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 괴물 오징어가 나오는 괴생물체 시리즈라고 해서 봤는데, 막상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다. 6부작이라 짧기도 하고, 나는 솔직히 거대한 오징어가 배를 찌그러뜨리고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장면을 기대했다. 그런데 끝날 때까지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오징어가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다. 거대한 다리 몇 개가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게 전부다.
우리가 원하는 해양 괴생물체 공포영화라면 1980년에 나온 [심해의 공포]가 딱이다. 크리처 해양 공포물로, 초반 전개는 [빌로우]와 비슷하다. 연어잡이로 먹고사는 어촌에서 어부들이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그물로 건져 올리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괴물의 생김새가 어색하고 특수효과도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도 폭발 장면이 꽤 많고, 바다에서 정체불명의 괴물이 사람들을 위협하는 맛이 있다. 이런 걸 기대하고 보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괜찮은 영화다.
[빌로우]도 중반까지는 제법 흥미진진하다. 사람들이 괴물이라고 여기는 대왕오징어, 머더는 사실 새끼를 낳고 부화시키기 위해 빙산이 필요한 존재다. 그 빙산을 지키려다 보니 인간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인간의 눈에는 괴물이지만, 머더에게는 그저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뿐이다. 이 설정이 꽤 흥미롭다. 빙하를 깬 얼음에 술을 타 마신 사람들이 얼음에 섞인 점액까지 삼키면서 갈증에 시달리고, 결국 참지 못해 바다로 뛰어들어 머더의 먹이가 된다. 중반까지는 스릴러 분위기도 좋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런데 알고 보니 크로커 가문이 진짜 문제였다. 이 마을에 묻혀 있는 코발트와 구리를 차지하려고 주민들을 쫓아내려는 속셈이었다. 머더를 이용해 공포를 조성하고,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면 헐값에 땅을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조쉬 하트넷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머더를 잡으려고 애쓰는 동안 이야기는 괴물의 위협에서 인간의 탐욕 쪽으로 옮겨간다.
여기서부터 조금씩 힘이 빠진다. 가족 이야기며 가문의 탐욕이며 기후 변화까지 이것저것 끌어들이면서 처음의 해양 괴생물체 공포물이라는 색깔이 흐려진다. 머더를 죽이려고 달려들던 가족이 어느 순간 마더를 구하겠다며 뭉치는 전개도 묘하다.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지만, 그 과정이 썩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마지막에는 군대까지 동원되는데, 이것도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 싶을 만큼 쉽게 철수한다. 그리고 진짜 거대한 빙하를 보여주면서 시즌 2를 예고한다.
거대 오징어가 끝까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의외로 꽤 잘 만든 시리즈다. 적어도 중반까지는 그랬다. 처음부터 괴물보다 인간의 욕심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그래도 나는 배가 박살 나고 사람들이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그런 장면을 보고 싶었던 건데. 시즌 2를 봐야 하나. 이번에는 오징어 다리 말고 몸통이라도 좀 화끈하게 보여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