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팸 앤 토미'의 예고편에 미트로프의 '아 두 잇 애니씽 포 러브'가 나온다. 미트로프는 거구의 록스타로 미식축구 출신이다. 오늘은 미트로프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미트로프의 노래는 정말 너무나 좋다. 90년대를 장식했던 수많은 록밴드 중 한 명이다. 영화에는 직접 나오지 않았지만 인기 있었던 두 영화에서 미트로프가 언급된다. 두 영화 전부 영국 영화다.


예고편 https://youtu.be/sJgH4y3raWc


하나는 '노팅힐'이고, 하나는 '러브 액츄얼리'다. 노팅힐에서는 애나 스콧과 함께 침대에서 같이 보낸 윌리엄 태커의 대화에서 미트로프가 등장한다. 미국에서 가장 이상한 밴드라면서 미트로프를 언급한다. 그리고 러브 액추얼리에서는 리암 니슨의 다니엘이 아들인 토마스 생스터가 분한 샘에게 미국의 미트로프도 이상하지만 음악을 하잖아 같은 대사를 한다.


그런 것을 보면 미트로프는 음악의 본고장인 영국에서도 무척이나 갈망하는 밴드가 아닐까 싶다. 미트로프의 노래가 팸 앤 토미의 예고편에 주욱 흐른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도 한 편의 영화 같다. 미트로프가 직접 등장하며 스토리 형식이다. 미녀와 야수를 오마주해서 사랑에 관한 노래를 록스타일로 부른다.


90년대는 그야말로 엠티비 또는 뮤직비디오의 세상이었다. 독보적이라면 에어로 스미스의 '겟 어 그립'의 노래들이 전부 뮤직비디오로 이야기가 이어지게 만들어서 정말 앨범의 수록곡을 뮤직 비디로 다 보면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특히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당시 가장 핫 걸이었던 알라시아 실버스톤과 반지의 제왕에서 요정 아르웬 역으로 나온 리브 타일러가 주연이었다.


 https://youtu.be/NMNgbISmF4I 에어로 스미스 뮤비 속 알라시아 실버스톤과 리브 타일러


리브 타일러는 이때가 대중에게 처음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에어로 스미스의 보컬 스티브 타일러의 딸로, 록스타가 아빠인 줄도 모르고 따로 떨어져서 살다가 티브이에 나오는 저 입 큰 록스타가 나와 많이 닮은 거 같은데? 그래서 찾아가서 뭐 이런저런 일을 거쳐 그래 내 딸아! 그렇게 해서 에어로 스미스의 뮤직비디오에 알라시아 실버스톤과 함께 출연하면서 지금의 배우가 되었다.


80년대 말 지구에서 제일 인기가 많고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인이라 할 정도의 밴드가 머틀리 크루였다.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 토미 리와 파멜라 앤더슨의 섹스 스캔들이 나서 세계를 들썩이게 한 일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시리즈로 만든 이야기가 '팸 앤 토미'다.

파멜라와 토미


엄청난 수위의 이야기가 꿈과 희망의 디즈니 플러스에서 서비스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토미가 헤더와 헤어지고 파멜라를 만난 지 100시간 만에 반해서 결혼을 하고 요트 위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면서 두 사람만의 엄청난 섹스 비디오를 찍어서 금고에 넣어두는데 그게 도둑을 맞는데 온라인으로 배급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난다.

영화와 실제


토미가 파멜라를 만나기 전 7년 간 결혼을 했던 헤더 로클리어는 톰 크루저와도 염문이 있었고 토미 리와 헤어지고 본조비의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의 연인이 되기도 했다. 헤더 로클리어에게 반한 토미가 헤더와 만나게 되면서 개판으로 생활하던 악동에서 좀 벗어나게 된다. 헤더와 결혼을 하면서 토미는 셀럽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한 지 7년 만에 이혼을 한다.

후에 파멜라를 만나면서 불꽃이 타오른다. 이 시리즈는 여기서부터 시작을 한다. 토미가 파멜라와 만나는 장면부터 보여준다. 주인공으로 릴리 제임스와 세바스탄 스탠이 파멜라와 토미를 연기하는데 처음에 릴리 제임스? 파멜라 같은 독보적인 섹시스타를 어떻게?라고 생각했는데 와아 릴리 제임스의 얼굴이 전혀 없다. 손짓, 말투, 몸짓, 몸매, 가슴 모든 게 그냥 파멜라 앤더슨이다.

이 시리즈는 절대 성인이 된 아들딸이라도 같이 봐서는 안 되며, 애인끼리도 같이 보면 안 될 것이고, 부부끼리도 같이 안 보는 게 좋을 거고 혼자 보거나 친구와 보는 게 낫다. 엄청난 수위다. 수위 조절의 실패가 이 시리즈다. 이런 고강도 수위의 시리즈가 아무튼 꿈과 희망의 디즈니에서 룰루랄라 송출했다.


토미 리는 지구에서 가장 악동인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이고, 파멜라 앤더슨은 베이워치로 섹시 심벌이었다. 머틀리 크루의 이야기는 영화 ‘더 더트’를 보면 된다. 얼마나 악동이며 정신줄을 놓고 록스타가 되었는지. 나는 학창 시절에 머틀리 크루를 퀸이나 엘튼 존보다 많이 들었기 때문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나 앨튼 존의 영화 로캣 맨보다 더 더트가 제일 재미있었다.

팸 앤 토미 2화에서 토미가 여자들에게 개미가 일렬로 가는데 약을 뿌려 코로 빨아들이는 걸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머틀리 크루보다 더 사고뭉치 오지 오스본을 말한다. 이 일화 역시 너무 유명해서 영화 더 더트에 그대로 나온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록스타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태어난 김에 록이나 하지 뭐, 이런 분위기다.


세계의 정상을 달리면서 앨범을 다 합쳐 5천만 장이나 팔이치운 머틀리 크루는 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하강하는 분위기를 느낀다. 90년대를 휘어잡는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등장하고, 알라니스 모리셋 같은 아티스트들이 대거 등장해서 록 사장의 판도를 다 바꿔 버린다. 커트 코베인의 너바나는 등장하자마자 계속 1등을 먹었던 마이클 잭슨을 1위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든다. 토미는 조금씩 그런 분위기를 느낀다.


제목이 '팸 앤 토미'로 파멜라가 먼저 나오는 건 파멜라에게 좀 더 집중되어 있는 이야기다. 파멜라는 섹시 심벌이지만 뮤지컬을 좋아하고 순수한 면모가 많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기에 사람들에게, 남자들에게 잘 넘어가는 경향이 짙었다. 릴리 제임스가 홀딱 벗고 나오는 장면이 많지만 그 굉장한 신체는 그래픽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실제 파멜라는 그 당시 그런 몸이어야만 했다.


섹스 영상이 온라인으로 배급된 것 때문에 법정에서 당시 파멜라의 몸은 노출된 채로 수많은 잡지와 영상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공공의 재산이라는 어이없는 판결을 받는다. 법의 나라 미국이라지만 90년대 미국 법정도 엉망진창이었다.


당시 야후 같은 첫 검색엔진이 시동 걸 때였는데 팸과 토미의 영상이 인터넷에 무료로 뜬다. 토미보다 파멜라가 더 타격을 받는다. 당연하지만 여자라는 이유였다. 법정에서는 이 같은 무료 유출도 공공성이라는 부분으로 인정을 한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파멜라에게 섹스 비디오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쳐다본다. 토미 역시 스트레스를 받지만 술집에서 술에 취해 자랑처럼 늘어놓는 모습이 파멜라와는 달랐다.


파멜라는 여자나 여배우가 아닌 한 인간으로 사람들에게 비치기를 바랐지만 모두가 그녀를 하나의 상품 내지는 포르노 배우 정도로 취급했다. 임신까지 하고 영화 배역은 엘리자베스 헐리, 킴 베이싱어에게 전부 내주고 3류 영화에나 나가야 했고 토미와 변호사는 자신의 마음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파멜라와 토미의 섹스 영상이 남자들에게는 욕구를 푸는 비디오 정도였다. 그런데 성인배우들, 여자 성인배우들에게 그 영상은 정말 신혼 첫날의 사랑하는 신혼부부의 달콤하고 사랑하는 눈빛의 파멜라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흔한 섹스비디오와는 다르게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행복해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비디오가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수위가 높은 장면은 시리즈 중에 딱 한 번 나온다. 이 이야기는 파멜라에 맞춰져 있다. 안타까운 모습의 파멜라, 행복해하는 파멜라, 아이 같은 파멜라, 잠 못 드는 밤의 시애틀에 빠져 있는 파멜라 등 파멜라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연기를 릴리 제임스가 기가 막히게 해내고 있다.


이 시리즈는 미국 샐럽들의 가십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 록스타 내지는 머틀리 크루를 좋아하는 사람, 파멜라의 이면을 보고 싶은 사람(이 이야기는 다큐로 제작된 올해 나온 ‘파멜라, 러브 스토리’를 보면 인간 파멜라를 알 수 있다), 90년대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시리즈 내내 많은 음악이 나온다)에게는 강추. 우리가 수업시간에 몰래 이어폰으로 들었던 수많은 음악이 죄다 나온다. 좋아 죽는다.

이 사진 너무 좋다, 영화 속에는 이 두 사람의 실제 모습이 전혀 없다, 연기가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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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 시골마을.

두 시간 넘게 버스를 기다리는 한 청년.

저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한 대 온다. 청년은 버스에 올라탄다. 이 험난한 시골길의 대형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는 20대 젊은 여성이다.


청년은 버스에 오르며 두 시간을 기다렸다고 젊은 여성의 기사에게 말하지만 멋쩍게 한 번 웃고는 기사는 시큰둥하다. 버스에는 시골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가득 앉아 있다. 청년은 담배를 한 대 피운다.


그렇게 버스가 시골길을 터덜터덜 가는데 저 앞에서 다친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보인다. 버스가 멈추고 그들을 버스에 태우자마자 강도로 돌변해서 승객들의 돈을 뺏는다. 승객들은 순박해서 반항을 하거나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한다. 승객 중 한 명이 강도에게 돈을 주지 않으려 하다가 강도에게 맞아서 피가 난다.


강도들은 버스에서 내리려다가 운전기사가 젊은 여성이라는 걸 알고 끌고 내려가서 겁탈하려고 한다. 기사는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버스에 탄 남자들은 그저 멀뚱멀뚱 보기만 한다. 순박한 얼굴 표정에서 나만 다치지 않으면 기사가 당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얼굴이다.


강도들은 여성 기사를 끌고 내려가서 겁탈을 한다. 승객들은 그저 그 모습을 멀뚱히 보기만 할 뿐이다. 가장 늦게 올라탔던 청년이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느냐며 버스에서 내려 강도들에게 달려들다가 칼에 찔려 다리에 피가 나서 쓰러지고 만다.


성폭행을 하고 강도들은 가버리고 여성 운전자가 만신창이 되어 버스에 오른다. 오르면서 버스에 탄 사람들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본다. 승객들은 여성 운전자의 시선을 피하기만 할 뿐 더 큰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안도하는 얼굴이다. 여성 기사는 한참을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운전석에 앉는다.


그때 청년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버스에 타려고 한다. 그런데 여성 운전자가 타지 말라고 화를 낸다. 청년은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은 나뿐인데 왜 나만 버스에 태워주지 않느냐고 한다. 여성 운전자는 화가 나서 버스의 문을 그대로 닫아 버린다. 청년은 태워달라고 하지만 여성 운전자는 창문으로 청년을 가방을 던져준 후 버스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난다.


황당한 청년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시골길을 가다가 어떤 차에 히치하이킹을 해서 간다. 얼마쯤 갔을까 경찰들이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 청년은 내려서 본다. 거기 가서 보니 아까 그 버스가 절벽으로 떨어져 모두가 사망하고 말았다.




이 단편 영화는 1998년 8월 중국의 지방 신문에 보도된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11분짜리 단편 영화를 보면 잘 알겠지만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다. 전 세계에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생물 1위가 모기, 2위가 인간이라고.


요즘 공포영화가 많이 나오는데 귀신? 좀비? 뱀파이어? 괴물? 유령은 장난 수준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잔인하다. 요즘 아기들 버리고 파묻고 냉장고에 넣고 봤지. 영화 풀버전은 유튜브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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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카’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로 세 편의 단편 영화로 이루어진 영화가 ‘우연과 상상’이다. 이 영화(들)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정말 마법 같은 영화다. 세 편 전부 등장인물도 한두 명이 전부다. 특별한 사건이나 액션 없이 그저 주인공들이 대화를 나눌 뿐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영화 속 주인공들의 대사를 들으면 상상을 하게 된다. 눈으로 영화를 좇지만 상상 속에서 또 다른 영화를 만들어낸다. ‘비 포 선 셋’ 시리즈처럼 내내 대화만 하는데 뭐야? 내 마음이 왜 이러지? 하게 된다.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의 가능성을 믿고, 문을 열어둔 채 상상은 우연이 되고 다시 한번 마음을 털어놓는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개인적으로 올해 들어 본 영화 중에는 이 영화 ‘우연과 상상’이 제일 좋았다.


이 영화의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하마구치 류스케는 10분 미만 짜리 단편 영화를 자신은 만들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재미있게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인간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서 너무나 깊고 깊게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총 세 편으로 이루어진 ‘우연과 상상’은 처음에 두 번째 영화 ‘문은 열어둔 채로’를 먼저 만들고, 1년 뒤에 처음 시작하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준비하고 있던 장편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를 촬영하던 도중 코로나가 터졌다. 그렇게 시간을 거쳐 세 번째 영화 ’다시 한번'을 만들었다.


마지막 영화 '다시 한번'은 두 사람의 마음이 하는 말, 내내 숨기고 있었던 말이 내내 잔상이 되어 내가 어딜 가든 따라다니는 것만 같다. 


나츠코는 20년 만에 미야기 현의 미야기 여고 동창회가 열리는 곳에 참석을 한다. 그러나 재미도 없고 기억나는 친구도 거의 없다. 나츠코는 찾고 싶은 친구가 있었지만 그 친구는 나오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다시 도쿄로 가기 위해 센다이 역으로 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나츠코는 반대쪽에서 내려오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을 발견하고 반가운 얼굴을 한다. 상대방 여성도 에스컬레이터를 다시 타고 올라오고 나츠코는 다시 내려가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너무나 반가운 동창. 만나고 싶었던 친구를 이렇게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나츠코는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길 바랐지만 친구는 택배 때문에 집으로 가자고 한다. 두 사람은 고교의 일을 이야기하며 집으로 간다. 집을 둘러보던 나츠코는 친구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 친구는 생각을 하다가 나츠코에게 되묻는다. 나츠코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때 친구가 나츠코에게 미안하지만 실은 너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시 나의 이름이 기억나는지 묻는다. 황당한 나츠코는 친구의 이름을 말하지만 친구는 그 이름도 아니며, 우리는 같은 여고를 나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나츠코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두 사람은 고교 때 서로 친하게 지낸 친구가 되어 준다. 나츠코는 아야를 만나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아야가 아닌 코바야시에게 덤덤하게 말한다.


"말해야 할걸 못 한 나한테 화가 났어. 내가 하지 못한 말.

네가 마지막으로 전화했을 때 난 시부야 중심가에 있었어. 하마사키 아유미의 노래가 흘렀고 유행 차림 소녀들이 시끄럽게 떠들었어.

하지만 네 목소리는 아주 또렷이 들렸어. 아주 단호한 목소리였어. 혼자 힘든 시간을 견디다 전화했다는 게 느껴졌어.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했어.

뭔가 말하면 너를 더 힘들게 할 것만 같았어. 그래서 전화를 끊었고 다시는 걸지 않았어.

그때 내가 못 한 말은 난 너만을 사랑했다는 것.

넌 다른 사람이어도 괜찮을 수 있지만 난 네가 아니면 안 돼. 나와 함께 하면 네 인생이 복잡해질 수 있지만 그래도 날 선택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못 했어. 하지만 지금 난 너에게 뭘 원해서 온 게 아니야.

단지 그때 그 말을 못 했다고 전하고 싶었어.

널 힘들게 하더라도 말했어야 했어. 그 고통이 우리 인생에 필요하단 걸 깨달았거든. 지금 네 인생에도 조금은 나와 같은 구멍이 생겼을 테니까.

그래서 왔어.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분명 있을 거야. 이젠 그걸 채울 수 없지만 나에게도 그게 있단 걸 전하려고 왔어.

그 구멍을 통해 우린 지금도 연결돼 있을지도 몰라. 그걸 말하려고 왔어"


하마구치의 이전 작품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상처를 받으려면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세번 째 단편 ’다시 한번'은 그때 비록 네가 힘들지라도 말해야 할 건 말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그런 고통이 필요하다는 걸 지내면서 깨달았다는 것. 하지 못한 말을 그대로 둔 채 시간이 흐르면 서로에게 점점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은 공백이 들어차게 되어서 더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이 세 편은 기가 막히게 하루키의 소설 같다. 쉴 새 없이 주고받는 농도 있는 대화가 소설을 읽는 기분을 준다. 정말 마법 같은 언어가 밀도 있게 시간을 채워 나간다. 아아 영화를 보면서 상상하게 만드는 아주 기묘한 마법을 부리는 감독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 나에게는 좋았던 영화 ‘우연과 상상’이었다. 와 씨 영화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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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시로 간 처녀’는 81년 작품으로 김수용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김수용 감독은 우리나라 문예 영화의 거장이라 불렸다. 이 영화의 각본을 김승옥이 썼다. ‘도시로 간 처녀’ 이전에 김승옥과 김수용 감독이 만나서 작품을 만들었던 건 64년에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소설 ‘무진기행’을 영화로 만든 ‘안개’였다.


영화 ‘안개’가 소설만큼 재미있는 건 김승옥이 직접 각본을 썼기 때문이다. 이때 재미있는 일화가 김수용 감독이 김승옥에게 제발 쉽게 써달라고 요청했다고.

김승옥이 한국문단에 등장하자 그야말로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그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대중 소설은 무협소설과 민담 설화에 가까운 소설이었는데 김승옥이 문단에 등장하자마자 모국어의 폭발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피츠제럴드 같은 직유와 은유, 그리고 구조가 너무나 완벽하게 이루어진 문장이 사람들의 염통을 후려쳤던 것이다.


김승옥이 등장했을 때의 일화 중 하나는, 지금 한국의 대문호 격인 소설가 김훈,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 소설가도 우리나라 거의 1대 문인이었다. 김훈이 꼬꼬마 16살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버지 김광주의 방에 아버지 후배들, 즉 문인들이 모여서 심각한 얼굴들을 한 채 이야기 중이었다. 이야기 즉슨 읽어봤냐? 괴물이 등단을 했어! 였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훈에게 막걸리를 받아오게 해서 김광주와 문인들이 마시면서 이제 우리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같은 이야기를 밤새 했다고 한다.


김훈은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였다. 당시 최고의 소설이 황석영의 장길산이었다. 장길산은 한국일보에 74년부터 84년까지 매일 연재된 소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황석영이 매일 소설을 연재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다 도망을 쳤다. 도망을 쳐도 어느 지역에서 그날그날 쓴 소설을 우편으로 동봉해서 신문사에 보냈는데 그날은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다. 신문사는 발칵 뒤집어졌다. 사람들이 연재가 끊어져 난리가 났다. 그래서 도망간 황석영을 잡으러 간 사람이 담당 편집기자인 김훈이었다.


아무튼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세상에 나온 이후 한국 문단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상상의 도시, 무진의 명산물 안개를 여귀가 뿜어낸 입김 같다고 표현을 했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안개를 이만큼 표현한 소설 속 미문이 없다. 소설 속의 여귀는 영화 ‘안개’ 속에서 마녀로 대신 나온다.


김승옥의 문장 속 세계관을 나타내는 언어는 지금도 유효하다.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 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 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 무진기행]


소설 속 ‘조’가 영화에는 조한수로 나온다. 두 사람은 세무서장이 된 조의 집으로 가서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숙, 하인숙을 만나게 된다. 영화에서 하인숙을 연기한 배우는 윤정희다. 아주 어린 모습의 윤정희는 그 당시로는 보기 드문 예쁜 얼굴의 배우다.


이 무진기행은 세 번 영화가 되었다. 67년에 한 번, 76년, 87년에도 만들어졌다. 윤정희는 두 번 하인숙으로 열연했다.


안개가 재미있는 이유 중 또 하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이제 고인이 된 신성일과 윤정희가 주인공으로 나오며 소설 속의 문체를 영화적 문채로 절묘하게 녹아냈다. 김승옥의 각본과 김수용 감독의 연출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그런 김승옥과 김수용이 다시 한번 영화를 만든 것이 ‘도시로 간 처녀’였다. 이 영화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사회고발 영화의 시초였다. 이 영화는 그 당시 버스 안내양의 부당함을 말하고 있다. 돈을 삥땅 하는 일 때문에 알몸수색을 하는 문제가 당시에 있었는데 김승옥은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며 버스 안내양들을 취재하여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부당한 대우와 모욕감 때문에 유지인이 투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에는 난리가 났다. 김수용 이전의 영화에서는 누가 봐도 마네킹이 절벽 같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연출을 했는데, 김수용은 실제로 유지인이 투신하는 것처럼 보이게 연출을 한 것이다.


이 영화는 33일 밖에 상영하지 못했다. 실제 일어나는 사회고발 영화이기에 기득권이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영화는 몇 번이나 삭제를 하고 또 당해서 나오게 되었지만 군사정권 시대라 마음껏 상영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가장 잘 드러낸 영화였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바보들의 행진의 히로인 영자의 이영옥의 모습과 금보라의 풋풋한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다른 의미의 재미다) 건 이 영화가 상영되고 지금까지 시간이 몇십 년이 흘렀는데 조직이나, 단체,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여전하고 그들을 지금 이 더운 태양 아래서 농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가사의할 정도로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핍박당하고 죽음을 각오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순수함을 지키려 하고 진실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는 것 역시 예나 지금이나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이 영화에서 마지막 유지인, 극 중 문희는 투신을 하지만 살아난다. 희망을 주며 끝이 나지만 해피엔딩이 말할 수는 없다. 김수용 감독은 2005년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영화에 무슨 사회성이냐, 폭로 항변 메시지는 접어두고 좋은 세상 만날 때까지 사랑하고 정사하고 눈물 짜는 영화나 찍자”라고 했다.


김승옥 소설가가 광주민주화항쟁의 충격으로 절필을 선언했을 때 이어령 박사가 붙잡아서 호텔에 던져 놓고 장편 소설을 계속 쓰게 했는데 그 소설이 ‘서울의 달빛’이었다. 그런데 김승옥은 끝끝내 소설을 다 쓰지 못하고 절필을 하고 만다.


그래서 ‘서울의 달빛 0장’으로 단편 소설이 되었다. 만약 장편으로 이어졌다면 1장, 2장 주욱 이어졌을 것이다. 김승옥의 단편 소설들은 읽고 또 읽었지만 너무 재미있다. 김승옥의 소설 속에는 위트와 유머가 살아있다. 이후 김승옥의 몸에 풍이 와서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2014년인가 순천에서는 무진기행 50주년 행사를 하기도 했다. 김승옥 소설가도 41년 생이시니까,,,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얼마나 무진, 즉 순천의 자랑이었냐 하면 응사, 응답하라 1994에서 순천의 해태와 여수의 학생이 술집에서 서로 더 대단한 도시라고 싸운다. 비행장이 있니 없니, 백화점이 있니 없니. 그러다가 밀리게 된 해태가 그런다. 김승옥! 무진기행! 우린 무진기행이 있는디. 정말 멋진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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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준 사람은 오직 너뿐. 너의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나는 너의 입술을 훔쳤다. 괴물이란 다른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모두가 우리를 괴물이라 해도 여름의 뜨거운 빛을 당당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때로는 확실한 진실보다 희미한 가능성이 더 나을지도 몰라. 우리는 괴물이니까 우리 서로 열심히 사랑하자. 사랑이 없는 사람은 많아도 사랑이 많은 괴물은 우리뿐이야. 너를 알게 된 후 나의 피와 뼈와 살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어. 딸기는 빨간데 딸기우유는 하얀색이다. 그래, 우리는 딸기우유를 먹으며 딸기보다 더 맛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여름의 정점에 부는 바람은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어? 하는 사이 한 계절의 여름은 짧게 지나 저만치 후퇴해 버리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여름의 그 감촉과 냄새는 마음 한 편의 야들야들한 추억이 되었다.

딸기우유, 트레이시 에민, 휴대용 시디 플레이어, 신해철, 웸, 011 애니폰 등이 배경이 되었던 최은영 단편소설 원작 '그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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