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롤러스는 거미에 관한 영화다.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의 능력을 가진 영웅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 거미가 사람을 죽이는 영화다. 거미가 아파트 안에 있는 사람들 몸에 알을 낳고 사람 몸을 뚫고 나오고 징그러운 장면이 꽤 있는 B급 호러영화다. 거미가 떼로 몰려나와 인간을 공격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본 건 오래전 [아라크네의 비밀]이었다. 90년대 초에 나온 영화인데, 어릴 때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줄 알았다. 알고 보니 프랭크 마샬이었다.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와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기획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어쩌면 그때는 감독보다는 영화 속 거미에게 온 마음을 다 빼앗겼다.
크롤러스 이 영화에는 작은 새끼거미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의 몸속으로 기어들어 갔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모습도 있다. [아라크네의 비밀]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거미 한 마리만 방바닥을 기어가도 신경이 쓰이는데, 그 조그만 것들이 수십 마리씩 한꺼번에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미 거미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런 장면이 무서우면서도 재미있었다. 무서워서 눈을 찌푸리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는 못했다.
그 뒤로 나온 거미 공포영화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나 건물처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곳이 어느 순간 거미의 영역으로 바뀐다. 밖으로 도망치면 될 것 같지만, 막상 나가려고 하면 이미 길이 막혀 있다. 이번에 본 영화도 그런 이야기였다. 거미가 사람을 공격한다는 설정 자체는 새로울 게 없는데, 이상하게 이런 영화는 볼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거미가 무서운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다른 벌레들은 징그럽다는 생각부터 드는데 거미는 좀 다르다. 징그럽기도 하지만,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사람의 생활공간 안으로 들어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생김새라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거미에게 물린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랫입술이 퉁퉁 부어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몰랐다. 입술이 조금 부은 정도가 아니었다. 입술 안에 뭔가를 집어넣은 것처럼 두툼하게 튀어나와 있었고, 감각도 이상했다. 돌덩이 같은 게 입술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만져도 내 입술 같지가 않았다. 얼마나 부었는지 마스크를 써도 앞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올 정도였다. 지금이야 마스크를 쓰는 일이 낯설지 않지만, 그때는 그런 걸 쓴다고 감춰질 만한 모양도 아니었다. 거울을 봤을 때의 모습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입술이 그렇게까지 부풀어 오른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동네 병원에 갔다. 자는 동안 거미에 물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거미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집 안에 거미가 있었던 건지, 잠든 사이 어디선가 기어 들어온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방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었을 수도 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시간이 지나자 부풀었던 입술은 거짓말처럼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행히 별일 없이 지나갔지만, 입술이 부어 있던 감각은 오래 남았다. 아프다기보다는 이상했다. 입술에 돌멩이 하나를 붙여 놓은 것처럼 둔하고 낯선 느낌. 내 몸인데도 내 몸 같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휴대전화로 사진이라도 찍어 뒀을 텐데 그 시절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사진 한 장 없이 기억으로만 남아 있으니 지금 와서는 얼마나 심하게 부었는지 나조차 확신하기 어렵다. 그래도 마스크를 써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튀어나왔다는 건 기억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게 그렇다. 정작 중요한 순간의 앞뒤는 흐릿한데, 몸으로 겪은 이상한 감각 하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집 안에서 거미를 발견하면 지금도 반갑지는 않다. 바깥에서 거미줄을 치고 있는 건 그나마 괜찮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집 안에 나타나는 거미는 다르다. 분명 내가 사는 공간인데, 어느 구석에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거미가 사람을 일부러 노리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것뿐일 텐데도 그렇다. 그렇다고 지금 집에 거미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지하주차장 천장 구석에도 거미줄이 가득하다. 청소하는 사람이 걷어내는지, 누군가 긴 막대기로 쓸어내는지 한동안 깨끗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며칠 지나 다시 보면 어느새 거미줄이 촘촘하게 쳐져 있다. 거미는 그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저 작은 몸으로 언제 저렇게 넓은 집을 지었을까 싶다가도,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거미줄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줄을 치는 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내가 보지 못했을 뿐, 늘 그 근처에 있었을 것이다.
[아라크네의 비밀]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대왕 거미도 생각난다. 거대한 거미가 갑자기 날아오듯 달려들고, 불붙은 화살촉이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언가가 날아가 거미를 맞힌다. 거미는 벽에 탁 박힌 채 불에 탄다. 그 장면이 어릴 때는 꽤 통쾌했다. 그렇게 끔찍한 거미가 마침내 죽었으니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지금 다시 보면 특수효과가 어땠는지부터 눈에 들어올지 모르겠다. 그래도 작은 거미들이 사람의 몸속을 드나들던 장면과 마지막 대왕 거미가 날아오던 순간만큼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잠든 사이 거미에게 물려 입술이 부풀어 올랐던 일도 그 영화와 어딘가 붙어 있는 기억이다. 실제로 겪은 일과 영화에서 본 장면은 전혀 다른데, 머릿속에서는 이상하게 한데 엉켜 있다. 거미가 무서운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한 번은 내 입술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고, 그 뒤로도 거미는 내가 사는 곳의 구석구석에 조용히 나타난다. 지하주차장 천장에 매달린 거미를 볼 때면 가끔 그때 생각이 난다. 저 녀석이 내 입술을 그렇게 만들었을 리는 없겠지만, 거미라는 건 아무래도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 사실 스파이더맨도 거미에게 물린 후 이상하지만 짠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영화가 어떻냐고 한다면 그냥저냥 볼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