즌 2에 들어서면서는 어느새 멀더와 한편이 되어 사건을 파헤친다. 물론 스컬리 특유의 과학적이고 냉정한 시선이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시선이 멀더와 부딪히고 맞물릴 때 엑스파일만의 재미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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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에서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에게는 조금 묘한 구석이 있다. 멀더와 스컬리의 목소리가 낯설다. 우리는 이들을 더빙 목소리로 먼저 익혔기 때문이다. 원래 배우들의 목소리도 좋지만, 오래전부터 귀에 익은 한국어 목소리가 더 편하고 좋게 들린다. 맥가이버도 그랬고, 삐삐도 그랬다. 원작이 따로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더빙 목소리까지 합쳐져야 비로소 그 드라마가 완성되는 것이다.


https://youtu.be/mb0_xKVl-N0?si=zJDLyRNOv4F9l8l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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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21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참 x파일에 꼿쳐서 중고dvd를 여기저기서 구입했었는데 시즌6까지만 나와서 더 모우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이제는 dvd플레이어도 안나와서 볼수가 없었는데 세상이 좋아져서 디즈니 플러스에서 전시즌을 다 볼수가 있다고하니 가입해야하나 고민을 하게 되네요.

교관 2026-10-22 12:10   좋아요 0 | URL
하루에 한 편씩 야금야금 보는 재미가 아주 좋네요! ㅋㅋ
 

요즘 연달아 보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관통하는 한 단어가 있다. 지질함. 지질하고 지질해서 더는 지질할 수 없을 것 같은 인간들인데, 그 모습이 어찌나 생생한지 연기인지 실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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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남자들은 회피형이 많다. 싸우면 일단 자리를 피하고, 제대로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나중으로 미룬다. 그러다 일이 커질 대로 커지고 나서야 다투게 되고, 끝에 가서는 이럴 바엔 그냥 헤어지는 게 낫겠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야기를 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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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는 엠마가 회피형처럼 보인다. 과거를 찰리에게 숨겼고, 찰리와 마주안아 제대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렇게 된 상황을 피하려고 한다. 찰리는 엠마가 과거의 일을 숨겼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계속 질문하지만 대화가 되는 건 아니다. 찰리 자기가 궁금한 것만 묻고, 답을 듣고도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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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혼자 엠마라는 인간의 형체를 만들어낸다. 점점 부풀려진 그 형체는 어느새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어 있다. 친구 앞에서 엠마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주절주절 늘어놓고, 이런 여자와 결혼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한다. 칼을 휘두를 수도 있고 총을 쏠 수도 있다. 영화는 그 상상에 맞춰 엠마의 얼굴마저 섬뜩하게 잡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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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과 찰리 같은 인간들의 특징은 자신이 남에게 준 피해보다 남이 자신에게 준 피해를 훨씬 크게 여긴다는 것이다. 엠마가 저지를 뻔한 일이 자신들이 실제로 저지른 일보다 더 나쁘다고 믿는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은 머릿속에서 얼마든지 키울 수 있으니까. 그렇게 의심하고 부풀리고 겁을 먹다가, 결국 자기 눈앞에 있는 사람보다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을 더 무서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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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엠마를 향한 사랑이 식었다. 그런데도 예정된 결혼식은 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직장 동료인 여자에게 엠마 이야기를 구질구질하게 털어놓다가 바람까지 피운다. 참 지질하다. 사랑은 끝났는데 결혼은 해야 하고, 결혼은 해야 하는데 엠마는 무섭고, 무서운 엠마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기대려 한다.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면서 남이 얼마나 위험한 인간인지는 열심히 따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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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도 비슷한 부부가 있다. 결혼한 지 3년. 매일 싸우고, 방도 따로 쓰고, 밥도 각자 먹는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나 싶지만 남편은 별 타격이 없다. 아내가 대화를 시도하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자고 해도 남편은 마주 앉는 것부터 싫어한다. 관계를 유지하려는 사람은 한쪽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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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는 게 맞아 보이지만 아내는 이혼한 여자로 남는 게 싫다. 결혼에 실패했다는 낙인을 감당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주변의 시선도 만만치 않다. 엄마조차 딸의 행복보다 동네 사람들 눈과 친척들 앞에서의 체면을 걱정한다. 이혼하면 동네 창피에 친척들 볼 면목이 없다는 식이다. 당사자 둘이 어떻게 사는지는 뒷전이고, 남들이 어떻게 볼지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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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둘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어도 신랑이나 신부의 부모가 거대한 빚을 지고 있을 수 있고, 형제자매 중 누군가가 사기꾼이거나 살인죄로 수감되어 있을 수도 있다. 부모가 결혼한 자식들 사이에서 누구는 더 챙기고 누구는 외면하는 일도 생긴다. 당사자들이 아무리 괜찮아도 주변에서 터지는 일까지 막을 수는 없다. 결혼이라는 게 두 사람의 결합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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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참 복잡하다.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시작해도 그 마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자꾸 끼어든다. 자존심과 체면, 의심과 두려움, 가족과 주변 사람들까지. 어쩌면 관계를 망가뜨리는 건 처음부터 큰 사건이 아니라,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일을 피하다가 점점 더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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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을 보고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둘은 다시 잘해보려는 걸까. 한바탕 폭력이 오가고 피까지 튄 뒤에, 망가진 관계를 주워 담아 다시 붙여놓으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사랑이 남아 있는 건지, 아니면 끝내는 일이 두려워서 붙들고 있는 건지. 영화가 끝나도 그 둘의 다음 날이 궁금하다기보다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부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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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노의 이 장면은 최고다. 처음에는 그저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차오르다가 어느 순간 도파민이 머릿속을 온통 점령해 버린다. 저 춤은 몸속 구석구석에 퍼져 있던 세포들이 기쁨에 겨워 길길이 날뛰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춤이다. 발끝에 실리는 무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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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공지능으로 만든 태권브이 애니메이션을 보면 주먹으로 건물을 때려 부수는데도 아무런 무게감이 없다.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런 장면은 이상하게 눈에 걸린다. 때리는 동작은 있는데 힘이 없다. 후지노는 다르다.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발끝과 손끝에 힘이 어떻게 실리는지 전부 살아 있다. 몸짓이며 박자와 리듬까지. 보고 있으면 후지노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굳이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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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표정, 후지노의 성격 상 시크한 표정을 유지하고 싶은데 기쁨이 얼굴로 뿜어져 나오려는 걸 억지로 누르고 있는 저 표정. 이미 몸은 기뻐 날뛰지만 표정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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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모토에게 후지노는 끝까지 영웅이었다. 현실에서는 교모토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고, 가상에서는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후지노를 영웅으로 만든 사람도 교모토였는지 모른다. 모두가 아니라고 하고, 정작 자신조차 자기를 믿지 못할 때 교모토만큼은 후지노를 믿어 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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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 영화는 러닝타임이 길어진 만큼 가족 이야기가 더해졌다. 후지노의 등 뒤에는 늘 교모토가 있었다. 헤어진 뒤에도 마찬가지다. 교모토는 언제나 후지노를 영웅으로,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 두 사람이 초등학교 때 만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결국 만났을 것이다. 서로의 삶에 그런 식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https://youtu.be/xRzTJglzibc?si=yZxjMuR2-__gzJ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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