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곳은 거제도인데 몇 해 전 여름의 끝물에 여행을 갔을 때다. 내가 사는 바닷가와는 다른 느낌과 냄새가 스며들어 있었다. 여행을 가면 거기까지 간다, 까지만 여행의 계획이고 그 이후의 계획은 대부분 없다. 그저 그곳에서 닥치는 대로 찾아서 잠을 자고 식사를 한다.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여름의 막바지에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면 먹고 자는 것은 고급스럽진 않아도 해결이 수월하다. 거제도는 크고 아름다운 섬이라 해안을 따라가다가 한 마을에 들렀는데, 꽤 운치 있고 마을 사람들의 정겨움도 느낄 수 있어서 그 마을에서 일박을 했다. 마지막 날 오후쯤에 조용하고 기품 있는 작음 마을을 발견하고 일행과 나는 흡족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마을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동네를 벗어나니 작은 포구가 나왔다. 작은 배가 정박해 있는 포구였다. 8월 말이라 해가 떨어지면 저녁의 바람은 시원하고 선선해서 어떤 경계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평온했으며 바다의 잔잔함이 호수와는 달랐고, 차원이 다른 투명함에 일행과 나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포구에는 벤치가 있어서 앉아서 고요한 풍경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고요한 바다는 멋스러움을 한껏 가지고 있어서 우리를 잡아두려는 매력을 자꾸 발산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눈으로만 서서히 저물어가는 해와 정적인 바다를 바라보며 꺼져가는 여름날의 정취를 맡고 있었다. 해가 힘을 잃어가는 저녁 시간이 되니 어디선가 동네의 어르신들이 하나, 둘 씩 사진 속의 포구로 와서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한 손에는 망태기를 들고 있었고, 마치 각자의 자리가 있는 것처럼 자리를 잡고 미끼를 열심히 끼웠다.
20여 분만에 동네 할아버지들이 죽 일렬로 늘어앉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열두 명 정도나 되었다. 나는 재미있어서 카메라를 들었는데 일행이 손으로 막으면서, 안 돼, 그저 눈으로 구경만 하는 거야.라고 해서 사진은 담지 않았다. 우리는 할아버지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1번부터 12번까지 번호를 매기고 몇 번의 할아버지가 고기를 제일 많이 낚아 올리는지 내기를 했다. 3번 할아버지가 부동의 자세와 노련한 솜씨로 고기를 연신 건져 올렸다. 그리고 10번, 8번, 11번,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고기를 낚아 올렸다.
어떤 할아버지는 손자를 데리고 나와서 할아버지가 낚은 물고기를 손으로 꾹꾹 눌러보기도 했다. 할머니가 살아있는 할아버지는 마치 그 사실을 주위 할아버지들에게 확인시키듯 낚은 고기를 할머니에게 부탁했다. 쓱 내밀면 할머니가 무표정하게 앉아서 고기를 낚싯대에서 쓱 분리해서 망태기에 던져 놓고 미끼를 쓱 끼웠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쓱 낚싯대를 바다에 던졌다. 유독 9번 할아버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낚아 올리지 못했다.
투덜투덜 대며 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던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양옆으로 잘도 낚아 올리는데 9번 할아버지만이 소식이 없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바다는 할아버지들에게 많은 물고기들을 양보했다. 우리 말고 늦여름의 휴가를 즐기는 불륜으로 보이는 중년의 정장차림의 남녀도 보였다. 정장차림의 남녀도 횡렬의 낚시대회 할아버지들이 신기했는지 가까이 가서 낚아 올린 물고기를 보며 재미있어했다.
어머, 이 고기는 뭐예요? 어머, 이건 꽤 큰데요(자기 것처럼). 어머, 튀어나왔어요. 라며 정장 차림의 여자는 남자에게 팔짱을 끼고 바짝 붙어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9번 할아버지를 주시했다. 할아버지는 결국 일어나서 다른 자리로 가려했지만 촘촘한 할아버지 사이를 뚫지 못했다. 결국 9번 할아버지는 바다에게 욕을 하며 미끼를 전부 획 던져버리고 가버렸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모습에 반해버린 걸까. 낯선 여행지에서 이런 소소한 풍경이야 말로 여행의 수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길에 한창 들었던 문차일드의 태양은 가득히도 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