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의 영화는 과거로 회귀하는 복고주의가 많다. 기묘한 이야기도, 범블비도, 가오갤도, 공포영화인 그것도, 그것 2도 그리고 우리나라 벌새 등 많은 영화들이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단순히 과거에서 머무르고 싶다는 것에서 벗어나 복고에서 현재를 돌아볼 수 있다는 관점에서 문화에서 회귀를 하고 있다. 그 말은 현재를 누가 지배하는 가에 따라 과거, 즉 역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레트로 경향은 단순히 유행을 떠나 잡아당기는 힘이 강해서 주류를 이끄는 사람들을 흡수한다. 그 속에서 추억을 기억하는 이가 있고,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는 이도 있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도 레트로 풍이다. 독특한 영상이며 독특한 대사며 독특한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불행한 연속의 이야기.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시즌 3까지 제작되어서 한 편의 영화로 나왔던 2005년에 비해서 훨씬 풍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내용은 다 아는 것처럼 불시에 고아가 되어 버린 보들레어 삼 남매가 그들의 유산을 노리는 올라프 백작을 피해 갖가지 상황과 마주하며 헤쳐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기지를 발휘한다

 

원작의 제목은 ‘불행한 사건의 연속’으로 작가인 레모니 스니켓의 내레이션부터 이 이야기는 불행하고 또 불행한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운을 뗀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올라프 백작의 음모에 불행한 사건에 휘말리지만 발명을 잘 하는 첫째 바이올렛과 책벌레 둘째 클라우스, 뭐든 다 깨물어 버리는 정말 귀여운 비밀병기 셋째 써니가 힘을 합쳐 올라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면서 불행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이 불행의 연속에서 관객인 우리와 주인공인 바이올렛과 클라우스는 막내인 써니를 보며 불행을 잊어간다. 주인공들은 어떻든 써니를 보살펴야 하고 시리즈가 거듭할수록 써니는 점점 자라서 더 깜찍하고 귀엽고 황홀하다

 

영화는 빠져들 것 같은 색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웨스 앤더슨의 영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특이한 대사는 쉽게 넘길 수 없고 개성이 철철 넘친다. 이 불행한 사건의 기저에 깔린 이야기는 바로 모험이다. 아이들이 주인공이라 오래전 구니스를 떠올리기도 하고 기묘한 이야기도 떠올릴 수 있다

 

이 세계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전부 바보 같은데 만들어 놓은 말도 안 되는 규칙에서 아이들은 벗어나기 위해 지혜를 짜낸다. 선과 악의 대결구도가 확실하지만 아이들은 올라프라는 절대 악과 맞서면서 자신들이 악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방법이 절대 선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선택하기 이전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어른들은 비록 이것이 선이 아니라도 내가 속한 집단에 이익이 된다면 고민 없이 선택을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모험을 하면서 불행의 시간을 벗어날수록 아이들은 부모의 비밀에 조금씩 접근한다. 절대 악인 올라프로 천재소년 두기의 닐 패트릭 해리스가 분했다. 연기 좋다. 막내인 써니는 시즌 1에서는 기어 다니다가 시즌 2에서는 걸어 다닌다. 그리고 시즌 3에서는 말을 한다. 너무 당연한 것 같은데 그래픽으로 만들어 놓은 거 아니야? 할 정도로 귀엽고 예쁘다. 써니를 보는 것만으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써니의 모습은 거의 환장에 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오코가 붉은 피 같은 존재라면 미도리는 이름처럼 대책 없는 녹음의 싱그러운 존재다

 

키즈키의 죽음 후 대책 없이 스무 살이 되어 버린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목적지도, 결말도 없이 걷는다. 그건 마치 영혼 없이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

 

이렇다 할 마음을 내보이지도 못했는데 나오코는 요양소에 들어가 버리고 이것이 방황인지 먼지의 흐름인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와나타베 앞에 청량감 같은 미도리가 나타난다

 

감독인 트란 안 홍의 마지막 영화를 제외하고 다 본 것 같다. 그러니까 트란 안 홍의 영화를 감돌고 있는 색채를 너무 좋아한다. 그의 영화기저에 깔린 깊고도 밝은 우울감이 좋다

 

씨클로, 에서도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서도 절망을 넘어서는 우울감에 정신은 녹아버리고 몸은 산산히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 그 사이에 흐르는 필름 카메라에서나 볼 법한 색감이 우울함에 번지는 물감 같다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닿을 수 없는 붉은 우울을 정화시키는 것이 미도리다. 하지만 우울이란 밝음 속에 숨어 있는 우울이 더 단단하고 크다. 미도리는 와타나베만 있어주면 된다. 약속을 해 놓고도 만나러 나오지 않아도 남는 게 시간이라 괜찮아, 자산 같은 시간에 책이나 읽으면 돼(이런 대사는 없지만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스타일을 떠올렸을 때),라고 해버리는 와타나베를 미도리는 좋아한다. 미도리는 그게 사랑이다

 

하루키의 문체를 영화의 문채로 옮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많은 영화감독이 포기를 했다. 아마 30년은 더 인기가 있을 노르웨이 숲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을 때 트란 안 홍 역시 고민이었을 것이다. 다른 감독의 이전의 토니 타키타니에서 하루키의 문체를 영상으로 뿜어내야 하기에 한 공간에서 세트를 전부 바꿔가며 촬영을 했고 음악은 유이치 사카모토가, 미야자와 리에가 쓰러질 듯 말 듯 정말 멋지게 에이코와 히사코를 다 표현했다

 

하지만 가장 좋은 하루키의 영화는 이창동의 버닝이었다. 그건 정말 영화가 하루키의 소설을 읽은 기분이었다. 장면 사이에 온통 은유로 가득했다. 영화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건 다른 건 없고 몇 번씩 되풀이해서 보기 때문이다. 책도 영화도 10번 넘게 봤는데 하루키를 한 번 만나러 가면(기미 다 다이스키) 사인(절대 안 해주는)이라도 하나 받을래나

 

마지막 영화로 도쿄 기담집에 실린 하나레이 만(베이)이 영화가 되었다. 받아 놓고 아직 보지 못했는데 늘 그렇듯 기대가 된다. 상실의 시대 속 미도리는 현실감은 제로다.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인물이다. 그래서 더더욱 사랑스럽다. 키코의 파릇한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멜로가 체질에 아주 잠깐씩 등장하는 아랑은 다큐멘터리 감독 은정의 선배이다. 아랑은 은정에게 사람에 대해서, 여자에 대해서, 배우에 대한 다큐를 제안했고 은정은 이소민을 담기로 한다. 아랑이라는 캐릭터는 극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랑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은정은 아마도 자신 안에 감춰진 자신과 대면하는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은정의 주위에는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친구들과 이반인 동생이 있지만 그들 모두가 은정의 금이 간 마음이 깨질까 봐 누구도 먼저 은정을 위로하려 들지 못한다. 은정은 아무 일 없는 척, 무사안일하게 지내지만 에고를 드러내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가 은정은 힘든 일을 겪고도 잘 지내는 것처럼 본다. 친구들과 동생은 은정의 힘듦을 알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은정은 점점 더 자신이 가둬놓은 자신 속으로 들어간다

 

그때 불쑥 아랑이 나타나 방법을 ‘제시’한다. 은정의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하지 못했던 제안을 아랑은 하게 되고 은정은 마음을 먹고 자신 속에 감춰진 자신을 마주하는 일을 한다. 은정이 결심하게 된 계기는 이수민의 다큐를 찍는 도중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라는 이수민의 말에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홍대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더라?라고 묻는 장면을 화면 속에서 보게 된다

 

저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일까. 이미 죽은 홍대를 살아있는 것처럼 대하는 모니터 속의 자신을 보며 자신은 홍대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지냈던 것일까

 

아랑의 권유로 정신상담소를 찾은 은정은 최근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떠올려 보라는 말에 은정은 기억하려고 했지만 기억이 없다. 그건 아마도 병실에서 투병을 하면서도 은정에게 투정을 부리지 않았고 밀어내지 않았던 홍대가 죽었지만 은정은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마치 내일이라도 다시 살아나서 올 거라고 믿어 버린다. 은정은 그래서 슬퍼서 펑펑 울면서 지내기보다 그저 덤덤하게 보내기로 한 것이다

 

홍대의 죽음에도 덤덤하기만 했던 은정이가 환영을 보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자라온 환경에 그 원인을 있을지 모른다는 의사의 소견에 의해서 은정은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기억 속의 엄마와 함께 그저 평범하게 지낸 놀이터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고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은 감정인데 그만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만다. 왜 그날이 떠오르는지 자신도 알지 못한다. 특별하지도 않고 덤덤하게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의 하루에 은정은 오열을 한다

 

선생님 제가 왜 이런 거죠?

의사는, 괜찮아요, 문제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은정은 어릴 때에도 힘이 들면 엄마에게 기대고 싶은데 놀이터에서 먼 산을 바라보며 무표정으로 앉아 있는 엄마를 본 후 자신의 힘듦이 엄마를 더 아프게,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고 받아들인다. 그 뒤로 은정은 덤덤함 속에 자신을 가둬둔다

 

우리는 어른이 되고 난 후 자신을 감춰두고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회사에서는 회사에 맞는 나로, 모임에서는 모임에 맞는 나로, 친구들에게 맞는 나로, 아이에 맞는 나로, 회식에 맞는 나로, 집으로 와서 혼자인 시간이 되어도 폰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 맞는 나로 지내고 만다. 슬픈 일이 있어야만 눈물이 흘러나오는 우리는 그저 평범하게 흘러가는 이 하찮은 일상에 감격해서 펑펑 울 수는 없는 것일까

 

아랑은 잠깐 등장하지만 후배인 은정을 굉장히 아낀다. 은정은 선배인 아랑 덕분에 가둬둔, 감춰진 자신과 대면을 하게 된다. 나의 주위를 둘러보면 극 중의 이런 사람이 없는 것이 아쉽고, 이런 사람이 될 수 없는 나도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기괴하고 괴기하고 괴랄하고 공포스럽고 무서운 ‘타인은 지옥이다’의 주인공 종우는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갑충이로 변해버린 그레고르가 아니라 호밀밭의 홀든 녀석을 더 닮은 것 같다

 

선생님은 뭐가 다른데요? 선생님 눈에도 전 그냥 유령이잖아요. 한 번도 저한테 말 걸어 주신 적 없잖아요

 

홀든 녀석은 모든 일을 불평으로 일관해버리는 말투와 늘 삐딱한 태도와 시선으로 욕을 뱉어낸다. 어른들은 홀든을 늘 불만에 가득한 문제아라고 낙인찍어버린다. 그리고 홀든은 퇴학까지 당한다. 홀든 녀석은 모든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지만 작문에는 재능을 보였다. 어른들의 세계에는 혐오를 드러내지만 세상을 떠난 어린 동생에게는 여리고 여린 마음을 드러낸다. 벽처럼 단단한 마음의 틈으로 동생을 향한 추억 어린 그리운 마음이 뚫고 나온다

 

홀든의 이야기는 당시 추악한 위선으로 얼룩진 세상을 바라보는 상처 받은 청소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타인은 지옥이다에서 종우의 모습은 홀든을 닮았다. 작문에 탁월해 종우는 범죄소설을 쓰고 싶어하고 언젠가는 소설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모두 거짓과 위선으로 뒤덮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타인, 인간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회가 미쳐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사이에서 종우는 홀든 녀석(은 끝내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지만)처럼 숨어 있던 마음이 그대로 밖으로 표출하게 된다

 

나를 가만두기를 바라지만 이 사람, 저 사람 모두가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한 마디씩 하는 그 말에는 전부 나를 공격하거나 비꼬고 있고,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며 나 몰래 여자친구를 만나 무엇인가 꾸미고, 여자나 몰래 훔쳐보는 찌질한 놈이 내 선배이며, 예쁜 총각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고시원 아줌마는 엉덩이를 툭툭 치고, 방 사람들은 모두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 회사에서도 고시원에서도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종우는 결국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자아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던 초자아와 이드가 튀어나오고 만다

 

임시완의 여러 자아를 드러내는 연기는 와아 할 정도로 잘한다. 넋이 나간 모습도 환멸에 찬 모습도, 두려움에 쩌는 모습은 압권이라 할 만하다. 생글생글 웃으면 한없이 천진난만한 얼굴인데 증오와 분노로 이드가 표출될 때는 타인은 지옥이다에 나오는 무서운 캐릭터보다 더 괴물처럼 보인다

 

그거 맛있어요? 그거 사람 고긴데. 이 짧은 대사만으로도 오싹하게 만들었던 타인은 지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8살 인국이는 엄마의 성을 따라 황 씨다. 황인국 씨는 8살이지만 18살 같기도 하고 80살 같기도 하다. 같이 살고 있는 아직 어른이 안 된,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기묘하고 괴기한 서른의 이모들과 엄마에게 돌직구를 날릴 줄 안다

 

첫 등장에 황인국 씨는 빌어먹을 이모들과 엄마와 삼촌에게, 초딩 자잖아, 애키 우는 집에서 맨날 술이나 먹고 떠들고, 층간 소음이 없으면 뭐 하냐고 거실소음 때문에 못 살겠는데.를 남발하며 방으로 들어가 주신다

 

황한주는 아침마다 밥 안 먹는 황인국 씨 때문에 전쟁이다. 이 부분에서는 어렴풋이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주는 숟가락 들고 따라다니고 황인국 씨는 도망가고. 황인국! 빨리 삼켜! 학교 안 가?라고 한주가 소리 지르면 능청스러운 황인국 씨는, 안 가면 좋고.라고 되받아 친다

 

말로 이길 수 없음을 예감한 한주는, 후,,,, 야! 너 이제 2학년이야! 너 정말 커서 뭐 될라 그러니!라고 엄마가 다시 소리 지르면 역시 능청스러운 저 얼굴로, 3학년,라고 짧고 굵게 대답한다

 

인국이는 가끔 아빠가 보고 싶지만 잘 참아가며 엄마와 이모들과 우당탕탕 잘 지낸다. 하지만 황인국 씨가 돌직구 능청스런 아이라 해도 이제 8살이다. 갖고 싶은 거 사달라고 엄마에게 떼를 쓰는 인국에게 한주는 안 된다며 팽팽하게 맞선다. 한주는 말끝마다 달려드는 황인국 씨에게 터지고 만다. 우리는 가진 게 없어! 아껴야 해! 갖고 싶은 거 다 가지며 살아갈 수 없어! 소리를 지른 엄마에게 인국이는 동그란 눈으로, 난 아빠가 없잖아!라고 한다

 

엄마가 돌보지 못하면 빌어먹을 어른아이인 이모들과 효봉 삼촌이 돌아가면서 황인국 씨를 돌보지만 인국에게 아빠의 부재는 크다. 드라마는 절대 울지 않고 꿋꿋한 황인국 씨를 둘러싸고 있는 어른들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신파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 부분이 좋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는 현실이니까.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니까. 막힐때마다 울고 불고 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나만 바라보는 가족이 잘못될 수 있으니까. 힘들고 지치더라도 기운을 낼 수밖에 없다

 

 

 

#

아이는 나에게 안겨 떨어지지 않고 있다.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 때문에 아이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마음처럼 안 된다. 회의 도중에 나와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아이가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등에서 자꾸 땀이 난다. 냄비에 물이 끓고 있다. 엄마, 밥해야 해,라고 하지만 아이는 더욱 품으로 파고든다. 아이를 겨우 달래서 일어나려는데 자꾸 덥다. 등에서 땀이 많아 나서 이미 옷이 축축해졌다

 

 

숨 쉬는 게 가쁘고 눈앞에 노래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누워있다가 일어나 앉았다. 나를 부르는 거 같은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냄비가 끓어넘치기 일보 직전이다. 나는 기어서 전화가 있는 곳까지 갔다. 아이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119를 불렀다. 구급차가 왔고 아이가 옆에서 울고 있다. 응급실에 갈 때까지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응급실에서 감기라고 했다. 감기에 탈수가 겹쳤다는 것이다. 의사는 병실에서 주사를 맞고 좀 잠들었다가 일어나라고 했다. 아이는 병원에서 봐준다는 것이다. 병실로 옮겨가는 침대에 누워 병원 복도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을 봤다. 어쩐지 모두가 하나씩 불행을 안고 있는 것 같아서 병원에 오니 마음이 놓이는 기분도 든다. 병실비, 병원비, 약 값.... 그때 눈물이 흘렀다. 독감도 아니고 감기에 이렇게 쓰러질 줄 몰랐다. 이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는 것에 더 서글펐다

 

 

병실에 옮겨져 누웠을 때 약기운 때문에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아이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 그래 그것이 소중한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자. 기운을 차리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