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카’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로 세 편의 단편 영화로 이루어진 영화가 ‘우연과 상상’이다. 이 영화(들)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정말 마법 같은 영화다. 세 편 전부 등장인물도 한두 명이 전부다. 특별한 사건이나 액션 없이 그저 주인공들이 대화를 나눌 뿐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영화 속 주인공들의 대사를 들으면 상상을 하게 된다. 눈으로 영화를 좇지만 상상 속에서 또 다른 영화를 만들어낸다. ‘비 포 선 셋’ 시리즈처럼 내내 대화만 하는데 뭐야? 내 마음이 왜 이러지? 하게 된다.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의 가능성을 믿고, 문을 열어둔 채 상상은 우연이 되고 다시 한번 마음을 털어놓는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개인적으로 올해 들어 본 영화 중에는 이 영화 ‘우연과 상상’이 제일 좋았다.
이 영화의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하마구치 류스케는 10분 미만 짜리 단편 영화를 자신은 만들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재미있게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인간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서 너무나 깊고 깊게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총 세 편으로 이루어진 ‘우연과 상상’은 처음에 두 번째 영화 ‘문은 열어둔 채로’를 먼저 만들고, 1년 뒤에 처음 시작하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준비하고 있던 장편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를 촬영하던 도중 코로나가 터졌다. 그렇게 시간을 거쳐 세 번째 영화 ’다시 한번'을 만들었다.
마지막 영화 '다시 한번'은 두 사람의 마음이 하는 말, 내내 숨기고 있었던 말이 내내 잔상이 되어 내가 어딜 가든 따라다니는 것만 같다.
나츠코는 20년 만에 미야기 현의 미야기 여고 동창회가 열리는 곳에 참석을 한다. 그러나 재미도 없고 기억나는 친구도 거의 없다. 나츠코는 찾고 싶은 친구가 있었지만 그 친구는 나오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다시 도쿄로 가기 위해 센다이 역으로 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나츠코는 반대쪽에서 내려오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을 발견하고 반가운 얼굴을 한다. 상대방 여성도 에스컬레이터를 다시 타고 올라오고 나츠코는 다시 내려가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너무나 반가운 동창. 만나고 싶었던 친구를 이렇게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나츠코는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길 바랐지만 친구는 택배 때문에 집으로 가자고 한다. 두 사람은 고교의 일을 이야기하며 집으로 간다. 집을 둘러보던 나츠코는 친구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 친구는 생각을 하다가 나츠코에게 되묻는다. 나츠코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때 친구가 나츠코에게 미안하지만 실은 너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시 나의 이름이 기억나는지 묻는다. 황당한 나츠코는 친구의 이름을 말하지만 친구는 그 이름도 아니며, 우리는 같은 여고를 나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나츠코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두 사람은 고교 때 서로 친하게 지낸 친구가 되어 준다. 나츠코는 아야를 만나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아야가 아닌 코바야시에게 덤덤하게 말한다.
"말해야 할걸 못 한 나한테 화가 났어. 내가 하지 못한 말.
네가 마지막으로 전화했을 때 난 시부야 중심가에 있었어. 하마사키 아유미의 노래가 흘렀고 유행 차림 소녀들이 시끄럽게 떠들었어.
하지만 네 목소리는 아주 또렷이 들렸어. 아주 단호한 목소리였어. 혼자 힘든 시간을 견디다 전화했다는 게 느껴졌어.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했어.
뭔가 말하면 너를 더 힘들게 할 것만 같았어. 그래서 전화를 끊었고 다시는 걸지 않았어.
그때 내가 못 한 말은 난 너만을 사랑했다는 것.
넌 다른 사람이어도 괜찮을 수 있지만 난 네가 아니면 안 돼. 나와 함께 하면 네 인생이 복잡해질 수 있지만 그래도 날 선택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못 했어. 하지만 지금 난 너에게 뭘 원해서 온 게 아니야.
단지 그때 그 말을 못 했다고 전하고 싶었어.
널 힘들게 하더라도 말했어야 했어. 그 고통이 우리 인생에 필요하단 걸 깨달았거든. 지금 네 인생에도 조금은 나와 같은 구멍이 생겼을 테니까.
그래서 왔어.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분명 있을 거야. 이젠 그걸 채울 수 없지만 나에게도 그게 있단 걸 전하려고 왔어.
그 구멍을 통해 우린 지금도 연결돼 있을지도 몰라. 그걸 말하려고 왔어"
하마구치의 이전 작품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상처를 받으려면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세번 째 단편 ’다시 한번'은 그때 비록 네가 힘들지라도 말해야 할 건 말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그런 고통이 필요하다는 걸 지내면서 깨달았다는 것. 하지 못한 말을 그대로 둔 채 시간이 흐르면 서로에게 점점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은 공백이 들어차게 되어서 더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이 세 편은 기가 막히게 하루키의 소설 같다. 쉴 새 없이 주고받는 농도 있는 대화가 소설을 읽는 기분을 준다. 정말 마법 같은 언어가 밀도 있게 시간을 채워 나간다. 아아 영화를 보면서 상상하게 만드는 아주 기묘한 마법을 부리는 감독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 나에게는 좋았던 영화 ‘우연과 상상’이었다. 와 씨 영화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