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인국이는 엄마의 성을 따라 황 씨다. 황인국 씨는 8살이지만 18살
같기도 하고 80살 같기도 하다. 같이 살고 있는 아직 어른이 안 된,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기묘하고 괴기한 서른의 이모들과 엄마에게 돌직구를
날릴 줄 안다
첫 등장에 황인국 씨는 빌어먹을 이모들과 엄마와 삼촌에게, 초딩 자잖아,
애키 우는 집에서 맨날 술이나 먹고 떠들고, 층간 소음이 없으면 뭐 하냐고 거실소음 때문에 못 살겠는데.를 남발하며 방으로 들어가
주신다
황한주는 아침마다 밥 안 먹는 황인국 씨 때문에 전쟁이다. 이 부분에서는
어렴풋이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주는 숟가락 들고 따라다니고 황인국 씨는 도망가고. 황인국! 빨리 삼켜! 학교 안 가?라고 한주가 소리
지르면 능청스러운 황인국 씨는, 안 가면 좋고.라고 되받아 친다
말로 이길 수 없음을 예감한 한주는, 후,,,, 야! 너 이제 2학년이야!
너 정말 커서 뭐 될라 그러니!라고 엄마가 다시 소리 지르면 역시 능청스러운 저 얼굴로, 3학년,라고 짧고 굵게
대답한다
인국이는 가끔 아빠가 보고 싶지만 잘 참아가며 엄마와 이모들과 우당탕탕 잘
지낸다. 하지만 황인국 씨가 돌직구 능청스런 아이라 해도 이제 8살이다. 갖고 싶은 거 사달라고 엄마에게 떼를 쓰는 인국에게 한주는 안 된다며
팽팽하게 맞선다. 한주는 말끝마다 달려드는 황인국 씨에게 터지고 만다. 우리는 가진 게 없어! 아껴야 해! 갖고 싶은 거 다 가지며 살아갈 수
없어! 소리를 지른 엄마에게 인국이는 동그란 눈으로, 난 아빠가 없잖아!라고 한다
엄마가 돌보지 못하면 빌어먹을 어른아이인 이모들과 효봉 삼촌이 돌아가면서
황인국 씨를 돌보지만 인국에게 아빠의 부재는 크다. 드라마는 절대 울지 않고 꿋꿋한 황인국 씨를 둘러싸고 있는 어른들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신파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 부분이 좋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는 현실이니까.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니까.
막힐때마다 울고 불고 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나만 바라보는 가족이 잘못될 수 있으니까. 힘들고 지치더라도 기운을 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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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나에게 안겨 떨어지지 않고 있다.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 때문에
아이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마음처럼 안 된다. 회의 도중에 나와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아이가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등에서 자꾸 땀이 난다. 냄비에 물이 끓고 있다. 엄마, 밥해야 해,라고 하지만 아이는 더욱 품으로 파고든다. 아이를 겨우 달래서 일어나려는데
자꾸 덥다. 등에서 땀이 많아 나서 이미 옷이 축축해졌다
숨 쉬는 게 가쁘고 눈앞에 노래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누워있다가 일어나
앉았다. 나를 부르는 거 같은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냄비가 끓어넘치기 일보 직전이다. 나는 기어서 전화가 있는 곳까지
갔다. 아이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119를 불렀다. 구급차가 왔고 아이가 옆에서 울고 있다. 응급실에 갈 때까지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응급실에서 감기라고 했다. 감기에 탈수가 겹쳤다는 것이다. 의사는 병실에서
주사를 맞고 좀 잠들었다가 일어나라고 했다. 아이는 병원에서 봐준다는 것이다. 병실로 옮겨가는 침대에 누워 병원 복도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을
봤다. 어쩐지 모두가 하나씩 불행을 안고 있는 것 같아서 병원에 오니 마음이 놓이는 기분도 든다. 병실비, 병원비, 약 값.... 그때 눈물이
흘렀다. 독감도 아니고 감기에 이렇게 쓰러질 줄 몰랐다. 이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는 것에 더 서글펐다
병실에 옮겨져 누웠을 때 약기운 때문에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아이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 그래 그것이 소중한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자. 기운을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