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저렇게 빵집에 앉아 빵을 먹으면[영상 43분 10초] 얼마나 맛있을까. 요즘 저러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안 된다며 말리는 사람이 나올 테지만. 저 시절에는 빵을 우유에 찍어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혀가 온갖 맛있는 음식에 길들어서 빵과 우유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저렇게 빵에 콜라까지 마시면서도 살이 찌지 않는 건, 어쩌면 먹는 것보다 움직이는 일이 훨씬 많았던 시절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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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얄개]가 성공한 뒤 우후죽순처럼 나온 비슷한 청춘영화 중 한 편이다. 70년대 학생들의 우정과 연애를 다룬다. 영화에 나오는 빵집은 목포에서 꽤 유명했던 곳인데, 얼마 전까지 영업했던 모양이다. 촬영도 목포에서 했다. 이덕화와 임예진이 나온 [진짜 진짜 잊지 마] 역시 목포에서 찍었는데, 두 영화에 나오는 학교도 같은 곳처럼 보인다. 그때는 목포가 청춘영화의 배경으로 제법 잘 어울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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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진은 이 영화에도 우정출연한다. 영화 자막에 실제로 ‘우정출연’이라고 나온다. 신부가 된 모습으로 잠깐 등장하는데, 목포에 공부하러 간, 아직 학생인 삼육을 기다리는, 일찍 시집을 가버린 신부로 잠깐 나온다. 출연 시간이 짧아도 당시 임예진이 청춘영화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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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 학생은 본문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걸 영화 내내 강조한다 그래서 연애도 조심스럽고, 공부가 우선이 되어야 하며 싸움 같은 걸 하면 학교에서 퇴학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가 어울리는 장면이 70년대 청춘 영화에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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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개 승현이는 서울에서 목포로 전학을 오고, 학교 짱인 삼육과 대결을 펼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싹트면서 좋아하는 여학생 진희의 마음을 훔치는데 모두가 작전을 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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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80년대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제법 달라진다. 청춘의 설렘보다는 고독과 외로움, 복잡해진 인간관계와 사회문제를 다루는 영화가 많아진다. 시대가 바뀌면서 영화 속 젊은이들의 얼굴도 달라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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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시나의 액션영화가 나왔다. 요즘 액션 영화는 예전만큼 재미가 없어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꽤 재미있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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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요즘 액션 영화에 흥미를 잃은 건 근접 맨손 액션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제이슨 스타뎀이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지만, 그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으니 몸으로 보여주는 액션에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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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질렌할이 제법 멋진 액션영화를 한 편 뽑아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정통 액션 배우라고 하기는 어렵다. 드웨인 존슨도 예전 같지 않고, 햄식이는 액션영화에 자주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존 시나 역시 액션 배우지만 몸이 다소 둔해 보인다는 약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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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의 감독 샘 하그레이브는 존 시나의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굳이 근접 맨손 액션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대신 자동차와 헬기, 오토바이를 동원해 거의 두 시간 내내 쫓고 쫓기는 장면으로 밀어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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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트럭들이 추격전을 벌이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장면에 이르면 도파민이 터진다. 자동차가 시장과 도심 한복판을 휘젓고 다니는 추격전도 좋다. 예전 성룡 영화에서 보던 그런 장면들인데, 구경하는 사람까지 다칠 것 같아 괜히 조마조마해진다. 이런 액션은 확실히 보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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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무겁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존 시나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들은 전문 요원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이다. 오랜만에 만난 어릴 시절의 친구들. 그들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일반 사람들인데 요원을 돕겠다고 나서니 일이 제대로 풀릴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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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어설픈 행동과 엉뚱한 상황이 웃음을 만든다. 이 영화는 진지한 첩보 액션이라기보다 코믹 액션에 가깝다. 그러나 카메라가 자동차 안팎을 오가며 정신없이 액션을 보여주는데,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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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시나와 제시카 비엘이 오랜만에 함께 등장하고, 샘 리처드슨과 아르투로 카스트로가 코미디를 맡아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특히 일반인들이 요원과 함께 사건에 휘말린다는 설정이 액션과 코미디를 적당히 섞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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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치박스 완구 브랜드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 그런지, 보다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액션 장면들이 하나둘 겹쳐 보인다. 새롭고 독창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자동차가 부서지고 트럭이 날아가고 사람들이 정신없이 도망치는 장면은 꽤 재미있다. 오랜만에 액션영화다운 액션영화를 봤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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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바바로가 조안 바에즈를 연기한다고?? 처음에는 좀 의아했다. 그런데 영화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그냥 조안 바에즈였다. 그 특유의 클래식한 분위기, 깊고 맑은 목소리까지. 어떻게 저렇게 똑같이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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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가 속옷 바람으로 방에 앉아 조용히 Blowin’ in the Wind를 함께 부르는 장면. 그때는 좀 찌릿했다. 이미 슈퍼스타였던 바에즈는 무명에 가까웠던 딜런의 노래를 듣고 뭔가를 알아차린다. 아직 세상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재능을 먼저 발견한 사람의 눈빛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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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밥 딜런의 일대기를 차근차근 훑어가는 전기 영화가 아니다. 젊은 시절의 몇 년을 붙잡는다. 무명 가수가 점점 유명해지고, 마침내 엄청난 인기를 얻지만 그 인기가 오히려 정신을 갉아먹는 시절. 포크 음악이 뉴포트를 지배하던 때다. 노래는 사람들의 영혼을 달랬고, 총과 칼 없이도 세상에 맞설 수 있는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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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딜런의 등장에 열광했다. 하지만 시대의 아이콘이 된다는 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딜런은 점점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리고, 편집증에 가까운 불안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모두를 뒤집어놓는 무대를 선보인다. 전기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선 딜런에게 돌아온 건 환호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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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유다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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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에 당시 사람들이 딜런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또 그가 무엇을 배신했다고 여겼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했던 딜런이 변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딜런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 그는 시대의 아이콘을 넘어 음악의 역사를 새로 쓴 전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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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가 학창 시절에 드나들었던 단골 카페가 생각났다. 그곳 여주인은 조안 바에즈의 음악을 자주 틀었다. 독일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돌아온 사람이었는데, 어쩐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과는 달랐다.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계간지에 연재하기도 했다. 오래전 일인데 영화 속에서 바에즈의 노래가 흘러나오니 그 시절의 카페까지 함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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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바에즈와 딜런은 연인이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보고 있자니 1960년대라는 시대 자체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미국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예술이 뜨겁게 타오르던 시절이었다. 전쟁과 기근,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는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렸고, 누군가는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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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예술은 아름다워서 오히려 무섭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노래 한 곡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얼마나 순수했는지, 또 얼마나 치열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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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그 시절의 노래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말 재미있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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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씨부레, 그냥 이렇게 끝난다고? 하는 생각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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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전면에 뤽 베송 제작이라고 크게 내세웠지만, 이제는 뤽 베송 아즈씨도 감각이 무뎌진 건가 싶다. 감독이 영화를 이렇게 끝내려고 했다면 뤽 베송이 멱살이라도 잡고 방향을 알려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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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일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이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영화라면 적어도 마지막에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나쁜 놈들 다리 하나쯤은 분질러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무슨 다큐멘터리처럼 그냥 탈출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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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끝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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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 아르네제더가 주인공 니나로 나온다. 이전 작품들을 보면 어떤 역할이든 꽤 잘 소화하는 배우인데, 일단 얼굴이 예쁘다. 프랑스 배우인데 묘하게 독일 사람 같은 느낌도 있다. 젊은 시절의 다이앤 크루거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목소리나 분위기에서는 젊은 조디 포스터도 살짝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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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는 자유분방하다. 약간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할 거야’ 하는 사람이다. 고집도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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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던 니나는 인도양의 어느 호화 리조트에 직원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투숙객 부부의 아이 셋을 맡게 된다. 니나는 어린아이들을 돌본 전문적인 지식도 훈련도 없으니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지배인은 사람이 부족하다며 그냥 니나를 투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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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고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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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하나가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가지만 결국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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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니나는 사방에서 얻어맞기 시작한다. 지배인도, 룸메이트도, 경찰도, 법조계 사람들도 니나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겨우 한 가닥 희망처럼 보였던 증언을 해주겠다는 직원마저 다음 날 흔적도 없이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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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이 정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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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전체가 니나 한 사람을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눈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딱 이런 경우다. 아이를 돌본 것뿐인데, 아이 하나가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죽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모든 잘못이 니나의 것이 되어 있다. 종신형까지 거론될 정도로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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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하나 터지고, 그 불행이 또 다른 불행을 끌고 오고 불행의 연속이 피로감이 든다. 니나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오바이트까지 할 정도로 정신이 무너진다. 여기까지는 꽤나 숨 막히게 잘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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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지막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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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니나가 액션영화 첩보원처럼 변한다. 가발을 쓰고 가짜 여권을 챙기고 보트를 부웅 몰아서 인도양을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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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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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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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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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 사장도 그렇고 경찰도 그렇고, 니나를 강간하려고 했던 판사도 그렇고, 특히 이 모든 일을 가장 악랄하게 몰고 간 지배인은 어떻게든 한 번은 제대로 당해야 했다. 다리를 하나 분질러놓든가, 니나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 강력하게 법적 조치를 하든가. 관객 입장에서는 그런 걸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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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판사가 니나를 강간하려는 장면에서는 왜 또 가슴까지 노출시키는지 모르겠다. 이 장면 때문에 영화가 부모자식이 같이 볼 수 없는 영화가 된다. 전혀 그런 장면이 없다가 왜 가슴 노출을 시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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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을 그렇게 끌어놓고 마지막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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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끝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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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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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생존 스릴러 재난 영화다.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가 스카이다이빙을 하려다가 비행기가 새 떼와 충돌하고, 낙하산을 펴고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서로 엉키면서 협곡 위에 매달린다. 이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영화도 길지 않아서 딱 필요한 만큼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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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떠올린 건 재난이 아니라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속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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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의 탐미적인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은 위험할 만큼 아름답다. 남자들이 자기에게 시선을 보내는 걸 알고 있고, 그 시선 자체를 즐긴다. 남편이 있어도 다른 남자들에게 은근히 색기를 흘리고, 그렇다고 먼저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다. 가까이 오는 남자를 굳이 밀어내지도 않는다. 남편이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태연하다. 남편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내 아내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나만 보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데 정작 아내는 다른 남자들의 눈길을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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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다니자키의 소설에서 자주 느껴지는 건 발에 대한 집착이다. 평소에는 신발 속에 가려져 있는 신체 부위라서 더 묘하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예쁜 발에 남자가 정신을 못 차리는 순간이 나온다. 감춰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탐미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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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도 묘하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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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협곡에 매달려 있고, 남편은 자기 발밑에 매달려 있다. 그런데 여자를 붙잡고 있는 남자는 하필이면 예전 남자친구다. 몸은 서로 붙어 있고, 숨소리는 바로 앞에서 들리고, 눈앞에는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있다. 여자가 그 남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참 묘하다. 그냥 위험한 상황에 놓인 사람의 눈빛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게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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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도 그걸 모를 리 없다. 밑에 매달린 채 아내에게 말을 걸고 속마음을 드러내지만, 지금은 질투한다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줄 하나에 의지해서 협곡에 매달려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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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예전 남자친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렇다고 옛 남자친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들이 계속 떠오르고, 지금 눈앞에서 몸을 맞대고 있으니 그 기억이 쉽게 사라질 리도 없다. 재난 상황인데도 이 세 사람 사이에는 이상할 만큼 끈적한 감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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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장면도 그렇다. 상사는 일을 제대로 하기보다 얼굴을 예쁘게 가꾸는 데만 신경 쓴다고 말한다. 영화가 굳이 그런 대사를 넣은 것도 여자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것인지 꽤 노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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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대부분은 세 사람이 협곡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다. 움직일 공간도 별로 없다. 그 와중에 회상 장면이 끼어들고, 여자가 옛 남자친구를 아직 완전히 잊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래서 생존 스릴러를 보고 있는데 자꾸 다른 영화가 겹쳐 보인다. 재난보다 삼각관계가 더 신경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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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역의 마크 아이델슈테인은 [아노라]에서 철없는 이반을 연기했던 배우다. 마지막에는 남편이 줄을 끊고 협곡 아래로 떨어진다. 비상 낙하산을 펴지만 기절하고, 그래도 살아남는다. 반대로 예전 남자친구는 여자를 살리기 위해 떨어져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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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버린 남자를 눈앞에서 잃었다. 남편은 살아남았지만, 이제 둘이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아내가 잊지 못했던 남자가 자기 아내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사실을 남편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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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 보면 생존 재난물이다. 그런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 남는 건 협곡도, 낙하산도, 새 떼도 아니다. 서로 몸을 붙이고 매달린 채 여자가 예전 남자친구에게 보내던 그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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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시리즈의 세 번째 편처럼 보이는 설정인데, 막상 까보면 재난영화라기보다 삼각관계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삼각관계가 꽤나 짜증 난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눈빛을 쏘아대는지, 직접 보면 알게 된다. 굉장히 짜증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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