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니콜 키드먼[로미]이 도로에서 개에게 위협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해리스[사무엘]가 개를 부르는데, 그 순간 영화 [언페이스풀]이 떠올랐다. 아, 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중년 여성이 젊은 남자에게 빠지는 이야기구나. [언페이스풀]은 불륜으로 시작해 점점 스릴러로 변해갔다. 이 영화도 그렇게 흘러가려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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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키드먼이 연기하는 로미에게는 멋진 남편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족할 게 없는 삶이다. 하지만 남편과의 잠자리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던 중 자신의 회사에 젊은 사무엘이 들어오고, 로미는 그에게 먼저 접근해 육체관계를 맺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젊은 육체의 맛을 알아버린 로미는 좀처럼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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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이 로미에게 메조킥 성인영화에서나 볼 법한 체형을 요구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쯤 되면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았다. 젊은 남자에게 빠진 여자가 점점 궁지에 몰리고, 결국 파국을 맞는 스릴러. 나는 그런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길 기대하며 봤다. 후반부로 갈수록 섹스에 중독된 로미의 망가지는 모습이 드러나는데, 이때는 [세브린느] 같은 영화가 떠올랐다.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다 컸다. 사회적으로도 이룰 만큼 이뤘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섹스에 중독돼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여러 영화를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 감독이 무슨 영화를 리메이크했나 싶었는데,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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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는 사무엘이 젊은 여직원과 함께 있는 모습만 봐도 질투에 사로잡힌다. 남편이 따로 있는데도 그렇다. 자신에게는 젊은 섹스 파트너가 필요하고,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바라보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욕망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내게 없는 것을 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빼앗길까 봐 안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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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로미는 남편도 있고 수많은 사람이 모인 파티에서 사무엘과 끌어안고 있다가 들킨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사무엘에게 몇 대 얻어맞기까지 한다. 로미는 들키기 전부터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한 번도 당신에게 흥분을 느낀 적이 없다고. 그러고는 사무엘과 함께 있는 모습을 들킨 뒤 남편에게 울면서 매달린다. 이쯤 되면 남편도 로미도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가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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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이상하게 힘이 빠진다. 로미가 파멸하든 사무엘이 파멸하든, 아니면 둘 다 무언가를 잃든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남편과의 관계도 어떻게든 수습하고, 일도 계속하며, 로미는 그럭저럭 살아간다.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라서 그런 걸까. 오히려 [세브린느]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면서 인물을 끝까지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지금의 결말은 로미가 겪은 일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조차 흐릿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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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키드먼이 홀딱 벗고 나오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복근이며 근육이며, 몸을 얼마나 관리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몸이 묘하게 낯설다. 가슴은 보형물의 흔적이 너무 도드라지고, 얼굴과 손에서는 세월이 느껴진다. 젊어 보이려고 애쓴 흔적과 감출 수 없는 나이가 한 몸에 공존하는 느낌이다.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를 볼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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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섹스 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메조킥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있고, 욕망에 빠져들면서도 불안해하는 니콜 키드먼의 연기를 볼 수 있다. 겉으로는 성공한 남편과 화목한 가정, 사회적 지위까지 갖춘 사람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삶을 너무 쉽게 판단하는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저 사람은 행복하겠거니, 저 정도면 충분하겠거니 생각한다. 정작 당사자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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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결론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화가 던진 질문은 흥미로운데, 그걸 풀어가는 방식도 마지막에 도달한 자리도 영 시원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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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속마음을 누가 다 알 수 있을까. 가장 가까이 지내는 아내나 남편이라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같이 산 세월이 길다고 마음까지 저절로 읽히는 건 아니니까. 결국 대화를 해야 한다. 싫든 귀찮든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계속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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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남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화를 귀찮아하고 피하려 든다.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건지. 그러면서 상대가 왜 변했는지는 궁금해한다. 참 모순이다. 우리는 그런 모순을 안고 살면서도 정작 그 모순을 들여다보는 일은 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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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롤러스는 거미에 관한 영화다.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의 능력을 가진 영웅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 거미가 사람을 죽이는 영화다. 거미가 아파트 안에 있는 사람들 몸에 알을 낳고 사람 몸을 뚫고 나오고 징그러운 장면이 꽤 있는 B급 호러영화다. 거미가 떼로 몰려나와 인간을 공격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본 건 오래전 [아라크네의 비밀]이었다. 90년대 초에 나온 영화인데, 어릴 때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줄 알았다. 알고 보니 프랭크 마샬이었다.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와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기획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어쩌면 그때는 감독보다는 영화 속 거미에게 온 마음을 다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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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롤러스 이 영화에는 작은 새끼거미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의 몸속으로 기어들어 갔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모습도 있다. [아라크네의 비밀]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거미 한 마리만 방바닥을 기어가도 신경이 쓰이는데, 그 조그만 것들이 수십 마리씩 한꺼번에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미 거미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런 장면이 무서우면서도 재미있었다. 무서워서 눈을 찌푸리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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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나온 거미 공포영화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나 건물처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곳이 어느 순간 거미의 영역으로 바뀐다. 밖으로 도망치면 될 것 같지만, 막상 나가려고 하면 이미 길이 막혀 있다. 이번에 본 영화도 그런 이야기였다. 거미가 사람을 공격한다는 설정 자체는 새로울 게 없는데, 이상하게 이런 영화는 볼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거미가 무서운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다른 벌레들은 징그럽다는 생각부터 드는데 거미는 좀 다르다. 징그럽기도 하지만,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사람의 생활공간 안으로 들어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생김새라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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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릴 때 거미에게 물린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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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랫입술이 퉁퉁 부어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몰랐다. 입술이 조금 부은 정도가 아니었다. 입술 안에 뭔가를 집어넣은 것처럼 두툼하게 튀어나와 있었고, 감각도 이상했다. 돌덩이 같은 게 입술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만져도 내 입술 같지가 않았다. 얼마나 부었는지 마스크를 써도 앞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올 정도였다. 지금이야 마스크를 쓰는 일이 낯설지 않지만, 그때는 그런 걸 쓴다고 감춰질 만한 모양도 아니었다. 거울을 봤을 때의 모습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입술이 그렇게까지 부풀어 오른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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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동네 병원에 갔다. 자는 동안 거미에 물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거미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집 안에 거미가 있었던 건지, 잠든 사이 어디선가 기어 들어온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방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었을 수도 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시간이 지나자 부풀었던 입술은 거짓말처럼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행히 별일 없이 지나갔지만, 입술이 부어 있던 감각은 오래 남았다. 아프다기보다는 이상했다. 입술에 돌멩이 하나를 붙여 놓은 것처럼 둔하고 낯선 느낌. 내 몸인데도 내 몸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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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으면 휴대전화로 사진이라도 찍어 뒀을 텐데 그 시절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사진 한 장 없이 기억으로만 남아 있으니 지금 와서는 얼마나 심하게 부었는지 나조차 확신하기 어렵다. 그래도 마스크를 써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튀어나왔다는 건 기억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게 그렇다. 정작 중요한 순간의 앞뒤는 흐릿한데, 몸으로 겪은 이상한 감각 하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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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집 안에서 거미를 발견하면 지금도 반갑지는 않다. 바깥에서 거미줄을 치고 있는 건 그나마 괜찮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집 안에 나타나는 거미는 다르다. 분명 내가 사는 공간인데, 어느 구석에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거미가 사람을 일부러 노리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것뿐일 텐데도 그렇다. 그렇다고 지금 집에 거미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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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 천장 구석에도 거미줄이 가득하다. 청소하는 사람이 걷어내는지, 누군가 긴 막대기로 쓸어내는지 한동안 깨끗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며칠 지나 다시 보면 어느새 거미줄이 촘촘하게 쳐져 있다. 거미는 그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저 작은 몸으로 언제 저렇게 넓은 집을 지었을까 싶다가도,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거미줄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줄을 치는 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내가 보지 못했을 뿐, 늘 그 근처에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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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크네의 비밀]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대왕 거미도 생각난다. 거대한 거미가 갑자기 날아오듯 달려들고, 불붙은 화살촉이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언가가 날아가 거미를 맞힌다. 거미는 벽에 탁 박힌 채 불에 탄다. 그 장면이 어릴 때는 꽤 통쾌했다. 그렇게 끔찍한 거미가 마침내 죽었으니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지금 다시 보면 특수효과가 어땠는지부터 눈에 들어올지 모르겠다. 그래도 작은 거미들이 사람의 몸속을 드나들던 장면과 마지막 대왕 거미가 날아오던 순간만큼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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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사이 거미에게 물려 입술이 부풀어 올랐던 일도 그 영화와 어딘가 붙어 있는 기억이다. 실제로 겪은 일과 영화에서 본 장면은 전혀 다른데, 머릿속에서는 이상하게 한데 엉켜 있다. 거미가 무서운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한 번은 내 입술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고, 그 뒤로도 거미는 내가 사는 곳의 구석구석에 조용히 나타난다. 지하주차장 천장에 매달린 거미를 볼 때면 가끔 그때 생각이 난다. 저 녀석이 내 입술을 그렇게 만들었을 리는 없겠지만, 거미라는 건 아무래도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 사실 스파이더맨도 거미에게 물린 후 이상하지만 짠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영화가 어떻냐고 한다면 그냥저냥 볼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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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울 일이 없을 것 같은 오래된 영화에서 문득 눈물이 떨어질 때가 있다. 이 영화가 그랬다. 몇십 년 만에 다시 봤다. 베이다가 토마스를 잃고도 그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오래전에는 미처 몰랐던 감정인지 아니면 그때는 알지 못했던 슬픔을 이제야 알아보게 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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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맥컬리 컬킨이 [나 홀로 집에] 1편을 끝내고 2편이 나오기 전에 출연한 작품이다. 당시에는 맥컬리 컬킨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극장을 찾은 관객이 많았을 것이다. 케빈의 기발한 장난과 유쾌한 소동을 기대했다면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맥컬리 컬킨은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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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다는 태어날 때 엄마를 잃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베이다가 그리는 엄마는 온통 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직 남은 사진 한 장을 들고. 아빠는 장의사다. 죽은 사람을 보내는 일을 하는 아빠가 정작 살아 있는 딸의 마음은 알아주지 못한다. 그런 아빠가 장례식장 분장사로 들어온 쉘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반지까지 선물하자 베이다는 아빠가 밉다. 아빠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생겼지만 베이다에게 엄마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엄마를 생각하고, 시를 쓰고 싶어 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말로 꺼내기 어려운 마음을 시로 옮기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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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다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른들의 것이다. 어른들은 자기들끼리 사랑하고, 결혼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아이의 슬픔은 그 와중에 자꾸 뒷전으로 밀린다. 베이다가 왜 아픈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누구도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아이에게도 어른들이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은유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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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베이다 곁에는 토마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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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는 베이다와 잘 맞는 구석이 별로 없는 아이다. 요즘 말로 하면 완전한 T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밤이 되면 집에 가야 한다. 베이다가 상상력을 한껏 펼칠 때마다 토마스는 현실적인 말로 찬물을 끼얹는다. 온갖 알레르기를 달고 사는 녀석이라 베이다의 모험에 투덜거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결국 따라나선다. 둘 중 누가 더 용감한지 따질 것도 없이, 베이다가 가는 곳에 토마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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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베이다에게 토마스는 친구 이상의 존재다. 말하지 않아도 자기 옆에 있어 주는 아이. 베이다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 마음을 혼자 내버려 두지는 않는 아이. 치매를 앓는 할머니 역시 그런 존재다. 할머니는 베이다의 사정을 말로 풀어 주지 않는다. 그저 곁에 있다. 베이다에게는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을 고치려 들지 않고,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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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가 벌집을 건드리는 장면이 있다. 벌떼를 피해 도망치다가 강물에 뛰어들고, 그 소동 속에서 베이다는 자신이 아끼던 요술 반지를 잃어버린다. 아이에게 반지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다. 손에 쥐고 있으면 무언가 특별한 힘이 생길 것 같은 물건이다. 베이다가 믿는 세계의 일부이기도 하다. 베이다는 자신이 느끼는 상실을 시를 통해 마음을 붙잡으려 한다.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토마스에게 고백하며 결혼하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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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의 대답이 재미있다. 선생님과 결혼하는 건 불법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시험 점수를 백 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아이답고, 엉뚱하고, 어딘가 토마스답다. 베이다가 아무리 심각한 이야기를 해도 토마스는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 대답한다. 두 아이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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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는 힘으로도 덩치로도 베이다를 이기지 못한다. 겁도 많고, 현실적이고, 어른들 말을 잘 듣는 아이지만 베이다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깊다. 베이다가 잃어버린 반지를 찾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혼자 벌집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달려드는 벌떼에 쏘여 목숨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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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영화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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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베이다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엄마를 잃고 태어난 아이에게 또 하나의 상실이 찾아왔다. 하지만 엄마는 베이다가 태어나기 전에 떠났고, 토마스는 베이다가 함께 웃고 떠들며 지냈던 시간 속에서 사라졌다. 엄마는 상상으로라도 그려 볼 수 있었지만 토마스는 다르다. 어제까지 곁에 있던 아이가 이제는 어디에도 없다. 같이 모험을 떠날 수도,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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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다는 슬프다고 말하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어쩌면 슬픔이 너무 커서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상실이다. 밝고 엉뚱했던 베이다의 세계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토마스를 잃은 베이다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 아이에게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보일지. 한참을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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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후반, 베이다는 자신이 쓴 시를 낭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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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는 버드나무여, 왜 울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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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말없이 울고 있다. 어쩌면 토마스도 그런 아이였는지 모른다. 자기 마음을 멋지게 설명하지도 못하고, 베이다가 겪는 일을 모두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늘 그 자리에 있던 아이. 크지도 않고 특별히 강하지도 않았지만 베이다의 삶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누구보다 컸다. 그 아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베이다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조금씩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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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시 낭독 장면이 좋다. 베이다가 슬픔을 완전히 극복해서가 아니다. 토마스가 돌아온 것도 아니고, 없어진 자리가 다른 무언가로 채워진 것도 아니다. 그저 베이다는 자기가 느끼는 것을 시로 썼다. 마음속에서 도무지 정리되지 않던 감정이 문장으로 나왔다. 어쩌면 그게 베이다가 할 수 있는 전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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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놀란 건 맥컬리 컬킨의 연기였다. 같은 해 겨울에 개봉한 [나 홀로 집에 2]의 케빈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 케빈은 영리하고 장난기 넘치는 아이였지만, 여기서 토마스는 유약하고 단순하며 어딘가 답답할 만큼 직선적이다. 베이다의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그 애를 위해서는 혼자 위험한 곳까지 찾아가는 아이. 맥컬리 컬킨은 그 모습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토마스가 더 사랑스럽고, 그 아이가 사라진 뒤의 빈자리도 더 크게 느껴진다. 케빈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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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영화를 다시 본다는 건 가끔 이상한 일이다. 줄거리는 기억나고 결말도 알고 있는데,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장면에서 갑자기 마음이 무너진다. 영화가 달라진 건 아닐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가 달라졌거나, 그동안 살아오면서 조금씩 알게 된 감정들이 화면 속 아이의 얼굴과 겹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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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다는 토마스를 잃고 마음의 공백이 커졌다. 그 공백을 메꾸게 해 줄 무언가도, 그 슬픔을 없애 줄 사람은 없다. 다만 베이다는 시를 썼고, 우리는 그 시를 듣는다. 베이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그 비슷한 성장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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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영화 내내 흐르는 기저는 '죽음'이다. 베이다가 느끼는 죽음, 어린이의 시선으로 보는 죽음에 관해서 이토록 깊이 있게 다루었다. 마지막 베이다는 토마스의 엄마를 안아 준 다음 말한다. 토마스는 걱정하지 마세요, 하늘에서 우리 엄마가 지켜 줄 거예요. 이 계절에 눈물을 흘리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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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스는 굉장히 많은 함축적 의미와 은유가 가득한 영화다. 겉으로는

어린이들의 모험을 다루고 있지만 그 속을 잘 벌리면 낙오자, 차별,

불평등에 대해서 말한다. 구니스라는 이름은 주인공 아이들이 살고 있는

동네 이름 [구운 독스]에서 유래한 말이다.


영화 속 배경인 오리건주 아스토리아의 [구운 독스]라는 지역에 모여 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구니스]라 부르며 모험을 시작한다. 영어 속어로

[구니]는 얼간이, 바보, 멍청이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류 사회나

부유층 아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말썽꾸러기 개구쟁이 아이들이 스스로를

유쾌하게 자조하며 부르는 의미도 있다.


어릴 때 봤던 구니스는 재미있고 무서웠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순수

모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근래에 다시 보면 구니스가 꼭 그렇지 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손치콕비디 유튜브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강제철거라는

자본주의 앞에 내몰린 아이들의 생존기였다.


영화는 당시 이민자들, 키 호이 콴이 연기하는 아시아인 데이터는 기괴한

발명품이나 만드는 광대로 묘사되었고, 집에서 일하는 멕시코 가정부

아줌마는 잠정적 범죄자로 취급을 한다. 리처드 도너가 감독인데

슈퍼맨으로 히어로의 상징 같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티와 인디애나존스로 상상력의 끝판왕이었던 스필버그와

손을 잡았다. 이야기 줄기는 스필버그의 상상력에서 나왔다. 당시 바쁜

부모세대의 보호와 관리가 소홀했기에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들만의

아지트와 소통을 통해 어른들이 모르는 모험을 떠난다.


돈만 좇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모험을 통해 스스로 히어로가 되는 건

스필버그가 아니라면 당시 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거기에 리처드 도너는

통제가 불가능한 아이들의 생 날 것의 거친 모습을 담아냈다.

그리하여 나온 장면이 아이들이 보물선을 처음 봤을 때 놀라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위해 감독은 아이들에게 그 엄청난 보물선에 관해서 비밀로 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처음 보는 거대한 해적선을 보고 놀라는 그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다. 이 거대한 해적선을 그래픽이나 미니어처로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6개월 동안 800만 달러를 들여 동굴 안에 전장 70미터,

무게 300톤에 달하는 실물 크기의 해적선을 통째로 지어버린다.


세트가 지어진 첫날부터 리처드 도너 감독은 아이들에게 비밀로 하여

마지막까지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해적선을 실제로 만났을 때,

그 한순간의 장면을 위해 이 미친 짓을 해버린 것이다. 리허설 한 번 없이

워터 슬라이스를 타고 내려온 아이들이 해적선을 봤을 때 놀람과 리액션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정말 놀라서 거의 기절할 뻔했다고 후에 가장 큰 형으로 나온

타노스 역의 조슈 브롤린이 말했다. 이 아이들이 모험을 하게 되는 동기가

중요하다. 아이들은 그저 모험을 떠나 금화를 찾으려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

정부에 의해 마을은 철거 될 운명에 놓이고 내일이라도 당장 걸 거리에

나가게 될 판이었다.


부모들은 대출금을 갚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아이들은 절박했다. 그 절박함이

모험으로 이끌었기에 영화는 내내 긴장감이 흘러 한낱 아이들의 순수한

모험 영화로만 보이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모험을 떠나는 아이들과 대비를

이루는 사람이 마마 플라텔리다. 플라텔리는 자기 아들들을 채찍과 폭력으로

군림한다.


막내 슬로스는 외형적인 외모라는 이유로 지하에 가둔다. 영화는 가족을

대하는 모습을 대조적인 구조로 보여주면서 보는 이들의 생각할 기회를

준다. 지난 영화를 다시 보는 건 추억인 동시에 불편한 골짜기이기도 하다.


구니스 이야기는 당시 할리우드가 소외된 자들, 이민자들, 아시아 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각본을 쓴 크리스 콜럼버스는

당시에도 아시아인들이나 백인 이외의 인종을 웃음거리로 소비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흉측한 외모로 괴물로 여겨졌던 슬로스가

웃통을 찢고 그 안의 슈퍼맨 로고가 등장하면서 아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었다. 영화는 겉모습으로 세상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의미를

슬로스와 아이들을 통해 말하고 있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https://youtu.be/lYLAGAwcpSQ?si=ZThfVCQFbCsfzD5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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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정이 고공행진이다. 원작인 다이몬 미치코와 비교가 많이 되는데, 다이몬은 판타지 요소가 짙다. 그래서 더 웃기도 재미있는 부분도 있다. 계수정 1, 2화는 다이몬 시즌 1의 에피소드를 각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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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몬은 시즌 2까지 가면서 이히히힝 말도 수술하고, 햄스터도 수술하는데 계수정도 그렇게 할까? 그랬으면 흥미롭겠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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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몬은 큰 키에 먹보임에도 늘씬한 데다 파격에 가까운 섹시한 옷을 입고 병원을 엑스걸음으로 천하무적 돌아다닌다. 다이몬 버전에는 병원장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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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시즌 2의 병원장 역으로 나오는 니시다 토시유키는 코믹 캐릭터를 기가 막히게 해냈다. 20년 넘게 [낚시 바보 일지]에 출연하면서 국민 배우로 거듭난 니시다 토시유키의 귀엽고 얄미운 병원장 캐릭터가 다이몬을 더 돋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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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다 토시유키는 24년에 안타깝게 고인이 되었다. 다이몬 버전은 계수정 버전에 비해 병원의 정치질이 거대하다. 계파를 몹시 따지고, 한 번 줄을 탔으면 거의 목숨까지 걸 정도로 교의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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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환자는 받지 않거나 수술을 허락하지 않는다. 환자들이 있어도 계파 수장에게는 인사를 구십 도로 하고, 대답도 크게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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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 문화나 비서와의 밀회 같은 분위기도 계수정 버전에 비해 과감하다. 다이몬의 목욕장면도 자주 나온다. 목욕탕에서 긴 다리를 휙 들어 올린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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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정도 다이몬만큼 먹보지만 다이몬이 좀 더 많이 먹는 장면이 나온다. 둘 다 먹는 게 수술 다음으로 좋다. 맛있는 거 앞에서는 뭐 물불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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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정이 나오자마자 글로벌 인기를 얻는데 반해 우영우 일본 버전인 미나미는 시작 전부터 일본에서 기대가 컸는데 기대에 기대에 못 미치고 있어서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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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몬 버전에서 병원장이 코믹 캐릭터였다면 계수정 버전에서는 김영민이 그 역을 하고 있다. 첫 화의 카리스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사리지고 귀엽다 못해 햄스터가 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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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4화까지밖에 못 봤는데, 6화가 공개되고 스레드는 난리가 난 모양이다. 계수정과 다이몬이 수술 후에 마시는 캡슐 역시 화재다. 단맛을 더하는 액상 슈가시럽으로 알려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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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심하게 하면 몸에 있는 지방과 단백질을 운동 에너지로 바꾸는데, 너무 많이 운동을 하거나 심하게 운동을 하면 몸속에 있는 당을 끌어당겨 에너지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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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이유로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에 살이 많이 찌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다이몬과 계수정 역시 수술할 때에는 집중과 에너지를 전부 소진하듯 수술하니 슈가시럽으로 당을 충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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