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신은 펄 맥신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엑스]와 [펄]도 고어가 만만치 않았지만 영화 내내 그런 장면이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후반부나 몇몇 결정적인 순간에 잔인함을 몰아치는 식이었다. 그런데 [맥신]은 다르다. 시작부터 붕가붕가 장면과 나체가 화면을 채우더니 고어와 섹시함이 영화 전체를 장악한다. 20분쯤 지나면 남자의 중요 부위를 하이힐로 짓밟아 으깨는 장면까지 나온다. 이쯤 되면 작정하고 밀어붙인 영화다.
펄에서 오즈의 마법사에서나 볼 법한 화사한 색채, 늘 웃는 얼굴의 펄. 그런 여자가 도끼를 들고 사람을 내리찍는다. 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묘하게 무서웠다. 예쁜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맥신]에는 앞의 두 편에서 보기 어려웠던 낯익은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엘리자베스 데비키, 케빈 베이컨, 릴리 콜린스, 할시까지 나온다. 미아 고스 혼자 영화를 끌고 가던 전작들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다. 이야기는 앞의 두 편에서 이어지지만 굳이 전부 챙겨 보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피바다가 된 농장에서 살아남은 맥신은 로스앤젤레스로 온다. 성인영화 배우였던 과거를 지우고 진짜 할리우드 스타가 되고 싶다. 오디션에도 합격한다. 이제 꿈에 한 발짝 다가섰나 싶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을 쫓아다니는 미친놈도 모자라, 맥신의 과거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탐정까지 나타나 숨통을 조여 온다. 맥신은 살아남기 위해 점점 더 잔혹한 선택을 한다. 펄을 떠올리게 하는 살인자의 얼굴이 슬그머니 겹쳐 보인다.
영화 속 1985년 로스앤젤레스는 화려하면서도 위험하다. 화면은 번쩍이고 거리는 매혹적이지만 그 안쪽에는 퇴폐와 폭력이 들끓는다. 맥신의 몸속에 광적인 살인마 펄과 순수한 맥신이라는 서로 다른 얼굴이 공존하듯 도시도 그렇다. 할리우드 영화가 있는 곳에 포르노 영화가 있고, 스타가 빛나는 무대 뒤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않는 성인 배우들이 있다. 겉으로는 전혀 다른 세계 같지만 실은 한 도시 안에 붙어 있다. 영화는 그 간격을 꽤 그럴듯한 미장센으로 보여준다.
잔인한 장면은 아프게 다가오고, 공포 장면은 불쑥 튀어나온다. 특히 갑자기 분위기를 뒤집는 연출이 좋았다. 스릴러로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도 있지만, 중간중간 공포영화의 감각을 과감하게 끌어들이는 대목이 더 기가 막힌다.
그래도 결국 눈길이 가는 건 미아 고스다.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다가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순진한 얼굴을 한다. 그 둘이 한 사람 안에서 번갈아 나타나는데, 어느 쪽이 진짜인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펄과 맥신을 모두 연기하는 배우의 얼굴 자체가 이 3부작의 가장 흥미로운 구경거리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다가 엉뚱한 곳에서도 눈이 멈췄다. 맥신이 형사 두 명을 만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장면이다. 문을 여는 순간 문짝이 무척 낯익었다. 우리나라 옛날 집에서 보던 나무 여닫이문과 비슷해 보였다. 할리우드의 퇴폐적인 세계를 구경하다가 갑자기 오래전 한국의 집 문짝을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