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모짜렐라!

줄리아를 줄리웨라 부를 때 줄리아가 혼잣말로 산타 모짜렐라 라고 할 때 웃기다. 산타 모짜렐라는 영화 말미에 산토 고르곤졸라로 바뀌고 그때에는 아마도 감동을 영화 속에 나오는 파스타만큼 먹게 된다. 줄리아의 얼굴은 페넬로페 크루저의 애기애기한 어린이 얼굴 같다.

영화는 처음부터 귀여움의 연속이다. 루카 옆에서 주세페 물고기의 입 오물오물거림은 정말 개 귀엽다. 루카는 줄리아를 통해 점점 세상을 알아간다. 줄리아가 태양계의 책을 선물로 주면서 “우주가 이젠 네 것이로다”라고 할 때 루카는 감동한다. 아니 감동을 넘어 놀란다. 그렇게 루카는 우주를 가슴에 지니게 되었으니.

영화를 보면 이탈리안의 습성도 알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둘이 쌩 내려갈 때 장기 두는 아저씨를 스친다. 그때 장기판을 돌려 버리는데 이런 모습은 하루키의 먼 북소리에 자잘하고 세세하며 재미있게 잘도 써 놨는데 딱 그런 모습이다.

루카와 알베르토는 물에 닿아 괴물이라는 것이 들통난다. 굿바이 줄리아. 줄리아를 떠나며 루카는 알베르토를 찾아간다. 강한척하는 알베르토는 누군가 내미는 손을 간절하게 잡고 싶었던 아직 아이였던 것이다.

다시 경기에 나간다는 루카의 말에 알베르토는 “미친 소리 하지 마” 그렇게 미쳐가면서 조금씩 성장한다. 경기 마지막 비를 맞아서 괴물로 변한 알베르토, 그때 알베르토가 그물에 잡히게 되었을 때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면서 루카도 비를 맞아 괴물이 된다. 그리고 알베르토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알베르토가 잡았을 때 눈물이 난다.

루카의 인싸 할머니가 말한다. 끝까지 안 받아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 그렇진 않을 거야. 루카는 이미 좋은 사람 찾는 법을 아는 것 같아.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모두가 나를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 나를 좋아하는 한 사람, 그리고 내 편인 한 사람만 있으면 이 험하고 험한 세상에서 해볼 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카를 보면서 느낀 건 픽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릴 때 하고 싶었던 걸 못하고 커버려서 그냥 우리 하고 싶은 걸 다 하자! 그래! 하며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루카는 보면서 정말 기분 좋았고 애틋했다.

우와 나보다 훨씬 멋지게 사네. 난 아무 데도 못 가는데. 꿈만 꿀 뿐.라고 루카가 초반에 알베르토에게 말한다.  

그 꿈을 꾸는 것이 첫 시작인 것이다. 시작을 하고 나면 그 다음은 조금씩 성장하면서 꿈을 이룰 수 있다. 기분 좋은 영화, 감동 먹은 영화. 루카 였다. 산토 고르곤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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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wF5EmyCSts




음악감독인 유준상이 배우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뮤직비디오를 찍는 내용이다. 하지만 가사도 없고 그저 허밍으로 ‘음’만 유준상 머릿속에 있어서 배우들은 당최 뭐가 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유준상 감독은 주문을 하는데 전혀 그런 장면이 아니라 감정은 잡히지 않고, 춥고 힘들고.


배우 소진은 결국 터지고 만다.

영화를 보는 우리도 이거 뭐야? 이게 뭔 뮤직비디오 촬영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

점점 엉망진창이다.

한국어로 대사 치면 소진은 중국어로 감정 잡아 대사 치고,

서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막 한다.

오케이를 외치는 건 유준상뿐.


카메라를 보며 말을 하고 배우 이름을 그대로 영화 속에서 이름이 되어서 불리기 때문에 다큐처럼 보인다.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

70 넘어까지 감독이 하고 싶다는 유준상의 작품으로, 이 영화를 보면 유준상은 머리가 참 좋다. 아니 머리도 좋은데 노력을 굉장히 하는 것 같다.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너무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잖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어느 순간

아 그 의미가 뭔지 알겠다

싶을 때가 있잖아


영화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이렇게 해서 무슨 뮤직비디오가 될까 싶은데,

마지막 이 엉성하고 난잡하고 엉망진창으로 찍은 영상으로

기가 막힌, 멋지고 아름다운 한 편의 뮤직비디오가 된다.

보고 있으면 울컥한다. 진짜.


세상은 그럴 때가 있고, 그럴 때가 온다.


불안한 인생에 대해서 불편하지 않게 소진은 말한다.


한때야

시련, 정말 한때야

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듯이

이 어둠의 긴 터널

얼마 남지 않았어


요즘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영화가 아닐까.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던,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던, 모두가 힘들어서 겨우 버티고 있으니까.

내 자식이 아프다고 해서 대신 아파줄 수 없는 것처럼 견디고 버티는 것도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이 힘든 시기에 내가 버텨야 한다.

비티고 견디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빛이 봄이 되어 찾아와서 내 옆을 따뜻하게 해 준다.

그런 영화다.



다음 영화는 단편 영화 '여름, 버스'다.


https://youtu.be/-MliIE5PGrI

온전히 한 편을 다 볼 수 있다

단편 영화 ‘여름, 버스’는 마음이 청량해지는 영화다. 18분짜리 이 영화는 두 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두 편이 다른 이야기인데 맞물린다. 더운 날 부산의 버스에서 일어나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일들을 여름의 아침 햇살처럼 맑게 그려내고 있다.


언제나 기분 좋게 운전을 하는 버스기사는 딸이 버스를 타도 카드를 찍으라고 한다. 만원인 버스에 올라온 산모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이 없어 애가 타는 기사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그런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일과를 끝낸 기사는 회사에서 배차 시간을 바꿔 달라고 어렵게 말을 하는 후배의 이야기를 듣는다. 후배는 친구가 수술을 하는데 병문안을 한 번 가야겠는데, 라는 말을 듣고 기사는 후배를 위해 그렇게 해준다. 그러면서 후배 기사의 이야기, 여름 버스의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번째 이야기는 버스에 요금을 내지 않고 자꾸 타는 초등학생이 있다. 요금을 내라고 하면 유치원생이라는 녀석. 그리고 그 녀석이 앉았다가 내리면 창문에 크레파스로 물고기 낙서가 그려져 있다.


꼬마 녀석은 뒷문으로도 몰래 타고, 내리면 또 낙서가 그려져 있고. 기사는 그 낙서를 지운다고 매일 힘들다. 그러다가 꼬마 녀석이 또 몰래 탄 버스에서 요요 도토리 녀석 하며 버스를 세우니 꼬마 녀석이 하하하 웃으며 내리고 만다. 그런데 급하게 내리느라 크레파스를 두고 내린 것이다.


기사는 다음에 꼬마 녀석이 오면 크레파스를 줄 요량이었지만 다음 날에 꼬마 녀석이 오지 않는다. 꼬마를 기다리다 손님들이 출발하자는 소리에 버스는 출발하게 되고. 크레파스를 들어서 보니 거기에는 ‘온종합병원 소아청소년과‘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기사는 크레파스를 주러 병원을 찾는데, 어떻게 될까. 기사는 꼬마 녀석의 친구가 되어 버스를 온통 꼬마 녀석을 위해 꾸며주는데.


영화는 18분으로 끝나지만 컴퓨터 그래픽도 등장하며 그냥 밝고 맑고 깨끗하고 기분이 너무 좋은 영화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긴데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영화다. 지금 우리에게 뭔가가 필요한데 사실 뭐가 필요한지 잘 모르지만 이 영화를 보면 마음이 참 편해진다. 영화는 유튜브로 풀 버전으로 볼 수 있다.



다음 영화도 독립 영화 '카메라가 꺼진 유튜버들의 실체'다. 


https://youtu.be/U47U7fLb2ig

이 단편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지금의 이야기를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튜브, 아프리카 티브이, 별 풍선과 슈퍼쳇의 유혹에 이끌려 점점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요즘의 우리들의 자화상을 잘 보여준다.


자극적인 영상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준다. 자본의 노예가 되는 순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내가 도대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자각하는 능력은 사라진다.


관음을 바라는 자들과 관음을 바라는 자들을 위해 터부를 보여주는 자들 사이에는 자본이라는 강이 놓여 있다.


제도와 법의 허술함을 뚫고 미성숙한 사람들은 콸콸 튼 수도꼭지의 물처럼 쏟아진다. 그리고 이들은 자본이 낳은 괴물이 된다. 괴물이 되면 의지만 가지게 된다. 의지만 있는 존재는 좀비와 다를 바 없다. 구덩이에 쥐를 풀어 주면 좀비는 구덩이에 얼굴을 처박고 3일을 쥐를 꺼내려 한다.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13분짜리 이 짤막한 단편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잘 보여준다. 반전에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이야기. 단편 영화 ‘카메라가 꺼진 유튜버들의 실체’였다. 역시 유튜브로 풀 영상이 있으니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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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없이 풀어헤쳐진 자연스러움에 녹아내리는 마음이 뜨거워 두 손으로 잡고 싶은 영화. 그럼에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잔상이 내내 맴돌아 돌아서면 눈물이 흐르는 영화다.


아이들이 눈밭의 강아지처럼 즐거울수록 눈물이 난다. 눈물의 원천은 따뜻함이다. 아이들만이 지니고 있는 온도의 따뜻함이 차갑거나 뜨거운 어른들의 눈두덩을 어루만져 준다.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울어야 할 때 울고 즐거울 때는 즐겁다.


엄마에게 확인받고 싶은 다이. 엄마를 만나러 병원으로 가는 것이 자꾸만 엄마를 아프게 하는 것 같은 다이. 더 먼 곳으로 병원을 옮긴 엄마를 찾아 떠나는데 다이만 보낼 수 없는 찬구들이 하나둘 붙고, 결국 다이와 아이들의 멀고도 기나긴 여정.


재경의 변화가 뭉클한 이유는 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재경과 다이가 함께 찍은 엄마를 위한 노란 꽃 사진은 진짜 꽃 사진이다. 어느 예술 사진 못지않은 예쁜 사진.



아이들의 멀고도 험하지만 즐거운 여정의 길을 보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일상의 기적을 믿고 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속의 아이들은 세계가 무엇인지 몰라 힘들어도 울지 않는다.

엄마와 떨어져 살아도,

아빠 없이 엄마와 살며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예쁜이라고 해도,

키우던 마블이 죽어도,

아이들은 즐겁게 하루는 보낸다.

묘하게도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바늘로 살짝만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아빠를 닮아서 엄마가 싫어하는 줄 알았어,라고 무던한 류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어른들의 모습이 아닐까.

기적은 아이들 주위에서 진짜로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말고기 회를 먹지 못해 고작 말고기 맛이 나는 비스킷이라도 상관없다.

영화는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이봐, 너 자체로 기적이야, 네가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그때 아이들에게서 받은 감정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는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였다. 웹툰을 제대로 영화화한 좋은 예다.


아쉬운 점은 다이 아빠의 눈썹이다. 정리가 심하게 잘 된 눈썹이 몰입에 방해를 단단히 한다.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눈썹을 정리하는 게 당연하지만 영화 속에서마저 방송 예능처럼 천편일률적으로 깔끔하게, 누가 봐도 눈썹을 정리하는 곳에서 관리를 받은 것처럼 정리가 된 눈썹을 하고 나올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다이의 아빠잖아. 다이의 아빠는 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힘들다. 다이 엄마의 병원비를 대기에도 너무나 벅차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이다. 실제로 이렇게 생활하는 남자의 눈썹이 영화 속 다이의 아빠의 눈썹처럼 로봇처럼 잘 다듬어져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얼굴에서는 다이와 엄마에 대한 걱정과 앞으로 먹고 살아가야 할 고민에 휩싸인 표정이지만 눈썹이, 너무 깔끔하고 다듬어진 눈썹이 몰입을 떨어트린다. 다이 아빠의 눈썹 정도는 실제 그러한 어려움에 처한 가장의 눈썹 이어야 했다. 정글처럼 마구 자라 있거나 숱이 일정하지 않거나. 모든 게 가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눈썹은 잘 나가는 샵에서 받은 것 같은 괴리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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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06-02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리하십니다. 눈썹을 잡아내시다니....
전 손을 유심히 보곤 합니다.

교관 2021-06-02 11:43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냥 화면에 딱 보이더라구요. 영화는 참 좋았습니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의 영화 버전 ‘아이엠 히어’는 딱 요즘의(코로나를 소거하고) 이야기다.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에서 레스토랑을 하는 중년의 스테판은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한국 여인 ‘수‘와 대화를 하면서 점점 자신만의 상상을 하게 된다.


매일매일 인스타그램의 메시지로 대화를 하다 보니 수가 좋아지고 무료하고 자신만 왕따를 당하는 것 같은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진 스테판은 한국은 벚꽃이 지금 예쁜 시기고 같이 보면 참 좋겠다는 수의 한 마디에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기분이 하늘 끝까지 오른 스테판은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수에게 메시지를 넣는다. 비행기 시간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아이엠 히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수의 아이디를 단다.


그렇게 8시까지 만나기로 한 수는 나오지 않고 스테판은 공항에 머물며 수를 기다린다. 그러면서 한국인들과 조금씩 친해지게 된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술을 마신 한국인들과 같이 사진을 찍으며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단다. 그러기를 일주일이 지난다.


스테판은 그동안 공항에서 먹고 자며 수를 기다리지만 수는 나타나지 않고 스테판의 사진은 점점 인스타그램을 채우고, 그럴수록 몇 명 없던 팔로워들이 삼천 명이 넘어가며 스테판의 이야기는 인스타그램을 타고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프렌치 러버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한국 여인을 찾아서 무작정 서울로 와서 공항에서 그녀를 기다린다며 뉴스에까지 나오기 시작한다. 점점 이야기가 이상한 쪽으로 간다고 느낀 스테판은 그녀가 일한다는 건물을 찾기 위해 공항을 나와서 버스를 타고 그녀를 찾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만난 수. 과연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늘 일탈을 꿈꾼다. 일상에서 일탈을 맛보게 하는 것이 렌선이다. 렌선 속에서 우리는 마음껏 일탈을 즐긴다. 터트릴꼬얌게이트를 연 주인공의 인스타그램도 인터넷 사진을 퍼 와서 마치 자기가 그 카페에 간 것처럼 적어 넣고, 피자 사진, 화장품 사진도 다 인터넷 사진을 퍼 온 걸 마치 자기가 그걸 사용하고 먹은 것처럼 올렸다가 지금은 폐쇄되었다. 일탈에 미치게 되면 정말 그렇게 다 들통날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까.


스테판은 수를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일탈 속에는 일상에서의 편안함이 없다는 걸. 그리고 일상 속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정말 행복에 도달하는 길이라든 걸 깨닫는다. 영화를 보면서 든 두 가지의 생각. 하나는 인천공항의 여러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정말 크고 넓구나, 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배두나는 영어, 일어, 프랑스어까지 도대체 못 하는 게 무엇일까. 킹덤 3에서 전지현과 배두나는 또 어떤 모습일지 빨리 보고 싶네.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한 단어는 ‘눈치’다. 눈치가 전혀 없는 스테판은 눈치 없이 그저 보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한국으로 수(배두나)를 찾으러 와서 매일 인스타그램에 수의 아이디를 태그 한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수에게 눈치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눈치가 없어서 스테판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조차 모른다. 그저 만나기만 하면 좋을 줄 알았던 스테판과 달리 수는 그저 넷 상으로만 연락을 하며 즐겁게 지내는 것이 일상에서 일탈을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실지로 눈치가 없으면 사회생활이 힘겨울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미용사는 손님에게 눈치 없는 게 인간이야?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건 그 안의 인간관계를 말한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평행 관계가 아닌 그 외의 인간관계에서 눈치가 없다는 건 사회생활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눈치가 너무 없으면 그 마저도 알 수 없으니 어쩌면 일말의 눈치도 없는 게 그냥 눈치가 없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지도 않을까 싶다.


언젠가부터는 눈치가 없는 걸 허당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허당이라 불리며 귀여움을 받지만 실생활에서 허당은 주위를 힘들게 한다. 눈치가 없고 허당인 사람은 아부가 없다. 아부가 없다는 말이 윤리적으로는 도덕적으로 들리는 말이겠지만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다. 아첨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아첨이란 환심을 사려고 알랑거리는 행동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와는 다르게 아부는 뭐랄까, 아부를 잘한다는 말은 눈치가 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런 허당인 사람은 회사생활보다는 혼자서 하는 일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눈치가 없다면 분명 일을 하는 도중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어쩌면 자기만 모르고 따돌림당할 수도 있다. 회사의 상사는 오히려 눈치 없이 상사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을 더 바랄지도 모른다. 박연준 시인도 에세이에서 자신은 허당이라서 어쩌도 저쩌고 하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허당인 박연준 시인은 혼자서 글을 쓰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생활의 인간관계에 금이 갈 일은 없다. 아무튼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유쾌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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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시카고의 역사책을 쓰려고 하던 아마추어 사진작가 존 말루프는 역사책을 쓰는데 필요할까 싶어 동네 창고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30만 장이 넘는 사진 필름과 상상을 넘어버린 잡동사니를 구입하게 된다. 몇몇 사진을 인화해서 프로 사진가에게 보내보곤 했지만 답이 없어서 그저 처박아 두었다가 그 필름을 스캔을 하기로 한다. 스캔을 해서 봤더니 1950년대부터 1970년의 시카고와 뉴욕의 풍경, 그 풍경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담은 사진이었다.


존은 일일이 스캔을 뜬 파일을 사진 블로그를 만들어 올리게 된다. 그리고 자고 일어났더니 사람들의 관심은 폭발하기에 이른다. 놀랍다, 굉장하다, 감동적이다, 마음에 쏙 들어요, 감탄밖에 안 나오네요, 놀라운 발견, 고마워요, 대단해요 등 반응이 엄청났던 것이다.


존은 사진들을 뉴욕 미술관에 보내지만 퇴짜를 맞고, 자신이 사진 전시회를 직접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일일이 사진을 인화하고 다듬고 액자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존이 봤을 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은 잘 나온 사진보다 정말 좋은 사진이었다. 그래서 시카고 문화센터에 전시를 신청하게 되고 그 결과는 역대 최다 관람객이 보이면서 정보라고는 오직 이름뿐이었던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가 시작된다.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 모든 매체는 거리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에 주목하기 시작하고 존은 비비안 마이어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을 보면 주로 인간을 담았다. 수필은 강과 바람 바다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소설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사진은 보는 이들의 똑같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사람을 담은 사진에는 각각 다른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로베르 두아노의 익살스러움도 있고, 샐리 만의 빛도, 다이안 어버스의 금기를 담은 사진도 있고, 앙리 카르티에 브레숑의 찰나도 사진 속에 있었다.


메리 엘렌 마크가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았다. 그녀가 비비안의 사진에 대해서 놀라면서 인간을 이해하고 있는 사진을 담아냈다고 한다. 초상권이나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시대였지만 비비안의 사진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건 사람들을 담기 위해 요즘처럼 망원렌즈 같은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그 사람을 찍기 위해, 촬영하기 위해, 그 사람을 담기 위해 그 사람 곁으로 다가갔다는 것이다.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같은 사진은 담아낼 수 없다. 비비안 마이어의 행적을 보면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니지만 사진은 그녀를 ‘관계’에 대해서 다가가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화장실에서 흔히 찍는 셀카의 개념도 제일 먼저 도입한 사람이 비비안 마이어였을지도 모른다. 그 이전의 사진가들은 전혀 거울에 리플렉션 되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보다는 개념이 없었다. 95년도에 일본의 히로 믹스가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일본 열도와 전 세계 사진 바다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그때 히로 믹스가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을 코니카 빅 미니로 셀카를 찍었지만 비비안 마이어가 훨씬 이전에 이미 시도를 했다.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는 아마추어 무명이라 그녀의 사진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영화는 비비안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매개로 서서히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간다. 이 다큐의 특징이라면 다큐멘터리의 확정적인 개념에서 살짝 벗어나 비비안의, 비비안이라는 사람의 미스터리를 비비안의 물건을 가지고 하나씩 풀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비비안 마이어를 통해, 그녀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순열주의’ 또는 ‘집단주의’ 또는 ‘엘리트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는 무명, 아마추어가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창조물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엘리트주의 속에 속해야 하는데 그것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할까. 지금도 크게 바뀌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작금에서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높이 평가하는 사진가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전과 다르게 말이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피카소 역시 냉대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의 재능은 자신 혼자서는 무리다. 그것을 발견하고 키워주고 유지시켜주는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어야 그것이 가능하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그것을 위해서 아침에 눈을 떠 밤에 눈을 감기 전까지 꽤 열심히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전이 몇 해 전에 서울에서 있었다. 요즘은 아무 때나 인터넷으로 유명 사진가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나는 늘 이것을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사 진부였을 때만 해도 사진 전시회를 보려면 그곳까지 가야 했고, 돈을 구해야 했고, 학생이라 문전박대당하기도 했고, 늦어서 문이 닫혀 돌아와야 했다. 그런 경험을 가진 나로서는 지금처럼 클릭만으로도 이렇게 멋진 사진들을 귤을 까먹으며 볼 수 있다는 것에 늘 놀라고 있다. 그러니 지금 내 주위에서 내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고 있는 것들은 꽤나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뭔가 좀 더 세상이 달라 보이지 않을까 싶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다큐 같지 않은 다큐였다. 흥미진진함이 영화 전반에 있기 때문에 한 번 밖에 없는 일생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태도도 생각하게 한다. 영화를 보면서 비비안 마이어도 찾고 자신도 찾아가길 바라는. 세상의 모든 곳에서 등을 구부리고 고독하게 창조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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