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80년대 오래된 라디오를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어서 듣고 있다. 고작 4, 50년 정도밖에 안 된 방송인데 마치 200년은 된 방송처럼 느껴진다. 마치 세계가 형성되기 전 동굴에서 오롯하게 방송을 듣는 기분이다. 70년대 노래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평온을 유지하게 하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가사가 많다. 파랑새, 님, 해, 당신 없이는, 나의 사람아, 같은 가사가 죽 이어진다. 그리고 모든 노래의 연주가 록이 기반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컴퓨터로 음을 입히는 기술이 없기에 손가락이 불어 터져라 오직 직접 연주해서 녹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드럼 소리와 전기 기타 소리가 대부분의 노래의 배경이 되고 있다. 사연이 소개되어 선물도 설탕 1킬로그램을 주기도 한다.
좀비 드라마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도 80년대 노래가 계속 나온다. 웸이라든가, 린다 론스테드의 롱롱 타임이라든가. 80년대를 청년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그 시절을 미치도록 그리워하고 있다. 그들은 현재 돈과 권력을 쥐고 많은 80년대를 떠올리는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이나 요즘 나오는 영화에서도 그걸 잘 알 수 있다.
추억이라는 건 가슴을 따뜻하게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기억 하나씩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추억을 조심스럽게 자신을 모르는 불특정 사람들에게 풀어놓는다. 그게 영화나 영상인 경우가 많다. 또는 그런 영상 밑에 달린 댓글들.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 다녔는데 옆집에 살았던 고등학생 누나는 사람대우를 해줬다며 지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냐는 이야기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소주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주인이 아닌 것이다. 보잘것없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역사 하나하나가 모여 지금 이 사회가 망가지지 않게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자들아 제발 착각하지 마라. 평범한 사람들이 일구어 놓은 몇십 년의 역사를 한 번에 무너트리려 하지 말라고.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겨울은 그래도 기억이 난다. 아버지와 주말에 목욕탕에 다닌 덕분이다. 하나의 작은 기억은 확대되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겨울의 기억은 만개한 꽃처럼 선명한데 여름은 기억에서 소거되어 있다.
왜 그럴까. 무척 더웠을 텐데, 그래서 분명 그에 따른 이야기가 기억이 날 텐데 기억이 없다. 여름 방학에는 뭘 했는지 방학숙제는 했는지 탐구생활은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김세원의 팝스퍼레이드를 듣고 있었다. 60년 알랭드롱의 [태양은 가득히]의 주제곡이 나왔다. 알랭드롱은 리플리를 너무나 무섭고도 아름답게 연기를 했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늙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싫어한다. 늙으면 외모가 볼품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늙어가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사람이 알랭드롱이다.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드롱은 그야말로 잘생기고 멋진 아름다운 청년이다. 지구상에서 볼 수 없는 외모를 지녔다. 그런 생각을 하며 노래를 듣는데 강아지 새끼의 입 냄새가 떠올랐다. 아직 이가 덜 나서 여기저기 막 깨물고 다닐 때 입에서 나던 연한 비린내가 너무 좋은 아기 강아지의 냄새.
마당이 있었다.
우리는 늘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다. 생각해 보면 마당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겨울에 얼음이 얼어 얼음 위에서 놀다가 동생이 미끄러져 턱이 깨져서 병원에서 꿰맨 자국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때 엄마한테 많이 혼났다. 마당에서 논 기억은 분명히 많은 머물러 있지는 않은 거 같았다. 마당은 그저 마루와 대문의 사이에 있고 그 연결 통로 같은, 가로질러 안과 밖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곳이었다.
늘 여러 집이 같이 사는 집에서 마당도 공유를 해서 그저 지나치는 곳일지도 모른다. 어린이 때에는 집 마당에서도 잘 놀았는데 학교를 다니고부터는 마당은 그저 지나치는 공간이었다. 집의 마당보다는 친구들이 있었던 학교의 운동장이 좋았다.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시작해서 방 두 개에 마당이 딸린 전세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마당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도 누구 하나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으니까. 장난감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아버지는 일요일에는 볕이 드는 마당에 같이 앉아서 프라모델을 만들어주곤 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만의 공간이라는 게 행복의 충족요건이었다. 우리만의 공간인 마당에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아버지는 원래 개를 무척이나 싫어하셨다. 그런 어른들이 있다. 아버지가 그랬다. 그런데 새끼 강아지가 생기고 아버지는 마당에 개집을 직접 지었다. 목공소에서 나무를 직접 사 와서 뚝딱뚝딱 개집을 지었다. 아버지는 아기 강아지를 위해 매일 수프를 끓이고, 우유를 데워 먹이곤 했다. 그때부터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해서 아버지는 돌아갈 때까지 개와 함께였다.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집에 있는 강아지가 걱정이 되어서 안 된다며 숟가락도 놓으시고 집으로 가버렸다. 그때가 호텔에서 예약해서 먹는 식사였는데도 그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강아지도 아버지 곁으로 갔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마당에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마당은 좁지만 넓은 세계였다. 가족 만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마당, 그 마당에서 자유롭게 다니던 새끼 강아지들. 그 녀석들의 입에서 나는 보드랍고 연한 비린내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